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Flyandbee, Woo Jae Kim (2014-)

대가의 매너리즘과 정상과학의 덫

– 아미타 시갈 랩의 2026년 수면-기억 논문에 대한 비판적 성찰

자정을 넘긴 늦은 밤, 적외선 센서의 보이지 않는 붉은 빔이 가르는 좁고 가느다란 유리관 속에서 미동도 하지 않는 초파리의 실루엣을 들여다보는 고독은 초파리 유전학자들에게 지극히 익숙하면서도 기묘한 경이의 시간이다. 복잡한 대뇌도 없고 뇌파도 측정되지 않는 이 2mm짜리 작은 생명체 안에서 인간과 똑같이 고요한 수면의 강물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은 생명이 선사한 가장 숭고한 주체성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러나 르네 데카르트가 생명을 시계태엽 같은 자동장치로 규정했던 기계론적 도그마처럼, 현대 행동유전학은 동물의 신경망을 완벽히 통제하고 유전적 인과관계만을 짜 맞추는 기술관료적 환원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국제 학술지 《Current Biology》(2026년)에 게재된 아미타 시갈(Amita Sehgal)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연구팀의 논문 〈A paradoxical impact of alcohol on sleep-memory coupling〉은 이러한 현대 초파리 행동학계의 압도적인 기술적 성취와 개념적 매너리즘의 극단을 동시에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이 논문은 알코올(에탄올) 포스트 노출이 초파리의 수면과 기억 공고화 사이의 정교한 동조를 어떻게 비틀어버리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그러나 행동유전학자인 내 시선에서 이 논문을 가만히 뜯어보면, 거대한 학문적 패권을 쥔 엘리트 실험실이 과거의 성공적인 패러다임을 어떻게 ‘재탕 삼탕’하며 개념적 정체에 빠져드는지 뼈아프게 목격하게 된다. 토마스 쿤(Thomas Kuhn)이 경고한 ‘정상과학(Normal Science)’의 덫에 갇힌 채, 이 거대 실험실은 새로운 개념적 도약을 시도하는 대신 이미 확립된 자신들의 회로판 위에 ‘알코올’이라는 흔한 변수 하나를 투척해 무의미한 퍼즐 조각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다.

초파리 수면 연구의 역사와 패러다임의 성립

초파리를 통해 생명의 행동과 시간, 그리고 잠의 본질을 규명해 온 학문적 여정은 1960년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Caltech)의 시모어 벤저(Seymour Benzer)로부터 출발했다. 벤저는 단일 유전자의 변이가 복잡한 행동을 지배할 수 있다는 신념 아래 초파리를 ‘행동의 원자’로 취급하며 유전학적 행동 연구의 서막을 열었다. 1971년 그의 대학원생이었던 론 코놉카(Ronald Konopka)가 최초의 생체시계 유전자인 피리어드(period, per) 돌연변이들을 찾아낸 사건은 인류가 생명체의 내부 시간 규칙을 유전학의 언어로 읽어내기 시작한 역사적 분수령이었다.

이 일주기 리듬 연구가 생리적 ‘수면(Sleep)’ 자체의 영역으로 도약한 것은 2000년에 이르러서였다. 아이린 토블러(Irene Tobler)가 제시한 네 가지 행동학적 기준(행동적 정지, 감각 역치의 상승, 신속한 가역성, 수면 박탈 후 항상성 반동)을 만족시키는 ‘수면 같은 상태’가 초파리에게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이 획기적인 발견은 폴 쇼(Paul Shaw)와 줄리오 토노니(Giulio Tononi) 연구진 , 그리고 아미타 시갈과 조앤 헨드릭스(Joan Hendricks) 연구진에 의해 각각 독립적으로 증명되며 초파리 수면학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낳았다.

