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날때마다 화장실에서 <쿤/포퍼 논쟁>이라는 스티브 풀러의 책을 읽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 책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과학철학과 과학사에 관한 논문들을 시간내어 읽는다는 것이 버거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실험실 생활은 그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풀러의 책 7장 소제목이 <왜 철학자는 과학자들에게 존경받지 못하는가>로 되어 있다. 다음과 같은 임레 라카토스의 말이 첫부분에 인용되어 있다.
과학을 영국왕립학회의 형언할 수 없이 신비한 비의로 이해하고 있는 철학자에 불과한 사람이 어찌 좋은 과학과 나쁜 과학을 구분하는 기준을 고안해낼 수 있겠는가? 임레 라카토스,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제1강> (1973), <쿤/포퍼 논쟁> 78쪽에서 재인용.
라카토스의 언급은 현대 특히 한국의 과학철학/과학사/과학사회학자들이 의도적으로 꺼내지 않는 어떤 학자로서의 자세를 표면으로 드러낸다. 과학을 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혹은 사회학적으로 다루고 있는 전문화된 학자들은 과학을 어느정도까지 알아야 하는가, 혹은 과학을 다루기는 하지만 이미 조직화된 학문의 전통이 있다는 이유로 인해 과학을 직접 경험할 필요성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실제로 풀러는 과학철학이 현장의 과학으로부터 분리되어 나가는 역사적 시점을 잘 포착하고 있다.
과학철학사에서 가장 놀라운 특징은 논의되는 사람들의 철학적 중요성과 과학적 중요성 사이의 역관계이다. 갈릴레오나 뉴턴, 맥스웰, 아인슈타인과 같은 가장 위대한 과학자들도, 웬만한 과학철학자 이상으로 다뤄지지 않는다. 때로 이 과학자 집단에 속한 어떤 이들, 특히 다윈은 철학자들에게 점잖게 무시당하는 처지로까지 밀려난다. 이러한 흥미로운 특징은, ‘자연철학자’라는 단어가 지금 우리가 보기에는 과학자와 철학자 양쪽을 모두 포함하는 표현으로 쓰이는 시험적 기간에 최초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17세기 자연철학자들은 오늘날 갈릴레오나 보일, 뉴턴과 같은 ‘과학자’들과, 데카르트, 홉스, 라이프니츠와 같은 ‘철학자’들로 갈라진다. 오늘날 우리가 ‘철학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결국, 지금의 우리가 ‘과학적’이라고 부르는 것을 놓고 벌어진 전쟁에서 패배한 쪽의 자연철학자들이다. <쿤/포퍼 논쟁> 78-79쪽.
과학사를 과학철학과 과학 모두에 관심을 두고 읽지 않으면 이러한 미묘한 갈등과 전개를 이해할 수 없다. 풀러의 말처럼, 과학사에서 과학철학의 주요한 인물들로 다루어지는 ‘철학자’들은 당대 혹은 이후의 ‘과학자’들에게는 패배자가 된 이들이 대부분이다. 데카르트는 뉴턴에게, 홉스는 보일에게, 라이프니츠도 뉴턴에게 ‘과학자’로서 패배했다. 심지어 19세기의 과학자들이면서 과학철학자이기도 했던 휴웰, 밀, 마흐, 뒤앙, 푸앵카레 등도 원자론이나 상대성이론 등의 최신과학이론들에 반대하며 결국은 과학자로서는 패배한 인물들로 기록된다. 이러한 사태는 20세기 카르남과 같은 논리실증주의자들에 이르러서도 변하지 않는다. 풀러에 따르면 “과학철학이 주류 과학에서 완전히 소외된 경위는 포퍼의 학문적 궤적에 가장 잘 요약되어” 있다.
카르납보다 거의 열 살 연하였던 포퍼는, 빈 학파 주변을 배회하면서 과학을 비판하기보다 좀더 수월한 이해를 공식적인 목표로 하는 학과인 교육심리학 박사 과정에 있었다. 하지만 애초에 포퍼 자신이 이 분야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새로움에 대한 아이들의 저항, 또는 키에르케고르의 용어로 야스퍼스가 심리학자들 사이에 유행시키느 ‘미지에의 불안’에 고무되었기 때문이다. <쿤/포퍼 논쟁> 18-82쪽.
