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L;DR
- 초파리 눈으로 만든 시각 AI. 10월 6일 arXiv에 올라온 한 프리프린트는 초파리 시각계 연결체(커넥톰)의 구조를 본뜬 신경망 FlyVision으로 손글씨 숫자 분류부터 피부질환 사진, 흉부 X선 분류, 뇌 MRI로 나이 추정까지 해냈다고 보고했다. 흉부 X선 과제에서는 매개변수가 4분의 1 정도인 모델로 표준 모델 ResNet18보다 조금 나은 성적을 냈다.
- 작고 효율적이지만, 아직 프리프린트. ImageNet에서는 여전히 ResNet18보다 3%포인트쯤 낮고, 동료평가를 거치지 않은 결과다. 생물의 회로가 더 똑똑하다기보다 좋은 출발 구조를 준다는 정도로 읽는 것이 안전하다.
- 초파리유전학자의 결론. 이 연구가 가능했던 것은 많은 연구자와 시민이 함께 그려 공개한 파리 뇌 지도 덕분이다. AI가 책과 데이터와 뇌 지도까지 재료로 삼는 시대에, 열린 과학의 공유지가 무엇을 돌려받아야 하는지 물어야 한다.
초파리 실험실에서 가장 흔한 풍경 가운데 하나는 현미경 아래에서 파리의 겹눈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붉은 눈은 수백 개의 낱눈이 육각형으로 촘촘히 박힌 구조이고, 그 배열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유전학자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다. 흰 눈을 가진 수컷 한 마리에서 시작된 학문이 초파리유전학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파리의 눈은 이 분야의 첫 페이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눈이 이번에는 기계의 눈이 되었다. 신경과학 매체 The Transmitter의 10월 15일자 뉴스레터가 짧게 소개한 프리프린트 하나가 눈에 걸렸다. 초파리 시각계의 연결 지도, 곧 커넥톰을 본떠 신경망을 짜고, 그것으로 사람이 쓰는 일반적인 컴퓨터 비전 과제를 풀어 보았다는 연구다.
나는 이 소식을 읽으며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했다. 하나는 파리의 작은 뇌가 품은 설계의 정교함이고, 다른 하나는 그 설계도가 어떻게 모두의 것이 되었는가 하는 질문이다. 두 번째 질문은 같은 주에 한국 서점가에서 들려온 다른 소식과 겹치면서 더 무거워졌다.
파리 눈의 지도

커넥톰은 신경세포 하나하나와 그 사이의 시냅스를 빠짐없이 그린 배선도다. 초파리 성체 뇌 전체의 커넥톰은 2024년 FlyWire 컨소시엄이 발표했는데, 십만 개가 훌쩍 넘는 신경세포와 수천만 개의 시냅스가 담겼다.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이 눈에서 들어온 신호를 처리하는 시각계다. 날면서 움직임을 잡아내야 하는 곤충에게 시각은 뇌의 가장 큰 사업이다.
파리의 시각 회로에서 오래 연구된 원리 하나는 ON과 OFF의 분업이다. 빛이 밝아지는 변화와 어두워지는 변화를 서로 다른 경로가 따로 처리하고, 그 신호들이 겹치고 되먹임되면서 움직임의 방향이 계산된다. 흥미롭게도 포유류의 망막에도 ON과 OFF로 나뉜 경로가 있다. 전혀 다른 진화 계통이 비슷한 해법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이 분업은 시각이라는 문제 자체가 요구하는 구조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프리프린트의 저자들은 ConnectomeX라는 틀 안에 FlyVision이라는 구조를 만들었다. 초록에 따르면 이 구조는 ON/OFF 병렬 처리, 순환 계산, 신경세포 집단 사이의 그래프 상호작용을 유지하면서도 학습이 가능하게 짜였고, 과제에 따라 크기를 키울 수 있다. 파리의 배선을 그대로 복사했다기보다, 배선의 원리를 뼈대로 삼아 그 위에 학습을 얹은 셈이다.
작은 회로, 큰 과제

결과는 숫자로 보면 이렇다. 손글씨 숫자 데이터(MNIST)에서는 약 8만 개의 매개변수로 99.34%의 정확도를, 작은 컬러 사진 데이터(CIFAR-10)에서는 78.03%를 냈다. 천 가지 범주의 사진을 가르는 ImageNet-1K에서 가장 큰 FlyVision 모델은 370만 개의 매개변수로 66.25%를 기록했는데, 1,170만 개의 매개변수를 쓰는 ResNet18은 69.25%였다.
의료 영상에서는 더 눈에 띈다. 네 가지 흉부 X선 분류에서 FlyVision은 약 300만 개의 매개변수로 92.76%를 내 ResNet18(91.56%)을 조금 앞섰다. 22종 피부질환 분류도 시도했고, 뇌 MRI 단면들로 나이를 추정하는 과제에서는 따로 남겨 둔 433건의 영상에서 평균 오차 5.98년을 보고했다.
이 숫자들을 과장해서 읽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동료평가를 거치지 않은 프리프린트이고, 비교 대상인 ResNet18은 이미 십 년쯤 된 표준 모델이다. FlyVision이 최신 거대 모델을 이겼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다. 이 연구가 보여 주는 것은 적은 매개변수로 꽤 먼 곳까지 간다는 효율성이고, 그것도 다른 연구자의 재현을 기다려야 한다.
그럼에도 나를 붙잡는 지점이 있다. 파리는 사진을 분류하려고 진화하지 않았다. 파리의 눈은 날면서 흐르는 풍경을 읽고, 다가오는 그림자를 피하고, 짝을 쫓는 데 맞춰져 왔다. 그런 회로의 원리가 사람의 피부와 폐 사진에서 쓸모를 보였다면, 회로가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보다 어떻게 계산하는지에 어떤 일반성이 있다는 뜻일 수 있다. 이것은 나의 해석이다. 하지만 기초 생물학이 왜 필요한가를 설명할 때 이보다 좋은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
지도는 누가 그렸나

