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Flyandbee, 김우재 (2014-)

나라가 필요로 하는 곳: 하얼빈에서 중국과기대 소년반 르포를 읽다

  • 중국과기대는 과학 영재를 ‘나라의 씨앗’으로 기른다. 헬로디디 특별취재팀이 허페이의 중국과학기술대학(USTC)을 찾아 쓴 르포에 따르면, 교정에는 ‘나라가 필요로 하는 곳이 우리가 갈 방향’이라는 구호가 걸려 있고 졸업생의 70% 이상이 국방과 국가 연구기관으로 간다. 1978년에 시작한 소년반은 대입 시험 없이 어린 영재를 뽑았고, 교수들은 아이들의 빨래와 바느질까지 챙겼다.
  • 돌봄과 존경은 진짜이고, 그 방향은 국가가 정한다. 상금으로 학생 모두에게 계산척을 사 준 첸쉐썬, 거리 이름이 된 과학자들, 학생들이 무대에 올리는 과학자 일대기 연극. 과학자를 존중하는 문화는 부러울 만하다. 그러나 그 존중은 대체로 ‘국가에 헌신한 과학자’를 향해 있다.
  • 초파리유전학자의 결론. 한국이 이 르포에서 가져와야 할 것은 애국의 구호가 아니라 사람을 돌보는 촘촘함이다. 과학을 국가의 도구로만 기르면 돌봄도 결국 도구가 된다. 국가의 구호 없이 호기심과 나눔으로 세대를 이어 온 파리방의 전통이 그 빈자리를 채울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TL;DR

초파리 연구실의 하루에는 빠지지 않는 일이 하나 있다. 파리 병을 넘기는 일이다. 먹이가 마르고 곰팡이가 피기 전에 파리들을 새 병으로 옮겨 주어야 계통이 끊기지 않는다. 화려한 실험은 아니지만, 누군가 매주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연구실의 시간이 멈춘다. 그래서 이 일은 대개 연구실에 막 들어온 학생이 가장 먼저 배운다. 파리를 돌보는 법을 익히면서 학생은 연구실이 무엇으로 굴러가는지를 배운다.

오늘 받은 헬로디디 뉴스레터에 중국과학기술대학 르포가 실렸다. 대덕넷 특별취재팀이 안후이성 허페이 캠퍼스를 찾아 이 대학이 과학 영재를 어떻게 길러 왔는지를 취재한 기사다. 교수들이 어린 학생들의 빨래와 바느질까지 챙겼다는 대목에서 읽기를 멈췄다. 중국의 대학에서 연구실을 꾸리는 나에게 이 기사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서 감탄과 함께 몇 가지 질문이 남았다.

국지소수 오배소향

르포가 첫머리에 놓은 것은 교정의 현수막이다. 國之所需 吾輩所向, 나라가 필요로 하는 곳이 우리가 갈 방향이라는 뜻이다. 기사에 따르면 1958년에 문을 연 이 대학의 초기 세 기수 졸업생 가운데 약 85%가 국방 분야로 갔고, 지금도 졸업생의 70% 이상이 국방과 국가 연구기관으로 진출한다. 최근에는 양자정보, 집적회로, 우주탐사 같은 전략 산업으로 가는 비율이 늘었다고 한다. 캠퍼스 채용 행사에는 항공우주, 원자력, 병기 분야의 국유기업들이 이름을 올린다.

기자는 이 장면을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는 한국과 대비되는 모습으로 인상 깊게 보았다고 적었다. 나도 그 대비가 실감 난다. 다만 나는 이 구호를 애국심이라는 감정의 문제로만 읽지 않는다. 이것은 과학자가 걸어갈 경로를 국가가 설계하는 체제의 문장이다. 어떤 연구가 중요한지, 재능 있는 젊은이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국가의 필요가 먼저 정한다. 그 체제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놀라운 결과를 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그 체제를 본받자고 말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빨래하는 교수, 계산척을 선물한 과학자

르포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은 돌봄의 이야기다. 중국과기대는 1978년, 개혁개방과 함께 11세에서 16세 사이의 신동들을 대입 시험 없이 뽑아 소년반을 만들었다. 교수들은 아이들의 빨래와 바느질을 돌보고, 계절마다 건강을 살피고, 방한복과 감기약을 챙겼다. 1985년에는 정규 입시를 거친 상위권 학생들로 ‘링링반’을 꾸렸다. 기사는 이 모델이 칭화대 야오반, 베이징대 튜링반 같은 영재 과정의 본보기가 되었다고 전한다.

기사가 전하는 일화들은 이 돌봄이 오래된 전통임을 보여 준다. 초대 총장 궈모뤄는 1960년 설에 고향에 가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자신의 인세로 명절 음식과 세뱃돈을 마련했고, 그 전통은 지금도 설 음식 세트로 이어진다. 로켓 공학자 첸쉐썬은 농촌 출신 학생의 다수가 계산척을 살 형편이 못 된다는 것을 알고, 상금으로 수강생 모두에게 계산척을 사 주었다. 기초 강의는 원사급 교수가 맡고, 휴강이나 교수의 지각은 ‘사고’로 다룬다고 한다.

