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Flyandbee, 김우재 (2014-)

초파리가 “타당성” 심사대에 오르던 해에 ― 어느 모델생물 과학철학 논문을 읽으며

플라이베이스가 죽어가던 봄에 도착한 논문

방금, 나는 한 편의 과학철학 논문을 받아 읽었다. 프랑스 소르본 대학과 인섬(Inserm), 귀스타브 루시 연구소에 적을 둔 두 저자, 엘로이즈 아테아(Héloïse Athéa)와 니콜라 에크(Nicolas Heck)가 쓴 「모델생물의 타당성 평가: 생물학자를 위한 리뷰와 새로운 프레임워크(Evaluating the Validity of Model Organisms: A Review and a New Framework for Biologists)」라는 논문이다. 《FASEB 저널》 2026년호(40:e72249)에 실렸고, 2026년 1월 7일에 접수되어 8월 21일에 게재가 확정되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처음 대충 훑었을 때 나는 저자들이 대체 무엇을 주장하려는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답답함보다 먼저 나를 사로잡은 것은 이상한 시간적 우연이었다.

H. Athéa and N. Heck, “ Evaluating the Validity of Model Organisms: A Review and a New Framework for Biologists,” The FASEB Journal 40, no. 17 (2026): e72249, https://doi.org/10.1096/fj.202600104R.

바로 이 논문이 심사를 통과하던 2025년의 봄과 여름, 내가 평생을 바쳐 온 초파리 유전학의 심장부, 플라이베이스(FlyBase)가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2025년 5월, 트럼프 행정부가 하버드 대학에 대한 연방 자금을 끊으면서 ― NBC 뉴스에 따르면 하버드에 대한 “22억 달러 규모의 광범위한 자금 삭감”의 일부로 ― 30년 넘게 플라이베이스를 지탱해 온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인간유전체연구소(NHGRI)의 연구비가 종료되었다. 초파리 유전학의 거장 노버트 페리몬은 《더 트랜스미터》(2025년 9월)에서 마지막 NHGRI 그랜트가 “연간 200만 달러 이상”을 지원했고 이것이 “플라이베이스 예산의 약 90%”를 차지하며 약 16명의 직원 급여를 감당했다고 밝혔다. 매달 약 77만 건의 페이지뷰가 발생하는 이 데이터베이스에서, 하버드의 큐레이터 여덟 명이 그해 8월 해고되었다. 케임브리지와 인디애나의 팀은 유럽 초파리 학계의 기부와 웰컴 트러스트의 긴급 자금으로 겨우 1~2년의 시간을 벌었다. 야마시타 유키코, 카산드라 엑스타부어, 휴고 벨렌, 톰 카우프만, 유전학회(GSA)와 초파리 이사회, 그리고 씨메이 추와 내비게이션 펀드 같은 이들의 사적인 헌금으로 데이터베이스는 겨우 목숨을 이어갔다.

초파리 유전학자에게 플라이베이스가 없다는 것은, 화학자에게 주기율표를 압수하는 것과 같다. 유타 대학의 에이드리언 로텐플루는 “나는 말 그대로 매일 플라이베이스에 접속한다”고 했고, 스탠퍼드의 로준 루오는 그것이 “꺼진다면 재앙”이라고 했다. 바로 그 재앙이 실제로 벌어지던 해에, 유럽의 두 철학자는 “모델생물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프레임워크”를 세상에 내놓았다. 나는 이 우연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초파리 유전학자로서, 그리고 졸저 《선택된 자연》에서 모델생물의 역사와 철학을 다뤄 본 사람으로서, 이 논문을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비판적으로 읽어보기로 했다.

먼저, 저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주장하는가

논문이 난해하게 읽히는 이유는 저자들이 나쁜 글을 써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다루는 문제 자체가 생물학의 가장 깊은 인식론적 상처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그 상처란 이런 것이다. 우리는 초파리를 연구하지만, 정작 알고 싶은 것은 인간이다. 쥐의 헌팅턴병을 연구하지만, 치료하고 싶은 것은 사람의 헌팅턴병이다. 그렇다면 초파리에서, 혹은 쥐에서 얻은 지식이 인간에게로 “건너갈” 수 있다는 보증은 어디에 있는가? 이 논문은 바로 그 “건너감(외삽, extrapolation)”의 정당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묻는다.