마흐와 볼츠만이 활동하던 19세기말~20세기 초의 상황은 포퍼~쿤으로 넘어가는 20세기 중엽의 과학철학과 구별된다. 이 시기로부터 과학철학은 주류 과학과 확연히 독립적인 분야로 성장했으며, 현장의 과학과 분리되어 가기 시작했다. 특히 포퍼와 네이글 같은 과학철학자들은 “물리적 인과관계가 실재의 양자 수준에서의 불확정성으로 해체될 때 과학의 운명을 걱정”했다. 즉, 양자역학의 등장은 그들의 과학철학과 배치되는 무엇이었으며, 따라서 과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분야로 인식되었다.
네이글이나 포퍼의 우려는 물리학의 붕괴는 커녕 새로운 방향 설정조차 이끌어내지 못했다. 오히려 그것들은 관련된 다른 근본적인 문제처럼, 그저 물리학의 일상적인 경험적 연구에서 차단되었다….실증주의가 물리학자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상상하려면, 선교사나 제국주의자들의 열의가 본국의 계몽된 신자나 시민들에게 어떻게 비치는지를 생각해보라. 내수 시장에서 홀대 받던 것이 해외 시장에서는 크게 각광받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쿤/포퍼 논쟁> 82쪽.
실제로 빈 학파의 논리실증주의는 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과학자들에게 전혀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는 빈 학파의 과학철학만이 아니라 세기말의 빈에서 탄생한 대부분의 학문에 공통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는 <제국의 종말, 지성의 탄생>에 잘 기록되어 있다. 실증주의자들은 물리학을 전범으로 화학과 생물학, 그리고 심리학과 같은 신생 과학분과들에 자신들의 철학을 강요하려 했다. 내가 관심을 두는 주제가 바로 이 지점이다. 포퍼가 진화론에 대해 비판적인 관점을 견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잘알려진 역사적 사실이며, 생물학이 근대과학으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진화론이 겪어야만 했던 난제들이 생리학의 전통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는 것도 주지할 만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철학자들의 조언은 해당 분과가 과학으로 자리잡는데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불행하게도 실증주의자들의 통합에 대한 요구는 생물학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생물학의 전문가들은 통합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노력이 부족해서는 아니었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생물학을 생명이 기계적인 과정들로 완전히 설명될 수 있는지에 따라 ‘기계론’과 ‘생기론’ 사이의 형이상학적 논쟁에서 여전히 헤어 나오지 못하는 원시 과학으로 선언했다… 어느 쪽도 생물학을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에 통합시키는 실제적인 전략을 획득하지는 못했다. <쿤/포퍼 논쟁> 83-84쪽.
풀러는 과학철학자들의 철학적 오지랖이 생물학이 근대과학으로 굳어지는 과정에 거의 아무런 역할도 못했다는 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물론 현대 과학철학자들의 유행을 따라, 풀러도 이러한 생물학의 역사를 진화론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고, 특히 과거 과학철학자들이 지닌 한계, 즉 과학의 ‘이론’적 측면으로만 과학의 구조를 설명하려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기에 풀러의 설명에는 끌로드 베르나르를 축으로 하는 생리학사의 전통이 반드시 통합되어야만 할 것이다. 풀러는 (철학적 관심을 지닌 과학자들이 과학에서 대부분 패배자였음을 지적한 자신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도브잔스키를 끌어낸다. 모건의 제자이면서도 누구보다도 진화론과 유전학을 통합하려 했던 생물학자 도브잔스키는 진화적 근대종합의 한 축이었고, 자연사 전통의 생물학자들은 그를 따라 과학철학자들의 우려를 벗어나 훌륭한 과학적 전통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대신 일선에서 활동하는 생물학자들은 러시아 정교회 신자이며 미국에 기반을 둔 유전학자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의 지도를 따랐다. 그는 1973년에 출판한 <유전학과 종의 기원>에서 생물학은 물리학에 종속되거나 다른 인문과학 위에 군림하는 일 없이 학제간의 통합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러한 견해는 지금은 신다윈주의적 종합 이론으로 알려져 있다…. 도브잔스키의 유전학과 자연사 사이의 관계에 대한 협력적 전망은, 포퍼를 포함한 실증주의 철학자들이 계속해서 조장했던 두 분야간의 전통적 반목과는 다소 다르다. 이러한 갈등의 기운은 아직도 사회과학을 괴롭히는 ‘양적’ 방법론과 ‘질적’ 방법론 사이의 불화에서 잘 표현된다. <쿤/포퍼 논쟁> 84-85쪽.
