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Flyandbee, Woo Jae Kim (2014-), 김우재 (2014-)

얼음 속의 이름들: 34년 만의 단독 노벨상, 초파리 방에서 공동연구를 생각하다

TL;DR

  • 한 사람의 이름, 수백 명의 얼음. 2026년 노벨물리학상은 남극 얼음 속 중성미자 관측소 아이스큐브를 이끈 프랜시스 할젠 한 사람에게 돌아갔다. 34년 만의 단독 수상이지만, 그 검출기는 14개국 450명이 넘는 연구자가 함께 만들고 운영한다.
  • 상은 개인에게, 과학은 공동체에서. 노벨상의 ‘최대 세 사람’ 규칙은 거대 협력 연구의 시대와 자주 어긋난다. 하루 전 생리의학상을 두고도 수상에서 빠진 이름들이 다시 거론됐다.
  • 초파리유전학자의 결론. 파리방은 처음부터 여럿이 함께 쓰는 방이었다. 한국이 노벨상을 원한다면 수상자 후보를 고르기 전에, 20년을 버티는 공동 연구의 그릇부터 만들어야 한다.

초파리 방의 바이알에는 라벨이 붙어 있다. 유전형이 적히고, 날짜가 적히고, 대개는 그 계통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나 이니셜이 함께 적힌다. 스톡센터에서 받아 온 계통에도 처음 그것을 기증한 연구실의 이름이 따라온다. 그래서 오래된 계통 하나에는 여러 세대의 손이 겹쳐 있다. 누가 그 돌연변이를 처음 찾았는지, 누가 그것을 다른 염색체와 묶었는지, 누가 수십 년 동안 그 바이알을 새 먹이로 옮겨 담으며 살려 두었는지.

10월 6일 저녁(한국 시간),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프랜시스 할젠 한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 캠퍼스의 82세 물리학자로, 남극 얼음 속에 묻힌 중성미자 관측소 아이스큐브(IceCube)를 이끌어 온 사람이다. 물리학상이 한 사람에게만 돌아간 것은 34년 만이라고 한다.

나는 그 소식을 들으며 바이알의 라벨을 떠올렸다. 상은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지만, 남극의 얼음 속에는 수천 개의 센서와 수백 명의 이름이 묻혀 있다. 오늘은 그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얼음에 심은 5160개의 눈

중성미자는 전하가 없고 질량도 거의 없어서 다른 물질과 좀처럼 반응하지 않는다. 지구도 그냥 뚫고 지나간다. 그래서 ‘유령 입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런데 바로 그 성질 덕분에 중성미자는 우주 먼 곳의 소식을 거의 왜곡 없이 실어 나르는 전령이 된다. 빛은 먼지에 가리지만 중성미자는 곧장 온다. 문제는 그것을 붙잡는 일이다.

할젠은 1988년, 남극의 빙하 자체를 거대한 검출기로 쓰자는 생각을 내놓았다. 아주 드물게 중성미자가 얼음 속 원자와 부딪히면 뮤온 같은 입자가 생기고, 이 입자는 얼음 속에서 빛보다 빠르게 달리며 푸른 체렌코프 빛을 낸다. 투명한 얼음 깊숙이 빛 센서를 촘촘히 심어 두면 그 희미한 섬광을 기록할 수 있다.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할젠은 당시 자연 얼음의 광학적 성질을 잘 몰랐던 것이 오히려 끈기를 가능하게 했다는 취지로 돌아봤다. 모르는 것이 용기가 되는 순간이 과학에는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이스큐브다. 남극점 아래 1세제곱킬로미터의 얼음 속, 깊이 1450~2450미터 구간에 86가닥의 케이블을 내리고 5160개의 광센서를 매달았다. 건설은 2004년에 시작해 2011년에 끝났다. 2013년 연구진은 지구 대기 바깥에서 온 고에너지 중성미자의 첫 증거를 내놓았고, 이후 블레이자 TXS 0506+056(2017년)과 은하 NGC 1068(2022년)을 중성미자의 출처로 지목했다. 노벨위원회는 이 업적이 전자기파에 기대던 천문학 바깥에 중성미자 천문학이라는 새 분야를 열었다고 평가했다.

아이디어에서 첫 발견까지 25년이다. 한국일보는 그를 돈키호테 같은 집념의 과학자로 그렸다. 나는 그 비유가 절반만 맞다고 생각한다. 돈키호테 곁에는 산초 한 사람이 있었지만, 할젠 곁에는 수백 명이 있었다. 이것은 나의 해석이다.

세 사람의 상, 수백 명의 실험

헬로디디 보도에 따르면 아이스큐브 국제공동연구에는 14개국 450명이 넘는 과학자가 참여한다. 혹한 속에서 뜨거운 물로 얼음에 구멍을 뚫고 케이블을 내린 사람들, 남극의 겨울을 나며 장비를 지킨 운영 인력, 쏟아지는 데이터에서 진짜 신호를 걸러 내는 분석 그룹이 모두 그 안에 있다. 그들의 이름은 논문 저자 목록에 길게 이어지지만, 시상대에는 한 사람만 오른다.

