지식의 민주화는 어떻게 지불 능력의 위계가 되었는가
1. 초파리 한 마리와 사라진 서른 개의 저널
나는 초파리를 연구한다. 몸길이 3밀리미터의 이 작은 곤충 한 마리를 붙들고, 유전자 하나가 행동 하나를 어떻게 빚어내는지 밝히는 데 때로 몇 년이 걸린다. 수만 마리를 교배하고, 신경회로 하나에 빛을 비추고, 같은 실험을 스무 번 반복한 끝에, 운이 좋으면 한 편의 논문이 나온다. 그 논문은 누군가의 실험 위에 얹히고, 다시 다른 누군가의 실험을 떠받친다. 과학이란 그런 것이다. 벽돌을 하나씩 쌓아 올려 지식의 탑을 세우는, 지루하고 고독하고 정직한 노동. 뉴턴이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섰다고 말했을 때, 그 거인은 천재 한 사람이 아니라 이름 없이 벽돌을 굽던 수천 명의 연구자였다.
그런데 2026년 3월, 세계에서 가장 큰 연구기관 하나가 그 탑의 가장 화려한 벽돌들에 등을 돌렸다. 산하에 100개가 넘는 연구소와 5만 명에 가까운 연구자를 거느린 중국과학원(CAS)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셀 리포츠》를 비롯한 서른 개 남짓의 고가 오픈액세스 저널에 대해 더 이상 논문처리비(APC, Article Processing Charge)를 지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사이언스》가 2월 말에 보도한 이 사건의 충격은, 그 명단에 오른 저널들이 결코 ‘약탈적’이지 않다는 데 있었다. 오히려 그것들은 한 세대의 연구자가 평생 한 번 실어보기를 꿈꾸는,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들이었다.
CAS가 내건 이유는 단 한 단어로 요약된다. 가성비(性价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는 한 편을 싣는 데 7,350달러, 《셀 리포츠》는 5,790달러, 《사이언스 어드밴시스》는 5,450달러를 요구한다. 명단에 오른 저널은 예외 없이 5,000달러를 넘겼다. 순수 오픈액세스도 아닌 《네이처》 본지의 논문처리비는 1만 2,690달러, 우리 돈으로 1,600만 원이 넘는다. 중국과학원은 여기에 더해, 인용 조작과 논문공장 정황이 짙은 120여 개 저널에도 자금을 끊었다. 전 세계 평균 논문처리비가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계산으로 1,236달러, 업계 통념으로도 2,000달러 안팎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CAS의 칼날이 정확히 어디를 겨누는지 보인다. 너무 비싼 권위에.
나는 이 사건을 한 줄로 옮겨 적었다. 임팩트 팩터의 노예였던 과학이, 이제 APC의 노예가 되었다. 그리고 이 짧은 문장이야말로 지난 사반세기 오픈액세스 운동의 역사를 가장 잔인하게 압축한다.
2. ‘파괴적 혁신’이라는 거짓말
오픈액세스는 아름다운 명분에서 출발했다. 납세자의 돈으로 생산된 지식이 왜 출판사의 페이월(paywall) 뒤에 갇혀, 다시 대학이 수십억 원의 구독료를 내야만 열람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정당했고, 지금도 정당하다. 2000년대 초 부다페스트와 베를린에서 터져 나온 선언들, 그리고 2010년대의 Plan S는 모두 이 정당한 분노에서 태어났다. 알라하르(Allahar)는 2017년 《기술혁신경영리뷰》에 쓴 논문에서, 350년을 군림해온 학술 출판 산업이 인터넷 기술 앞에서 마침내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의 격류에 휩쓸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크리스텐슨의 이론을 빌린 이 우아한 분석은, 오픈액세스를 낡은 권력을 무너뜨리는 해방의 기술로 그렸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무엇이 파괴되었는가. 정말 권력이 무너졌는가.
진실은 정반대다. 오픈액세스가 한 일은 권력을 무너뜨린 것이 아니라, 착취의 방향을 바꾼 것뿐이다. 과거에 출판사는 독자에게 구독료를 받아 돈을 벌었다. 이제는 저자에게 게재료를 받아 돈을 번다. 비용은 읽는 자에게서 쓰는 자에게로 이동했을 뿐, 그 비용을 빨아들이는 자본의 입은 더 커졌다.
