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사가 길리스피의 책 <객관성의 칼날>을 집어 들었다. 길리스피의 논문들을 영어로 읽어왔을 뿐인데, 한글로 읽는 문장은 또 색다르다. 1990년의 서문엔 특히 ‘과학과 사회’에 대한 길리스피의 관점이 녹아 있어 도움이 된다. 서문의 몇 구절을 옮겨둔다.
먼저 아래의 구절은 좌우 모두에게서 외면받는 한국의 과학의 형편을 생각했을 때 진지하게 탐구해볼 주제를 던진다.
이 책을 논평한 사람들은, 이 책에서 시사점이 가장 많은 부분은 과학과 계몽사상의 관계를 다룬 5장이라고 본다. 문화에서 과학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합리주의적 입장과 이에 대한 낭만주의적인 방식의 반동 사이의 긴장은 다시 반복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1970년대 문화적 급진주의자들은((1960년대 미국의 신좌파운동(New left movement)를 의미한다)) 과학을 무지와 미신으로부터의 해방으로 보는 대신 인간성에 대한 폭력이요 서구 문명의 질병이라고 여기는 경향을 갖고 있었는데, 이러한 경향을 통해 낭만주의적인 반응의 심리적 실체가 확인되었다. 마르크스주의는 늘 자신이 과학을 역사 발전의 법칙으로 확장시킨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신좌파가 엄밀 과학 -물론 여기에는 박물학, 생태학, 또는 유기체론적 생물학은 해당되지 않는데- 에 대한 문화적 적대의식과 정치적 적대의식을 동시에 드러낸 사정은 궁금증을 자아내는 일이다. 이러한 면에서 신좌파는 바이마르 정부 시절의 독일 극우파와 똑같은 위치에 있는 것이다.((미국 신좌파의 과학기술에 대한 시각을 다룬 국내 논문은 단 한편 뿐이다. 이주영. (1998). 신좌파의 기술에 대한 태도. 미국사연구, 7, 269–276. Retrieved from http://www.dbpia.co.kr/Article/954661))
극좌파와 극우파가 정서적인 접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 같은 사례가 바로 지금 막 말한 역설을 이루고 있다. 왜냐 하면 결국 과학의 정치적 역할을 일깨운 것은 이들의 분노였기 때문이다. 과학이란 역사적으로 진보주의를 포함하는 것이며 보수주의와 전통에 반대되는 것이라는 마르크스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의 의식은 폭넓게 공유되고 있다. 과학에 대한 이러한 관념이 사회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과학은 자연법칙이 가진 정치적인 함의의 토대도 아니며, 전문 과학자 집단의 정치적 행동을 위한 토대도 아니다. 과학자들의 사적인 견해가 어떠하든 간에, 통상적으로 그들의 공적인 역할은 과학을 위하여 국가의 권위와 자원을 동원하는 한편으로 정부 당국에 권력을 부여해주는 데 있었다. 근대 사회에서 과학자들과 국가는 하나의 당파에 속해 있다기보다 파트너 관계에 있었던 것이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점은, 과학이 본래 어떠한 목적을 선택하는가와는 무관하며 단지 그 방법에만 관련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이다.
아래의 구절들은 과학사학자들의 관심사가 과학 내부의 이론에서 과학과 제도의 관계를 다루는 분야로 옮겨가면서, 과학이 사회와 어떤 상호작용을 이루어 왔는가에 대한 길리스피 본인의 관점을 드러내고 있다.
과학사학자들의 관심사는 과학의 사상과 개념들을 다루는 내적 과학사로부터 과학을 그 자신의 제도 속에서, 그리고 사회와의 연관 속에서 다루는 외적 과학사로 많이 옮겨갔다. 내가 이 책을 쓸 무렵에는 제도에 대하여 몰두하는 것은 구식이고 유행에 뒤진 것으로 여겨졌었다. 재도에 대한 관심이 존중될만한 것이자 심지어 중심적인 것으로 등장한 것은 주로, 토마스 쿤의 <과학 혁명의 구조>의 영향에 의한 것이었다…. 내 생각으로는 사회정치적 환원론이라고 할만한 이런 주장들로 나아가는 것은 지나친 일이다. 과학이 더이상 순수한 지적 추구가 아니라는 점 -과학이 순수하게 지적으로 추구된 적이 있었다는 말은 신화일 뿐이다- 을 부인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또한 과학의 영향을 교육, 경제, 정치, 외교, 전쟁 등에 기여한 면에만 한정시켜 보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과학의 역할은 전문적인 관심사와 공적인 관심사의 교차점 위에서, 또는 내적인 요소와 외적인 요소의 교차점 위에서 연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과학 지시의 골간이 정치나 사회 구조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과학이 얼마간 정치적/사회적 산물로서의 모습을 띠는 것은 과학의 본성에 본질적인 측면이라기보다는 부차적인 측면이다.((길리스피는 자신의 저서 “Gillispie, C. C. (2004). Science and polity in France: the end of the old regime. Princeton University Press.”를 추천하고 있다.))
