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모든 학문이 자연과학이 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이유 중의 하나는, 생리학이 자연과학(끌로드 베르나르에 따르면 추측과학에서 정밀과학으로의 이행)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해나가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분과학문들의 다양한 전통, 그리고 전통의 확립에서 보이는 분과학문마다의 고유성 때문이다(생리학에 ‘생명’이라는 문제가 걸려 있다면, 심리학에는 ‘의식’과 ‘주관성’의 문제가, 사회학에는 ‘가치’의 문제가 개입한다). 생리학의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예를 들어 황상익과 김옥주의 다음과 같은 논문을 아주 개략적으로 참고해볼 수 있다. 황상익, “19 세기 서유럽 생리학의 전문과학화 과정.” 의사학 1, no. 1 (1992). 하지만 이 논문은 정말 간단한 생리학사의 일면만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생리학의 자연과학에서의 위치를 둘러싼 다양한 논쟁사와 당시 분과과학들과 생리학의 관계, 특히 생리학이 분과학문으로 정초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던 정량화의 역사는 이 논문에서 다루어지지 않는다. 실상 생리학에 대한 국내 및 국외 학자들의 관심은 의학과 관련되어 있는 영역에 국한되어 있고, 생물학의 철학 혹은 생물학사라고 알려진 대부분의 저술들은 진화생물학을 다루게 마련이다. 생리학사와 생리학의 철학은 여전히 미개척지인 채로 놓여 있다.
언젠가 왕님과 이야기했던 것이지만, 과학이 탄생한 곳이 아닌 변방에서 과학사를 다룬다고 할때 마주치게 되는 여러 문제들이 있다. 해당 과학자들의 저술들을 직접 들춰 볼수도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된다. 특히 생리학의 경우,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영국을 중심으로(대부분의 분과학문들이 이 3국을 중심으로 발전했지만) 다양한 상호작용의 역사를 보여주는데, 과학사가들의 관심이 집중되지 않은 분야일 수록, 영어로의 번역은 요원한 일이고, 따라서 생물학사를 둘러싼 연구들도 상당히 편중되어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변방의 학자들이 불어와 독어까지 배워가며 과학자들의 원전을 들춰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변방의 학자로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을지 모른다. 자신들의 전통이기에 서구학자들은 보지 못하는 거대한 지도를 그리는 일, 왕님과 그런 작업을 해보자고 다짐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나는 겨우 영어라는 필로로기만을 지닌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그런 지도를 그려보려 하고 있다.
그 지도를 그리는 작업을 벌써 5년이 넘게 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머리 속은 혼란하다. 특히, 내가 현장에서 실험하면서 느낀 그 전통의 모습을 과학사가들이나 과학철학자들의 저술 속에서 온전히 발견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실험실이라는 현장에서 괴리되어 있는 인문학자들의 경험과, 현장과학자의 경험은 충돌하게 될 것이며, 그것을 조율하는 것이야말로 과학학이 해결해야 하는 제1과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어, 고인석의 다음과 같은 논문이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생명과학은 에른스트 마이어라는 박물학 전통의 학자의 눈에 비친 진화생물학을 중심으로한 학문을 뜻한다. 고인석, “생명과학은 물리과학으로 환원되는가?” 범한철학 39 (2005). 영미의 과학철학을 수입하는데 만족하고 있는 국내의 과학학계의 문제가 반복되는 셈이지만, 물리학에 쏠려 있던 과학학자들의 관심이 생물학으로 넘어가던 당시, 대부분의 학자들은 진화생물학을 발판으로 삼았었고, 그 영향이 국내의 연구논문들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게 마련이다. 참 많은 국내의 논문들을 읽어왔던 것 같은데, 생리학은 의사학 연구자들의 손에 방치되어 있었고, 분자생물학은 그저 환원주의를 언급할 때 사려깊지 못한 관점으로 악마처럼 묘사되기 마련이었다. 국내의 사정이 이렇다고 해서 외국의 사정이 더 나아보이는 것도 아니다. 현장의 분자생물학자들이 고민하는 것들, 또 그 고민을 철학자들이 수용해서 체계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외국의 논문들도 그다지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사정이 이렇기 때문에 실은 내가 지도를 그리게 될지 아닐지도 장담하지 못하겠다. 게다가 그런 작업을 할 만큼 나에게 여유시간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본업이 따로 있는데 이런 작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도 힘든 노릇이다. 그저 취미처럼 문헌들을 들춰보면서도 스스로에게 한숨을 쉴 때가 한 두번이 아니고, 아마도 당분간은 그런 취미조차 쉽게 스스로에게 허용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습관이 어디 가기는 하겠느냐만은. 아래 글도 그닥 읽을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사실 내놓기도 좀 부끄러운 정리에 불과한 것이기도 하고.
