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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귀환과 미국 과학기술의 미래

트럼프가 돌아왔다. 그의 재당선을 예측하는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해리스에겐 아무런 서사도 없었고, 멀리서 듣는 미국 소식들 중에 민주당에게 유리한 건 단 하나도 없었다. 먹고 사는 일이 각박해지면, 평범한 사람들은 매우 합리적으로 변화를 선택한다. 그 변화가 트럼프나 나치라 해도, 현재를 바꾸는 일이라면 주저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게 합리적인 결정이다. 트럼프의 당선은 예측 가능한 일이었다.

트럼프 당선 직후, 네이처지에 실린 기사는 미국 과학계가 얼마나 트럼프의 당선에 좌절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2016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프레이저 스토다트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지난 6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가 제47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 이렇게 말했다. 앞서 미국 노벨상 수상자 82명은 선거 직전에 발표한 공동서한을 통해 “트럼프의 당선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늦추며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을 방해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폴란드 크라쿠프 야기엘로니안대의 그라지나 야시엔스카 교수(장수학)는 “낙관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세계 과학과 공중보건에 긍정적인 측면을 찾기가 어렵다”며 “우리는 새로운 세상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

대학원 시절인 2000년대 중반은 공화당의 부시 행정부 시절이었고, 당시 한국을 방문하던 미국인 과학자들 대부분이 부시 행정부를 욕하는 슬라이드를 보여주거나 실제로 학회발표에서 미국 과학의 위기를 이야기하곤 했다. 미국은 언젠가부터 공화당 정부는 연구개발 예산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민주당 정부는 확대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차이가 확실해졌다. 오바마 정부에서 시작된 브레인 이니셔티브나 장내미생물 연구는 전세계적인 과학의 방향을 바꾸기도 했다. 미국의 과학기술정책 변화는, 미국 안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아직까지 미국의 과학기술은 전세계 과학기술의 이정표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별 일이야 있겠느냐고 생각하는 과학자들이 많은 것 같은데, 다시 돌아온 트럼프는 정치 초짜였던 예전과는 다르다. 이미 일런 머스크가 선두에서 미국을 마치 테슬라나 X처럼 경영하리라 천명하고 있고, 트럼프는 기후위기나 백신개발 등의 공공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지원을 대폭 줄여버릴 게 거의 확실하다. 그 상징적인 의미로 트럼프는 대선 중간에 자신을 지지하고 사퇴한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를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했다. 그는 백신음모론자임을 노골적으로 내세우는걸 넘어, 코로나19 사태에서 백신을 반대하는 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미국 보건의료분야와 예방의학 분야의 예산은 감소할 것이 분명해졌다.

로버트 케네디는 환경전문 변호사였다고 한다. 생태주의자인 것이다. 코로나 당시 내가 비판했던 프랑스의 작가 목수정씨 또한 비슷한 류의 생태주의자다. 생태주의에는 반과학의 씨앗이 숨어 있다. 지난 국회에서 민주당 비례로 당선되었던 양이원영 또한 탈핵을 주장하는 생태주의자이면서 반과학주의자였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창조론과의 전쟁으로 유명한 나라인데다, 최근엔 백신음모론은 물론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인간들 때문에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 국가다. 그런 나라가 과학기술의 세계1위라는 사실은 정말 과학이라는 활동에 대해 많은걸 알려준다. 적어도 미국은 과학이 삶의 양식으로 자리잡은 나라는 아니다.

<꿈의 분자 RNA> 에는 볼츠만을 인용한 장이 있다. 미국 과학계는 아마도 4년의 긴 저항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과학자가 자신의 연구실에 틀어박혀 연구만 하는 세상이 좋은 세상임엔 틀림 없다. 하지만 그런 세상이 위협받을때조차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과학자로 가득하다면, 그런 세상에서 과학은 소련의 리센코주의와 같이 타락하고 말 것이다. 미국 과학자들의 건투를 빈다. 미국은 스티븐 제이 굴드와 르원틴 등의 민중을 위한 과학의 전통을 가진 멋진 나라였다. 그 전통이 아직 살아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