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Flyandbee, Woo Jae Kim (2014-)

물릴 뻔했을 뿐인데 — 공포의 기억은 어떻게 초파리의 사랑을 바꾸는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한 번 크게 놀란 가슴은 비슷하게 생긴 무해한 것에도 움찔한다. 그런데 이 오래된 속담이, 사막에 사는 한 초파리의 짝짓기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면 어떨까. Drosophila nigrospiracula라는 선인장 초파리는 기생충에게 물린 적도 없는데, 단지 물릴 뻔했던 기억만으로 사랑을 미룬다. 캐나다 앨버타대학의 Sidney Mann, Simar Dhillon, Lien Luong이 International Journal for Parasitology에 발표한 최근 논문이 보여주는 풍경이다.


물지 않고도 해를 끼치는 법

포식자가 먹이에게 가하는 피해를 생각해 보자. 가장 직접적인 피해는 잡아먹히는 것이다. 생태학에서는 이를 **소비적 효과(consumptive effect)**라고 부른다. 기생충도 마찬가지다. 숙주의 몸에 들러붙어 영양분을 빨아먹고 번식력과 수명을 깎아내린다. 감염은 숙주의 적합도를 직접 떨어뜨린다.

그런데 포식자와 기생충에게는 또 다른, 더 은밀한 무기가 있다. 잡아먹지 않고도, 감염시키지 않고도 먹이의 삶을 바꿔놓는 능력이다. 매가 하늘을 맴돌기만 해도 들쥐는 먹이 찾기를 멈추고 굴속에 숨는다. 그 매가 단 한 마리도 들쥐를 낚아채지 못해도, 들쥐들은 굶주리고, 번식을 미루고, 스트레스 호르몬에 절어간다. 이것이 바로 비소비적 효과(non-consumptive effect, NCE), 혹은 위험이 유발한 형질 반응이다. 생태학자들은 이 현상 전체를 ‘공포의 생태학(ecology of fear)’이라 부른다.

공포는 실재하는 위협만큼이나 강력하다. 어쩌면 더 강력하다. 위협은 한순간이지만, 공포는 오래 남기 때문이다.

이 논문이 던지는 질문은 정확히 여기에 있다. 기생충이 숙주를 감염시키지 않고 단지 노출되기만 했을 때, 그것도 그 노출이 한참 전에 끝났을 때, 숙주의 짝짓기 행동은 변할까? 놀랍게도 이 질문—기생충 노출이 (감염이 아니라) 숙주의 구애와 교미 자체에 미치는 영향—은 그동안 누구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사막의 두 배우

무대는 미국 소노란 사막이다. 거대한 사구아로 선인장이 죽어 썩어가는 조직 속에서, 선인장 초파리 D. nigrospiracula가 살아간다. 그리고 같은 자리에 Macrocheles subbadius라는 작은 응애(mite)가 함께 산다. 이 응애의 암컷은 초파리의 외부에 들러붙어 혈림프(곤충의 ‘피’)를 빨아먹는 외부기생충이다. 흥미롭게도 응애는 초파리를 일종의 ‘택시’로도 쓴다. 선인장이 썩어 사라지면 다른 썩은 선인장으로 옮겨가야 하는데, 그 이동을 초파리의 몸에 올라타서 해결한다.

이 초파리-응애 시스템은 그동안 많은 연구의 대상이었다. 응애에 감염되면 초파리는 더 일찍 죽고, 암컷의 번식력이 떨어지며, 수컷의 짝짓기 성공률이 낮아진다. 더 인상적인 것은 감염되지 않고 노출되기만 해도 초파리의 번식력과 수명이 줄어들고, 대사율이 치솟고, 몸단장(grooming) 행동이 늘고, 산란과 먹이 찾기 행동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응애는 물지 않고도 초파리를 바꿔놓는다.

연구진은 여기에 결정적인 한 겹을 더했다. 시간이다. 지금 당장의 노출과, 과거에 끝난 노출을 구분한 것이다. 그래서 실험은 두 개로 나뉜다.


실험 1: ‘지금 이 순간’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첫 번째 실험은 단순했다. 작은 아레나(8.5cm 페트리 접시) 안에 수컷 두 마리와 암컷 한 마리를 넣는다. 노출 그룹에는 살아있는 암컷 응애 다섯 마리를 함께 넣어둔다. 그리고 10분 동안, 혹은 교미가 끝날 때까지 관찰한다. 구애가 일어나는지, 교미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얼마나 오래 교미하는지를 기록한다.

