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Flyandbee, 김우재 (2014-)

15년이라는 시간: 초파리 방에서 장기 연구비를 생각하다

TL;DR

  • 중국은 청년 연구자에게 15년을 걸었다. 중국 국가자연과학기금위원회(NSFC)가 35세 미만(여성은 38세 미만) 연구자 44명을 최대 15년 장기 지원의 첫 대상자로 뽑았다. 5년마다 심사해 연장하는 방식이고, 위원회 책임자는 연구자에게 바라는 것이 ‘연구실에 머무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 한국의 장기 과제는 1.2%다. 같은 주 국정감사에서는 국내 장기 지원 과제가 전체의 1.2%뿐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여야는 장기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 한목소리를 냈지만, 무엇을 얼마나 오래 어떻게 지원할지에 대한 설계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 초파리유전학자의 결론. 장기 연구비의 핵심은 기간의 길이보다 평가의 리듬이다. 소수에게 큰돈을 오래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많은 연구실이 실패를 기록하고 나누며 버틸 수 있는 시간 구조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

초파리 연구실의 달력은 열흘 단위로 돌아간다. 25도 배양기에서 알이 어른 파리가 되기까지 대략 열흘이 걸리기 때문이다. 스톡을 새 바이알로 옮기고, 교배를 걸고, 자손을 세는 일정이 모두 그 리듬에 맞춰 짜인다. 그래서 연구실 벽에 붙은 교배 일정표의 한 칸은 하루가 아니라 한 세대다.

그런데 연구비의 달력은 전혀 다른 리듬으로 돌아간다. 1년마다 연차 평가가 있고, 3년이나 5년이면 과제가 끝난다. 끝나기 한참 전부터 다음 과제를 써야 한다. 이번 주 두 소식이 이 두 달력의 어긋남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하나는 중국이 젊은 과학자에게 15년짜리 연구비를 주기 시작했다는 소식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국정감사에서 나온 ‘1.2%’라는 숫자다.

연구실에만 있어 달라는 조건

메디포뉴스가 21일 전한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의 브리핑에 따르면, 중국 NSFC는 젊은 연구자에게 최대 15년 동안 연구비를 주는 장기 지원 제도의 첫 대상자 44명을 선정했다. 대상은 35세 미만, 여성은 38세 미만이다. 처음 5년을 지원하고, 이후 두 차례 심사를 통과하면 5년씩 늘어난다. 처음부터 15년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선정 결과는 9월 선전에서 열린 포럼에서 위원회 책임자인 더우셴캉 주임이 발표했고, 44명 가운데 9명은 중국 밖에서 온 연구자라고 한다.

전자신문의 이달 초 보도를 보면 이 제도는 기존 청년과학기금 A형 안에 만든 별도의 트랙이고, 지원 규모는 5년이 지날 때마다 두 배로 커진다. 새 트랙의 정확한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영국 고등교육 매체 Times Higher Education은 더우 주임이 연구자에게 요구하는 유일한 성과 지표가 연구실에 있느냐는 것이라고 전했고, 한 영국 학자는 이를 중국이 실패에 더 관대해지고 있다는 신호로 읽었다.

나는 이 말이 과학자에게 얼마나 달콤하게 들리는지 안다. 연구실에만 있어 달라는 말은 논문 편수나 피인용 지수로 사람을 재지 않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동시에 나는 그 신뢰가 아주 좁은 문을 통과한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는 점도 함께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뒤에서 다시 이야기하겠다.

긴 연구비를 고민하는 것은 중국만이 아니다. 같은 브리핑은 유럽연구위원회의 새 프로그램 ERC 플러스가 과제당 최대 700만 유로를 최대 7년 동안 지원하고, 미국 HHMI의 프리먼 흐라보스키 프로그램이 처음 5년에 한 번 갱신하면 최대 10년까지 젊은 연구자를 지원한다고 소개했다. 기간과 방식은 조금씩 달라도 방향은 비슷하다. 연구의 시간을 과제의 시간보다 길게 잡으려는 것이다. 나는 이 흐름이 과학 행정이 오랫동안 잊고 있던 상식을 되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1.2%의 나라

같은 주 대전 KAIST에서 열린 국회 과방위 국정감사에서는 반대편의 숫자가 나왔다. 머니투데이에 따르면 최형두 의원은 국내 장기 지원 연구 과제가 전체의 1.2%뿐이라며, 이것이 한국에서 노벨과학상이 나오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했다. 그가 비교 대상으로 든 것은 미국 HHMI 연구자 프로그램과 일본의 세계 최고 수준 연구거점(WPI) 프로그램이다. 황정아 의원은 지난 정부 시기 기초연구 과제 선정률이 이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장기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여야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헬로디디의 현장 기사는 같은 국감을 다르게 기록했다. 지표를 혼동한 질의와 정치 공방이 오가는 사이, PBS 폐지 이후 출연연을 어떻게 운영할지 같은 큰 설계의 질문은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부가 낸 2027년 R&D 예산안은 39조5000억 원으로 올해보다 11.2% 늘었다. 돈은 늘었는데, 그 돈이 흐르는 시간의 단위에 대한 이야기는 드물었다.

