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두 마리 초파리, 같은 기울기
9월 26일, LLM을 다루는 지인과 초파리 커넥톰 시뮬레이션으로 초파리의 시간 지각을 복원할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는 오래 품어온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다. AI는 형식화할 수 있고 결과를 곧바로 검증할 수 있는 학문부터 삼킨다. 수학이 가장 먼저 흔들리고, 생물학은 나중에, 개체 생리학과 행동학은 가장 마지막에 흔들린다. 나는 이것을 ‘검증의 기울기’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보다 엿새 전,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의 조르조 질스트로(Giorgio Gilestro)가 자기 블로그에 「지식의 바이마르(The Weimar of knowledge)」라는 글을 올렸다. 그도 초파리의 수면을 연구하는 신경생물학자다. 그는 수학과 이론 컴퓨터과학이 먼저 무너지는 이유를 출력 전체가 기호 조작이기 때문이라고 썼고, 생물학이 나중인 이유는 생물학자가 더 영리해서가 아니라 속도를 제한하는 단계가 물리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천 마리의 초파리가 6주 동안 잠드는 기록은 생성할 수 없다. 직접 돌려야 한다. 동물과 인큐베이터와 카메라가 필요하고, 아레나의 기하학이 틀렸다는 것을 가르쳐준 실패한 파일럿 실험이 필요하다.
두 초파리 연구자가 서로 모르는 채로 같은 순서에 도달했다. 우연이라기보다 초파리 실험실이라는 장소가 가르치는 감각일 것이다. 동물은 기다려야 하고, 인큐베이터는 고장 나고, 파일럿 실험은 실패한다. 이 느림을 매일 겪는 사람은 무엇이 싸지고 무엇이 비싸게 남을지 몸으로 안다.
한 독자가 이 글의 번역을 보내며 물었다. 이른바 과학 지식을 다루는 전문가 공동체가 붕괴할 것이고, 한국은 특히 더 비참하게 무너질 것이라 믿는 자신이 너무 비관적인 것 아니냐고. 그리고 글 말미의 교훈은 원문을 읽어도 잘 모르겠다고. 이 글은 그 두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비관은 과장이 아니라 진단에 가깝다. 다만 붕괴하는 것은 학문 자체가 아니라 텍스트를 화폐로 쓰던 학문의 경제이고, 한국이 더 아프게 무너질 이유는 분명하지만 그 이유들이 곧 처방의 방향도 가리킨다.

2. 논문이라는 화폐의 초인플레이션
질스트로의 진단은 간명하다. 문제는 지적 소유권이 아니다. 인간의 지성 독점은 이미 끝났다. 정확성도 아니다. 그는 AI가 쓴 논문의 상당수가 아마 정확할 것이고, 다만 대부분 무의미하거나 중복일 뿐이라고 본다. 진짜 문제는 지적 능력에 기반한 모든 활동이 초인플레이션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학계는 이미 20~30년 동안 논문의 질이 아니라 편수를 보상하는 나쁜 경력 지표 때문에 인플레이션을 겪었고, AI는 그것을 바이마르 영역으로 밀어 넣는다. 그의 표현대로 “papers will be worth nothing”, 논문은 무가치해질 것이다.
과장처럼 들리지만 숫자는 이미 그쪽을 가리킨다. arXiv는 2025년 10월 31일, 컴퓨터과학 분야의 리뷰 논문과 포지션 페이퍼는 학술지나 학회의 동료심사를 통과했다는 증빙이 없으면 받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감당할 수 없는 유입이었다. 이후 엘라자르와 안토니악의 분석(arXiv:2601.17036)은 Pangram 탐지 기준으로 2025년 CS 리뷰 논문 약 4,783편이 LLM 생성으로 판정되었지만, LLM 생성으로 추정된 비(非)리뷰 논문은 26,801편으로 거의 여섯 배에 달한다고 보고했다. 리뷰만 막아서는 홍수가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다. NeurIPS 2025 본 트랙의 유효 투고는 21,575편으로, 2023년 12,343편과 2024년 15,671편에서 가파르게 늘었다. 『네이처』 보도에 따르면 Pangram은 ICLR 2026 심사 약 7만 5,800건 가운데 21%, 즉 15,899건이 AI가 전부 쓴 것이고 절반 이상에 어떤 형태로든 AI가 개입했다고 발표했다. 판정한 Pangram은 탐지 도구를 파는 회사이므로 숫자는 조심해서 읽어야 한다. 그래도 방향은 분명하다. 논문도 AI가 쓰고, 심사도 AI가 쓰고, 이를 걸러내는 일도 AI가 한다. 사카나 AI의 ‘AI 과학자'(Yamada et al. 2025, arXiv:2504.08066)가 쓴 논문은 이미 2025년 ICLR 워크숍 심사를 평균 6.33점으로 통과했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AI가 아니다. 굿하트의 법칙대로, 측정이 목표가 되는 순간 측정은 좋은 측정이기를 멈춘다. 논문 편수와 영향력지수와 인용 수가 과학자의 가치를 대신하는 순간부터 화폐는 이미 발행 과잉이었다. AI는 조폐기의 속도를 올렸을 뿐이다. 그래서 AI 탓을 하며 탐지기와 면접으로 막으려는 시도는 질스트로의 말대로 순진하고 헛되다. 발행을 멈추게 하는 것은 조폐기의 성능이 아니라 그 화폐를 받아주는 제도다.