이후 초파리 수면학은 수면을 적극적으로 조절하는 핵심 분자적·신경학적 요소들을 연이어 규명해 왔다. 도파민 수송체 결함으로 수면을 극단적으로 상실한 푸민(fumin) 돌연변이 , 단백질 분해 기전을 조절하여 깊은 잠을 유도하는 인솜니악(insomniac) , 아세틸콜린 수용체의 기능을 조절하는 레드아이(Redeye) , 면역계 활성과 병적 수면을 연결하는 네무리(Nemuri) 등의 유전자가 그 정직한 벽돌의 일부였다. 최근에는 신경세포를 넘어 혈구세포의 이터(eater) 유전자가 수면 중 뇌 장벽 근처에서 독소를 청소하는 메커니즘을 밝히고, 글리아(Glia) 세포의 칼슘 파동이 항상성 회복에 기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연구의 지평을 생리적 청소의 영역으로까지 확장시켰다.

이러한 지식의 정직한 축적은 몇몇 저명한 스타 과학자들의 초월적인 영웅 서사가 아니라, 이름 없는 수많은 ‘보통 과학자’들이 협동조합식 연대를 통해 이룩한 노력의 결실이다.

연구 시기 및 문헌기여 연구자핵심 규명 기전 및 발견 유전자패러다임적 전환과 학술적 의의관련 출처
1971년R. Konopka & S. Benzer일주기 리듬 돌연변이 period (per) 발견동물의 복잡한 시간 인지 행동이 단일 유전자로 통제됨을 최초로 입증
2000년J. Hendricks, A. Sehgal / P. J. Shaw, G. Tononi초파리 휴식의 행동학적 수면 기준 충족 검증포유류에 한정되었던 수면 생리학을 무척추동물 모델로 확장
2005년Kume et al. / A. Sehgal Labfumin (DAT 결함), insomniac 돌연변이순방향 유전학을 통해 항상성적 수면 양을 규제하는 분자 스위치 특정
2011년J. M. Donlea, P. J. ShawdFB (R23E10 신경절)의 활성화 메커니즘수면 압박을 인지하고 잠을 가동하는 뇌 속 항상성 스위치 회로의 지도화
2021년N. S. Chouhan, A. Sehgal영양 상태에 따른 기억 공고화 경로의 이분법버섯체 ap alpha’beta’ (수면 의존) 대 m alpha’beta’ (수면 비의존)의 분리 규명
2026년N. S. Chouhan, A. Sehgal알코올 포스트 노출에 따른 수면-기억 비동조화NPF rightarrow NPFR rightarrow PPL1 DANs로 이어지는 약리학적 스위치 규명

알코올 포스트 노출과 기억-수면 비동조화의 정교한 회로

아미타 시갈 랩의 니틴 슈한(Nitin S. Chouhan) 박사 연구팀이 2026년 《Current Biology》에 게재한 논문의 핵심 문제의식은 그들이 2021년 《Nature》에 발표했던 패러다임에서 직접적으로 파생된 변주다. 2021년 연구에서 그들은 포식 상태(Fed)의 초파리가 장기 기억을 공고화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포스트 학습 단계에서 ‘수면’을 취해야 하며, 이는 버섯체(Mushroom Body)의 앞-뒤쪽 alpha’ beta’ 뉴런(ap alpha’ beta’ Kenyon Cells)에 의해 매개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반면, 기아 상태(Starved)의 초파리는 먹이를 찾기 위해 깨어 있어야 하므로, 수면을 취하지 않고도 장기 기억을 남길 수 있는 대안적인 ‘수면 비의존성(Sleep-independent)’ 공고화 경로를 가동하며, 이는 버섯체의 안쪽 alpha’ beta’ 뉴런(m alpha’ beta’ Kenyon Cells)에 의해 수행된다.

이번 2026년 신작에서 연구진은 이 이분법적 회로판에 흔한 약리학적 교란제인 ‘알코올(에탄올)’을 급성으로 주입했다. 학습을 마친 배부른 초파리에게 포스트 트레이닝 과정에서 15% 농도의 에탄올을 30분간 노출시킨 것이다. 연구진이 정교한 유전학적 도구로 추적해 낸 분자 행동 회로의 작용 기전은 다음과 같다 :