나는 이 책에서 명시적으로 논의되지는 않은 두 가지 반대 근거를 언급하고자 한다. 과학은 의심할 나위 없이 어떤 사회적 환경 속에 존재하는 개개인들과 집단들에 의해 산출되지만, 역사적 과정 속에서 결국 개인의 인성과 사회적 환경을 초월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첫째는 과학이 그것을 창조한 사람과 어떠한 관계를 갖고 있는가와 관련된 것이다. <햄릿>, 모나리자, B 단조 미사곡 등은 셰익스피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 그리고 바흐가 없었더라면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임은 명백하다. 하지만 과학은 이와 다른데, 가장 위대한 과학조차도 그러하다. 뉴턴이 조산아로 태어났을 때 주위에서 예측했던 것처럼 곧 죽었다 할지라도, 행성들은 여전히 거리에 제곱 반비례하는 만유인력의 지배를 받으면서 운동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쓰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다른 누군가가 그때쯤 혹은 조금 뒤에 고전 역학의 주요 내용들을 모두 저술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펼 수 있다. 이것은 근대 과학의 거의 모든 위대한 업적들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중요한 법칙들이건 이보다 덜 중요한 현상이나 효과들이건 간에 거의 모든 발견들이 거의 동시에 여러 명에 의해 이뤄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근거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동시 발견은 사회적 힘들이 한 곳으로 수렴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것들이 어딘가로 수렴되는 것은 틀림없다. 게다가, 하나의 과학이 만들어질 때에는 그것의 창조자의 낙인 -라부아지에의 명석함, 맥스웰의 재기 넘치는 상상력, 갈릴레오의 당당한 연극적 감각 등- 을 받게 되지만, 최초의 정식화에 포함된 개인적인 요소는 일단 이것이 그 창조자를 떠난 뒤에는 일상적인 과학 활동에 아무런 차이를 만들어 내지 않는다. 과학의 개인적 속성은 매우 관심을 자극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과학적 관심이 아니라 인간적인 관심인 것이다. 과학적 발견은 검증가능한 것이어야 하며 자격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작동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이 과학이 되려면 말이다.
아래의 인용문은 한국과학사니 중국과학사니 하는 헛짓거리들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려해보라는 충고로 읽자. 한국이나 중국에서 근대과학은 탄생하지 않았다.
발견의 문화적 맥락 또한 마찬가지이다. 나는 15세기 또는 16세기부터 매우 최근에 이르기까지, 과학은 세상의 그 모든 문명들 가운데 오로지 유럽 문명만의 창조물이었다고 생각한다. 기술과 더불어 과학은 다른 문명권이 도입하고자 한 요소이다. 그들은 결코 우리의 정치/사회 체제나 종교, 철학, 예술이나 문자를 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본을 필두로 그들은 과학을 원했으며, 우리 서구 문명을 비롯한 많은 종류의 구속으로부터 그들을 자유롭게 만들기 위해 우리만큼이나 과학을 잘 습득하고 이용할 수 있다. 즉 과학은 개개인에 의해 문화 속에서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몰개인적이며 보편적인 것이다. 나는 과학 이외에는 이런 표현이 걸맞은 것을 아무것도 생각해낼 수 없다. 과학이란 객관적이며 개인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지식체계인지만 그들 자신에 관해서가 아니라 세계에 관하여 만들어지는 지식체계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고찰일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서문의 이 마지막 구절은 길리스피와 같은 길을 걷는 인문학자들에게 주는 격려일 것이다.
우리 자신에 대하여 아는 데에는 또 다른 방식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