저자들의 출발점은 겸손하고 또 옳다. 보편적으로 타당한 모델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모델의 타당성은 언제나 특정한 연구 질문에 상대적이다. 이는 웬디 파커의 “목적 적합성(adequacy-for-purpose)” 개념을 따른 것으로, 모델은 그 자체로 참이거나 거짓인 것이 아니라 특정한 용도에 대해 적합하거나 부적합할 뿐이다. 모델생물은 언제나 이상화된(idealized) 표상이며, 동시에 “무언가에 대한 모델(model of)”이자 “무언가를 위한 모델(model for)”, 즉 표상 도구이자 개입 도구다.

이 위에서 저자들은 모델생물이 다른 종류의 과학적 모델과 구별되는 독특한 성격들을 짚는다. 모델생물은 어떤 때는 특정 환자나 질병을 대리하는 “대리물(surrogate)”이지만, 어떤 때는 일반적 생명현상을 예시하는 “범례(exemplar)”다. 모델생물의 표상 범위(외적 타당성)는 진화적 계통이라는 배경에 의해 정당화되지만, 계통적 근연성이 일반화를 “선험적으로 그럴듯하게” 만들 뿐 결코 보증하지는 않는다. 결정적으로 모델생물은 실제 표본이다. 즉 알려진 파라미터와 알려지지 않은 파라미터를 모두 담은 살아 있는 개체다. 동시에 그것은 인공물이기도 하다. 근친교배된 계통, 형질전환체이며, 유전적 보상, 표적 외 전신 효과, 사육 환경 효과 등으로 스스로를 변형시키는 가소성을 지닌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델생물은 표준화, 공동체 인프라와 함께 굴러가는 “과학을 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덧붙이자면, 저자들이 별도의 자매 논문 「모델생물이라는 용어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에서 다듬은 표현을 빌리면, 모델생물은 실험 시스템의 한 부품이 아니라 “그 자체로 자율적인 실험 시스템”이다.)

논문의 핵심은 저자들이 제안하는 새로운 평가 틀이다. 이들은 타당성을 두 축으로 나눈다. 하나는 내적 타당성(internal validity)으로, 이는 데이터 자체의 신뢰성(정확도, 정밀도, 특이도, 민감도, 재현성, 강건성)과, 그 데이터로부터 생물학적 현상을 추론해내는 추론의 강도를 함께 평가하는 것이다. 저자들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면, 내적 타당성은 “실험 측정의 신뢰성과 그 데이터를 생물학적 현상으로 옮기는 추론”을 함께 따지는 일이다. 여기서 이들은 보겐과 우드워드의 고전적 구분, 즉 “데이터”와 “현상”의 구분(1988년 논문 「현상을 구제하기」)을 끌어온다. 예컨대 설치류의 고가식 십자미로(elevated plus maze)에서 열린 통로에 머무는 시간으로부터 “불안이 낮다”는 현상을 추론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각주가 인정하듯 “데이터(한 통로에 머문 시간)로부터 현상(불안의 정도)으로의 추론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논쟁적인”, 위험한 추론이다.

다른 하나는 외적 타당성(external validity), 곧 일반화 가능성이다. 저자들은 이것을 모델과 표적 사이의 네 가지 유사성으로 판별하자고 제안한다. 물질적 유사성(material), 기능적 유사성(functional), 조작으로 유도된 유사성(manipulation-induced), 그리고 현상적 유사성(phenomenological)이다. 각 유사성은 분자, 세포, 생리 등 명시적인 생물학적 수준에 위치하며, 그 증거의 강도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 논문의 은유를 빌리면, “잘 뒷받침된 유사성 하나하나가 모델을 표적에 연결하는 사다리의 가로대(rung)”가 되고, “새로운 데이터는 기존 가로대를 강화하거나, 더 강한 가로대를 추가하거나, 약한 연결을 드러낸다.” 이 “타당성 사다리(validity ladder)”라는 표현은 저자들이 같은 해 《신테제(Synthese)》 207권에 발표한 자매 논문의 제목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저자들은 여러 생물학적 수준을 가로지르는 “교차연결(cross-links)”을 강조하는데, 특히 기계론적 설명이야말로 우연한 닮음의 나열을 진짜 인과적 유사성과 구별해주는 특권적 교차연결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 모든 평가는 언제나 구체적인 연구 목표에 상대적으로,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 저자들 자신의 말처럼 “구체적인 연구 목표가 평가 과정을 인도하며, 각 가로대에 더 크거나 작은 무게를 부여한다.”

