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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버트 페리몬 Nobert Perrimon과 해외학회

초파리 행동유전학을 시작하고 한참이 지나서도 그의 이름을 온전히 기억하지 못한건, 그의 이름이 동료들과의 토론에 자주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동년배로 꽤나 유명한 배리 딕슨 Barry Dickson이나 휴고 벨렌 Hugo Bellen1 같은 인물들에 비해 그의 이름은 저널클럽이나 랩미팅 어디에서도 잘 등장하지 않았다.

학부 동기 중 한 명이 그의 실험실에서 포닥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꽤나 유명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했었는데, 훗날 <플라이룸>을 집필하면서 자넬리아연구소의 수장이었던 게리 루빈 Gary Rubin에 대해 조사하면서 페리몬이 1993년 초파리 유전학을 르네상스로 이끌었던 GAL4/UAS 시스템을 만들었다는걸 알게 됐다. 이 논문은 심지어 네이처나 사이언스도 아닌 Development에 실렸다.

게리 루빈은 초파리 유전체해독을 이끌었고 초파리 돌연변이 라인을 만들었고, 하워드의학연구소가 자넬리아를 만들때 초대 소장으로 부임하면서, 초파리를 미국의 브레인이니셔티브의 중심모델생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그가 스스로를 ‘도구 장인 tool-maker’라고 불렀다는 점은2, 현대생물학이 얼마나 기술과 도구의 발전에 의존적인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예가 될 것이다.

노버트 페리몬은 프랑스에서 태어났고, 모든 교육을 프랑스에서 받았다. 27세에 하버드 의대 교수가 된 이후엔 전혀 자리를 옮기지 않고 하버드에서만 초파리 유전학자로 살았다. GAL4/UAS 외에도 그가 초파리 유전학의 발전에 기여한 바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가 만든 FLP-FRT 는 모자이크 클론을 만들 수 있는 유전체 편집 도구였고, 초파리의 모든 유전자의 RNAi 라인을 효율적으로 개량해서 현재 모든 초파리 유전학자들이 손쉽게 유전자를 넉다운 할 수 있게 만든 것도 그의 공로다. 게다가 그의 주도 하에 초파리 CRISPR/Cas9 라인들이 만들어졌으며, 초파리는 이제 모든 유전자에 대한 KO와 KI이 손쉽게 만들어 질 수 있는 모델생물로 재탄생했다. 이 뿐만 아니라 그는 초파리 내장에 줄기세포가 존재한다는 점을 이용해 초파리 내장을 훌륭한 인간 내장 연구의 유전학적 모델로 만들어냈다.

사실 내가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노버트 페리몬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내가 그를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노버트 페리몬이 학회 참석과 해외 세미나 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초청받아 학회에 가더라도 발표만 하고 조용히 도망을 간다고 했다. 그러니 미국에 7년이나 있었던 내가 그를 한번도 만나지 못한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그를 초파리 유전학계의 은둔 마법사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코비드19로 모든 국제학회가 2년 넘게 모두 취소되었던 역사적 실험이 있었고, 그 결과는 논문 수의 증가로 나타났다. 국제협력연구가 오히려 코로나 이후 늘었다는 보고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도대체 국제학회의 기능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2023년 정말 오랜만에 호주 아시아태평양 초파리학회도 다녀왔고, 베이징과 난징에서 소규모와 대규모 초파리 학회도 모두 경험해봤지만, 정말 도움이 된 학회는 베이징에서 열렸던 50여명 내외의 전공분야 소규모 학회였다. 호주 학회는 정말 실망스러웠고 다시는 가지 않기로 결심할 정도였다. 학위과정 시절 학회에서 가장 도움을 받았던 것도 콜드스프링학회에서 열리던 전공분야의 소규모 학회였다. 교수 시절 딱 한번 참여했던 SfN이라는 수만명이 모이는 학회는 정말 왜 여는지 모를 정도로 돈낭비로 보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한국 과학자들이 얼마나 많은 연구비를 국제학회 참석과 소위 회의비로 불리는 회식비로 낭비하고 있는지를 말하기 위해서다. 소셜미디어를 가끔 들어가보면, 한국 과학자들은 해외학회참석이 무슨 연구의 주목적인 것처럼 자랑질을 하고 있고, 도대체 왜 하는지 모를 이상한 컨퍼런스와 행사들이 과학계를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총 역시 별로 필요없는 포럼을 거의 매주 열고, 거기에 예산을 퍼붇고 있다. 어쩌면 한국의 연구문화는 본질인 연구보다 허례허식에 촛점이 맞춰진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과학연구의 내용은 사라지고 깡통 같은 포장만 남았다. 심지어 잘 나간다는 과학자들도 이런 문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올해 학회를 다니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한건, 꼭 필요한 발표와 학생들 훈련 목적이 아니라면 가급적 학회 참석을 하지 말자는 거였다. 연구는 실험실에서 하는 것이고, 21세기 인터넷과 인공지능의 시대에 굳이 화려한 휴양지에서 연구자들끼리 만나지 않아도 공동연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널렸다. 다들 반성했으면 좋겠다. 과학연구비는 모두 국민세금이다.

  1. 이 둘이 호주 APDNC6에서 함께 있는걸 2023년에 관찰했는데, 서로 이야기를 나누거나 웃는것도 보지 못했다. 초파리의 성적 이형성 유전자인 fruitless를 발견하고 VDRC를 만들어 유럽의 행동유전학에 꽤 큰 공헌을 했던 배리 딕슨이 호주 사람이란것도 최근에 알았지만, 인간질병모델로서의 초파리 연구를 궤도에 올린 휴고가 베리 딕슨과 교류가 없다는 점도 특이해보였다. ↩︎
  2. Rubin G, Dhillon P. Building genetic tools in Drosophila research: an interview with Gerald Rubin. Dis Model Mech. 2016 Apr;9(4):361-4. doi: 10.1242/dmm.025080. PMID: 27053132; PMCID: PMC4852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