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리 유전학이 과학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 유럽에 비해 과학열등국이었던 미국이 과학의 종주국이라고 뽐낼 수 있게 만들어준 거의 최초의 과학분야였다는 점일 것이다. 로버트 쾰러 Robert Kohler의 <파리 대왕: 초파리 유전학과 실험적 생명>1이라는 과학사의 고전이 초파리 유전학이 미국적 과학의 표본이 된 사례를 훌륭하게 분석하고 있다. 물론 중요한 이 책은 여전히 한국에 번역되지 않았다.
[야! 한국 사회] 미국의 과학, 미국식 과학 / 김우재
그러니까 초파리 유전학은 철저한 미국식 과학이었던 셈이다2. 역사는 참 재미있는데, 아메리칸 원주민의 땅을 빼앗은 백인들이 건국한 미국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미국식 과학인 초파리 유전학을 만든 과학자의 이름은 토머스 헌트 모건, 매우 전형적인 백인의 이름을 가진 백인 과학자였으며, 그가 처음으로 발견했던 유전자 돌연변이의 이름이 화이트 white 즉 눈 색깔이 하얗게 변하는 돌연변이었다. 화이트는 그렇게 역사에 등장했고, 초파리 유전학을 생물학의 중심에 가져다놓았다.
흰눈 초파리는 현미경을 사용하지 않고도 구분이 가능한 좋은 마커였기 때문에, 이후 초파리 유전학자들은 화이트를 일종의 실험실 유전학의 대조군처럼 사용하기 시작했고, 여전히 대부분의 초파리 발생유전학자들은 화이트를 일종의 야생형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런데 1970년대부터 일군의 초파리 유전학자들이 행동을 유전자 수준에서 분석하기 시작하면서, 화이트의 문제점들이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중 가장 유명한건 화이트 돌연변이가 공격성이 강하고, 동성애 성향을 강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물론 화이트 돌연변이는 사물을 잘 분간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Zwarts, L., Versteven, M., & Callaerts, P. (2012). Genetics and neurobiology of aggression in Drosophila. Fly, 6(1), 35-48.
Zhang, S. D., & Odenwald, W. F. (1995). Misexpression of the white (w) gene triggers male-male courtship in Drosophila.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92(12), 5525-5529.
Krstic, D., Boll, W., & Noll, M. (2013). Influence of the White locus on the courtship behavior of Drosophila males. PloS one, 8(10), e77904.
이 외에도 화이트 돌연변이가 지닌 문제점이 한 둘이 아니라는건 지난 이십여년간 꾸준히 보고되어 왔는데, 오늘 읽은 논문3에선 ABC transporter의 일종인 화이트라는 단백질이 세로토닌의 양을 변화시켜 학습을 비롯한 다양한 행동에 영향을 준다고 쓰여 있었다.
Myers, J. L., Porter, M., Narwold, N., Bhat, K., Dauwalder, B., & Roman, G. (2021). Mutants of the white ABCG transporter in Drosophila melanogaster have deficient olfactory learning and cholesterol homeostasis. International Journal of Molecular Sciences, 22(23), 12967.
문제는 초파리 행동유전학으로 2017년 노벨상을 수상한 생체주기 연구의 시작이, 화이트 돌연변이를 대조군으로 사용하며 성장해왔다는 점이다.
Konopka, R. J., & Benzer, S. (1971). Clock mutants of Drosophila melanogaster.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68(9), 2112-2116.
초파리 행동유전학에 입문한 이후에, 여러번 화이트 돌연변이를 사용할 일이 있었고, 내가 연구하는 교미시간의 경우에도 문제가 있다는걸 깨달은 이후엔, 화이트 돌연변이 사용을 최소화하고 있었다. 얼마전 학부생 한 명이 화이트 돌연변이로 초파리 교미시간을 측정하다가 한시간이 지나도 교미를 시작하지 않는다고 하길래, 피식 웃으며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Xiao, C., Qiu, S., & Robertson, R. M. (2017). The white gene controls copulation success in Drosophila melanogaster. Scientific reports, 7(1), 7712.
초파리 생체주기 연구는 이미 노벨상도 수상한데다가, 이젠 생체주기를 넘어 수면연구로 지평을 확장하고 있고, 초파리 행동유전학 분야에서는 일종의 마피아 같은 그룹이다.
문제는 이 거대한 마피아 그룹이 아직도 화이트 돌연변이를 사용해서 행동연구를 해놓고는, 그게 무슨 야생형 행동인 것처럼 일반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생체주기 연구는 화이트 돌연변이 배경의 초파리 수컷 한 마리를 며칠동안 혼자 두고 행동을 관찰하는데, 잘 알려져 있다시피 혼자 고립된 수컷은 공격성이 강하고 행동에 큰 문제가 있는데다가, 그 수컷이 화이트 돌연변이라면 그 행동이 정상이라고 결코 예측할 수 없다.
Wang, L., Dankert, H., Perona, P., & Anderson, D. J. (2008). A common genetic target for environmental and heritable influences on aggressiveness in Drosophila.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05(15), 5657-5663.
Vora, A., Nguyen, A. D., Spicer, C., & Li, W. (2022). The impact of social isolation on health and behavior in Drosophila melanogaster and beyond. Brain Science Advances, 8(3), 183-196.
혹시나 해서 초파리 생체주기 연구자들이 화이트를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 쓴 논문이나 아젠다가 있나 찾아봤더니 없다. 화이트 돌연변이로 초파리 행동을 연구하는건 심각하게 재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