기존 제안들에 대한 저자들의 리뷰도 성실하다. 계통과 환원주의적 위계에 기댄 베버와 섀프너의 논의, 우울증 동물모델에 대한 윌너의 세 기준(표면 타당성, 예측 타당성, 구성 타당성), 겐트너의 구조 사상(structure-mapping)에 기댄 유비 추론, 그리고 스틸과 구알라의 “비교 과정 추적(comparative process tracing)”이 그것이다. 마지막 사례는 특히 인상적이다. 아플라톡신 B1의 발암성은 쥐(rat)에서 인간으로 외삽되지만 생쥐(mouse)에서는 그렇지 않은데, 생쥐에게는 별도의 해독 기전이 있기 때문이다. 계통적으로 더 가깝다고 더 타당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여기까지 읽으면, 이 논문이 실은 상당히 사려 깊고, 심지어 모델생물 연구자에게 우호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들은 타당성이 언제나 목표 상대적이라고 못 박고, 어떤 생물학적 수준도(분자가 행동보다) 본질적으로 특권적이지 않다고 말하며, 계통적 거리가 타당성의 선형 척도가 아니라고 명시한다. 그러니 내가 처음 느낀 “대체 뭘 주장하는지 모르겠다”는 답답함은, 논문이 나빠서가 아니라 이 겸손하고 조건적인 결론이 어떤 단순한 처방으로도 환원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인가 ― 2025~2026년 미국의 정책 시계

문제는 이 논문이 진공 속에서 읽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 논문이 접수되고 심사되던 바로 그 기간에, 대서양 건너편에서는 “인간 적합성(human relevance)”과 “타당성”이라는 언어가 연구비를 자르는 무기로 벼려지고 있었다.

시계를 되짚어 보자. 2025년 4월 10일, 마티 마카리가 이끄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단일클론항체 등 의약품 개발에서 동물실험 요구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FDA는 이를 인공지능 기반 독성 예측, 인간 오가노이드, 장기칩(organ-on-a-chip) 같은 “신접근법(New Approach Methodologies, NAMs)”으로 대체하겠다고 했다. 마카리는 성명에서 “이 이니셔티브는 약물 평가의 패러다임 전환을 뜻하며, 동물 사용을 줄이면서 미국인을 위한 치료를 앞당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 조치는 2022년 12월의 FDA 현대화법 2.0(전임상 단계의 동물실험 의무를 없앤 법)의 연장선에 있었다.

불과 열아홉 날 뒤인 2025년 4월 29일, 제이 바타차리아가 이끄는 NIH가 화답했다. NIH는 “인간 기반 연구 기술을 우선한다”는 이니셔티브를 발표하고, 그 실행 기구로 연구혁신·검증·응용실(Office of Research Innovation, Validation, and Application, ORIVA)을 신설하겠다고 했다. 이름을 곱씹어 보라. “혁신, 검증, 응용.” 무언가를 “검증(validation)”하고 “응용(application)”한다는 관료 기구의 이름이다. 바타차리아는 보도자료에서 “수십 년간 우리 생의학 시스템은 동물모델에 과도하게 의존해 왔다. 이 이니셔티브로 NIH는 혁신의 새 시대를 열고 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2025년 7월 7일, FDA와 NIH가 공동으로 “동물실험 축소 워크숍”을 열었다. 여기서 니콜 클라인스트로이어 NIH 부국장은 “NIH는 더 이상 동물모델만을 위한 제안서를 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7월 10일과 18일의 후속 발표를 통해, NIH는 동물모델과 관련된 모든 신규 공모(NOFO)가 이제 임상시험, 실세계 데이터, 혹은 NAMs 같은 “인간 중심 접근”을 함께 지원해야 하며, 동물모델만을 배타적으로 지원하는 공모는 더 이상 내지 않겠다고 명확히 했다. NIH의 공식 안내문은 “2025년 7월 7일부로 NIH는 동물모델만을 배타적으로 지원하는 NOFO를 더 이상 발행하지 않는다”고 적었다. 그리고 2026년 3월 18일, NIH는 이 방향에 1억 5천만 달러 이상을 투입하는 “Complement-ARIE” 프로그램의 첫 지원을 발표했다. 다섯 개의 기술개발센터, 데이터 허브, 그리고 “검증 및 자격부여 네트워크(Validation and Qualification Network)”가 그 골자였다. 여기서도 핵심어는 “검증”이다. NIH는 이 프로그램을 명시적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우선순위”라고 못 박았다.

