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Flyandbee, 김우재 (2014-)

글로벌 과학 무대의 불평등과 사우스-사우스 학술 동맹

칠레 신경과학의 고뇌에서 중국의 학술 인프라 혁명까지

보이지 않는 장벽: 칠레 신경과학이 증명한 글로벌 무대의 경제적 구조

재능과 아이디어는 전 세계에 고르게 분포되어 있지만, 과학적 성과를 입증하고 세계 무대에 알릴 수 있는 인프라는 소수의 부유한 국가에 집중되어 있다. 신경과학 전문 매체 《더 트랜스미터(The Transmitter)》에 기고된 칠레 폰티피시아 가톨릭 대학교(Pontificia Universidad Católica de Chile) 비센테 메델(Vicente Medel) 교수의 논평은 글로벌 과학계가 직면한 극심한 구조적 불평등을 현장의 실제 데이터와 경험을 통해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칠레의 신경과학계는 자체 연구 역량과 학위 배출 시스템을 갖춘 자생적 생태계로 성장해 왔으며, 1941년부터 2026년까지 14,800건이 넘는 신경과학 관련 논문을 출판하는 등 서량적(bibliometric) 지표상으로는 눈부신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는 연구 현장에 누적된 경제적 취약성과 불확실성을 가리는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

남반구 연구자들이 국제 학술 무대에 진입할 때 직면하는 가장 비합리적인 장벽은 독점적 상업 학술지들의 고액 논문게재료(APC, Article Processing Charge)이다. 칠레의 신진 신경과학자에게 제공되는 1년 연구비 예산은 약 3만 달러 수준이며, 중진 연구자의 연간 과제비 역시 약 5만 달러에 머문다. 이에 반해, 국제적으로 영향력이 높은 골드 오픈액세스(Gold Open Access) 저널의 APC는 건당 5,000달러에서 7,000달러를 상회한다. 단 한 편의 논문을 출판하는 비용이 연구실 연간 전체 예산의 수개월 치에 달하는 상황에서, 연구자는 연구의 가시성을 확보하기 위해 논문 출판을 강행할 것인지, 아니면 시약 구입과 학생 연구원 인건비 및 장비 유지비를 보존할 것인지라는 존립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이와 함께 학술대회 참석을 위한 이동 비용과 대륙 간 항공료, 숙박비 등은 변방 연구자들의 접근성을 더욱 차단한다. 여기에 더해 거대 저널 중심으로 심사 자원이 집중되는 현상은 저비용 저널의 피어 리뷰 지연을 초래하여, 자금이 부족한 연구자가 연구 성과를 적기에 승인받지 못하게 만드는 ‘프레스티지 트랩(prestige trap)’을 형성한다. 기존 학술계가 제공하는 APC 감면(waiver) 제도 역시 칠레와 같이 1인당 GDP가 일정 수준 이상이면서 내부 소득 불평등과 연구비 격차가 극심한 국가의 연구실을 구제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매튜 효과와 학술 카르텔: 자본화된 과학과 변방 연구자의 소외

비센테 메델이 진단한 칠레 신경과학의 고뇌는 초파리 유전학자인 내가 오랫동안 지속해 온 현대 과학제도에 대한 비판적 논의와 깊게 맞닿아 있다. 나는 현대 과학이 ‘정부 주도의 과도한 연구비 경쟁’, ‘대학의 상업화’, ‘거대 출판 자본의 카르텔화’, 그리고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Robert K. Merton)이 제창한 ‘매튜 효과(Matthew Effect, 부익부 빈익빈 현상)’로 인해 심각한 자원 양극화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한다. 중앙 권력과 거대 자본을 쥔 주류 과학계는 연구 자원을 독식하고, 변방의 과학자들은 자원 부족과 비가시성의 악순환 속에서 자급자족형 ‘생활형 과학자’로 전락하게 된다.

