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론을
이야기하긴 싫지만, 만일 인류사에 어떤 방향성이 그것도 단선적인 그런 형태가 아니라, 덤불처럼 복잡하게 존재해서 그것을 방향성
혹은 지침서 정도로 표현한다 할지라도 존재한다면, 인류사에서 곧 영웅은 사라져야만 한다. 영웅주의란 전체적인 시스템이 고르게
발전하지 못하고 불균형적으로 발전했을 때 등장하는 비정상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혹은 우연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사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시스템주의적 다양성’이라고 말하겠다. 그에겐 그 어떤 주의도 잘 어울리지 않는,
하지만 이면엔 또 이념 못지 않은 고집이 아로새겨진 어떤 묘한 태도가 있었다. 그의 책들 중 <풀하우스>는 그의
말처럼, 어느날 갑자기 떠오른 깨달음을 옮겨적은 것이다. 굴드가 “내가 가장 아끼는 아들”이라고 표현한 이 책의 서문은 왜
굴드가 ‘시스템주의적 다양성’이라는 말로 표현되는지를 내게 보여준 구절이다.
중략. 이 세
갈래 뿌리는 모두, 지식인들이 가장 열망하는 <유레카> 도는 <아하> 하는 순간, 그러니까 사물을 보는
눈이 완전히 뒤바뀌고, 이전까지 애매모호하고 불완전하고 체계화되지 못했던 것들이 갑자기 명확해지고 조리가 맞아떨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의 깨달음에서 나왔다(이 깨달음은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을 말하는 것으로, 결코 교만에 가득 차서 그것을 과신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유레카의 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오직 그 사람의 눈에 끼여 있던 안개와 개인적인 선입견 뿐이다. 세상사람 모두가 이미
그가 막 발견한 사실을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유레카 중에는 정말 새로운 것도 있다). 이로 인해 나는 진화란
<위나 아래로 움직여 가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의 변이 정도가 변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종래의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굴드가 도킨스보다 먼저 그리고 또 줄기차게 복잡계 생물학자들과 교분을 트고, 또 진화론에서 발생학의 중요성을 일찌기 간파한 이유도 시스템적, 즉 전체론적 관점을 유레카한 일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이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풀하우스>의 절반은 미국 야구에서 사라진 4할타자에 관한 이야기다. 이것만 알면 이 책의 절반을 읽은 셈이 되어버려서 일종의 스포일러가 되는데, 정답은 야구선수들 전체의 시스템이 전반적으로 발전하면서 4할타자가 등장할 수 없는 구조가 되었다는 것이다. 굴드의 예언이 옳다면 이제 4할 타자는 등장할 가능성이 거의 없거나 아주 오랜 후에야 가끔 한 명씩 드문드문 등장할 것이다. 굴드는 인간의 등장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일종의 우연으로 본다. 지구상에 인간과 같은 종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것이다. 여기서 굴드의 또다른 사상, <우연>이 <시스템주의적 다양성>과 만나게 된다.
과학의 역사도 4할타자가 사라지는 구조로 발전해 온 것 같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다시 등장하려면 과학이 갑자기 어느날 퇴보해 버리거나, 어느날 갑자기 외계인과 지구인의 교잡종이 출현하지 않는 이상 매우 힘들 듯 하다. 어느 한 사람이 과학이라는 전체 시스템을 뒤바꾸어 버리기엔 현대의 과학은 너무나 거대하고 복잡한 생명체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생태적 적소, 즉 니치가 꽉 차버린 상태에선 새로운 종의 출현이 상대적으로 어렵듯이 아인슈타인의 출현도 어렵다. 과학의 역사와 생물종의 역사 모두에서 언제나 영웅은 사라지는 쪽으로 방향지워졌다. 다양성이 확보되고 전체적인 시스템이 동반 상승하는 구조에서 그것은 필연이다.
마라톤이나 100미터 단거리도 그런 발전구도 속에 놓여 있다. 기록 단축은 점점 더 요원해 지고 영웅은 스스로의 힘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적 발로에 의해 등장하게 된다. 박태환도 그러한 영웅주의의 산물이다. 황우석도 박세리도 김연아도 모두 영웅일 수 있었던 것은, 진정 그들이 수영을, 과학을, 골프를, 피겨스케이팅을 한단계 도약시킨 데서 찾아진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한국인의 불모지였던 곳에서 활약했다는, 즉 그들이 세계에서는 4할타자가 아닐지언정 한국에서는 4할타자였다는 데에서 찾아진 것이다. 그것이 꼭 나쁜 태도만은 아닐 것이다. 이들을 소영웅화함으로서 후속 세대들의 발전을 도모할 명분따위가 있을 것이다.