베르나르 대 루이
지난 번에 생리학에서 측정량의 역사에 대한 간단한 지도를 그려봤는데, 실은 그것보다 더욱 복잡한 이야기들이 산재해 있다. 2010/12/15 – [래디컬(Radical) 바이올로지] – 생리학의 정량화 역사 예를 들어, 윗 글 속에는 생리학을 정밀과학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던,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리학만을 위한 철학을 시작했던 끌로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 1813-1878)의 이야기가 없다. 끌로드 베르나르에 관해서는 블로그 여기저기서 자주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절판된 책이지만 번역상태는 꽤 좋은 그의 책 끌로드 베르나르, 유석진 역, “실험의학방법론.” 대광문화사 (1997). 을 참고하면 될 듯하다. 예전에 김영건 선생께 썼던 글은 주로 베르나르가 철학을 거부하게 된 배경을 간략하게 다루는데 인문학 하시는 분들은 한번 보면 괜찮을 듯 하다. 2009/08/07 – [래디컬(Radical) 바이올로지] – 끌로드 베르나르의 철학무용론
베르나르는 실험의학 혹은 실험생리학을 독립적인 분과학문으로 만들기 위해 투쟁한 인물이고, 흔히 이 과정에서 그가 철학, 역사학, 그리고 통계학을 거부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이렇게 단순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다. 철학, 특히 목적론에 관해서라면 베르나르와 칸트를 비교한 롤-핸슨의 다음 논문을 참고하면 된다. Roll-Hansen, N, “Critical teleology: Immanuel Kant and Claude Bernard on the limitations of experimental biology.” Journal of the history of biology 9, no. 1 (January 1976): 59-91. 베르나르에 대한 내 입장은 굿필드와 유사한데, 그의 짧은 글을 읽고 나면 대충 베르나르의 입장이 정리될 것 같다. Goodfield, June, and L.G. Wilson, “The growth of scientific physiology.” Isis 55, no. 3 (1964): 349–351.
베르나르의 입으로 통계학에 대한 그의 입장을 들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실험의학방법론>에서 몇 구절을 옮겨 적어본다. 대체적으로 생리학을 추측과학에서 정밀과학으로 이행시키기 위한 과정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베르나르는 가차 없이 쳐내는 쪽이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아마 통계적 기법에 대한 경제학에서의 거부를 보면(콜맨도 이 논문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기술하고 있고) 생리학에서 베르나르가 취한 입장을 비교해볼 여지가 생길지도 모르겠다. Menard, C., “Three Forms of Resistance to Statistics: Say, Cournot, Walras.” History of Political Economy 12, no. 4 (December 1980): 524-541 .