특히 학술 출판 시장에서 작동하는 이중 기준은 변방 연구자들에게 가해지는 구조적 폭력을 명확히 보여준다. 서구의 거대 상업 출판사가 수천 달러에서 1만 달러에 달하는 APC를 요구하는 것은 ‘명문 저널의 당연한 권리’로 정당화되는 반면, 제3세계나 변방의 소규모 저널이 소액의 출판 비용을 받는 것은 지적 엄밀성이 결여된 ‘약탈적 저널(predatory journal)’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권력의 지도를 따라 그어지는 이러한 경계선은 질적 차이가 아닌 지식 생산 구조의 패권적 질서를 반영한다.

구분서구 거대 상업 학술지 카르텔라틴아메리카 자체 생태계 (SciELO/RedALyC)중국 중심의 신흥 개방형 인프라 (NSLC/PubScholar)
지배적 출판 모델고액 APC 기반 골드 오픈액세스비영리·다이아몬드 오픈액세스국가 주도 오픈사이언스 및 공공 플랫폼
재정 부담 주체연구자 개인 과제비 및 연구 기관 수탈공공 대학 및 국가 학술 지원 기관국가 중앙 재정 투입 및 인프라 구축
진입 장벽 및 시정높은 비용으로 변방 연구자 소외지역적 가시성 확보, 글로벌 패권 저항 한계글로벌 사우스 수용 및 AI 인프라 무상 지원
권력 및 평가 체계서구 중심의 독점적 영리 카르텔탈중앙화된 지역 중심의 학술 자율성다극화된 대안적 학술 네트워크 형성

결국 글로벌 중심부 연구자들에게 APC나 국제 학술대회 참가비는 단순한 행정적 경비에 불과하지만, 변방 연구자들에게는 연구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결정이 된다. 과학적 지식이 공공재가 아닌 출판 자본의 상품으로 전락한 구조 아래에서, 제3세계 연구자들은 서구 카르텔의 금고를 채우는 하청 노동자로 흡수되거나 시스템 외부로 배척받게 된다. 서구 학술계가 주도하는 포용성과 다양성에 대한 담론이 실질적인 재정 구조 개혁 없이 상징적인 구호에 그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의 과학 굴기와 학술 생태계 재편: ‘과학적 일대일로’의 부상

서구 중심의 학술 출판 카르텔이 견고한 독점 체제를 유지하는 동안, 동아시아에서는 중국이 양적·질적 과학 연구의 중심국으로 급부상하며 학술 유통 생태계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중국은 단순히 서구 저널에 논문을 제출하는 거대한 논문 공급원에 머물지 않고, 자체적인 학술지 인프라와 평가 체계를 구축하는 이른바 ‘과학적 일대일로(Scientific Belt and Road)’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정부는 2019년부터 ‘중국 과학기술 저널 탁월성 행동계획(中国科技期刊卓越行动计划)’을 추진하여 11억 위안(한화 약 2,0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 세계적 수준의 자국 학술지를 육성하고, 국가 차원의 디지털 출판 및 지적 재산 플랫폼을 구축해 왔다. 중국과학원 국가과학도서관(NSLC/CAS)이 중심이 되어 구축한 ‘펍스콜라(PubScholar)’ 플랫폼과 국가 차원의 오픈사이언스 인프라는 서구의 거대 상업 출판사에 종속되지 않는 국가 주도형 공공 학술 유통망을 완성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다.

이러한 중국의 자율적 학술 인프라 구축은 단순한 자국 중심주의를 넘어 자본과 기술적 자원이 부족한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국가들과의 학술적 연결망을 확장하는 거대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통적인 서구 저널들이 게재권을 상업화하여 진입 장벽을 높이는 사이, 중국은 자국의 첨단 데이터 인프라와 AI 기반 출판 기술을 대외에 개방하여 새로운 대안적 학술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도로와 항만을 건설하던 일대일로의 물적 확장이 지식 생산과 학술 유통이라는 소프트 인프라 영역으로 구조 전환을 이루었음을 의미한다.

