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과정 학생이 업로드한 프로젝트 데이터와 논문그림을 살피며 새롭게 만들다 문득 나는 단 한번도 교수에게 이런 방식의 지도를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석박사과정 시절, 논문을 위한 실험과 데이터 분석, 그리고 논문그림 만들기 모두 나 혼자 했고, 교수의 역할은 내가 쓴 영어논문 초고를 수정하는 정도였다. 그마저도 영어교정을 보내지 않으면 투고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니까, 내 지도교수는 내 논문의 raw data는 물론이거니와, 데이터 분석과정에 대해서도 아는게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Retraction Watch (리트랙션와치,RW)는 학술지에서 철회되는 논문들을 소개하고, 연구부정과 부실논문 및 해적학술지 등의 문제를 다루는 플랫폼이자 언론이다. 최근에서야 RW의 소식을 이메일로 구독하고 있는데, 읽는 재미가 꽤나 쏠쏠하다. RW를 보면 잘 알 수 있지만, 소위 네이처, 사이언스 등에 출판된 논문들 중에 상당수가 철회된다. 최근엔 Elsvier의 한 학술지에서 수백편의 논문이 철회되는 사건도 있었다. 우리가 논문 출판에만 관심을 기울여서 그렇지, 사실 논문철회야말로 정부와 연구기관이 더 신경을 써야 하는 문제다. 국민세금을 들여 연구한 결과가 논문인데, 논문철회는 국민세금의 낭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과 같은 국가에서는 논문철회를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동료 교수끼리도 그러려니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의미에서 한국은 연구선진국이라 말하기 어렵다. 논문철회는 과학연구에서 일상적인 일이며,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정부와 연구기관들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놓아야 한다.
암생물학이나 줄기세포 혹은 인간질병 연구분야에서 특히 논문철회가 많이 발생한다. 연구비가 몰리고 경쟁이 심한 분야일 수록, 논문데이터를 조작하려는 연구자의 욕망도 커지게 마련이다. 요즘엔 미국에서 특히 논문철회가 잦은데, 대부분이 해당분야에서 꽤나 유명한 과학자들이다. 도대체 왜 이런 저명한 과학자의 논문이 철회될까. 나는 그 답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유명해지고 실험실이 커질 수록, 과학자가 자신이 교신저자로 등재된 논문의 데이터를 꼼꼼하게 챙기지 못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그러다보니 논문의 대부분을 포닥이나 박사과정 학생에게 맡기게 될테고, 이들이 마음 먹고 데이터를 조작하고 교수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게다가 그 논문이 네이처 쯤에 출판이 된다면, 언젠가 이 논문은 반드시 철회될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게 재현가능성을 본질로 하는 과학연구가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등의 질적 연구분야와 본질적으로 다른 부분이다.
교수가 어디까지 알아야 할까. 자신이 교신저자 즉, 해당 논문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교수라면, 논문에 쓰인 데이터의 바닥까지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수는 설사 학생이 논문 그림을 완벽하게 만들어 오더라도, 원본 데이터와 논문그림을 대조하고 그 분석을 재확인할 의무가 있다.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한국 교수들이 이런 작업을 수행하지 않는다. 박사후연구원이라면 교수가 좀 더 유연한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학생은 아니다. 교수는 대부분의 시간을 학생들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논문을 작성하는 일에 써야만 한다. 이런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논문철회는 일상을 넘어 만연한 일이 될지 모른다.
그나저나 박사 3년차 정도 되면 이제 논문그림은 좀 제대로 만들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다시 침착하게 일에 집중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