3. 두 개의 지대: 평판과 검증
화폐가 무가치해지면 가치는 실물로 옮겨간다. 질스트로는 그 실물이 기관의 평판이 될 것이라고 본다. 너무 많은 글이 쏟아지면 사람들은 믿을 만한 곳에서 나온 것에만 최소한의 주의를 기울인다. 그는 OpenAI와 앤트로픽이 더 이상 학술지를 거치지 않고 프리프린트와 깃허브 저장소만 내놓는다는 점을 예로 들면서, 그것은 누구나 채택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라 축적된 평판 자본의 특권이라고 못 박는다.
이 글의 가장 날카로운 문장은 여기서 나온다. 평판은 벌 수 있는 화폐처럼 행동하지 않고 “땅처럼(like land)” 행동한다. 유한하고, 상속되며, 새로운 것을 생산하지 않아도 소유자에게 수익을 가져다준다. 주의가 개인의 결과가 아니라 기관의 브랜드를 따라 흐르는 경제는 지대 경제다. 이름 없는 기관의 젊은 연구자는 자기 일이 실력으로 읽힐 수 있었던 유일한 장치, 즉 작업 자체에 대한 익명 심사를 잃는다. 그의 말대로 이제 “예전에 읽혔기 때문에 읽힌다.”
과학사회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 문장에서 로버트 머튼을 떠올릴 것이다. 머튼은 1968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과학에서의 마태 효과」에서 저명한 과학자는 비슷한 기여에도 불균형적으로 큰 인정을 받고, 무명의 과학자는 불균형적으로 작은 인정을 받는다고 썼다. 20세기 후반의 익명 동료심사는 이 누적 우위를 없애지는 못했어도 적어도 제어하려는 장치였다. 질스트로의 글이 흥미로운 것은 이 장치가 생각보다 짧은 역사를 가졌다는 점을 짚는 대목이다. 과학사학자 멜린다 볼드윈에 따르면 『네이처』는 1973년에야 편집장 데이비드 데이비스 아래서 모든 논문에 외부 심사를 의무화했다. 1953년 왓슨과 크릭의 논문을 포함한 세 편의 DNA 논문은 외부 심사를 거치지 않았다. 당시 편집자들은 캐번디시 연구소장 로런스 브래그 같은 이가 좋다고 하면 실었다. 그렇다면 논문이 어느 연구실에서 왔느냐가 아니라 절차로 판단된다는 20세기의 합의는 60년 남짓한 예외였을지 모른다. 우리는 평판 경제를 새로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로 돌아가는 중이다.
여기까지가 질스트로의 첫 번째 지대, 평판이다. 나는 두 번째 지대를 덧붙이고 싶다. 검증이다. 질스트로 자신도 글 후반부에서 새 체제의 진짜 자산은 장비와 그 장비가 생산한 데이터, 그리고 장비가 믿을 만한 결과를 내게 하는 암묵지라고 썼다. 장치를 소유한 자가 여전히 희소한 유일한 투입물을 소유한다. 내가 검증의 기울기 논의에서 확인한 것도 같다. AI 기업들은 모두 검증 역량을 희소한 보완 자산으로 다룬다. OpenAI는 미국 국립연구소의 검증 능력을 빌리고, 앤트로픽은 자체 생명과학 실험실과 실험 장비 표준을 만들고, 구글 딥마인드는 알파폴드에서 아이소모픽 랩스까지 수직 계열화를 한다. 텍스트가 무한히 싸지는 세계에서, 싸지지 않는 것을 사들이는 자가 새로운 영주가 된다.
