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전문적인 학술논문 출판을 업으로 삼은 대부분의 직업군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도대체 왜 약탈적 학술지의 이메일은 그렇게 허술할까?
하루에 평균 10-20 여개의 약탈적 학술지 및 학술행사 관련 이메일을 받는다. 대부분은 스팸으로 걸리지만, 얼마전부터 상당 수의 이메일이 스팸 필터를 뚫고 받은편지함으로 배달되고 있다. 약탈적 학술지 이메일의 특징은 못생겼다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 아래와 같이 못생긴 폰트와 엉망진창인 영어로 된 이메일을 보면, 금방 약탈적 학술지라고 알아챌 것이다.

약탈적 학술지 이메일이 이렇게 쉽게 구분이 간다면 피해를 당하는 연구자도 그렇게 많지 않을텐데, 이 문제를 거의 준전문가 급으로 파헤쳤던 나조차 헷갈리는 이메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 즉 실제로 정식으로 학회와 학술지에서 온 초청 이메일이 스팸으로 걸리는 일도 자주 발생하기 시작했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한 셈이다. 하긴 약탈적 학술지 관계자들은 네이처나 엘스비어 같은 학술지들이야말로 약탈적이지 않느냐고 하는 마당이니, 어쩌면 이건 예상된 결말일지 모르겠다. 여하튼 오늘 받은 이메일은 이렇게 생겼다.

긴 이메일의 마지막엔, 활짝 웃고 있는 학술지 편집장의 사진까지 보인다.

Wolters Kluwer 볼터스 클루버 라는 기업은 실제로 존재하는 네덜란드의 정보 서비스 기업으로 Lippincott Journals라는 의학학술지 출판사를 보유하고 있다. 즉 만약 저 로고가 사실이라면, 이 학술지는 약탈적 학술지가 아니라, 실제로 네덜란드의 오래된 의학 출판사의 신생 학술지가 되는 셈이다.
Lippincott 웹사이트의 주소는 https://lww.com/pages/default.aspx 이고 Aging Advances 의 주소는 https://journals.lww.com/aa/pages/default.aspx 로 심지어 비슷한데다, 웹사이트 하단 배너에는 떡하니 볼터스 클루버 사이트를 카피해놓았다.

이쯤 되면 정말 자세히 살피지 않은 연구자들은 속을만 하다. 심지어 나조차 최근 출판한 초파리 아교세포 논문들을 엮어 리뷰를 한 편 쓸까 생각하고 학생들에게 의견까지 물었으니 말이다.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어 Lippincott 사이트의 학술지 리스트에서 Aging Advances를 찾아보았는데 없다.

그리고 자세히 Aging Advances 웹사이트를 들여다보면, STM publishing이라는 출판사 휘하의 학술지라는게 아주 작게 구석에 써있고, 이 출판사의 웹사이트에 Aging Advances가 들어 있다. 그리고 보다시피 사이트가 허술하고 허접하다.

검색해보니 Lippincott 블로그에 약탈적 학술지들이 이런 수법으로 연구자들에게 스팸 이메일을 보낸다는 포스팅이 있다.

얼마전에 페이스북에 하버드의대의 저명한 초파리 실험실 박사후연구원이 약탈적 학술지의 편집장으로 일하는 행태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스팸 이메일이 여전히 활개를 치듯이, 어쩌면 과학계는 이 진화하는 약탈적 학술지들과 군비경쟁을 벌이며, 혹은 공멸 혹은 자멸하는 길로 나아가지 않을까 싶다. 누구도 나서지 않으면, 시스템은 붕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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