즉, 실험의 조건이 충분히 확정되어 있으면, 이미 통계 같은 것을 낼 필요는 없다…또 여기서 알고 있어야 할 일은, 우리들이 통계를 내는 것은,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경우에 한한다는 것이다. 170
따라서 통계학은 추측과학을 육성하는 데 불과하다. 적극적인 실험과학, 즉 일정한 법칙에 따라서 현상을 지배하는 과학을 결코 만들어내지 않을 것이다. 통계학으로써는 어느 주어진 경우에, 다소의 어느 가망성으로써 억측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결코 확실한 것은 얻을 수 없다. 절대적인 결정은 얻을 수 없다. 172
통계는 확실히 병자의 예후에 대해 의사를 지도할 수가 있다. 그 점에서는 소용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나도 의학에서 통계를 사용하는 것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그 이상 나아가 탐구하려 하지 않는 것을, 또 통계학을 가지고 의학의 기초로 삼으려고 믿고 있는 것을 비난하는 것이다. 172
생리학의 정량화 역사에서 베르나르와 반대되는 지점에 루이(Pierre Charles Alexandre Louis, 1787-1872)라는 아주 긴 이름의 사나이가 놓여 있다. 둘 사이의 논쟁이나 갈등관계에 대해서는 따로 조사를 해보지 않았는데, 생리학을 둘러싼 견해차 이외에도 대학이라는 제도 속으로 생리학이 편입되어 과는 과정에서 갈등이 없었을 것 같지는 않다. 루이는 실험의학의 수량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또 받아들인 인물이다. 반면 베르나르는 수량화보다는 정교한 실험이 생리학을 더욱 정밀한 학문으로 만든다고 여겼다. 여기서 모든 과학의 모재료가 되는 ‘재생산 가능한 측정량’ 자체를 둘러싼 복잡한 철학적 문제가 등장한다. ‘양화(Quantification)’와 ‘재생산 가능성(Reproducibility)’는 해당 학문이 놓인 맥락에 따라 반목할 수도 있다. 생리학의 역사가 그 갈등을 잘 보여준다. 여하튼 루이는 라플라스의 전통을 따랐고, 의학을 수량화하는 것이 의학을 과학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여겼다. 루이는 사혈법에 대한 수량적 연구를 통해 유명해졌다고 하는데, 루이에 관한 거의 유일한 영어로된 다음의 논문을 참고하면 될 듯하다. Morabia, Alfredo, “Pierre-Charles-Alexandre Louis and the evaluation of bloodletting.” Journal of the Royal Society of Medicine 99, no. 3 (March 2006): 158-60 .
하지만 베르나르와 마찬가지로 루이도 당시 ‘평균인(Average Men)’이라는 개념으로 사회과학은 물론 지성계를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케틀레식 수량화에 찬동하지는 않았다. 루이는 의학이 다루는 대상, 즉 개개의 환자들을 더욱 잘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해서 수량화가 중요하다고 여기기는 했지만, 각각의 사례들을 그냥 평균 내서 일반화하려는 시도는 거부했다. 베르나르가 지독하게 거부했던 통계적 사고가 바로 케틀레 식의 평균이었는데, 루이도 이 점에 있어서는 베르나르와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베르나르와 루이라는 양 극단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당시 생리학과 의학을 둘러싸고 얼마나 많은 학자들이 깊게 고민했는지를 보려면 타 티모시 첸(Tar Timothy Chen)의 다음 논문들 보는 것이ㅎ다. CHEN, T.A.R.T., “History of statistical thinking in medicine.” Advanced medical statistics(2003): 3–19. 주로 임상의학과 관련된 역사들을 다루기는 하지만 티모시 첸의 정열적인 연구들에서 배울 점이 많을 것이다. 그는 중국인이다. 첸의 논문에도 등장하고, <확률혁명>에서 콜맨이 쓴 챕터에도 등장하는, 알아 두면 좋을 두 명의 학자가 있는데, 가바렛(Louis Denis Jules Gavarret,1809 – 1890)과 마티우스(Friedrich Martius, 1850-1923)다. 이런 학자들의 존재 때문에 생리학의 정량화 역사에 대한 지도 그리기는 더욱 복잡해 진다.
임상의학에 통계적 사고가 스며드는 과정은 상당히 잘 알려져 있다. 아마 의학이라는 분야에 돈이 많이 몰리기 때문에 연구가 편중되었기 때문일 것이고, 그 과정이 참 독특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위의 티모시 첸의 논문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피어슨과 골턴의 생물계측학(biometrics)이 등장하고, 피셔의 피셔의 실험 설계법이 많은 분과학문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20세기 초중반으로 넘어오는 것이 대부분의 역사기술이다. 다음의 저술들이 그런 과정을 다룬다.
Matthews, J. Rosser, Quantification and the Quest for Medical Certaint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5). Armitage, P., “Trials and errors: the emergence of clinical statistics.” Journal of the Royal Statistical Society 146, no. 4 (1983): 321–334. Shimkin, Mb, “THE NUMERICAL METHOD IN THERAPEUTIC MEDICINE.” Transactions & studies of the College of Physicians 79, no. 1 (1964): 1-12 .
