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L;DR
- 꿀벌은 꽃 위에서 이긴다. 영국 케임브리지 주변 다섯 곳에서 두 해 동안 93시간을 관찰한 연구에 따르면, 꿀벌은 다른 꽃가루받이 곤충과의 다툼에서 더 자주 이겼고, 이긴 경우의 다섯 번에 한 번 이상은 상대를 몸으로 밀어내거나 쫓아냈다. 꿀벌이 많은 곳에는 뒤영벌과 단독성 벌, 꽃등에가 적었다.
- 문제는 꿀벌이 아니라 우리가 풀어 놓은 수다. 꿀벌은 사람이 기르는 곤충이다. 영국의 등록 양봉가는 2010년 1만 9천 명에서 4만 7천 명으로 늘었다. 연구진은 더위가 꽃꿀을 줄이면 다툼이 더 잦아질 수 있다고 본다. 올가을 한국의 가뭄과 이른 낙엽 소식이 겹쳐 읽힌다.
- 초파리유전학자의 결론. 꽃은 공유지다. 한 종을 ‘살리자’는 선의가 공유지의 다른 이용자들을 밀어낼 수 있다. 파리방이 가르쳐 준 공유지의 교훈은 나누는 것만큼 몇이 쓰는지를 살피는 일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을의 초파리 연구실에는 손님이 든다. 창문 틈으로 들어온 야생 초파리가 먹이 냄새를 맡고 실험 병 근처를 맴돈다. 우리는 그 파리들을 조심스럽게 쫓아낸다. 병 안의 계통과 섞이면 몇 년 쌓은 유전적 배경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같은 종이지만 한쪽은 길러진 파리이고 다른 쪽은 들의 파리다. 연구실의 질서는 이 둘을 갈라놓는 데서 시작한다.
오늘은 그 반대 방향의 이야기를 읽었다. 사람이 길러 들판에 풀어 놓은 곤충이 야생의 친척들을 꽃에서 밀어낸다는 연구다. 영국 앵글리아러스킨 대학 연구진이 학술지 Ecological Entomology에 실은 논문을 소개한 보도자료의 제목은 꿀벌이 다른 벌을 ‘괴롭힌다’였다. 자극적인 제목이지만, 들여다보면 괴롭힘보다 훨씬 오래된 질문이 들어 있다. 여럿이 함께 쓰는 자원을 누가, 얼마나 써도 되는가.
93시간의 관찰

연구는 단순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연구진은 케임브리지와 그 주변에서 꿀벌 군집이 300미터 안에 있는 다섯 곳을 골라, 두 해 동안 블랙베리 덤불의 꽃과 담쟁이(아이비) 꽃을 모두 93시간 동안 지켜보았다. 꽃 위에서 곤충 두 마리가 마주칠 때마다 누가 이겼는지, 누가 물러났는지, 함께 머물렀는지를 기록했다.
결과는 한쪽으로 기울었다. 꿀벌은 다른 곤충과의 만남에서 더 많이 이겼다. 블랙베리에서는 꿀벌 밀도가 두 배가 될 때 뒤영벌 수가 14% 줄어드는 관계가 보였고, 담쟁이에서는 꿀벌이 많을수록 단독성 벌과 꽃등에가 적었다. 다른 곤충들은 블랙베리에서 28%, 담쟁이에서 36%의 만남에서 꿀벌을 피했다. 꿀벌이 이긴 만남 가운데 적어도 20%에서는 상대를 몸으로 밀어내거나 쫓아냈다. 공격을 먼저 건 쪽도 대개 꿀벌이었다. 예외는 2001년 영국에 처음 기록된 외래종 담쟁이벌이었는데, 이 단독성 벌은 가끔 꿀벌을 이겼다.
나는 이 연구의 소박함이 좋다. 유전체 분석도, 신경 기록도 없다. 꽃 앞에 앉아 시간을 들여 본 기록이다. 다만 소박한 만큼 한계도 분명하다. 관찰 연구이므로 꿀벌이 다른 벌을 줄였다고 말할 수는 없고, 꿀벌이 많은 곳에 다른 벌이 적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식물 두 종, 한 지역, 다섯 곳의 이야기라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보도자료의 ‘괴롭힘’은 연구가 잰 것이 아니다. 연구가 잰 것은 꽃을 둘러싼 경쟁이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다. 담쟁이벌의 예외는 흥미롭다. 영국에 들어온 지 사반세기 남짓 된 외래 단독성 벌이 꿀벌과 맞서 이기기도 한다는 것은, 경쟁의 결과가 종의 이름표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꽃의 종류, 계절, 몸집,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자리에 몇 마리가 있는가가 함께 결과를 만든다. 생태학이 늘 ‘맥락’이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다.
이런 관찰은 요즘 생물학에서 점점 귀해지고 있다. 연구비 심사에서 ‘꽃 앞에 앉아 93시간을 보겠다’는 계획서는 첨단 장비를 쓰겠다는 계획서보다 설득력이 약해 보이기 쉽다. 하지만 생태학의 많은 질문은 결국 누군가 현장에서 세어 준 숫자에서 시작한다. 정책이 기댈 숫자도 대개 그런 곳에서 나온다.
길들여진 곤충