이 연구가 가능했던 바탕에는 파리 뇌 지도가 있다. 초록은 어떤 데이터셋을 썼는지 밝히지 않지만, 제목이 가리키는 초파리 시각 커넥톰은 대개 공개된 지도들 위에서 만들어진다. 그 지도는 한 연구실의 업적이 아니다. 전자현미경으로 찍은 뇌 조각 영상을 기계가 먼저 나누고, 여러 나라의 연구자들과 시민 참여자들이 그 오류를 손으로 고쳐 가며 완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완성된 지도는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게 공개되었다.
나는 이것을 파리방 전통의 가장 최근 장이라고 읽는다. 모건의 방에서는 돌연변이 계통을 원하는 연구실에 나눠 주었고, 그 관행은 계통센터와 공용 데이터베이스로 자랐다. 초파리 공동체에는 만든 것은 내놓는다는 오래된 규범이 있다. 커넥톰은 그 규범이 디지털 시대에 어떤 모습이 되는지를 보여 준다. 계통 대신 배선도를, 우편 대신 내려받기를 나누는 것이다.
공유지는 공짜가 아니다. 지도를 교정한 수많은 시간, 데이터를 담아 두는 서버, 그것을 유지하는 사람들의 임금이 있어야 한다. 그 노동은 논문의 첫 저자 자리에 잘 오르지 않는다. 공유지가 오래 버티려면 그것을 쓰는 사람들이 그 존재를 기억하고, 비용을 나눠 져야 한다.
기계는 무엇을 빌려 가는가

같은 주 한국에서는 결이 다른 소식이 들려왔다. 10월 15일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올해 들어 미국과 영국 업체를 비롯한 해외 업체 10여 곳이 교보문고에 한국어 책을 대량으로 사겠다고 문의했다. 특정 도서도 분야도 정하지 않은 채 10만 종을 한 권씩 달라는 주문이었다. 교보문고는 AI 학습용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거래를 멈췄고,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실태 조사와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16일자 슬로우레터는 한 AI 기업의 소송 자료에서 한국어 책 수출 계약이 드러났다는 보도를 함께 전했다.
책과 커넥톰은 다르다. 책에는 저작권이라는 울타리가 있고, 열린 과학의 데이터는 처음부터 울타리를 걷어내고 공개된 것이다. 그래서 질문의 모양도 다르다. 책의 경우 허락과 보상이 쟁점이라면, 열린 데이터의 경우 쟁점은 돌려받음이다. 누구나 쓰라고 내놓은 것을 쓰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다만 그것으로 만든 것이 다시 공유지로 돌아오는지, 그 공유지를 유지하는 비용에 무엇이 보태지는지는 물을 수 있다.
나는 공개를 후회하자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열린 데이터의 가치는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쓰인다는 데 있다. 파리 눈의 배선이 피부질환 사진을 분류하게 될 줄은 지도를 그린 사람들도 몰랐을 것이다. 그 뜻밖의 쓰임이야말로 공개의 보상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 보상이 한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 것이다. 커넥톰으로 만든 모델의 코드와 가중치가 공개되고, 그 데이터를 쓰는 기업이 공용 인프라에 무언가를 보태는 관행이 자리 잡는다면, 파리방의 규범은 기계의 시대에도 살아남을 것이다. 이 부분은 기사와 논문에 없는 나의 제안이다.
다시 현미경 앞으로 돌아간다. 붉은 겹눈의 육각형 무늬는 백 년 전에도 지금도 같은 모양이다. 달라진 것은 그 눈을 들여다보는 존재가 이제 사람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계가 파리의 눈을 빌려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면, 우리는 그 눈을 그려 준 공동체를 기계가 기억하게 만들어야 한다. 공유지에서 자란 것은 공유지로 돌아와야 한다.
보통 과학자
출처
- Li Z. et al. From the Drosophila Visual Connectome to General-Purpose Computer Vision. arXiv:2610.08418 (2026.10.6). https://arxiv.org/abs/2610.08418
- “교보문고에 AI 학습용 의심 도서 대량 구매 문의…출판계 대응 나서”. 세계일보 (2026.10.15). https://www.segye.com/newsView/20261015512756
- “다시 살아난 AI 거품론…” 슬로우레터 10월16일. 슬로우뉴스 (2026.10.16). https://slownews.kr/168017
- The Transmitter 데일리 뉴스레터, “How new technologies can bring primatologists and systems neuroscientists together” (2026.10.15). ‘Virtual vision’ 항목. https://www.thetransmitter.org/nonhuman-primates/how-new-technologies-can-bring-primatologists-and-systems-neuroscientists-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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