숫자가 증언한다. 하우스타인(Haustein)과 동료들이 2024년에 집계한 바에 따르면, 전 세계 연구자들이 논문처리비로 지출한 돈은 2019년 약 9억 1,000만 달러에서 2023년 25억 4,000만 달러로 단 4년 만에 거의 세 배로 불어났다. 같은 기간 누적 지출은 83억 달러를 넘는다. 이 거대한 현금의 강이 어디로 흘러드는가. 2023년 한 해에만 MDPI가 6억 8,000만 달러, 엘스비어가 5억 8,000만 달러, 슈프링거 네이처가 5억 5,000만 달러를 논문처리비로 거둬들였다.
그리고 이윤율. 엘스비어의 모회사 RELX가 2025년 초에 공개한 실적을 보면, 과학·기술·의학 부문의 조정영업이익률은 38.4퍼센트에 이른다. 매출 30억 5,000만 파운드에서 11억 7,000만 파운드를 이익으로 남긴 것이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가늠하기 어렵다면, 비교 대상을 떠올려보라. 애플의 영업이익률이 24퍼센트 남짓, 구글이 21퍼센트 안팎이다. 즉 학술 출판은,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기술 독점기업들보다 더 높은 이윤율을 자랑하는 사업이다. 연구비는 국민의 세금에서 나오고, 논문 심사는 동료 과학자들이 무료로 해주며, 편집위원의 노동조차 대개 무보수다. 출판사는 단지 그 사이에 앉아 PDF를 호스팅하고, 38퍼센트를 가져간다.
이것이 알라하르가 말한 ‘파괴적 혁신’의 실체다. 파괴된 것은 출판 과점이 아니라, 지식의 공공성이라는 이상이었다. ‘지식의 민주화’라는 구호는 어느새 ‘지불 능력의 위계’로 번역되어 있었다. 1,600만 원을 낼 수 있는 연구실의 논문은 누구나 읽을 수 있고, 그 돈이 없는 연구실의 논문은 페이월 뒤에서 조용히 사라진다. 열린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식에 이르는 입장권의 가격표였다.
3. ‘약탈자’라는 낙인, 혹은 권력의 언어
오픈액세스의 그늘에서 자라난 또 하나의 괴물이 있다. 이른바 ‘약탈적 저널(predatory journal)’이다. 형식적인 심사를 거치는 척하며 게재료만 챙기는 가짜 학술지들. 이 용어를 만든 사람은 콜로라도대학의 사서 제프리 빌(Jeffrey Beall)이었다. 그는 2010년부터 의심스러운 출판사 명단을 블로그에 올렸고, 한때 그 목록은 900개가 넘는 출판사를 담았다. 그러나 2017년 1월, 빌은 돌연 블로그를 폐쇄했다. 소속 대학의 압력과 신변에 대한 불안 때문이었다고, 그는 훗날 직접 고백했다.
빌의 리스트는 분명 경각심을 일깨웠다. 그러나 그 칼날은 너무 자주, 너무 부정확하게 휘둘러졌다. 크라프치크(Krawczyk)와 쿨치츠키(Kulczycki)가 2021년에 280편의 문헌을 분석한 결과는 서늘하다. ‘약탈적 출판’을 다룬 논문의 절반 가까이(122편)가 그것을 오픈액세스 자체와 한데 묶어 비난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일부 사기꾼 저널의 결함이 오픈액세스 운동 전체에 대한 편견으로 과잉 일반화된 것이다. 메몬(Memon)은 한 걸음 더 나아가, 2019년 《대한의학회지(JKMS)》에서 ‘predatory’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확한 오칭(misnomer)이라고 단언했다. 그 모호한 낙인이 개발도상국의 저품질 저널까지 싸잡아 매도한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메몬은 자신이 한때 그런 저널의 피해자였다고 밝혔다.