  1. 회로 전환의 유도 (NPF-NPFR-Dopamine 신호계): 급성 에탄올 노출은 배부른 초파리의 신경펩타이드 F(NPF) 뉴런의 활성을 비정상적으로 높이고 NPF 분비를 촉진한다. 분비된 NPF 신호는 PPL1 도파민성 뉴런(PPL1 DANs)에 위치한 NPF 수용체(NPFR)를 자극한다. 이 도파민 신호의 활성화는 배부른 초파리에게 “수면 비의존성 기억 경로(m alpha’ beta’ 뉴런)”를 강제로 켜도록 유도하는 유전학적 스위치 역할을 한다.
  2. 진정 작용과 각성 요구의 충돌: 알코올은 NPF를 매개로 기아 상태와 유사한 수면 비의존성 기억 경로를 작동시키는 동시에, 뇌 전체를 마비시키는 ‘진정 효과(Sedation)’를 동반하여 초파리를 비정상적인 잠(진정 상태)에 빠뜨린다. 본질적으로 수면 비의존성 기억 공고화 경로는 학습 후 일정 수준의 ‘각성(Wakefulness)’ 상태를 유지해야만 회로가 온전히 완성된다. 그러나 알코올이 유도한 비정상적인 수면이 각성을 가로막으면서, 초파리는 수면 비의존성 경로를 켰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을 단단히 새기지 못해 심각한 장기 기억 장애를 겪게 된다.
  3. 수면 박탈을 통한 기억의 구출: 결국 알코올을 먹여 수면 비의존성 경로가 강제 활성화된 배부른 초파리는 억지로 잠들기 때문에 기억이 고장 난다. 연구진은 이 초파리들을 볼텍서(Vortexer) 기계에 올려 6시간 동안 강제로 수면을 박탈하고 깨워두는 극단적인 제어를 가했다. 놀랍게도, 잠을 자지 못한 알코올 투여 초파리들은 기억력이 정상적으로 복구되었다. 수면 박탈에 의한 강제 각성이 수면 비의존성 m alpha’ beta’ 회로의 완성 조건인 ‘깨어 있음’을 만족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 기이한 상반 관계를 두고 “알코올이 수면과 기억의 보편적인 결합 관계를 뒤틀어버려, 본래 기억에 이로워야 할 잠이 오히려 장기 기억 형성을 방해하는 Deleterious(해로운)한 상태로 전락하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했다”고 결론지었다.

실험 대상군 (Genotypes 및 영양 생리 상태)약물 투여 조건활성화된 공고화 신경망뇌 내 동적 생리 상태수면 박탈(SD)에 의한 기억 영향최종 장기 기억(LTM) 결과관련 출처
Fed Control (ap-KCs 활성)대조군 (0% EtOH)ap alpha’ beta’ ap Kenyon Cells수면 증가 (정상 수면)기억력 손상 (수면 결핍으로 공고화 차단)정상 기억 형성 (LTM 보존)
Starved Control (m-KCs 활성)대조군 (0% EtOH)m alpha’ beta’ Medial Kenyon Cells수면 감소 (자연 각성)기억력 변화 없음 (수면 박탈 무관)정상 기억 형성 (LTM 보존)
EtOH-Fed Experimental에탄올 투여 (15% EtOH)m alpha’ beta’ Medial Kenyon Cells (NPF 신호로 강제 전환)수면 강제 유도 (알코올성 진정 작용)기억력 구출 (수면 박탈을 통한 각성 확보)기억력 상실 (진정 작용과 경로 비동조화)

개념적 자기복제와 기교적 정상과학의 민낯

이 논문이 제시하는 신경 회로의 지도는 칼렉스에이(CaLexA) 칼슘 이미징, Lola-luciferase 생체 발광 분석, 열유전학적 채널 활성화 등 현대 신경유전학이 동원할 수 있는 극상의 화려한 기교들로 수놓아져 있다. 그러나 이 유전학적 불꽃놀이를 걷어내고 남는 순수한 생물학적 알맹이는 과연 무엇인가.

