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블로그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I am best known as a teacher of genetics and biology, a geneticist, and a historian of science. I have written ten books and several more are in progress. Since 1997, I have written a column on science called “Life Lines” that appears every other Thursday in the Leisure (Arts and Style) section of a group of North Shore Long Island news papers published by the Times Beacon Record Publishers. I loved academic life and retired from Stony Brook University on December 30, 2000 to become a full time writer. I am a Fellow of the 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 a recipient of the Harbison Award (from the Danforth Foundation) for gifted teaching, and the first recipient of the State-wide title of Distinguished Teaching Professor at Stony Brook University.
I can be reached at ecarlson31 [at] gmail [dot] com. I am available to give lectures, seminars, and book readings.
엘로프 A. 칼슨 Elof Axel Carlson은 1931년 뉴욕 브룩클린에서 스웨덴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인디애나 대학에서 허먼 뮬러 Hermann Joseph Muller의 지도로 동물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이후 연구자로, 생물학 교육자로, 그리고 과학사가로 살아오고 있다.
그의 글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우생학과 좌파, Paul, Diane. 1984. “Eugenics and the Left.” Journal of the History of Ideas 45(4): 567–90. (November 1, 2011)>라는 논문을 접하면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논문은 흔히 독일과 미국의 인종청소와 결부되어 있는 우생학의 이미지를 당시의 시대정신과 맥락 속에서 정교하게 분석해낸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19세기말~20세기 중반까지 생물학자의 대부분이 우생학자로 분류될 수 있다. 문제는 그 우생학의 맥락이 단선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서는 몇번 쓴 글이 블로그에 남아 있을테지만, 간략히 말하자면 우생학은 좌우의 이념을 가리지 않고 당시 지식인과 대중 모두를 사로잡았던 일종의 응용과학이었으며, 좌파에게 우생학이란 단순히 생물학적 결정론이 아닌 좀 더 기회에 평등한 사회개혁을 위한 과학적 기반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의 글들은 진보적 이념을 추구하면서도 과학을 훼손하지 않는 하나의 방식을 보여준다. 아마도 과학자로 역사적 인물에게 훈련받은 경험과, 거기에서 출발해 역사로 나아간 그의 궤적이 그런 균형감각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국내엔 칼슨의 논문을 인용한 논문이 거의 없다. 우생학에 대한 김호연의 논문이 하나 나오는데, 김호연의 <새로운 유전학 (New Genetics), 과거 우생학의 재현인가 (Eugenics)?>이라는 논문은 한마디로 쓰레기로, 한국 과학사 연구에 기생하는 자들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엘로프 칼슨,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