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발견의 단서를 발견하고 유레카를 외치곤 한다. 오타와에서 연구비만 쓸 때는 거의 경험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하얼빈에선 자주 만나고 있다. 시작은 이랬다. 교미시간을 조절하는 수컷의 생식기 주변 근육이 혹시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으로, 초파리 수컷의 해부도를 찾다가, 초파리 마이크로CT 사진을 찾았다는 이야기는 어제 했다. 그 사진을 찾을 때, 초파리의 Octopamine/Tyramine 뉴런 전체를 해부한 연구진의 논문도 찾았는데, 거기서 이런 그림을 봤다.
Pauls, D., Blechschmidt, C., Frantzmann, F., Jundi, B. el & Selcho, M. A comprehensive anatomical map of the peripheral octopaminergic/tyraminergic system of Drosophila melanogaster. Sci. Rep. 8, 15314 (2018).
노란색으로 표시된 근육이 ‘로렌스의 근육 muscle of Lawrence, moL’이다. 이런 근육이 존재하는지 전혀 몰랐던 나는 바로 공부를 시작했고, 1984년 피터 로렌스 Peter A. Lawrence와 폴 존스턴 Paul Johnston이라는 초파리 유전학자가 CELL지에 초파리 근육의 유전학적 특수화 패턴에 대한 논문을 쓰면서, 이 근육에 로렌스의 근육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걸 알게 됐다.
Lawrence, P. A. & Johnston, P. The genetic specification of pattern in a drosophila muscle. Cell 36, 775–782 (1984).
Lawrence, P. A. & Johnston, P. The muscle pattern of a segment of Drosophila may be determined by neurons and not by contributing myoblasts. Cell 45, 505–513 (1986).
저기 보이는 m이라는 글자 옆의 수직으로 놓인 두꺼운 두개의 근육이 바로 로렌스의 근육이다. 로렌스의 근육이 알려지고 나서, 이 근육이 수컷 초파리에게만 존재한다는게 몇몇 초파리 유전학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당시는 초파리의 성분화 메커니즘이 fruitless와 double sex 라는 유전자들의 연쇄작용에 의해 일어난다는 발생유전학적 발견으로 생물학계가 꽤나 흥분하고 있던 때이기도 했다. 2017년 생체시계 유전자의 발견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인물 중 한 명인 제프 홀 Jeffrey Hall은 괴짜 과학자로 유명한데, 과학계가 임팩트 팩터와 연구비에 미쳤다고 일찍 은퇴하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놀러다닌것은 물론, 남북전쟁에 대한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노벨상은 좋다고 받은걸 보면, 희한하긴 하다. 내 멘토인 유넝은 제프 홀 이야기만 나오면 인상을 찌푸리곤 했다. 둘이 시모어 벤저 랩에서 함께 생활하던 때가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던 듯 싶다.
여하튼 이 제프 홀이 로렌스의 근육이 성적이형성 Sexual dimorphism을 나타내는 이유가 Fru 단백질 때문이란걸 밝혀서 논문을 낸게 1991년이었다. 이 논문에서 제프 홀은 fru 돌연변이들을 이용해 로렌스 근육이 fru의 유무에 따라 성적이형성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밝혔다
Gailey, D. A., Taylor, B. J. & Hall, J. C. Elements of the fruitless locus regulate development of the muscle of Lawrence, a male-specific structure in the abdomen of Drosophila melanogaster adults. Dev. (Camb., Engl.) 113, 879–90 (1991).
1996년엔 제프 홀이 로렌스 근육에 대한 진화유전학 논문을 한편 발표하는데, 초파리 수십 종을 해부해서 로렌스 근육의 유무를 조사해 발표한 것으로, 이 근육이 어떤 진화적 패던이나 방향성 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는게 결론이었다.
Gailey, D. A. et al. The muscle of Lawrence in Drosophila: A case of repeated evolutionary loss. Proc. Natl. Acad. Sci. 94, 4543–4547 (1997).
더 재미있는건 예전에 자넬리아 연구소에서 잠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본의 유명한 초파리 행동유전학자 다이스케 야마모토 Daisuke Yamamoto가 2000년에 새로운 fru 돌연변이를 이용해 암컷 몸에 로렌스 근육을 만드는데 성공한 논문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Usui-Aoki, K. et al. Formation of the male-specific muscle in female Drosophila by ectopic fruitless expression. Nat. Cell Biol. 2, 500–506 (2000).
이 논문들 외에도 일본 그룹의 논문이 한 두편 보이기는 하는데, 2000년 네이처 셀바이올로지 논문을 끝으로, 로렌스 근육에 대한 논문은 등장하지 않는다. 2018년 논문에 로렌스 근육이 언급은 되지만, 티라민 뉴런의 말단이 로렌스 근육에도 닿는다는 정도의 이야기 뿐이다. 그러니까, 이 근육은 초파리의 수컷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처음 확인된 이후에, Fru라는 단백질에 의해 수컷 선택적 발생이 운동신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게 알려지고 나서는, 초파리 유전학자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셈이다. 무려 23년 동안이나 말이다. 심지어 이 근육의 기능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오늘 내 공부를 화이트보드에 쓰며 학생들과 진지하게 프로젝트 계획을 짰다. 앞으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듯 싶다.
그나저나 자기 이름을 초파리 수컷의 근육 이름으로 지은 로렌스는 누구인가 굼금해 찾아보니, University of Cambridge에서 아직도 연구를 하는 것 같다.
그나저나 왜 근육 이름을 muscle of Lawrence라고 지었을까. 얼마전 살펴본 말피기소체 Malpighian tubule처럼 Lawrence muscle이라고 지어도 충분했을텐데 말이다. 아마도 1962년 전세계에서 유행했던 ‘아라비아의 로렌스 Lawrence of Arabia’의 패러디가 아니었을까 하는 합리적인 추측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