가장 뼈아픈 진실은 이 연구가 시갈 랩 스스로 확립해 놓았던 2021년 《Nature》 논문의 패러다임을 한 치의 이탈도 없이 그대로 ‘재탕 삼탕’한 변주곡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21년 연구에서 수면 의존성(ap)과 수면 비의존성(m) 기억 회로의 거대한 이분법을 이미 완성해 놓았고 , 2024년과 2025년에는 ap 뉴런 내에서 수면을 매개하는 세부 시냅스 RNA 조절 유전자들을 발굴하는 데 골몰했다. 이번 2026년 신작에서 그들이 시도한 것은, 단지 기존에 완벽히 설계되어 있던 ap 대 m Kenyon Cell의 기하학적 대조 회로판 위에 ‘알코올’이라는 흔하디흔한 약리학적 자극제 하나를 불쑥 던져 넣은 것뿐이다.

알코올이 초파리의 NPF(신경펩타이드 F) 신호계를 자극하여 먹이 탐색이나 굶주림에 준하는 뇌 내부 갈망 상태를 모방한다는 사실은 이미 수십 년 전 울리케 헤벌라인 연구팀 등 선구자들이 유전학적으로 정립해 놓은 정형화된 공식이다. 시갈 랩은 “알코올이 NPF를 촉진한다”는 기지의 사실과 “NPF 신호가 수면 비의존성 기억의 스위치다”라는 자신들의 기존 공식 카드를 단지 기교적으로 융합해 유전학적 징검다리를 놓았을 뿐이다.

이는 토마스 쿤이 묘사했던 ‘정상과학(Normal Science)’의 완고한 매너리즘이 극단적으로 발현된 형태다. 이미 견고하게 구축된 패러다임의 감옥 안에서, 거대 권력 실험실은 더 이상 깊고 본질적인 질문—가령 왜 진화는 수면을 통해서만 공고화되는 시냅스 회로를 따로 설계했는지, 혹은 수면 비의존성 기억이 치러야 하는 진화적 대가는 무엇인지 등—을 던지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사소한 변수들을 계속 바꾸어가며 회로도의 빈틈을 무의미하게 채워나가는 ‘퍼즐 해결(Puzzle-solving)’에 몰두할 뿐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들이 내세우는 ‘역설적 기능 전치(Paradoxical Inversion)’라는 거창한 수사적 결론조차 실상은 자연의 진화적 실제가 아니라 실험실의 지나치게 인위적인 통제가 초래한 ‘설계 오류’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자연 상태에서 굶주린 초파리가 각성을 유지하고 수면 비의존성 경로를 타는 것은 지극히 조화롭고 완벽한 적응적 선택이다. 그러나 연구자가 15% 에탄올이라는 무지막지한 약리학적 교란을 배부른 초파리의 뇌에 강제로 부었을 때, 초파리의 신경계는 비정상적인 상태에 부딪힌다. 알코올이 유도한 비정상적인 갈망 신호(NPF)는 “잠들지 말고 각성하라”고 지시하는데, 동시에 알코올의 중추신경 진정 작용(GABA-like Sedation)은 “마취되어 기절(수면)하라”며 뇌를 마비시킨다.

즉, 서로 배타적이어야 할 두 생리적 상태가 한 뇌 안에서 강제로 동시 구동되며 발생한 기계적 오작동일 뿐이다. 뇌를 물리적으로 마비시키는 약물을 부어 동물을 재워놓고서 “이것 보라, 잠이 기억을 해치는 역설적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고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것은 학문적 수사학에 지나지 않는다. 마취제로 뇌를 짓눌러 놨으니 기억 공고화 회로가 차단되는 것은 당연한 물리적 법칙이지, 수면과 기억의 심오한 생물학적 관계 전치가 아니다.

스타 과학자의 패권과 보통 과학자의 정직한 노동

그렇다면 왜 이처럼 개념적으로 빈곤하고 repetitive(반복적인) 연구들이 최고의 학술지 지면을 도배하며 위대한 ‘혁신’으로 포장되는가? 여기에는 현대 거대 과학(Big Science)이 구축한 카르텔과 왜곡된 자본의 논리가 도사리고 있다.