이 흐름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동물권 단체들(백의의 낭비, PCRM 등)은 이를 “우리가 수십 년간 요구해 온 패러다임 전환”이라며 환영했다. 반면 생의학연구협회(NABR)의 매튜 베일리 회장은 “어떤 AI 모델이나 시뮬레이션도 아직 완전한 생물학적 시스템의 모든 미지수를 재현할 능력을 입증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인도적 동물연구는 여전히 필수불가결하다”고 반박했다. 미국에서 수련하고 이제 중국에서 초파리를 연구하는 나로서는, 이 정책이 진짜로 “동물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예산을 자르기 위한 이념적 명분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이 “인간 우선” 수사는 하버드 자금 동결이라는 정치적 보복과 뒤섞여, 플라이베이스를 포함한 모델생물 인프라를 실제로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졌으니 말이다.

비판 ― “타당성 평가”라는 언어가 감사(audit)의 언어로 미끄러질 때

이제 나의 의심을 정직하게 펼쳐 보겠다. 나는 아테아와 에크가 트럼프 행정부와 어떤 식으로든 결탁했다고 말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런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전혀 없다. 두 사람은 프랑스 학자이고, 연구비는 소르본 대학과 프랑스·EU의 기금(CNRS, 베탕쿠르 프로그램 등)에서 나왔으며, 논문은 순수하게 과학철학적·방법론적 수준에 머문다. 실제로 이 논문과 자매 논문의 참고문헌, 각주, 감사의 글, 초록 전체를 뒤졌지만, 미국 정책, 트럼프, 오가노이드, NAMs, 혹은 “타당성” 언어의 정치적 사용에 대한 언급은 단 한 글자도 없었다. 이 부재는 중요하다. 이들은 순수한 인식론적 작업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바로 그 순수함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 과학철학은 자신의 산물이 어떻게 소비되는지에 대해 무구하지 않다. “모델생물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프레임워크”라는 발상은, 그 의도와 무관하게, 구조적으로 감사와 예산 삭감의 논리에 포개어진다. 생각해 보라. 저자들의 틀은 모델과 표적 사이의 유사성을 그 증거 강도에 따라 등급 매기자고 제안한다. 인식론적으로 이것은 나무랄 데 없다. 그러나 정치적 맥락 속에서, “증거가 약한 유사성” 혹은 “논쟁적인 유사성”이라는 평가는 순식간에 예산 삭감의 탄약이 된다. ORIVA나 “검증 및 자격부여 네트워크” 같은 기구가, 동료 심사가 아니라 정치적 임명자들의 손에서 이 어휘를 휘두를 때, “당신의 초파리 모델은 인간과의 유사성이 논쟁적이므로 타당성이 낮다, 따라서 예산을 줄 수 없다”는 문장이 완성된다. 철학자들이 순수하게 벼려낸 정교한 등급 어휘가, 관료의 손에서 도장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이 논문의 사례 선택을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논문의 대표적 작동 사례는 헌팅턴병의 두 생쥐 모델(R6/2와 zQ175)의 비교이고, 전반적으로 “인간 환자를 표적으로 삼는” 질병 모델, 번역적(translational) 틀에 기울어 있다. 