여전히 많은 부분이 불모지인 대한민국이 망하지 않는다면, 박태환과 같은 소영웅들은 지속적으로 등장할 것이다. 언젠가는 100미터 단거리에서, 장대높이뛰기에서, 카약과 요트에서도 영웅이 등장할 지 모른다. 그것이 전체적인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각 종이 채워가는 생태적소 속에 피어나는 다양성의 한 표현이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동메달이 감격이지는 않듯이, 언젠간 그런 영웅들의 등장도 더 이상 감격이지 않은 시대가 올 것이다.
나는 이제 한국인의 불모지라는 생태적소를 점유한 소영웅들보다, 세계적 한계를 혁파한 진정한 영웅을 보고 싶다. 아마도 그러한 영웅이 등장하는 날에는 대한민국이 스스로를 선진국이라고 불러도 부끄럽지 않을 그러한 나라가 되있을 게다.
추신: 남연희 양의 은메달이 4할타자인 것도 이제 대충 이해가 가실 것이다.
아무리 세계급으로 비범해도 영웅이 되려면 인물이 받쳐 줘야 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을 듯 합니다-_-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저한테는 좀 어려웠지만
공감가는 내용이네요.
잘 읽어 봤습니다~ .~ 르네상스 시대에 미켈란젤로나 다빈치 같이 다재다능한 ‘르네상스적 인간’이 이후 시대에는 더이상 나타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치인 듯 합니다.
블로그계에서도 영웅이 하나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예를 들자면 블로그 광고수입만으로도 월수 천만원! 뭐 이런.. 그럴려면 세계의 한 3분의 1은 한국어를 써야할라나요? ^^;
시쳇말로 ‘완전공감’합니다.
이놈의 나라에도 저 영웅들이 사라질, 다시는 나타날 수 없는 토양이 갖춰질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죽기 전엔 오려나…;)
하 나랑 레디컬이란 닉네임을 쓰는 사람이 또 있네요. ㅋ ㅋ 동질감 보다는 아니 어떤 사람이길래? 하는 호기심과 반가움이 앞섭니다.
근데 선생의 글은 정말 넘 현학적입니다. 아이구. 기분 나쁘게는 생각지 마십시오. 개념에 넘 빠져 있던지 아님 도올 김용옥 스타일 인지. 아마 후자는 싫어 하실 것 같은데. 권정생 선생님 이나 이오덕 선생님 글을 추천 합니다. 특히 이오덕 선생님 글을 읽었을때 너무 부끄럽더군요. 선생의 뜻에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선생 같은 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도 하구. 근데 너무 복잡하군요. ㅋㅋ. 내 지식이 일천한 탓도 있겠지요. 글이란 말과 달리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없기에 더욱 쉬이 쓰여져야 하는게 좋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생각의 생각을 듣고 싶네요. 제 블로그에 들러 흔적을 한 번 남겨 주시죠.
영웅이 발생하는 한국적 상황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근데, 야구의 4할타자가 없어지는 것은, 그만큼 투수들이 4할타자를 많이 접할 수록, 거기에 맞추어 기술을 발달시킬 수 있기 때문 아닌가요. 펜싱이나, 레슬링처럼 서로가 기술을 상대에게 거는 종목하고, 수영이나 100m 달리기는 불균형을 없애는 과정이, 크게 보면 같지만, 국부적으로는 좀 다른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어제 자동차회사 다니는 친구를 만났는데, 차를 사는 구매자들도 엔진이나 성능보다는 외관을 중시한다더군요. 웃겨서..
감사합니다. ^^
나타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생각을 좀 바꾸어 보는 거죠.
한국 블로그계가 그리 넓지 않아서, 우선 제도적 장치나 배경이 좀 넓어져야, 영웅도 나오고 뭐가 좀 될텐데 말이죠. 블로그계에서 영웅이 나오기가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 한국은. ㅋ
저도요~~~ ^^
뭐 쉬운글을 쓰는 사람도 있고, 현학적인 글을 쓰는 사람도 있겠지요. 저는 권정생 선생이나 이오덕 선생 같은 시인은 아닌지라 글이 좀 딱딱할겁니다. 글쓰기 연습좀 하겠습니다. 시나 문학만이 상식이라는 편견이 퍼져 있는데, 과학도 좀 공부하시면 제 글이 그닥 어렵지는 않을겁니다.
굴드의 의견에 대한 채찍님과 같은 반박이 미국 야구해설가들에게서 나왔었습니다. 그 반박에 대해서는 이 기회에 <풀하우스>를 사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 지금 책을 미국간다고 또 싸놔서 찾을 수가 없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