풀러의 논의들을 제대로 따라온 독자들은 당연히 한 명의 과학철학자의 이름을 떠올려야 한다. 한스 라이엔바흐다. 라이엔바흐가 과학철학이 인식론으로서 지니는 임무를 기술, 비판, 충고의 순으로 열거했으며, 과학철학자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를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 중 후자에 두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라이엔바흐에게 과학철학의 충고로서의 기능은 거의 무시되는 영역이다. 과학철학자들은 발전하는 과학에 제대로된 충고를 할 수 없다. 과학철학이 학문으로서 가장 건강성을 유지하는 것은 과학에 대해 기술하고 비판적 임무를 수행할 때 뿐이다. 풀러는 라이엔바흐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고 있지 않지만, 인식론의 임무에 관한 라이엔바흐의 논문이야말로 풀러가 위에서 지루하게 서술한 과학철학과 과학의 관계에서 핵심이 되는 텍스트일 것이다.
여기서 라이엔바흐라는 철학자의 개성이 드러난다. 과학철학자에게는 자명하게 비논리적으로 보이는 결단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과학철학자는 과학자에게 조언을 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과학철학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기껏해야 다양한 선택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선택은 전적으로 과학자에게 맡기는 것 뿐이다. 나아가 조언적 과제는 언젠가는 비판적 과제로 환원되어야만 하는 임시적인 과제로 남는다. 쉽게 말해서, 과학철학자는 비논리적인 결단의 문제를 인지하고 있을지라도, 과학자들에게 그것을 수정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왜냐하면 결단의 기저에 어떤 논리적 구조가 존재하는지 아닌지를 탐구하는 것만이 과학철학자의 목표이지, 그것이 임의적이고 애매모호한 과정으로 보인다고 해서 포기하라는 명령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라이엔바흐에게 있어 과학철학은 과학의 지식체계에 대한 탐구일 뿐, 과학에 대한 윤리학이 아니다. <두 문화 따위> 중에서, 김우재
실제로 풀러가 기술한 역사적 사례들이 재현되고 있는 분야가 있다. 인지과학과 진화심리학이라는 영역이다. 이 분야엔 19세기말의 물리학, 20세기 초중반의 진화생물학처럼 많은 철학자들이 포진하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논쟁들이 현장의 인지과학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 철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은 공공연하게 라이엔바흐가 우려했던 철학의 조언적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가 인지과학이 아니고, 실제로 과학사에서 철학자들이 과학의 성립에 아예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은 아니라고 말할 몇가지 소수의 사례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인지과학이 겪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판단을 보류한다. 30년 혹은 더 오랜 시기가 지난 후에, 되돌아 볼 일이다. 물론 상황이 이렇다고 해서, 내가 과학철학이 제기하는 문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과학자들에게 손을 들어주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과학에 쓸데 없는 조언을 행사하려는 과학학자들보다, 과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학문이 걸어온 길에 대해 거의 무지한 한국의 과학자들에 대해 난 비판을 할 정도의 아량조차 없다. 한국 과학학에 대한 비판은 내 관심의 표현이다. 파이어아벤트가 쿤에 대해 극도의 반감을 표시했던 정도로, 난 자신의 전통에 무심한 과학자들을 경멸한다.
쿤의 아이디어는 흥미로우나 안타깝게도 너무 모호해서 무수한 허풍만을 남발한다. 이전에는 과학철학 문헌이 이토록 많은 불쾌한 인간들과 무자격자들에 의해 점령된 적이 없었다. 쿤은 왜 돌덩이가 지상으로 낙하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과학적 방법론에 대해 확신을 갖고 떠들게끔 부추기고 있다. 이제 나는 무자격에 대해서는 이골이 났지만, 내가 진정 싫어하는 것은 무자격이 지겨운 독선과 결합할 때이다. -파울 파이어아벤트, <과학에 맞서 어떻게 사회를 수호할 것인가>, <쿤/포퍼 논쟁> 73쪽에서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