여기서 가장 급진적인 통찰은 인류학자 커스틴 벨(Kirsten Bell)에게서 나온다. 그는 2017년 《tripleC》에 실은 글에서, 약탈적 저널을 ‘포식자’가 아니라 ‘패러디(parody)’로 읽자고 제안했다. 그것들은 정상적인 학술지를 흉내 냄으로써, 오히려 ‘무엇이 정당한 학술지인가’, ‘지식 생산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지배적 통념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가짜 저널의 거울에 비친 진짜 저널의 얼굴은 과연 얼마나 다른가. 둘 다 게재료를 받는다. 둘 다 무보수 심사에 기댄다. 둘 다 ‘중심(centre)’의 학문을 특권화하고 ‘주변(periphery)’의 학문을 배제한다. 벨이 우리에게 겨누라고 한 비판의 화살은 약탈자가 아니라, 지식 생산을 둘러싼 상업적 맥락 그 자체였다.
그러니 ‘약탈적’이라는 말은 단순한 품질 판정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언어다. 누가 정당하고 누가 약탈자인지를 가르는 선은, 종종 과학의 진위가 아니라 지정학과 경제력을 따라 그어진다. 빌이 오픈액세스 운동 전체를 “반기업적이고 억압적인 운동”이라 매도하며 글로벌 사우스의 출판사들에 유독 가혹했다는 비판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4. 각자의 과학을 위하여
가스파리얀(Gasparyan)과 동료들은 2017년 《대한의학회지》에서, 약탈적 출판이 누구를 가장 먼저 집어삼키는지를 정확히 짚었다. 비주류 과학 국가의 연구자, 이제 막 시작한 젊은 연구자, 그리고 빠르게 변하는 신생 분야의 연구자. 게재를 권유하는 달콤한 스팸 메일이 향하는 곳은 언제나 변방이다. 셴(Shen)과 비외르크(Björk)의 추산에 따르면, 약탈적 저널의 논문은 2010년 5만 3,000편에서 2014년 42만 편으로 폭증했고, 그 저자의 3분의 2가 아시아와 아프리카 출신이었다. (이 42만이라는 숫자가 과장되었다는 반론도 있으니, 절대치보다 그 방향성을 보아야 한다.)
왜 변방인가. 답은 잔인할 만큼 단순하다. 변방의 연구자들에게도 ‘논문을 내라, 그러지 않으면 사라진다(publish or perish)’는 명령은 똑같이 가혹하지만, 1,600만 원짜리 게재료를 낼 돈도, 《네이처》가 원하는 인맥과 영어와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약탈적 저널은 사기인 동시에 유일하게 열려 있는 문이다.
여기서 나는 한 동료 과학자가 즐겨 이야기하는 태국의 풍경을 떠올린다. 그곳의 생물학자들은 《네이처》에 논문을 싣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국의 식량과 농업이라는 절박한 필요를 위해 생물학을 했다. 그들은 서구가 정한 의제를 좇는 대신, 생물학을 자기 땅의 문제로 주체적으로 번역하고 있었다. 논문이라는 화폐만을 좇는 과학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희망이, 그 ‘각자의 과학’ 속에 있었다.
이것은 낭만이 아니라 전략이다. 리나(Leena)와 지반(Jeevan)이 2022년 《커런트 사이언스》에서 제안한 것도 정확히 같은 길이었다. 약탈적 저널의 덫에서 벗어나는 길은 더 강한 단속이 아니라, 인도가 가진 풍부한 기관과 인력을 동원해 신뢰할 만한 자국 학술지 생태계를 키우는 것이라고. 상업적 이해를 학술적 안전장치만으로 길들이기란 불가능하므로, 학회와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비영리 저널을 우선해야 한다고. 진짜 대안은 더 비싼 권위를 사는 것이 아니라, 권위를 스스로 생산할 능력을 갖추는 데 있다.
오픈액세스를 둘러싼 진짜 싸움은 그러므로 ‘열림이냐 닫힘이냐’가 아니다. 그것은 ‘누구의 과학이냐’를 둘러싼 싸움이다. 과학을 소수 거대 출판사의 자본에 종속시킬 것인가, 아니면 각자의 땅에 뿌리내린 주체적 지식 생태계로 되돌릴 것인가.
5. 가짜 지식의 자기복제 루프
그런데 사태는 단순한 착취를 넘어, 이제 과학이라는 건축물 자체의 붕괴로 치닫고 있다. 며칠 전 한 동료가 발표한 칼럼의 제목은 단도직입적이었다. 「과학이 죽어가고 있다」. 나는 그 진단에 한 글자도 보탤 것이 없다.
