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다른 실험실의 학부연구생이, 위챗으로 질문을 보냈다. 본인이 생쥐에서 자기장 인식능력에 대해 연구중인데, 초파리에서 알려진 자기장 인식능력에 대한 연구가 궁금하다는 것이다. 얼마전 스치며 이에 관한 논란을 본 적이 있다.
지구를 거의 반 바퀴씩 돌아 철마다 이주하는 철새들의 두뇌에는 자기장을 인식하는 특수한 부위와 메카니즘이 존재한다. 지구를 반 바퀴 이동하려면 당연히 자기장과 태양과 별 등이 보내는 신호를 복합적으로 인지하고 계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므로, 철새들에게 자기장 인식능력이 진화했다는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Warrant, Eric J. “Unravelling the enigma of bird magnetoreception.” (2021): 497-498.
초파리의 생체시계 관련 유전자 중 하나인 Cryptochrome (Cry)이 자기장에 반응한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있었고, 2008년 네이처지에 “Gegear, R. J., Casselman, A., Waddell, S., & Reppert, S. M. (2008). Cryptochrome mediates light-dependent magnetosensitivity in Drosophila. Nature, 454(7207), 1014-1018.”라는 제목으로 초파리의 자기장 인식에 대한 논문이 실렸다. 이 연구그룹이 사용한 행동패러다임은 아래와 같다.
이후에도 심심찮게 초파리의 자기장 인식에 대한 논문들이 나오곤 했는데, 그래서 오타와대학에 있을때 학부생들에게 자석이 교미시간에 혹시 영향을 미치는지 확인해보라고 한 적이 있다. 그 때 학부생들이 자석을 사다가 접착제로 붙여서 실험을 했었는데, 조악한 도구였지만 교미시간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보였었다. 물론 이 저자들이 한 것처럼 코일을 감아서 엄청 센 자기장을 만들지는 못했다.
그런데 불과 얼마전에 한 연구그룹이 초파리에는 자기장 인식능력이 없다는 논문을 네이처지에 발표했다.
Bassetto, M., Reichl, T., Kobylkov, D., Kattnig, D. R., Winklhofer, M., Hore, P. J., & Mouritsen, H. (2023). No evidence for magnetic field effects on the behaviour of Drosophila. Nature, 1-5.
이 논문에 대한 해설도 네이처에 실렸는데, 아직 이 반박논문을 인용한 논문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2008년에 초파리로 네이처에 출판했던 그룹에게선 아무런 답이 없는 것 같다.
Warrant, E. J. (2023). Replication study casts doubt on magnetic sensing in flies.
나에게 질문을 한 학생은 생쥐의 자기장 인식능력을 연구하려고 한다는데, 흔히 자살한다고 알려진 레밍쥐 같은 경우엔 먼 거리를 이동하는데, 아마 레밍쥐에겐 그런 능력이 있지도 않을까 싶다고 이야기해줬다. 물론 초파리나 생쥐나 철새나 모두 공통조상을 공유하므로, 그들에게도 자기장 인식능력을 위한 유전적 흔적은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와 함께.
언제나 그렇지만, 진화생물학의 그저 그런 이야기는 지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