노벨상은 한 분야의 상을 최대 세 사람까지만 나눠 받게 한다. 오늘날의 과학은 이 규칙과 자주 부딪힌다. 바로 하루 전 생리의학상이 광유전학에 돌아갔을 때도 Nature는 2013년 같은 업적에 주어진 유럽의 뇌과학상(브레인 프라이즈)이 여섯 명에게 돌아갔던 일을 상기시키며, 이번 수상에서 빠진 이름들을 짚었다. 수천 명이 참여한 중력파 검출에 물리학상이 주어졌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가 오갔다.

나는 이 규칙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상은 이야기를 필요로 하고, 이야기는 주인공을 필요로 한다. 할젠이 이 프로젝트를 처음 상상하고 30년 넘게 그 얼굴이었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다만 상의 형식이 과학의 형식으로 오해될 때 문제가 생긴다고 본다. 사회가 과학을 ‘천재 한 명이 무언가를 발견하는 일’로 기억하면, 정책도 천재 한 명을 찾아 키우는 방식으로 짜인다. 연구비는 스타 과학자에게 몰리고, 얼음에 구멍을 뚫는 사람들의 자리는 계약직으로 남는다. 이것은 나의 해석이다.

모건의 상금

초파리유전학의 역사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1933년 노벨생리의학상은 유전에서 염색체가 하는 역할을 밝힌 토머스 헌트 모건 한 사람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그 발견은 컬럼비아대학의 작은 실험실, 우리가 ‘파리방’이라고 부르는 방에서 나왔다. 앨프리드 스터티번트는 학부생 시절 유전자 사이의 거리를 재어 첫 유전자 지도를 그렸고, 캘빈 브리지스는 염색체 비분리 현상을 통해 유전자가 염색체 위에 있다는 강력한 증거를 내놓았다. 허먼 멀러도 그 방을 거쳐 갔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에 따르면 모건은 상금을 자신의 아이들과 스터티번트, 브리지스의 아이들 몫으로 나눴다. 상은 한 사람에게 왔지만 그는 그것이 방 전체의 일이었다는 것을 알았던 셈이다. 그 방에서는 누가 어떤 생각을 먼저 냈는지 따지기 어려울 만큼 말이 오갔고, 찾아낸 돌연변이는 누구든 쓸 수 있었다. 나는 그 습관이 이후 백 년 동안 초파리 연구자들이 계통과 정보를 거저 나누는 문화의 씨앗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방이 평화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멀러는 공로가 모건에게 쏠리는 것을 두고 오래 불만을 품었다고 알려져 있다. 공동체는 갈등이 없는 곳이 아니라, 갈등을 안고도 함께 일할 수 있는 규칙을 가진 곳이다. 〔필자 경험: 공동연구나 공동 저자 순서를 두고 고민했던 경험, 또는 계통을 나눠 준·받은 경험을 넣을 자리〕

오늘의 아이스큐브는 백 년 전 파리방을 아주 크게 키운 판본처럼 보인다. 수백 명이 하나의 검출기를 함께 쓰고, 데이터를 함께 읽고, 결과를 하나의 협력단 이름으로 낸다. 모건의 방은 책상 몇 개에 들어갔고, 할젠의 방은 1세제곱킬로미터의 얼음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20년을 버티는 돈

이 소식이 한국에서 조금 다르게 읽히는 이유가 있다. 이로운넷 보도에 따르면 중앙대와 성균관대 연구진이 아이스큐브 국제공동연구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성균관대는 2010년대부터 참여해 왔다. 한국의 중성미자 연구가 빈손인 것도 아니다. 영광 한빛원전에 설치한 RENO 실험은 2012년 중성미자 진동의 변환상수 θ13을 측정했고, 2022년에는 강원 정선의 지하 1000미터에 예미랩이 문을 열었다.

같은 기사는 남은 숙제도 적었다. 일본이 짓는 차세대 검출기 하이퍼카미오칸데에 한국이 내는 출연금은 12억 원으로, 2015~2016년에 약속한 200만 달러의 절반 수준이라는 것이다. 연구비가 대개 5년 단위로 끊기는 구조가 긴 호흡의 연구를 어렵게 한다는 지적도 함께 실렸다.

할젠의 아이디어가 첫 발견에 이르기까지 25년이 걸렸다. 한국의 연구비 제도에서 25년은 다섯 번의 과제 평가이고, 그사이 정부도 여러 번 바뀐다. 사흘 전 우리는 또 ‘한국은 언제 노벨상을 받느냐’는 질문을 들었다. 나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받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20년을 버틸 것인가. 이것은 나의 제안이다.

반론도 있다. 거대 국제 협력에 돈을 보태 봐야 한국이 주도권을 잡기 어려우니, 차라리 선택과 집중으로 독자적인 강점을 키우자는 시각이다. 일리가 있다. 다만 공동연구에 이름을 올리고 오래 머무는 일 자체가 사람과 기술을 기르는 방식이라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주도권은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대개 오래 머문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초파리 방의 바이알 라벨은 대개 손글씨다. 시간이 지나면 잉크가 번지고, 계통은 새 바이알로 옮겨지고, 이름은 다시 쓰인다. 그렇게 이어 쓰는 손들이 있어서 백 년 된 돌연변이가 오늘도 살아 있다.

남극의 얼음 속 5160개의 센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상은 한 사람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 이름 아래에는 얼음을 녹여 구멍을 뚫고 겨울을 지킨 수백 개의 이름이 겹쳐 있다. 과학을 문화로 가진 사회란, 그 겹쳐 쓴 이름들까지 기억하는 사회일 것이다.

보통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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