꿀벌을 생각할 때 우리는 흔히 야생의 생명을 떠올린다. 하지만 서양종 꿀벌은 사람이 오랫동안 길러 온 곤충이다. 벌통을 놓는 곳도, 군집의 수도 사람이 정한다. 보도자료에 따르면 영국의 등록 양봉가는 2010년 1만 9천 명에서 최근 4만 7천 명으로 늘었다. 벌을 살리자는 운동이 도시 옥상과 공원에 벌통을 늘린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여기서 선의가 꼬인다. ‘벌이 사라진다’는 경고를 들은 사람들은 벌통을 놓는다. 그런데 사라지는 벌의 다수는 꿀벌이 아니라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야생벌들이다. 기르는 꿀벌을 늘리는 일이 야생벌을 돕는 일과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이 연구가 던지는 불편한 메시지는 그것이라고 나는 읽는다. 이것은 나의 해석이며, 이 연구 하나로 도시 양봉을 탓할 수는 없다.
초파리 연구자에게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우리가 다루는 실험실 초파리도 길러진 생물이다. 실험실 계통은 들의 파리와 다른 역사를 산다. 그래서 우리는 연구실 파리의 행동을 자연의 행동으로 곧장 옮기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길들여진 생물을 이야기할 때는 그 생물이 놓인 자리, 곧 사람이 만든 환경을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
가뭄 든 가을의 꽃

연구진은 날이 따뜻할수록 경쟁이 잦아졌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더위가 꽃꿀 생산을 줄이면 같은 양의 꽃을 두고 더 많은 입이 다투게 된다는 설명이다. 연구진 스스로도 이것은 검증된 결과가 아니라 가능성이라고 밝혔다. 기온이 오르면 꿀벌이 둥지를 떠나 먹이를 찾는 일이 크게 늘었다는 이전 연구도 함께 인용됐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같은 주말 국내 신문에 실린 가을 소식을 떠올렸다. 슬로우레터가 전한 조선일보 기사에 따르면 올해 9월 전국 강수량은 평년의 17% 수준이었고, 8월 말부터 몇몇 나무에서 단풍이 들기도 전에 잎이 떨어지는 이른 낙엽이 관찰됐다. 국립수목원 연구자는 폭염과 가뭄, 병해충이 겹친 결과로 보았다. 영국의 블랙베리와 한국의 가로수는 다른 이야기지만, 꽃과 잎이 기후의 영향을 받을 때 그 위에서 살아가는 곤충의 경쟁도 함께 바뀐다는 점에서 나는 두 소식을 나란히 놓고 싶어진다. 둘을 잇는 것은 나의 추론이다.
중앙일보에 실린 이정모 관장의 칼럼은 버릴 잎을 왜 굳이 붉게 물들이는지 묻는다. 노란색은 엽록소가 사라지며 드러나지만, 붉은색은 식물이 일부러 새로 만든다. 진딧물 같은 곤충에게 보내는 신호라는 설명도, 남은 양분을 처리하는 과정이라는 설명도 있지만 아직 정답은 없다고 한다. 식물과 곤충은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며 함께 진화해 왔고, 우리는 그 대화의 일부만 엿듣고 있다.
꽃이라는 공유지

꽃은 공유지다. 꽃꿀과 꽃가루는 그 꽃을 찾는 모든 곤충이 나눠 쓰는 자원이다. 공유지에 한 이용자를 대량으로 풀어 놓으면 다른 이용자의 몫이 줄어든다. 이것은 경제학 교과서의 ‘공유지의 비극’과 닮았지만 조금 다르다. 꿀벌 하나하나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비극은 벌통의 수를 정하는 사람의 결정에서 온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파리방을 생각했다. 1910년대 모건의 연구실에서 시작된 초파리 연구 공동체는 돌연변이 계통을 서로 나누는 문화로 유명하다. 그 나눔 덕분에 초파리는 전 세계 연구실의 공유지가 되었다. 그러나 공유지는 나누는 것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누가 얼마나 쓰는지, 무엇이 고갈되고 있는지를 살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스톡 센터가 계통을 관리하고, 연구자들이 받은 계통의 출처를 밝히는 관행도 그런 살핌의 일부다.
꿀벌을 둘러싼 논쟁도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벌을 살리자는 구호는 아름답지만, 어떤 벌을, 어디서, 얼마나 살릴지는 생태학의 질문이다. 벌통을 늘리는 정책이나 캠페인이 있다면, 그 지역 꽃이 얼마나 많은 입을 먹일 수 있는지부터 재야 한다. 이런 계산은 화려하지 않다. 93시간 동안 꽃 앞에 앉아 있는 일처럼.
초파리 방에서 나는 길러진 파리와 들의 파리를 갈라놓는 일을 한다. 들판에서는 그 반대의 일이 필요하다. 길러진 곤충이 들의 곤충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자리를 나누는 일이다. 과학이 그 몫을 정할 수는 없지만, 몫을 정하는 대화에 필요한 숫자를 꽃 앞에서 세어 줄 수는 있다.
올가을 붉게 물든 잎 아래에서, 꽃을 찾는 작은 벌들의 몫을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다.
보통 과학자
출처
- Honey Bees Are Bullying Other Bees, Scientists Discover. ScienceDaily (Anglia Ruskin University 보도자료) (2026.10.22). https://www.sciencedaily.com/releases/2026/10/261021231227.htm
- Buckle VA, Brown PMJ, Carter T, Ings TC. Honeybees directly outcompete other flower visitors through interference competition on shared resource. Ecological Entomology (2026). https://doi.org/10.1111/een.70139
- 단풍 들기도 전에 잎이 떨어진다. 조선일보 (2026.10.24) · 버릴 잎을 왜 빨갛게 물들일까. 중앙일보 (2026.10.25). 슬로우레터 10월26일 경유. https://slownews.kr/168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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