그러니 지식의 봉건제에는 두 종류의 영주가 있다. 주의를 배분하는 평판의 영주, 그리고 진위를 판정하는 검증의 영주. 전자는 세계적 대학과 빅테크 연구소의 브랜드로, 후자는 로봇 실험실과 동물 시설과 국립연구소 계약으로 나타난다. 둘은 서로를 강화한다. 검증 장비를 가진 곳이 결과를 내고, 결과가 평판을 만들고, 평판이 다시 장비를 산다.

4. 검증의 기울기를 학문 전체로 넓히면
질스트로의 소제목, “텍스트는 싸다, 데이터는 그렇지 않다”를 학문 전체에 적용하면 불편한 그림이 나온다. 과학보다 먼저, 그리고 더 크게 노출되는 것은 출력물이 거의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학문이다. 이론 중심의 인문학과 사회과학, 문헌 검토와 해설과 논평으로 이루어진 연구가 그렇다. arXiv가 가장 먼저 막은 것이 리뷰와 포지션 페이퍼였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기존 텍스트를 정리하고 입장을 내세우는 글이 가장 먼저 쏟아졌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인문학이 가장 먼저 죽는다는 말로 읽지 않는다. 검증의 기울기는 분과를 묻지 않고, 속도를 제한하는 단계가 어디에 있느냐를 묻는다. 기록보관소에서 먼지 쌓인 문서를 찾아내는 역사학자, 몇 년 동안 한 마을에 머무는 인류학자, 사라져가는 방언을 녹음하는 언어학자, 공장과 병원과 법정에서 사람을 만나는 사회학자의 작업에는 물리적 병목이 있다. 그들의 원자료는 초파리의 6주짜리 수면 기록과 같은 자리에 있다. 반대로 실험 과학자라도 공개 데이터를 다시 분석해 텍스트만 생산한다면 이미 인플레이션의 한가운데 있다. 무너지는 것은 분과가 아니라 출력의 형식이다.
인문학에는 또 하나의 검증 장치가 있다. 해석 공동체다. 수학의 증명은 린(Lean)으로 인증할 수 있지만, 한 편의 해석이 옳은지는 그것을 읽고 반박하고 오래 곱씹는 독자 공동체만이 판정할 수 있다. 나는 수학에서도 인증과 이해는 다르다고 주장해 왔다. 기계가 증명을 인증해도 인간 공동체가 그것을 소화하는 일은 남는다. 이 소화의 속도야말로 모든 학문에 공통된, AI가 줄일 수 없는 병목이다. 질스트로가 말한 주의의 희소성은 결국 이 소화 능력의 희소성이다. 허버트 사이먼이 반세기 전에 경고했듯, 정보의 풍요는 주의의 빈곤을 낳는다.

5. 한국은 왜 더 아프게 무너질 수 있는가
이제 독자의 비관으로 돌아가자. 나는 한국의 지식 공동체가 더 아프게 무너질 수 있다는 판단에 동의한다. 이유는 네 가지다.
첫째, 한국은 가장 부풀려진 화폐를 쓰는 나라다. 한국연구재단 웹진에 실린 분석에 따르면 국내 대다수 대학은 정량 중심 평가를 하고, SCIE·SSCI 논문은 KCI 논문보다 3.4~3.8배 높은 점수를 받는다. 한국연구재단 보고서가 조사한 41개 대학 중 34곳이 JCR 영향력지수를 평가에 쓴다. 이 구조가 무엇을 낳는지는 이미 보았다. KRI 자료로 연구자 5만 5천여 명을 분석한 연구에서 SCI급 논문 대비 MDPI 논문 비중은 2018년 5.4%에서 2020년 17.6%로 뛰었고, 승진 압력을 받는 부교수·조교수와 BK 사업 참여자일수록 그 경향이 강했다. 2017~2021년 한국연구재단 지원을 받은 SCI급 논문 12만 6,505편 가운데 15.9%가 부실 의심 학술지에 실렸다는 국회 분석도 있다. 편수를 화폐로 쓰는 경제에서 AI는 가장 값싼 조폐기다. 인플레이션은 화폐를 가장 많이 찍어온 곳에서 가장 먼저 폭발한다.
