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11:4라는 스코어는 참담하다. 날고 긴다는 정치평론가들과, 선거판에서 좀 놀아봤다는 이들, 그리고 시사예능에서 날뛰는 여론조사기관 대표들조차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민중의 움직임이 뻔히 보인다면, 민주주의란 불가능할 것이다. 아마도 이런 예측불가능성이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구조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현재의 정치 엘리트들과 민중이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증상일 것이다. 결과가 나오자 평론은 넘친다. 비판과 비난이 쇄도한다. 그건 너무 쉬운 일이다. 욕을 한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더 어렵지만 누구도 손대지 않고, 하지 않으려 하며, 할 수 없는 일은 참패 이후의 새로운 체제에 대한 구체적이고 장기적인 플랜을 짜는 것이다.
좌절할 시간도 없다. 누군가는 이대로라면 한국은 우익의 장기집권이 고착된 일본의 뒤를 따를 것이라고들 말한다.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한 국가를 구성하는 사회/문화적 체제들이란 고유한 특성을 벗어나기 힘든 것이다. 우익의 장기집권은 불가능하겠지만, 국가의 시스템이 건강성을 회복하는 시기는 늦춰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익의 장기집권이 아니다. 본질은 정치권의 붕당과 야합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게 만드는 체제의 건설에 있다. 우익이 장기집권한다고 국가가 망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체제의 혁명 시기가 늦춰질 뿐이다.
더 이상 한국의 민주진영과 진보진영에 기대할 수 없다. 그들은 성장동력을 잃었다. 군사독재정권과 노동조합이 탄생하던 난세에 영웅적 지위를 획득한 그들의 두뇌와 몸은, 바로 그 시대에 고착되어 있다. 애플과 구글이 전세계의 생활양식을 한 순간에 바꾸어 버리고, 창고와 차고에서 또래 운동 잘하는 아이들에게 따돌림 당하던 빌게이츠, 잡스 같은 엔니지어, 너드, 덕후들이 미국에서 세상을 바꾸는 동안, 한국은 그나마 손에 쥐었던 IT강국의 위용을 잃어버렸다. 삼성의 실적은 계속 하락할 것이다. 중국의 IT기업들은 이미 미국을 상대로 뛰고 있다. 한국에서 엔지니어를 꿈꾸는 공학도들은 실리콘밸리만을 바라보고 뛴다. 그들에게 한국은 엔지니어로 살기엔 최악의 국가다. 어떤 통계에선 한국 공학도의 80% 이상이 실리콘밸리에서 살기를 희망한다고 한다. 잡스나 게이츠 같은 엔지니어/너드 출신의 CEO를 한국에선 찾아볼 수 없다. 경영학과 출신의 세련된 이들이 삼성을 장악하고 있고, 엔지니어 출신이 CEO가 되는 경우에도 그들의 정신은 이미 엔지니어의 그것이 아니다. 엔지니어 이전에 한국은 386 컴퓨터를 익히며 자란 뛰어난 프로그래머들을 치킨집 사장으로 전락시키며 망조를 드러낸 국가였다. 과학자가 초등학교 아이들의 장래희망 1위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과학기술자가 된 사이언스키즈들은 자식들을 의대에 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 나라는 국부를 가져다준 주역들을 기계부품으로 취급한다. 박정희 정권에서 국부를 일궈낸 기술노동자, 과학기술자들은 최상위 권력층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심지어 조직도 갖추지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노예다.
박성민이라는 정치컨설턴트의 강연을 듣는다. 그나마 한국 정치에 관한 정신 제대로 박힌 소리를 하는 인물이다. 과거엔 신학이 정치를, 정치가 철학과 과학과 기술을 지배했다. 이제 그 구조는 완전히 역전되었다. 가장 위에 엔지니어들이 있다. 그 밑에 과학자들, 그리고 철학과 정치와 신학이 위치한다. 세상을 추동하는 힘과 권력이 그렇게 이동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한국은 그런 흐름에서 비껴서 있다. 19세기말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재현된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서 엔지니어들은 지극히 개인주의화되거나, 익명성 속에 숨어 정치를 관조한다. 과학자들은 비판정신을 실종하고, 생존에 숨가뿐 상아탑의 마법사가 되었다. 대다수의 과학기술자들을 대표한다는 정치적 과학기술자들은 권력에 기생하고 권력을 위해 과학기술을 왜곡하는데 전혀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는다. 4대강이, 천안함이 그런 과학기술자들에 의해 왜곡되었다. 박상민은 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정치의 현실을 진단한다. 이제 정치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더 이상 엘리트 정치인들이, 법률가들이, 기득권이 정치를 통해 국민을 대변할 수 없다. 실제로 세상의 힘이 주어진 계층, 과학기술자들과 디자이너, 프로그래머들이 정치의 주역으로 등장해야 한다.
새로운 정치란 새로운 세력의 등장을 의미한다. 안철수의 새정치는 그래서 처음부터 위선이었다. 안철수의 주변에 포진한 핵심세력 모두가 낡은 법조계 인물들이었다. 그에겐 벤쳐신화를 함께했던 엔지니어 친구들이 있었지만, 단기적 손익계산에만 능한 안철수는 그들을 중용하지 않았다. 60년의 친일세력, 그리고 40년의 민주화세력, 20여년의 386 운동권 세력, 이제 그들 외에 다른 세력이 정치권을 재편할 타이밍이 되었다. 박상민은 비주류가 주류를 밀어내는 것이야말로 혁명이라고 했다. 주류가 옷을 바꿔 입는 것이 혁신이라 했다. 한국정치에서 비주류가 주류를 이기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안철수가 박원순이 그 희망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을 담아낼 그릇이 아니었다. 안철수 현상은 안철수라는 개인으로 환원될 수 없다. 안철수 현상이라는 그 거대한 민중의 염원을 담을 세력, 나는 그 세력으로 그동안 비주류였던 과학기술자들을 꼽는다. 그들이 이제 정치권으로 유입되고, 진보와 보수, 좌와 우 모두 낡아빠져버린 정치권을 세탁할 시기가 됐다.
야권에서 세대교체 이야기가 등장한다고 한다. 단순히 생물학적 나이를 갈아치우는게 세대교체가 아니다. 386은 나이가 어려서가 아니라, 그들이 독재정권과의 투쟁에서 얻어낸 새로움이라는 가치로 세대교체를 이루어낸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에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김광진 의원 같은 보물이 그 곳에 있고, 말이 통하는 소수의 정치인들이 존재함을 안다. 그렇다면 이번 참변을 계기로 단순한 세대교체를 넘어, 민주진보세력의 재건을 철저히 고민해보기 바란다. 나는 그 중심에 과학기술자들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들이 새누리당이라는 거대하고 무서운 세력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은 묵묵히 한국을 살려온 과학기술자 그룹 이외의 곳에서 얻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들마저 새누리당이 껴앉았을 때, 아마도 한국은 일본과 같은 우익장기집권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