라틴아메리카의 대안: SciELO-중국 연합과 글로벌 사우스 학술 주권의 재구성

중국이 주도하는 학술 인프라의 재편은 칠레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과학계가 서구 중심 학술 카르텔의 경제적 수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략적 모멘텀을 제공한다. 라틴아메리카는 이미 1990년대 후반부터 SciELO(Scientific Electronic Library Online)와 RedALyC 같은 공공 주도형 비영리 오픈액세스 출판 네트워크를 선제적으로 구축하여 운영해 온 독보적인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적 노력은 자금력 부족, AI 및 디지털 플랫폼 기술의 한계, 그리고 서구 중심 색인 지수(Web of Science, Scopus)에 대한 정서적 종속으로 인해 글로벌 무대에서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는 데 한계를 겪어왔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2026년 6월, 브라질 상파울루의 SciELO 본부에서는 중국과학원 국가과학도서관(NSLC) 대표단과 SciELO 네트워크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오픈사이언스 연구 교류 인프라 기술 워크숍’이 개최되었다. 이 자리에서 양측은 공식적으로 《SciELO-NSLC 오픈사이언스 연구 교류 인프라 선언》을 채택하고, ‘SciELO-China’의 신설, CAS의 PubScholar와 SciELO 간의 학술지 통합 유통, AI 기반 출판 및 심사 도구의 공동 개발, 오픈액세스 저널 화이트리스트(GoOA) 평가 시스템 구축에 합의하였다.

이 합의는 서구 상업 출판사에 대응하는 글로벌 사우스 간 연대(South-South Cooperation)의 실질적인 결실이다. 라틴아메리카 과학자들은 서구 카르텔의 시혜적인 APC 감면 구호에 의존하는 불평등한 관계를 탈피하고, 중국의 막강한 데이터·AI 인프라 및 자본과 손잡음으로써 다음과 같은 대안적 학술 생태계를 구축해 나갈 수 있다.

첫째, 라틴아메리카 연구자들은 고액의 APC를 부과하는 서구 저널 대신, SciELO-중국 연합 플랫폼 및 PubScholar 인프라를 활용하여 재정적 부담 없이 연구 성과를 전 세계에 즉시 공유하고 가시성을 확보할 수 있다. 둘째, 중국과학원이 제공하는 대규모 언어 모델 및 학술 데이터베이스 기술을 SciELO 저널들에 적용함으로써, 저비용 저널들이 겪던 심사 지연 문제와 프레스티지 트랩을 기술적으로 해결하게 된다. 셋째,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연구비 지원 기관들과 대학들은 자국 연구자들을 서구 거대 저널 출판 여부로 평가하던 기존 틀에서 벗어나, SciELO-중국 인프라에 게재된 우수한 성과를 공식적인 연구 업적으로 인정하는 내부 제도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결론: 시혜적 포용을 넘어 다극화된 과학 생태계로

비센테 메델이 칠레의 신경과학 현장에서 전달한 메시지와 초파리 유전학자인 내가 제시해 온 과학사회학적 비판은 하나의 명확한 진실을 가리킨다. 자본주의 출판 시장과 결탁한 서구 중심의 현대 과학 제도는 변방의 진정한 과학적 재능을 포용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점이다. 시혜적인 APC 감면이나 단순한 다양성 제안은 거대 학술 카르텔의 본질적인 수탈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

중국의 과학 굴기와 학술 인프라의 확충은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에게 기존의 패권적 질서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전략적 기회를 제공한다.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변방의 과학자들은 더 이상 서구 상업 학술지의 입구에서 입장권을 구걸하는 청구인이 아니라, 다극화된 새로운 지식 유통망을 주도적으로 구축하는 주체로 서야 한다. 라틴아메리카의 독보적인 비영리 공공 출판 전통(SciELO)이 중국의 최첨단 학술 데이터 인프라(NSLC/PubScholar)와 결합할 때, 진정한 의미의 ‘과학적 인재의 글로벌화’와 ‘글로벌 무대로의 공평한 접근성’이 비로소 실현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