둘째, 한국에는 평판의 영주가 너무 적고, 그 영주마저 세계의 주의 시장에서는 소작농에 가깝다. 평판이 지대가 되는 세계에서 주의는 소수의 세계적 브랜드로 쏠린다. 한국의 몇몇 대학은 국내에서는 지주지만 국제적으로는 브랜드가 약하다. 한국 연구자의 논문은 예전에 읽혔기 때문에 읽히는 목록에 잘 들어가지 못한다. 동시에 국내에서는 수도권 몇 개 대학으로 평판이 더 집중된다. 종로학원 분석에 따르면 2025학년도 추가모집이 끝난 뒤에도 정원을 채우지 못한 대학 49곳 중 40곳이 지방대였고, 미선발 1,120명 중 1,050명이 지방에 있었다. 학령인구가 줄며 지방대가 무너지는 과정은 평판의 지대 경제가 한국에서 이미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셋째, 한국은 검증 인프라를 공공재로 가꾸는 데 약하다. 헬로디디 보도에 따르면 2024년 R&D 예산은 26조 5천억 원으로 전년 본예산 31조 1천억 원보다 14.7%, 4조 6천억 원이 줄었고, 출연연의 박사후연구원과 학생연구원 자리 1,200여 개가 위협받는다는 추산이 나왔다. 검증의 기울기에서 가장 늦게 무너지는 것은 동물과 장비와 암묵지를 가진 실험실인데, 이를 지탱하는 것이 바로 이 젊은 인력이다. 반면 정부의 「과학기술×AI 국가전략」은 한국형 AI 연구동료, GPU, 자율실험실처럼 생성과 자동화 쪽에 무게를 싣는다. 2026년 8월 출범한 자율실험실 산·학·연 협의체에는 삼성종합기술원과 SK하이닉스를 포함한 80여 기관이 참여했고, 정부는 자율실험실 데이터를 국가 과학 AI의 학습 자산으로 쓰겠다고 밝혔다. 나는 이 방향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이 검증 인프라가 공유지가 되느냐, 기업과 소수 기관의 장원이 되느냐는 지금의 설계에 달려 있다.
넷째, 한국어 지식 공동체는 작다. 영어권의 거대한 주의 시장에서 한국어 텍스트는 이중으로 불리하다. AI는 한국어 학술 텍스트도 싸게 생산하겠지만, 그것을 읽고 소화할 해석 공동체는 작고 늙어가고 있다. 텍스트가 무한히 싸지는 세계에서 작은 언어의 학문은 번역되지 않은 채 증발하기 쉽다.
그러니 독자의 비관은 기질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질스트로가 말한 인플레이션과 지대화의 조건을 거의 모두 갖춘 사례다. 그러나 이 네 가지 이유를 뒤집으면 그대로 처방이 된다. 편수라는 화폐를 거두어들이고, 브랜드 대신 작업을 읽는 장치를 만들고, 검증 인프라를 공유지로 만들고, 한국어 공공 지식을 두텁게 하는 것이다.

6. 질스트로의 교훈, 다시 읽기
독자가 잘 모르겠다던 마지막 네 개의 교훈을 내 방식으로 풀어보자.
첫째, “값싼 저항은 헛되다.” 면접, 추천, AI 탐지기로 문을 지키는 일은 에너지 낭비이고 역효과를 낸다는 뜻이다. 그가 드는 예가 핵심이다.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AI가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질병의 치료법을 거부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문지기 노릇을 고민하는 것은 AI의 산출물이 아직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고, 그것은 곧 중요해질 것이다. 나는 이 교훈에 동의하되 하나를 덧붙인다. 출처로 막는 대신 검증으로 판단해야 한다. 치료법을 받아들이는 이유는 누가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임상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값싼 저항이 헛된 만큼, 비싼 검증은 더 필요해진다.
둘째, “인센티브를 재편하라.” 그는 한 사람의 지적 기여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썼다. 너무 극단적인 문장이라 독자들이 당황했는데, 그는 댓글에서 이것이 양이 아니라 내용에 집중하라는 극단적 예시라고 해명했다. 채용과 승진에서 몇 편을 어디에 냈는지 대신 “지난 2년 동안 당신의 가장 중요한 기여는 무엇인가, 한 문장으로”라고 묻자는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내가 말해온 “과학의 핵심은 구체적인 질문”이라는 명제와 같은 이야기로 읽는다.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기여란 결국 잘 제기된 구체적 질문과 그 답이다. 초파리 수컷은 왜 짝짓기 시간을 조절하는가, 어떤 신경펩타이드 회로가 그 시간을 재는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연구는 수십 편의 논문 목록보다 많은 것을 말한다. 다만 경계할 점이 있다. 한 문장도 곧 굿하트의 표적이 된다. AI는 멋진 한 문장을 가장 싸게 만드는 기계다. 한국연구재단은 이미 4단계 BK21 중간평가에서 연구실적을 대표성과 1~3편과 500자 이내의 설명으로 평가하는 100% 질적평가를 도입했다. 좋은 방향이지만, 설명문은 텍스트이고 텍스트는 싸다. 한 문장은 그 문장 뒤에 있는 데이터와 장비와 재현 가능성으로 검증될 때만 가치가 있다.