물론 저자들은 예시를 위해 명료한 사례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번역 중심성은 현대 생물학을 실제로 건설한 다른 양식, 즉 “범례로서의 발견” 양식을 과소평가한다. 토머스 헌트 모건이 1900년대 후반 컬럼비아의 “파리 방(fly room)”에서 초파리를 선택한 것은, 초파리가 인간에 대해 “타당함이 확증되어서”가 아니었다. 값싸고, 빨리 번식하고, 다루기 쉬워서였다. 타당성은 사전에 인증된 것이 아니라 사후에(a posteriori) 벌어들여졌다. 흥미롭게도 이것은 저자들 자신이 인정하는 바다. 그들은 표상 범위가 계통적 거리로 보증되지 않으며 여러 모델생물 간 결과 비교를 통해 사후적으로 추정되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의 틀이 요구하는 “사전 타당성 평가”와, 그들 자신이 인정하는 “사후적 타당성 획득” 사이에는 긴장이 있다. 그리고 정책이 낚아채는 것은 언제나 전자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만약 “인간에 대한 타당성을 먼저 증명하라”는 요구가 20세기 초에 관철되었다면, 모건의 파리 방도, 브레너의 예쁜꼬마선충도, 제브라피시도 결코 성숙하기 전에 목이 졸렸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타당성이 미리 증명되지 않았던” 생물들이 무엇을 낳았는가. 초파리로 이룬 노벨 생리의학상만 헤아려도 1933년 모건(유전에서 염색체의 역할), 1995년 루이스·뉘슬라인폴하르트·비샤우스(초기 배발생의 유전적 제어), 2011년 호프만(선천면역), 2017년 홀·로스바시·영(생체시계)이 있다. 예쁜꼬마선충은 2002년 세포자살과 2006년 RNA 간섭을 안겨주었다. 오늘날 초파리·선충·제브라피시는 미국의 미진단질환네트워크(UDN) 모델생물스크리닝센터에서, 4년도 안 되는 기간에 25종이 넘는 희귀 유전질환의 진단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인간 유전자의 약 75%가 초파리에 상동유전자를 가진다는 사실(Reiter 등, 2001) 위에서 말이다. 벨렌과 야마모토, 왕글러 등이 《네이처 리뷰 제네틱스》 2024년호(25권)에서 정리했듯, 비포유류 모델생물은 희귀질환 진단에서 빠르고 값싼 검증을 제공하고 이는 다시 포유류와 인간 세포에서 재확인된다. “인간 적합성”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자른다면, 그것은 인간 적합성 그 자체를 자르는 자기모순이다.

정직한 반대 독해 ― 이 논문은 오히려 오가노이드 단작(單作)을 유죄로 만든다

그러나 지적 정직함은 여기서 멈추지 말 것을 요구한다. 이 논문을 트럼프 정책의 도구로만 읽는 것은, 논문을 오독하는 것이다. 오히려 나는 정반대로 주장하고 싶다. 저자들의 틀을 진지하게 끝까지 적용하면, 그것은 “모든 것을 오가노이드로”라는 정책을 그 자신의 기준으로 유죄판결한다.

첫째, 타당성이 언제나 목표 상대적이라면, “오가노이드가 만능이다”라는 명제 자체가 저자들의 첫 번째 원칙에 의해 곧바로 기각된다. 특정 질문에 대해 초파리가 부적합할 수 있듯이, 다른 질문에 대해서는 오가노이드가 부적합하다. 타당성에 보편 승자는 없다.

둘째, 어떤 생물학적 수준도, 어떤 시스템도 본질적으로 특권적이지 않다는 저자들의 명시적 주장은, “인간 세포에서 왔으니 더 타당하다”는 오가노이드 옹호론의 순진한 전제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인간 유래라는 물질적 유사성 하나가 높다고 해서, 기능적·현상적 유사성이 자동으로 따라오지는 않는다.

