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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있는 삶

하루 종일 초파리의 내장을 조절하는 뉴런을 들여다보고 있다. 논문에 집중한 후부터, 오롯이 연구에 집중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되었다. 가족을 제외하고 나면, 내 두뇌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는 생각은 연구에 관한 것 뿐이다. 몇 년 이후부턴 연구비도 걱정해야겠지만, 지금 이 삶이 나에겐 꽤나 소중하고 편안하다.

언젠가 강유원 선생의 인문학 강연에서, 그는 사람 만나는 일을 줄이고, 소비의 대부분을 책 사는데 집중하고, 삶을 간단히 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했다. 그의 인문학 공부를 존중하는 이유는, 그가 인문학 공부를 대하는 그 삶의 태도 때문인지 모른다.

며칠전 페이스북에서 만난 존경하는 역사학자 강명관 선생이 2023년의 마지막 날, 이런 글을 올렸다. 그 글을 읽으며 내 심장이 공명하는걸 느꼈다. 당분간 이런 삶을 살고 싶다.

그나저나 최근 엉뚱한 실험들을 좀 하다가, 재미있는 결과들을 꽤 많이 얻었다. 이걸 다 정리하고 죽을 수 있을지 고민될 정도의 프로젝트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빨리 초파리 쪽을 맞길 제자를 길러내지 않으면 평생을 꿀벌은 만져보지도 못하고 초파리 냄새만 맞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하고 있는 학생 몇 명이 생각난다. 그들에게 곧 맡겨도 되리라.

오래전 잠깐 이야기를 나눠본 은퇴한 과학자가 티비에 나와 연구개발비 삭감에 대해 분노를 표한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아무런 이해관계가 남아 있지 않은 그에겐 비판 역시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함께 싸우는 일은, 그런 방송 출연만으로 얻어지는 열매가 아니다. 한국에 그런 과학기술인이 남아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 일도 이젠 그닥 나에겐 큰 관심사가 아니다. 나에겐 아직 정리해야 할 12편의 논문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노량은 언제쯤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