오늘날 대학과 저널, 그리고 연구비 순위 산정 기관들은 질문의 진정성이나 연구의 정직한 타당성보다 양적 팽창, 얄팍한 새로움, 그리고 대가의 이름값(Reputation)에 보상하는 냉혹한 유인 구조를 취하고 있다. 미국 HHMI의 막강한 자본력을 수십 년간 독점해 온 아미타 시갈과 같은 거대 권위자들은 거대한 인력과 최신 장비를 총동원하여 매년 수십 편의 논문을 찍어내는 일종의 ‘학술적 대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그들의 견고한 카르텔은 개념적 빈곤함을 화려한 칼렉사 이미지 데이터의 밀도로 손쉽게 덮어버리며 논문 게재 심사 장벽을 단숨에 뛰어넘는다.

내 책 『보통 과학자』에서 일관되게 주장해 왔듯, 현대 과학의 영웅 서사는 이러한 기술관료적 체제 아래 숨겨진 거대한 ‘보통성’의 세계를 철저하게 은폐하고 기만한다. 필자가 과거 콜드스프링하버 미팅이나 학회에서 만났던 대형 랩 출신의 포닥들은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생존 압박과 논문 편수 채우기의 쳇바퀴 속에서 영혼이 마모되어 가고 있었다. 그들은 생명에 대한 순수한 낭만적 호기심을 잃어버린 채, 자넬리아의 첨단 머신러닝 기기나 유전학 드라이버 라인을 기계적으로 장착하는 단순 회로 조립 노동자로 전락해 가고 있었다.

이러한 대가의 매너리즘이 지배하는 거대 과학 생태계 뒤편에서, 척박한 지원 속에 살아가는 한국의 연구 현장 역시 다르지 않다. 정부가 최근 ‘K-문샷’ 같은 거창하고 화려한 메가 프로젝트의 깃발을 치켜들고 나선 것은 이러한 과학의 불평등한 현실과 작동 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기술관료적 환상에 불과하다. 과학의 진정한 진보는 소수의 엘리트가 벌이는 화려한 불꽃놀이가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율적인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 정직한 실패의 벽돌을 쌓아 올리는 보통 과학자들의 묵묵한 연대 속에서만 비로소 탄생하기 때문이다.

낭만의 생물학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주식 시장의 거품처럼 과학에도 어김없이 거품이 존재한다. 2000년대 초의 DNA 마이크로어레이가 그러했고, 최근의 단세포 RNA 시퀀싱이 그러하며, 오늘날 대형언어모델(LLM)이 그러하듯, 기술적 도구의 과시는 처음엔 엄청난 학문적 혁명처럼 보이지만 결국 요란한 낭비의 흔적과 무수한 데이터 쓰레기만을 남긴 채 거품으로 가라앉는다. 아미타 시갈 랩의 2026년 신작 역시, 수억 원의 공적 세금과 정교한 분자 신경학적 도구들을 화려하게 탕진한 끝에 도달한 결론이 결국 “술을 마시면 뇌가 마비되는데 억지로 깨워두면 기억력이 조금 더 잘 보존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물리적 결과를 현혹적으로 포장한 기술 거품에 불과하다.

초파리를 다루는 유전학자들에게 실험실은 하나의 온전한 독립된 우주여야 한다. 자정을 넘긴 깊은 정적 속에서 유리관 속에 맺힌 작은 초파리의 잠을 바라보는 시간은, 자극에 수동적으로 비명을 지르는 기계적 태엽 장치를 감시하는 시간이 아니다. 가혹한 상시 광조사 환경 속에서 자신의 파괴된 일주기 시계를 복구하기 위해 어둠의 덮개를 스스로 찾아가 행위 주체성을 개척해 내는 생명의 숭고한 영토를 마주하는 경이의 시간이어야 한다.

학계가 마땅히 회로판의 기교적 융합을 멈추고 복원해야 할 것은 생명을 생명 그 자체로 신뢰하며 뼛속 깊이 내려가 본질적인 외침을 받아적던 시모어 벤저식의 ‘낭만의 생물학’이다. 대가의 명성에 굴종하여 영혼 없는 퍼즐 조각을 복제하며 청구서를 들이미는 가짜 유인 구조의 유리집을 허물어야 할 시간이다. 진짜 개혁은 화려한 메가 프로젝트의 선언이 아니라, 평범한 과학자들이 자신의 소박한 플라이룸에서 생명체를 향해 가장 순수하고 엄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투쟁적 자율성을 되찾는 것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