셋째, “장벽을 낮추고 창의성을 보상하라.” 인류는 기계라는 골리앗 앞의 다윗이 되었고, 이 싸움은 트로이의 목마, 즉 “값싼 재치의 작은 불꽃”으로 이길 것이라는 말이다. 나는 이것을 규모의 경쟁을 포기하라는 뜻으로 읽는다. 연산량과 텍스트 생산량으로는 인간이 이길 수 없다. 이길 수 있는 곳은 기계가 떠올리지 못한 질문, 값싼 장비로 새로운 측정을 가능하게 하는 발상, 남들이 버린 생물을 모델로 삼는 엉뚱함이다. 질스트로의 에토스코프가 바로 그런 목마다. 라즈베리 파이와 3D 프린터로, 심지어 접은 종이나 레고로도 몸체를 만들 수 있는 이 장비는 비싼 행동 분석 장비의 독점을 깨뜨렸다.
넷째, “민첩하라.” 이 교훈은 가장 약하다. 개인에게 민첩하라는 말은 조언이 되지만, 제도에게 민첩하라는 말은 대개 방향 없는 적응을 정당화한다. 민첩함은 목적지가 있을 때 미덕이다. 나는 이것을 ‘방향을 정한 뒤에 빨라지라’로 고쳐 읽고 싶다.
그리고 질스트로 자신이 쓴 가장 중요한 문장을 잊지 말자. 중세의 체제도 작동했다. 나쁘게, 배타적으로, 극소수를 위해, 그러나 수 세기 동안 지식을 생산했다. “체제는 안정적이면서 동시에 부정의할 수 있다(Systems can be stable and unjust at the same time).” 봉건제로의 복귀가 곧 지식의 종말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결론이다. 지식은 계속 생산되겠지만, 소수의 영주를 위해 생산될 것이다.
이 글을 둘러싼 작은 소동도 기록해 둘 만하다. 한 독자가 탐지 도구를 돌려 이 글의 75%가 AI 생성이라고 지적하자, 질스트로는 기술봉건제 부분이 너무 길어서 클로드에게 요약을 맡겼다고 답했다. 나는 이 장면이 글의 논지를 스스로 증명한다고 본다. 이제 독자는 글의 내용보다 글이 어디서 왔는지를 먼저 묻는다. 텍스트 자체로는 신뢰가 생기지 않고, 필자의 평판과 이력이 그 공백을 메운다. 질스트로의 글이 널리 읽힌 것도 결국 그가 에토스코프를 만들고 오랫동안 수면 연구를 해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7. 플라이룸은 임대할 수 없다
질스트로는 기술봉건제 시대에 오픈소스 하드웨어 개발은 “무장 저항(an act of armed resistance)”이라고 썼다. 그의 대안은 복잡하지 않다. 측정값만이 아니라 장비를 공개하라. 오픈 하드웨어, 오픈 수집 소프트웨어, 원자료, 그리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직접 만들어 당신과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만큼의 방법론. “누구나 복제할 수 있는 설계는 임대할 수 없다.”
이 문장을 읽고 나는 컬럼비아 대학의 비좁은 플라이룸을 떠올렸다. 토머스 헌트 모건과 스터티번트, 브리지스의 실험실은 표준화된 초파리 계통을 만들고 그것을 전 세계에 나누는 교환 네트워크를 조직했다. 과학사학자 로버트 콜러는 『파리의 영주들(Lords of the Fly)』(1994)에서 이 공동체의 ‘도덕 경제’, 즉 연구 도구에 대한 접근을 규율하고 공로를 배분하고 권위를 다음 세대로 넘기는 규칙을 분석했다. 공교롭게도 그 책의 제목이 ‘영주’다. 그러나 초파리의 영주들은 자신의 도구를 임대하지 않고 나눴다. 그 전통은 블루밍턴 스톡센터와 플라이베이스로 이어졌고, 2024년에는 280명이 넘는 구성원이 참여한 플라이와이어 컨소시엄이 33인년의 교정 작업 끝에 13만 9,255개 뉴런과 5천만 개의 화학 시냅스를 담은 성체 초파리 뇌 전체의 연결 지도를 공개했다(Dorkenwald et al., 『네이처』 2024). 에토스코프는 그 전통의 가장 최근 판본이다. 초파리 연구자들은 한 세기 넘게 검증의 공유지를 가꿔온 셈이다.