나는 이 대목이 부럽다. 한국 대학에서 학부 1학년의 기초 강의를 가장 뛰어난 연구자가 맡는 일이 얼마나 될까. 대학원생의 인건비조차 제도로 지켜 줘야 하는 곳에서, 학생의 생활을 돌보는 일은 대개 교수 개인의 성품에 맡겨진다. 중국과기대의 이야기는 돌봄을 개인의 미덕이 아니라 기관의 문화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것이 내가 이 르포에서 가장 배우고 싶은 점이다.

동상과 거리, 그리고 연극 한 편

캠퍼스 곳곳에는 과학자들의 동상이 서 있다. 첸쉐썬, 궈모뤄, 2대 총장 옌지츠, 원사 첸린자오, 중국 컴퓨터 개척자 샤페이쑤. 새 캠퍼스의 길에는 인공위성 사업의 기틀을 놓은 자오주장, 수학자 화뤄겅, 가속기 개척자 자오중야오의 이름이 붙었다. 해마다 학기 초에는 학생과 교원이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한 과학자 일대기 연극을 신입생에게 보여 준다. 올해 작품은 자오중야오의 이야기를 담은 「종자(種子)」였다.

기사에 따르면 자오중야오는 1946년 미국의 핵실험을 참관한 뒤 가속기 없이는 핵물리 연구를 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적은 돈으로 미국 대학들에서 몇 해에 걸쳐 부품을 모았다. 1950년 귀국길에 일본에서 미군에 붙잡혀 갇혔다가 국제 학계의 구명 운동으로 풀려났고, 되찾은 부품으로 1955년 중국 최초의 정전가속기를 만들었다. 그 가속기는 지금 학교 역사관에 있다.

과학자의 이름이 거리 이름이 되는 사회. 과학을 문화로 보아야 한다고 오래 말해 온 나에게 이 장면은 반갑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누구의 이름이 거리에 붙는지를 본다. 동상과 연극의 주인공은 대부분 ‘양탄일성’으로 상징되는 국방 과학의 영웅들, 그리고 조국으로 돌아온 과학자들이다. 그것은 과학이라는 활동 자체에 대한 존경이라기보다, 국가에 헌신한 과학자에 대한 존경에 가깝다. 두 존경은 많이 겹치지만 같지 않다. 이것은 나의 해석이다.

돌아오는 사람들과 파리방

르포의 마지막 부분은 귀환의 이야기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에 미국으로 간 졸업생들은 기업과 대학에서 자리를 잡았고, 여름마다 허페이로 돌아와 반도체와 AI, 양자 특강을 열었다. 미국에 동문 기금을 세워 장학금과 젊은 교수의 연구비를 댔고, 후배들을 인턴과 박사후연구원으로 받았다. 2010년대 이후에는 국가 인재 계획을 계기로 귀국하는 사람이 늘었다. 기사는 AI 칩 기업 캠브리콘의 창업자 형제도 소년반 출신이라고 전한다. 마침 하루 전 국내 매체에는 캠브리콘의 3분기 매출이 1년 전보다 두 배 넘게 늘었다는 소식이 실렸다. 엔비디아 칩을 국산으로 대체하려는 흐름이 배경으로 꼽혔다.

한 대학이 기른 사람이 떠났다가 돌아와 다시 학교와 산업을 키우는 순환. 기자는 이것을 사랑이 인재를 키우고 인재가 학교와 국가를 키우는 선순환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 순환이 실재한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묻고 싶다. 그 바퀴를 돌리는 힘이 국가의 필요뿐이라면, 국가가 당장 필요로 하지 않는 질문은 어디로 가는가.

한국에도 비슷한 시도는 있다. 해외의 한인 과학자를 불러들이겠다는 정부 사업이 해마다 발표된다. 그러나 돌아오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연봉과 연구비만이 아니다. 떠나 있는 동안 그를 기억해 준 공동체, 돌아와서 다시 후배를 돌볼 수 있는 시간과 자리가 필요하다. 중국과기대 동문들이 여름마다 허페이로 돌아와 특강을 열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보기에 학교가 먼저 그들을 돌보았기 때문이다. 이것 역시 나의 해석이다.

여기서 나는 1910년대 컬럼비아 대학의 작은 방을 떠올린다. 토머스 헌트 모건과 학생들이 우유병에 초파리를 키우던 파리방이다. 그 방의 젊은이들도 스승에게서 많은 것을 받았지만, 그들을 묶은 끈은 국가가 아니라 질문이었다. 그들은 돌연변이 계통을 서로 나누었고, 그 나눔은 방 밖으로 퍼져 전 세계 초파리 연구자들의 관행이 되었다. 지금도 초파리 연구자들은 공공 스톡 센터를 통해 계통을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주고받는다. 국가의 구호 없이도 한 공동체가 세대를 이어 사람과 지식을 길러 낼 수 있다는 증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중국과기대의 르포를 읽고 한국도 ‘애국 과학’을 배워야 한다고 결론 내릴 필요는 없다. 우리가 가져올 것은 구호가 아니라 촘촘함이다. 가장 뛰어난 연구자가 가장 어린 학생을 가르치고, 학생의 생활을 기관이 함께 챙기고, 과학자의 이름을 공동체가 기억하는 문화. 그 문화가 국가의 필요가 아니라 앎에 대한 존중 위에 선다면 더 오래 갈 것이다.

오늘 저녁에도 누군가는 파리 병을 넘길 것이다. 그 학생이 나라가 필요로 해서가 아니라 파리가 궁금해서 그 자리에 있기를, 나는 바란다.

보통 과학자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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