하지만 임상의학과 관련된 생리학이 아닌 분자생물학과 결합한 생리학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다. 특히 유전학이나 생화학, 분자생물학처럼 실험기법들이 고도로 정교화되면서 발전한 학문들과 결합한 생리학은 베르나르의 이상이 가장 잘 꽃핀 곳인데도, 베르나르가 의사여서 그런 것인지, 생물사가들은 이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다. 아마 분자생물학을 전공하고 생물학사를 연구하는 학자가 거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생리학이 분자생물학과 결합하면서 수량화 학파와 실험실 학파의 대립은 결국 독특한 방법론의 정초로 나타난다.
생리학이라는 전통의 확립에서 큰 기능을 담당한 정량화의 역사는 콜맨 이외의 인물들에게서는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했다. 내가 주로 참고했던 논저들도 모두 콜맨의 것이다. <확률혁명>에 콜맨이 쓴 생리학 장과, <확률혁명>이라는 책의 기초작업 격으로 출판되었던 <Probability since 1800: interdisciplinary studies of scientific development>는 좋은 안내자가 되어 준다. 특히 후자는 홈즈의 베르나르에 관한 지루한 연구서를 확률적 사고를 중심으로 살펴보기엔 좋은 내용이다. 기거렌쩌와 닷슨이 편집한 다음 책에 들어 있는 생리학 파트도 콜맨의 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주제에 관심을 기울인 학자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Gigerenzer, Gerd, Zeno Swijtink, and Lorraine Daston, The Empire of chance: how probability changed science and everyday lif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0) .
내 생각에 분자생물학에서 통계적 사고는 1980년대 이후 생물정보학, 1990년 이후 시스템생물학이 등장하면서 완전히 정착되기 시작하는데, 이를 통계적 사고라는 개념으로 다룬 논문은 없다. 다음 논문은 시스템 생물학에 대한 최근의 시스템 생물학자들의 사고, 혹은 제도권에서의 권력투쟁을 둘러싼 선동 같은 것을 볼 수 있는 논문인데, 나쁜 뜻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내 경험이 맞다면, 이제 새로운 생물학자들은 통계적 사고와 프로그래밍에 대한 지식까지를 갖추도록 훈련되고 있다. 그런 생물학자들이 이루어낼 일이 얼마나 대단할 것인지는 따로 말하지 않겠다. 다만 내 능력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것이 언제나 한탄스러울 뿐이다. Westerhoff, Hans V, and Bernhard O Palsson, “The evolution of molecular biology into systems biology.” Nature biotechnology 22, no. 10 (October 2004): 124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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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잘 읽고 있습니다. ‘의학에서 통계학적 사고의 도입’은 전공인 역학적 연구 방법론의 발전과 맞물려 관심 있게 찾아 읽고 있는 분야입니다. 언급하신 티모시 첸의 논문은 꼭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임상의학에서는 환자 개인별 예후 예측에 통계학적 방법론이 주로 기여하는 반면, 예방의학에서는 인구 집단 측면에서 관련성의 측정과 개입의 정량화에 주로 관심 있다는 점이 차이가 나는데, 역시나 후자의 역사는 체계적 연구보다 개인의 기억에 주로 의존하는 편입니다. 생물정보학과 시스템생물학은 통계적 가설 검정과 추정이라는 전통적인 의미의 통계학적 방법론을 적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통계적 사고’로 접근한 논문이 없을 듯합니다. 통계학계 내에서도 빈도주의자와 베이지언의 투쟁(?)이 휴전 중인데, 생물정보학과 확전을 원하지 않는 듯하고, 대규모 데이터마이닝으로 접근하는 생물정보학 방법론을 통계학사라는 맥락으로 평가 가능한, 양 분야에 어느 정도 정통한 학자가 많지 않을 듯하다는게 주변을 살펴본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생물정보학은 통계적 기법들만 쓰겠고, 시스템 생물학에 의해 조금씩 통계적 사고가 스미고 있지요. 언제고 그 바닥의 이야기를 좀 듣기를 늘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