학문의 운명은 두 갈래 중 하나로 갈 것이다. 하나는 평판과 검증이라는 두 지대가 소수의 영주에게 집중되는 지식의 봉건제다. 거기서 논문은 공짜로 공개되지만 아무도 읽지 않고, 장비와 데이터는 닫혀 있고, 연구자는 영주의 이름을 빌려야 읽힌다. 질스트로의 말대로 아무도 읽지 않는 열린 아카이브와 모두가 읽는 닫힌 평판 카르텔의 세계다. 다른 하나는 검증의 공유지다. 장비의 설계와 원자료와 방법이 공개되어, 누구든 작업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세계. 평판이 땅이라면, 공유된 장비는 누구도 울타리를 칠 수 없는 들판이다.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하다. 연구평가에서 편수와 영향력지수를 걷어내고 DORA 같은 평가 개혁에 기관 차원에서 참여할 것. 자율실험실과 국가 과학 AI에 쏟는 돈의 일부를 공개 장비와 공개 데이터와 재현 연구라는 검증의 공유지에 쓸 것. 지방대와 출연연의 젊은 연구자를 검증 인력으로 지킬 것. 그리고 한국어로 된 공공 지식을 해석 공동체와 함께 두텁게 할 것.
그러면 보통 과학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나는 거창한 것을 믿지 않는다. 내 실험실의 장비 설계도를 공개하고, 원자료를 제때 쓸 수 있는 형태로 올리고, 초파리 계통을 요청하는 이에게 기꺼이 보내고,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는 질문을 붙드는 것. 그리고 그 질문을 한국어로 대중에게 설명하는 것. 텍스트는 싸졌다. 그러나 초파리는 여전히 비싸고, 초파리를 기다리는 인간의 시간은 더 비싸다. 그 시간을 나누는 공동체가 남아 있는 한, 학문은 봉건제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

Details: 출처 지도 (Source map by theme)
Gilestro and related
- “The Weimar of knowledge,” Giorgio Gilestro, 20 Sept 2026, https://giorgio.gilest.ro/the-weimar-of-knowledge/ — primary text; all quotes and the comment-thread clarification (one-sentence contribution; Claude-summarized section) come from here.
- “Ethoscopes: An open platform for high-throughput ethomics,” Geissmann, Garcia Rodriguez, Beckwith, French, Jamasb & Gilestro, PLoS Biology 15(10): e2003026, 2017, https://journals.plos.org/plosbiology/article?id=10.1371%2Fjournal.pbio.2003026 — backs “open hardware as resistance” (Raspberry Pi, Arduino, 3D printing, all specs open).
- “Studying insect behavior? Make yourself an ethoscope!” EurekAlert!, 19 Oct 2017, https://www.eurekalert.org/news-releases/861088 — chassis can be 3D-printed, folded card, or LEGO.
- Gilestro lab tools/software pages, https://lab.gilest.ro/category/software/ — 316 GB Zenodo dataset with figure notebooks; lifelong sleep-deprivation work.
- Gilestro, “Video tracking and analysis of sleep in Drosophila melanogaster,” Nat Protoc 7:995–1007, 2012 (via PMC ethoscope reference list) — long-standing sleep-tracking practice.
- Stephen D. Turner, “My relationship with AI is changing,” Sept 2026, https://blog.stephenturner.us/p/ai-relationship-changing — reception of Gilestro’s essay; mentions arXiv EIC Tom Dietterich’s reaction.
- Retraction Watch “Weekend reads,” 26 Sept 2026, https://retractionwatch.com/2026/09/26/weekend-reads-the-weimar-of-knowledge-could-ai-be-better-at-peer-review-than-humans-guidelines-in-south-korea-ban-hidden-prompts-restrict-ai-use/ — same roundup features Gilestro and Korea’s new AI research-ethics guide.
Verifiability-gradient sources
- Hao, Xu, Li & Evans, “Artificial intelligence tools expand scientists’ impact but contract science’s focus,” Nature 649:1237–1243, 2026,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5-09922-y — 41.3M papers; 3.02x papers, 4.84x citations, leaders 1.37 years earlier; narrowing of focus.
- Sakana AI, “The AI Scientist Generates its First Peer-Reviewed Scientific Publication,” 2025, https://sakana.ai/ai-scientist-first-publication/ — ICLR 2025 workshop, scores 6/7/6 (avg 6.33), withdrawn; internal review said not main-track quality. Technical report: Yamada et al. 2025, arXiv:2504.08066.