2025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리처드슨 연구진의 분석은, 우리가 막연히 두려워하던 것을 차가운 수치로 확정했다. 논문공장이 찍어내는 의심 논문의 양은 1.5년마다 두 배로 늘어난다. 반면 정상적인 논문 전체가 두 배가 되는 데는 15년이 걸린다. 가짜가 진짜보다 정확히 열 배 빠르게 번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더 절망적인 것은, 적발되어 철회되는 논문조차 따라잡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연구진의 추산에 따르면, 논문공장이 생산한 가짜 논문 네 편 중 철회되는 것은 한 편뿐이다. 나머지 75퍼센트는 진짜 지식의 얼굴을 한 채 문헌 속에 영원히 남는다.
여기에 인공지능이 기름을 부었다. 2025년 《랜싯》이 250만 편의 의생명 논문을 전수 검증한 결과, 존재하지 않는 가짜 참고문헌은 2023년 1만 편당 4개에서 2026년 57개로, 불과 몇 년 만에 열두 배로 폭증했다. 이 시점은 생성형 AI 작문 도구가 연구실에 보급된 때와 정확히 겹친다. AI는 자신이 투고된 바로 그 저널에 실린 적도 없는 논문을, 천연덕스럽게 지어내 인용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고리가 여기서 닫힌다. 논문공장이 가짜 논문을 오픈액세스로 출판하면, 그 가짜는 누구나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으므로 곧장 다음 세대 AI의 학습 데이터로 흡수된다. 오염된 AI는 더 많은 가짜 참조를 생성하고, 그것이 다시 새로운 가짜 논문이 되어 출판되고, 또다시 학습된다. 가짜 지식이 스스로를 복제하는 무한 루프. 오픈액세스가 자랑하던 ‘누구나 읽을 수 있음’이, 거짓을 무한히 증식시키는 최적의 배양액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붕괴가 자본의 탐욕과 무관하다고 믿는다면 순진한 것이다. 위협의 규모를 보라. 와일리는 2021년 이집트 출판사 힌다위를 2억 9,800만 달러에 인수했다. 그 후 특별호(special issue)라는 통로로 논문공장이 조직적으로 침투했고, 와일리는 2년에 걸쳐 1만 1,300편이 넘는 논문을 철회해야 했다. 2023년 한 해에만 8,000편 이상이 철회되었으니, 이는 단일 연도에 전 세계 모든 출판사의 철회를 합친 것보다 많은, 사상 최대의 기록이었다. 와일리는 2024년 5월 19개 저널의 문을 닫았고, 경영진이 추산한 손실은 4,000만 달러에 육박했다. MDPI도, 프런티어스도 같은 구조적 취약성 위에 서 있다. 게재료가 곧 수익인 사업 모델에서, 더 많은 논문은 곧 더 많은 돈이다. 품질은 비용일 뿐이다.
뿌리는 결국 하나다. 성과주의. 논문이 진리를 기록하는 매체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화폐가 되어버린 세계. 클라리베이트라는 일개 민간기업이 만든 임팩트 팩터라는 숫자가 한 사람의 학자 인생을 좌우하고, 대학은 그 숫자를 위해 연구자들을 경마장의 경주마처럼 몰아세운다. 강의실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은 외국인 교수가 6년 동안 한 대학 소속으로 496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그 대가로 대학 순위는 올랐으되 지식은 단 한 조각도 쌓이지 않았다는 ‘학술 용병’의 이야기는, 이 광기의 가장 선명한 초상이다. 한국 또한 예외가 아니다. 뉴스타파가 고발했듯, 수천 명의 과학기술자가 와셋(WASET)과 오믹스(OMICS) 같은 부실 학회에 국민의 세금을 들고 찾아갔고, 그 가짜 실적은 때로 사회 지도층 자녀의 스펙으로 둔갑했다.
일찍이 여경구는 자연과학이 철학이나 예술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생산관계의 토대 위에 선 이데올로기이며, 인민과 분리되고 이데올로기와 분리되어서는 결코 존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는 너무 오래 과학을 정치와 자본 바깥의 순결한 무엇이라 믿어왔다. 그 순진함의 대가를, 지금 가짜 지식의 홍수로 치르고 있다.