셋째,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오가노이드와 NAMs 역시 “모델”이다. 따라서 저자들의 틀이 초파리에 요구하는 바로 그 타당성 심사를 똑같이 받아야 한다. 사실 오가노이드야말로 인공물의 극치다. 그것은 저자들이 말한 “살아 있는 표본으로서의 범례” 성격, 즉 알려지지 않은 파라미터까지 모두 담은 온전한 개체라는 성격을 대부분 결여한다. 오가노이드는 대개 혈관이 없어 100~200마이크로미터를 넘으면 확산 한계로 내부가 손상되고, 조직 상주 면역세포가 없으며, 전신 생리도, 행동도 없다. 배치(batch) 간 변이가 크고, 재현성과 표준화는 아직 미성숙하다. 이것은 반(反)오가노이드 선동이 아니라, 오가노이드 연구자들 자신이 리뷰 논문마다 정직하게 적는 한계다. 전문가 합의는 명확하다. NAMs는 전(全)유기체 생물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한다. 저자들의 언어로 말하면, 오가노이드는 몇 개의 강한 “물질적 유사성” 가로대를 가질지 몰라도, “기능적·현상적 유사성”의 가로대와 여러 수준을 잇는 “교차연결”은 오히려 전유기체 모델보다 빈약하다. 저자들의 사다리를 정직하게 오르면, 오가노이드는 결코 사다리 꼭대기에 홀로 서지 못한다.

넷째, 저자들은 모델의 다양성이 인식론적으로 가치 있다고 명시하며, 여기서 질 로랑이 《네이처 리뷰 뉴로사이언스》 2020년(21권 395~396쪽)에 쓴 “신경과학에서 모델 다양성의 가치”를 우호적으로 인용한다. 로랑은 소수의 종으로 신경과학을 좁히는 경향을 경고하며 비교적 접근의 부활을 촉구했다. 이는 단일 모델(그것이 생쥐든 오가노이드든)로의 수렴에 대한 명백한 반대다. 게다가 저자들은 공동체 인프라가 모델생물을 모델생물로 만드는 구성적 요소임을 강조하며 웜베이스(WormBase)와 플라이와이어(FlyWire) 같은 자원을 언급한다. 바로 여기서 나는 씁쓸한 아이러니를 느낀다. 저자들이 모델생물의 본질적 조건으로 지목한 그 공동체 인프라야말로, 트럼프의 삭감이 지금 파괴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2024년 10월 《네이처》(634권)에 발표된 도르켄발트 등의 성체 초파리 전뇌 커넥톰 ― 뉴런 13만 9,255개 사이의 약 5,450만 개(5×10⁷ 이상)의 화학적 시냅스 ― 은, AI와 시민과학자와 신경과학자의 개방적 협업이라는, 돈으로 환산되지 않는 공유지 위에서만 가능했다. 플라이베이스도, 웜베이스도, 스톡센터도 마찬가지다. 논문은 의도치 않게, 삭감이 파괴하는 바로 그것을 “타당성의 구성 조건”이라고 옹호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므로 나의 결론은 이분법을 거부한다. 아테아와 에크는 거의 확실히 삭감 의제의 동맹이 아니다. 그들의 틀을 주의 깊게 읽으면, 그것은 오가노이드 단작 정책을 오히려 기소한다. 그러나 ― 그리고 이 “그러나”가 이 글의 핵심이다 ― 과학철학은 자신의 수용(uptake)에 대해 무죄가 아니다. 2026년, “인간 적합성”이 예산의 무기가 된 환경 속으로 “모델생물 타당성 평가 프레임워크”를 던져 넣으면서, 저자들이 그 정치적 맥락에 대해 단 한 문장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시사적이다. 특히 그들 틀의 첫 단계가 “조직 선택에 개입하는 비인식적 가치와 실용적 제약(비용, 도구, 공동체, 윤리)을 명시하라”는 것이었음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자신들의 방법론은 가치를 명시하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방법론이 놓인 정치적·제도적 가치의 장(場)에 대해서는 침묵한 것이다. 누가 평가하는가? 어떤 제도적 환경에서? 동료 심사인가, 정치적 임명자인가? 이 질문의 부재가, 선의의 인식론을 위험에 노출시킨다.