- Author’s prior essay 「AI는 왜 수학부터 삼키는가」 and paper draft (not re-verified here) — company strategies (OpenAI/national labs, Anthropic lab, DeepMind vertical integration), math milestones.
History of peer review
- Melinda Baldwin, “Credibility, peer review, and Nature, 1945–1990,” Notes and Records 69(3):337–352, 2015, https://pubmed.ncbi.nlm.nih.gov/26495581/ — David Davies made external review mandatory in 1973; Maddox printed papers without refereeing.
- Nature PastCast, “The other DNA papers,” 2019,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19-01347-8 — Baldwin: “famously, the three DNA papers were not peer-reviewed”; trust in lab heads like Bragg.
- “Was Watson and Crick’s model truly self-evident?” Nature 427:584, 2004, https://www.nature.com/articles/427584c — Maddox: the paper “could not have been refereed: its correctness is self-evident.”
- Scholarly Kitchen interview with Baldwin, 26 Sept 2018, https://scholarlykitchen.sspnet.org/2018/09/26/the-rise-of-peer-review-melinda-baldwin-on-the-history-of-refereeing-at-scientific-journals-and-funding-bodies/ — peer review “much, much younger than we usually assume.”
- Physics World review of Making Nature, https://physicsworld.com/a/natures-ups-and-downs/ — Davies-era emphasis on referees.
AI paper-flood evidence
- arXiv blog, “Updated Practice for Review Articles and Position Papers in arXiv CS Category,” Kat Boboris, 31 Oct 2025, https://blog.arxiv.org/2025/10/31/attention-authors-updated-practice-for-review-articles-and-position-papers-in-arxiv-cs-category/ — “unmanageable influx.”
- Elazar & Antoniak, “LLM-Generated or Human-Written? Comparing Review and Non-Review Papers on ArXiv,” 2026, https://arxiv.org/abs/2601.17036 — Pangram flags ~4,783 CS review papers (2025) as LLM-generated vs 26,801 non-review papers (“almost six times higher”); Computers & Society could face 50% cuts.
- Fortune, NeurIPS hallucinations article, 21 Jan 2026, https://dc.fortune.com/2026/01/21/neurips-ai-conferences-research-papers-hallucinations — 21,575 (2025), 15,671 (2024), 12,343 (2023) submissions.
- Nature, “Major AI conference flooded with peer reviews written fully by AI,” Miryam Naddaf, Nov 2025,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5-03506-6 — ICLR 2026 21% figure (~75,800 reviews).
- Pangram, “Pangram Predicts 21% of ICLR Reviews are AI-Generated,” https://www.pangram.com/blog/pangram-predicts-21-of-iclr-reviews-are-ai-generated — 15,899 reviews; commercial source.
- The Transmitter, “Pushback on use of hidden prompts to snare AI peer reviews,” 2026, https://www.thetransmitter.org/publishing/scientists-decry-conferences-use-of-hidden-prompts-to-snare-ai-peer-reviews/ — ICML 2026 (Seoul) desk-rejected ~500 papers (~2%) over LLM-review violations.
Technofeudalism and sociology of science
- Robert K. Merton, “The Matthew Effect in Science,” Science 159(3810):56–63, 1968,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159.3810.56 — cumulative advantage maps to “reputation as rent.”
- Merton, “The Matthew Effect in Science, II,” Isis 79(4):606–623, 1988, https://garfield.library.upenn.edu/merton/matthewii.pdf — cumulative advantage and intellectual property.
- Robert E. Kohler, Lords of the Fly: Drosophila Genetics and the Experimental Lif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4, https://press.uchicago.edu/ucp/books/book/chicago/L/bo3617623.html — Morgan school’s stock-exchange network and “moral economy.”
- Dorkenwald et al., “Neuronal wiring diagram of an adult brain,” Nature 634:124–138, 2024; Rogers, “Fly connectome over the wire,” Nat Rev Neurosci 25:757, 2024,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3-024-00879-x — 139,255 neurons, ~5×10^7 synapses; ~33 person-years proofreading; open resource.
- Princeton Bioengineering news, 2024, https://bioengineering.princeton.edu/news/2024/mapping-entire-fly-brain-step-toward-understanding-diseases-human-brain — FlyWire Consortium membership (counts vary by source: “more than 280 members” per Princeton; lab/institution counts differ).
- Durand (2020), Dean (2020/2025), Varoufakis (2023), Morozov — cited as given in Gilestro’s essay; not independently verified.
