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보자.
“줄리와 마크는 남매이다. 대학생인 그들은 여름 방학을 이용해 함께 프랑스를 여행하고 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바닷가의 오두막에서 단 둘이 밤을 보낸다. 그들은 시험삼아 섹스를 해 보면 흥미롭고 재미있을 거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최소한 서로에게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줄리는 이미 피임약을 복용했지만 마크 역시 안전을 위해 콘돔을 사용한다. 두 사람 모두 섹스가 즐거웠지만 다시는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날 밤의 일을 특별한 비밀로 간직하고 그로 인해 서로 한층 가까워졌음을 느낀다. 당신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들은 섹스를 해도 괜찮았는가?
한 주부가 옷장을 청소하다가 낡은 성조기를 발견한다. 더 이상 그 국기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그녀는 그것을 찢어 욕조를 청소하는 걸레로 사용한다.
한 남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슈퍼마켓에 들러 죽은 닭을 산다. 그러나 요리하기 전에 그 닭과 성관계를 가진다. 그런 다음 닭을 요리해서 먹는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우리들 중 대다수는 직관적으로 도덕적 판단을 하고, 이유를 찾으려 한다. 즉, 자신이 위의 상황을 옳지 않다고 여기는 이유를 찾기 위해 머뭇거리게 되는데, 이를 도덕적 말막힘이라고 부른다. 많은 경우 먹물들도 이처럼 자신의 도덕적 직관으로 내린 판단에 대한 사후정당화를 글로 쓴다. 조나단 하이트는 인류보편적인 도덕직관에 대한 연구를 진행중인 도덕심리학자로 보이고, 진화심리학과 심지어 사회생물학 등의 전통에 가까운 학자다. 전중환에 도덕 이야기를 거론할 때 주로 근거로 사용되는 학자인 듯 싶다. 재미있는 개념이라 인용한다. 물론 모든 도덕적 판단으로 일반화하는 순간 이 이론은 사이비가 된다.
“우리가 어떤 도덕적 질문을 받을 때 우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우리 사회에 널리 수용되고 있 는 확고한 도덕적 견해, 즉 우리가 자명한 것으로 간주하는 도덕적 직관1)에 호소해서 답을 찾 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다수의 이익을 위해서 죄 없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정당 한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우리 대부분은 그와 같은 행위에 대해 직관적인 혐오감을 보이면서 즉각적으로 부정적으로 답한다. 그 근거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죄 없는 사람을 처벌하는 것의 부당함과 그것의 자명함을 근거로 제시한다. 누군가 그 자명함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 우리들 대부분은 하이트(J. Haidt)가 말한 도덕적 말더듬이(moral dumbfounding) 상태에 처하게 된다. 이렇듯 우리는 일상적인 도덕적 사유의 거의 대부분을 도덕적 직관에 의존해서 시 작하고 또 도덕적 직관에 의존해서 결론을 도출한다.
이러한 경향은 전문 윤리학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윤리학자들이 자신의 도덕적 견해 를 지지하거나 다른 사람의 견해를 논박하기 위해서 도덕적 직관에 호소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 이다. 일찍이 로스(W. D. Ross)는 “감각 지각이 자연과학의 자료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려 깊고 교육받은 사람들의 도덕적 신념은 윤리학의 자료”(Ross, 1930, 40)라고 주장한 바 있다. 심지 어 시놋-암스트롱(Walter Sinnott-Armstrong)은 직관에 호소하지 않고 실질적인 윤리 이론 을 구성하고 정당화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Sinnott-Armstrong, 2008, 47). 그 래서 일부 윤리학자들은 이 도덕적 직관을 윤리학의 연구 대상으로 삼고, ‘직관에 기초한 윤리학 (intuition-based ethics)’을 전개할 것을 제안한다. 류지한. 2013. “논문 : 직관의 과학과 윤리학에서 직관의 문제.” 91(0): 2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