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과학계는 마치 연예계처럼 유행을 탄다. 언제나 그렇듯이 한국은 이런 유행에 극도로 민감한데, 한국에서 연구개발비가 지원되는 분야를 잘 관찰해보면, 연구비 집행을 주도하는 정치인과 관료 그리고 정치과학자들이 얼마나 미국에서 유행하는 과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알 수 있다. 2000년에 대학원에 입학한 나조차도, 벌써 몇 번의 유행이 생물학계를 스쳐지나가는 모습을 목도해왔다. 대학원 초기엔 모두가 인간유전체계획 덕분에 생물정보학을 해야 한다고 말했고, 시스템생물학도 덩달아 유행을 했었다. 2000년대 중반엔 마이크로RNA (microRNA, miR, 미르)1 가 유행을 했었고, 국민 모두가 기억하듯 황우석이 주도했던 줄기세포 연구도 대단한 유행이었다. 2010년이 넘어가면서 오바마 정부가 주도한 브레인 이니셔티브 덕분에 뇌과학 붐이 일더니, 2010년대 후반부터는 또다시 미국이 주도한 마이크로바이옴, 즉 장내미생물 연구가 생물학 전반을 강타했다.
오늘 공동연구자 박수제 교수가2 그룹방에 네이처 미생물학지에 실린 종설논문 한 편을 링크하면서, 이 논문 내용이 너무 좋다고 해서 잠시 살펴봤는데, 휴먼 마이크로바이옴 연구의 유행과 함께 창조된 신화와 오해에 대해 차분히 잘 설명한 글이다.
인공지능으로 번역한 초록과 서문은 이렇다.
간만에 용기 있는 저자들이 나타난 것 같아 즐거운 마음이다. 안 그래도 장내미생물 연구가 무슨 만병통치약 개발이라도 할 것처럼 설레발 치는 인간들이 많이 보였는데, 좀 경각심을 일으켰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한국에서 그런게 통할리 없다. 원래 그렇다.
내 스승 유넝 잔 Yuh Nung Jan 실험실 웹사이트 표지엔, ‘유행하는 과학을 하지 말라 Don’t do fashionable science’라는 그의 스승 막스 델브뤽의 말이 쓰여 있었다. 그 말을 지키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다. 과학엔 혁명이 필요하다. 제도적 혁명이.
- 10월 초에 내 책 <꿈의 분자 RNA>가 나온다. 이 당시 마이크로RNA 연구는 가히 엄청난 유행이었다. ↩︎
- 박수제 교수와 최근에 꿀벌의 장내미생물 분석에 대한 논문 한 편을 출판했으니, 나도 전문가가 아니라고는 말하기 어려울 듯 하다. Kim, M., Kim, W. J., & Park, S. J. (2023). Analyzing Gut Microbial Community in Varroa destructor-Infested Western Honeybee (Apis mellifera). Journal of Microbiology and Biotechnology, 33(11), 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