- CoARA Agreement, https://www.coara.org/agreement/the-agreement-full-text/ and DORA–CoARA joint statement, Dec 2025, https://sfdora.org/2025/12/04/dora-coara-in-collaboration/ — real-world “reshape the incentive” attempts.
Korean context
- 한국연구재단 웹진, 이종욱, 「대학 연구업적 평가의 현황과 과제」, 2024-07, https://webzine.nrf.re.kr/magazine/2407/sub_2_01.php — SCIE/SSCI 3.4~3.8x KCI; mostly quantitative evaluation.
- 한국연구재단 웹진 BK21사업팀, 2024-07, https://webzine.nrf.re.kr/magazine/2407/sub_1_03.php — 4단계 BK21 중간평가 100% 질적평가, 대표성과 1~3편·500자 설명.
- 대학지성 In&Out, 2022-09-11,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904 — NRF report: 34 of 41 universities (83%) use JCR IF; 36.9% blame quantity-driven evaluation for ethics violations.
- 대학지성 In&Out, MDPI 분석, https://www.uni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200 — MDPI share 5.4% (2018) → 17.6% (2020), 55,136 researchers.
- 한국일보, 2022-10,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2101416290003256 — 126,505 NRF-funded SCI papers, 15.9% in suspect journals.
- 헬로디디 MDPI 기획, https://www.hellodd.com/news/articleView.html?idxno=107076 — 92% of Korean universities/institutes above world-average MDPI share.
- 헬로디디, 2024 R&D 예산, https://www.hellodd.com/news/articleView.html?idxno=102898 — 26.5조 원, 14.7% (4.6조 원) below 31.1조 원.
- 이투데이 데스크 시각, https://www.etoday.co.kr/news/view/2319591 — first R&D cut since 1964 statistics, 4.6조 원.
- 아주경제, 2023-09-25, https://www.ajunews.com/view/20230925091158305 — 1,200+ postdoc/student positions at risk in 출연연.
- 한국대학신문, 2025-03-03,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75812 — 2025학년도 49 universities, 1,120 unfilled; 40 regional (종로학원 analysis).
- 서울경제, 2026-08, https://www.sedaily.com/article/20077980 — 자율실험실 산·학·연 협의체, 80+ institutions; data as national science-AI training asset.
- DigitalToday, 2026-09-20, https://www.digitaltoday.co.kr/en/view/105636/ — National R&D AI Research Ethics Guide: no external AI for evaluation materials, hidden prompts banned.
- 대학저널, 2026-07-09, https://www.dhnews.co.kr/news/view/1065593804094771 — 한국인문사회과학연구원 signed DORA (only Korean signing found).
Caveats: claims to check before posting
- 2024 R&D cut: the percentage conflicts across sources (14.7% in HelloDD vs 16.6% in KAIST Times, reflecting different bases), and so does the “first ever” framing (이투데이: first since 1964 statistics; KAIST Times: first since 1991); the essay uses HelloDD’s 4.6조 원 / 14.7% figure and drops the “first ever” claim.
- Hao et al.’s “topic breadth −4.63%, interaction −22%” figures (from the author’s prior draft) were not re-verified in this pass; the essay cites only the verified 3.02x/4.84x figures in the source map.
- Company-strategy claims (OpenAI Genesis Mission/”Atlas” campaign, Anthropic’s own lab and Model Hardware Standard, DeepMind “Conjecture Machines”) and all 2025–2026 math milestones come from the author’s prior work and were not independently re-verified here.
- Gilestro’s claim that Anthropic and OpenAI “no longer bother putting their research in journals” is his assertion, presented as such.
- licentia docendi and the censorial origin of “imprimatur” are standard history but were not source-checked in this pass.
- Herbert Simon’s “wealth of information creates a poverty of attention” (1971) and Goodhart’s law attribution were not source-checked here.
- No major Korean agency/university (NRF, KAIST, IBS) was confirmed as a DORA or CoARA signatory; a country filter on sfdora.org/signers and coara.org is needed before stating this as fact.
- Pangram-based figures (ICLR 21%; arXiv review/non-review counts; the 75% flag on Gilestro’s essay) come from a commercial detector; competing detectors give very different distributions.
- AAAI 2026 “~29,000 submissions” came only from secondary coverage (36Kr) and was left out of the essay.
- The phrase “the marginal cost of producing content is essentially zero, but the cost of attention is still high” is Stephen Turner’s paraphrase, not a Gilestro quote; do not attribute it to Giles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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