파리 방의 전통에서, 다시 공유지를 말하며

《선택된 자연》에서 나는 생물학이 “선택된 자연”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썼다. 모델생물은 자연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와 생물이 함께 오랜 시간에 걸쳐 공동구성(co-construct)한 역사적 산물이다. 초파리는 처음부터 “타당한” 것이 아니었다. 모건과 캘빈 브리지스와 앨프리드 스터트번트가 파리 방에서, 우유병과 바나나와 무수한 돌연변이체를 나누며, 그것을 타당하게 “만들어” 갔다. 그 과정의 심장에는 언제나 공유(sharing)가 있었다. 계통을 나누고, 지도를 나누고, 데이터를 나누는 개방된 과학적 공유지 말이다. 나는 이 파리 방의 전통을, 임팩트 팩터 문화와 상업적 출판 과점과 순전히 번역적인 기초과학 틀에 맞서는 하나의 윤리로 여겨 왔다.

아테아와 에크의 논문은, 역설적이게도, 이 공유지의 인식론적 가치를 철학적으로 확증해 준다. 그들이 옳게 보았듯, 타당성은 개별 표본의 속성이 아니라 공동체의 축적된 비교와 인프라 속에서 사후적으로 벌어들여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분명하다. 첫째, 모델생물 공동체는 타당성을 정치적 임명자의 심사표에 내맡기지 말고, 실천 속의 타당성(validity-in-practice)을 우리 자신의 언어로 적극적으로 서술해야 한다. 둘째, 플라이베이스와 웜베이스와 스톡센터 같은 공유 인프라가 타당성의 구성 요소임을, 즉 사치가 아니라 과학의 기반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셋째, “동물이냐 인간 적합성이냐”라는 거짓 이분법을 거부해야 한다. 로랑이 말한 모델 다양성이야말로 타당성의 원천이며, 초파리와 오가노이드는 경쟁자가 아니라 서로를 검증하는 동료다. 넷째,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 NAMs에도 정확히 같은 인식론적 기준을 요구해야 한다. 오가노이드가 초파리를 “타당성” 심사대에 세운다면, 초파리도 오가노이드를 같은 심사대에 세울 권리가 있다. 검증의 잣대는 양방향이어야 한다.

플라이베이스가 죽어가던 해에 도착한 이 논문을, 나는 결국 적이 아니라 뜻밖의 증인으로 읽는다. 저자들이 의도하지 않았을지언정, 그들의 사다리는 오가노이드 단작의 오만을 기소하고, 공유지의 가치를 증언한다. 다만 나는 그들에게, 그리고 모든 과학철학자에게 한 가지를 청하고 싶다. 다음 논문에서는 부디, 당신들이 만든 “타당성”이라는 아름다운 도구가 지금 누구의 손에서 어떤 도장으로 쓰이고 있는지를, 한 문단이라도 좋으니 적어 달라고. 왜냐하면 파리 방의 유산이 가르쳐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순수한 인식론 같은 것은 없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모든 평가에는 평가하는 자가 있고, 모든 심사표 뒤에는 예산이 있다.


덧붙이는 사실 확인 노트: 아테아·에크 논문의 세부 조문(다섯 단계 절차의 정확한 명칭, 유사성 등급의 정확한 라벨, R6/2·zQ175 및 마우스-제브라피시 미세소관 사례의 본문 서술, 웜베이스·플라이와이어 및 희귀질환 관련 서술의 정확한 위치)은 《FASEB 저널》 본문이 현재 봇 차단으로 접근이 제한되고 PMC에 아직 등재되지 않아, 일부는 공개된 초록·각주와 자매 논문 《Synthese》 207권을 통해 교차 확인한 것이다. 네 가지 유사성 유형(물질적·기능적·조작유도·현상적), 내적/외적 타당성의 구분, 고가식 십자미로 사례, 타당성 사다리 은유는 공개 자료로 직접 확인되었다. 반면 “확증됨/강함/논쟁적”과 같은 등급 라벨의 정확한 표현은 본문 접근이 제한되어 여기서는 그 취지(증거 강도에 따른 등급화)만을 옮겼음을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