같은 날 다른 숫자도 하나 나왔다. 2021년부터 올해 8월까지 4대 과학기술원을 중도에 떠난 학생 2933명 가운데 14.2%가 의약학 계열로 진학했다는 자료다. 나는 이 두 숫자가 같은 문제의 두 얼굴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연구자의 삶이 3년짜리 과제 사이를 건너뛰는 일로 보일 때, 젊은 사람들이 더 길고 확실한 미래를 약속하는 쪽으로 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기사가 아니라 나의 해석이다.

15년은 파리 550세대다

초파리유전학자의 버릇대로 15년을 세대로 바꿔 보았다. 한 세대를 열흘로 잡으면 15년은 대략 550세대다. 사람의 한 세대를 25년으로 치면 만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다. 초파리 연구실에게 15년은 단순히 긴 시간이 아니라, 거의 다른 차원의 실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한 계통을 수백 세대 동안 키우며 진화를 관찰할 수도 있고, 한 번의 돌연변이 탐색에서 시작해 그 유전자의 기능을 끝까지 따라갈 수도 있다.

초파리유전학의 역사도 긴 시간 위에 서 있다. 토머스 헌트 모건의 컬럼비아대학 파리방은 1910년 무렵 흰 눈 돌연변이 수컷을 발견한 뒤로 십수 년 동안 같은 방에서 같은 파리를 다뤘다. 알프레드 스터티번트가 학부생 시절 첫 유전자 지도를 그린 것도, 캘빈 브리지스가 염색체와 유전의 관계를 증명해 간 것도 그 방에서였다. 내가 아는 한 모건 연구실은 카네기 연구소의 지원을 오래 받았고, 브리지스는 그 지원 덕분에 대학의 강의 부담 없이 평생 파리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파리방이 오래 버틴 이유를 돈의 길이만으로 설명하고 싶지 않다. 그 방에서는 돌연변이 계통이 공유되었고, 실패한 교배도 기록으로 남았다. 오늘날 전 세계 초파리 연구실이 스톡센터에서 수만 계통을 주문해 쓰는 것도 그 전통의 연장이다. 장기 연구의 본질은 한 사람이 오래 버티는 것이 아니라, 기록과 재료가 쌓이고 나뉘는 데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긴 연구비의 그늘

이제 앞에서 미뤄 둔 이야기를 하자. 44명은 중국의 젊은 연구자 전체에 비하면 아주 작은 숫자다. 중국은 이미 2023년에도 청년 연구비를 5년 단위로 연장하며 상위 소수에게 15년간 큰돈을 몰아주는 방안을 내놓았는데, 당시에도 중국 안에서 극소수에게만 해당돼 실질적 의미가 제한적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Times Higher Education은 이번에도 해외 기반 선정자가 9명에 그쳤고, 엄격한 거주 의무와 데이터 관리 규정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고 전했다.

한국이 이 소식에서 배워야 할 것이 ‘HHMI나 중국처럼 소수의 별에게 오래 주자’라면, 나는 그것이 절반의 교훈이라고 본다. 소수에게 길고 큰 연구비를 주고 나머지 다수에게는 여전히 짧은 과제를 두고 다투게 하면, 경쟁은 줄지 않고 오히려 더 높은 곳으로 옮겨 갈 뿐이다. 장기 지원이 별을 키우는 제도가 될지, 땅을 기름지게 하는 제도가 될지는 기간보다 그 돈이 얼마나 넓게 퍼지는가에 달려 있다. 이것 역시 나의 해석이다.

평가의 리듬도 문제다. 5년마다 심사가 있다면, 그 심사가 무엇을 보느냐가 15년의 성격을 정한다. 연구실에 있었느냐를 묻겠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실패한 실험과 버려진 가설도 성과로 기록할 방법이 있어야 한다. 파리방의 노트처럼 말이다.

연구실에만 있어 달라는 말은 과학자가 들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말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연구실에 있다는 것은 혼자 있다는 뜻이 아니다. 15년을 소수의 별에게 거는 나라와 1.2%의 과제를 두고 다투는 나라 사이에서, 나는 세 번째 길을 생각한다. 많은 연구실에 지금보다 조금 더 긴 숨을 주고, 그 숨으로 쌓은 기록과 재료를 함께 쓰게 하는 길이다.

오늘도 배양기 안에서는 열흘 뒤 깨어날 다음 세대가 자라고 있다. 그 리듬에 맞춰 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대한 상금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끝까지 지켜볼 수 있다는 확신이다.

보통 과학자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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