6. 에필로그: 바꾸거나,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거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11년 카자흐스탄의 한 대학원생 알렉산드라 엘바키얀(Alexandra Elbakyan)은, 가난한 연구자가 논문 한 편에 수십 달러를 내야 하는 현실에 분노해 사이허브(Sci-Hub)를 만들었다. 그가 페이월을 뚫고 무료로 풀어놓은 논문은 9,000만 편에 이른다. 《네이처》는 2016년 그를 ‘올해의 인물’ 열 명 중 하나로 꼽으며 ‘과학계의 로빈후드’라 불렀다. 불법이라는 비난 속에서도 사이허브가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다. 과학은 소수의 거대 기업이 아니라, 연구자들의 역동적 네트워크가 통제해야 한다.
제도적 시도도 있다. 연구비 지원기관들이 오픈액세스 출판을 의무화한 Plan S, 임팩트 팩터 대신 연구의 내용 자체로 평가하자는 DORA 선언, 그리고 이제는 중국과학원과 NIH, 독일연구재단까지 게재료에 상한을 두려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나는 환상을 경계한다. 정보과학자 하우스타인의 냉정한 전망처럼, 다섯 개의 거대 영리 출판사가 “잡혔다, 게재료를 낮추겠다”고 순순히 물러설 리 없다. 평가 체제와 출판 과점이라는 토대 자체를 흔들지 않는 한, 상한선 하나로 이 거대한 자본의 강물을 막을 수는 없다.
그래서 결국, 과학자에게로 돌아온다. 우리는 너무 오래 실험실의 무균실에 숨어, 논문이라는 화폐를 세는 일에만 골몰해왔다. 그러나 일찍이 멀러가 말했듯, 과학자는 공공의 논쟁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어떤 출판 모델을 떠받칠지, 무엇을 정당한 지식이라 부를지, 누구의 과학을 키울지를 결정하는 일은 출판사 주주들의 손에 맡겨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정치다. 그리고 과학자에게는 그 정치에 개입할 사회적 책무가 있다.
초파리 한 마리를 붙들고 보낸 그 모든 고독한 밤을 떠올린다. 그 정직한 노동이 지식의 탑이 아니라 자본의 곳간을 채우고, 그 탑이 가짜의 홍수에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만 볼 것인가.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단 두 가지뿐이다.
바꾸거나,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거나.
참고문헌
- Allahar, H. (2017). Academic publishing, internet technology, and disruptive innovation. Technology Innovation Management Review, 7(11).
- Bell, K. (2017). ‘Predatory’ open access journals as parody. tripleC, 15(2), 651–662.
- Bell, S. C., Castellani, C., & Flume, P. A. (2019). Disruption in research publishing—the open access revolution. Journal of Cystic Fibrosis, 18(6), 747–749.
- Gasparyan, A. Y., et al. (2017). Predatory publishing is a threat to non-mainstream science. 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 32(5), 713–717.
- Krawczyk, F., & Kulczycki, E. (2021). How is open access accused of being predatory? The Journal of Academic Librarianship, 47(2), 102271.
- Leena, G., & Jeevan, V. K. J. (2022). Disrupting predatory journals. Current Science, 122(4), 396–401.
- Memon, A. R. (2019). Revisiting the term predatory open access publishing. Journal of Korean Medical Science, 34(13), e99.
- Pierce, G. J., & Theodossiou, I. (2018). Open access publishing: a service or a detriment to science? Ethics in Science and Environmental Politics, 18, 37–48.
- Romesburg, H. C. (2016). How publishing in open access journals threatens science and what we can do about it. The Journal of Wildlife Management, 80(7), 1145–1151.
- Richardson, R. A. K., et al. (2025). The entities enabling scientific fraud at scale. PNAS, 122(32), e2420092122.
- Haustein, S., et al. (2024). Estimating global article processing charges paid to six publishers, 2019–2023. arXiv:2407.16551.
- Science (2026.2.27), “Major Chinese funder to stop paying fees for 30 pricey open-access journals.”
(주요 수치는 2026년 기준이며 통화·시점에 따라 출처 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중국과학원의 조치는 저널 색인 삭제가 아니라 ‘APC 자금 지원 중단’이며, 자국 저널 보호 의도라는 해석은 분석가의 추정임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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