결과는 다소 김이 빠진다. 응애가 아레나 안에 같이 있어도, 초파리의 짝짓기 행동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구애 확률도, 교미 확률도, 교미 지연시간도, 교미 지속시간도 노출 여부에 따라 유의하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가 또렷하게 갈렸다. 나이다. 14일 된 초파리는 7일 된 초파리보다 약 1.3배 더 오래 교미했다(420.7초 대 328.0초). 이건 응애와 무관하게 나타난, 통계적으로 매우 강한 효과였다.

이 나이 효과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복선이다. 잠시 뒤에 다시 돌아오겠다. 일단 실험 1의 메시지는 이것이다. 눈앞에 위협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적어도 이 짧은 시간 동안에는, 초파리의 사랑이 흔들리지 않는다. (물론 연구진도 조심스럽게 단서를 단다. 관찰 시간이 10분으로 짧았기 때문에 미묘한 효과를 놓쳤을 수 있고, 실제로 노출된 초파리들은 다리를 터는 등 방어 행동을 보이긴 했다.)

진짜 이야기는 두 번째 실험에서 시작된다.


실험 2: 과거의 유령

두 번째 실험에서 연구진은 시간을 분리했다. 먼저 초점이 되는 초파리 한 마리를 작은 바이알에 넣고, 응애 다섯 마리와 함께 한 시간 둔다. 그런 다음 응애를 모두 치우고, 감염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현미경으로 일일이 확인한다(감염된 개체는 제외했다). 즉 이 초파리들은 응애를 실컷 겪었지만 물리지는 않았다. 위협은 지나갔고, 몸에는 흔적이 없다.

그 다음 이 ‘전력(前歷)이 있는’ 초파리를, 응애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순진한(naïve) 이성 두 마리와 함께 아레나에 넣고 40분간 짝짓기를 지켜본다.

결과는 실험 1과 완전히 달랐다. 과거의 노출은, 그것이 끝난 뒤에도 짝짓기를 또렷하게 바꿔놓았다. 더구나 그 변화는 암컷과 수컷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났다. 통계적으로도 성별과 노출 이력 사이의 상호작용이 유의했기에, 연구진은 암수를 나누어 분석했다.

핵심 결과를 정리하면 이렇다.

  • 과거에 응애에 노출된 암컷은 교미까지 걸리는 시간이 약 1.7배 길어졌다(1206.6초 대 713.8초).
  • 노출 이력이 있는 암컷은 교미할 확률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0.33 대 0.58).
  • 노출 이력이 있는 암컷은 수컷에게 구애받을 확률도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0.42 대 0.65).
  • 과거에 노출된 수컷은 암컷 한 마리당 교미 지속시간이 약 17% 줄었다(440.6초 대 531.0초).

물지도 않은 응애가, 한 시간 같이 있었다가 사라졌을 뿐인데, 초파리는 그 기억을 안고 사랑을 바꿨다. 과거의 유령이 현재의 침대 머리맡에 앉아 있는 셈이다.


교미 시간이라는 미세한 언어 — 깊이 읽기

여기서부터는 제가 가장 오래 들여다보고 있는 영역이다. 초파리의 짝짓기에서 교미 지연시간(copulation latency)과 교미 지속시간(copulation duration)은 단순한 스톱워치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암수가 각자의 내부 상태와 상대에 대한 판단을 드러내는, 대단히 정교한 행동 언어다. 그리고 이 논문의 가장 아름다운 지점은, 같은 생태적 압력(과거의 기생충 노출)이 암수에서 짝짓기의 서로 다른 길목을 건드린다는 사실에 있다.

암컷의 지연시간 — 누구의 결정인가

암컷의 교미 지연시간이 1.7배 길어졌다는 결과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가장 손쉬운 해석은 “노출된 암컷이 더 까다로워졌다”, 즉 교미 수용성(receptivity)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초파리에서 교미 지연시간은 전통적으로 암컷 수용성의 대표적 지표로 쓰인다.

하지만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야 한다. 지연시간은 암컷 혼자 결정하는 값이 아니다. 그것은 수컷의 구애 강도와 암컷의 수락 문턱이 함께 빚어내는 합작품이다. 수컷이 열심히 구애하면 지연시간은 짧아지고, 암컷이 문턱을 높이면 길어진다. 그런데 이 실험에서 노출된 암컷은 구애받을 확률 자체도 절반으로 떨어졌다. 그렇다면 지연시간이 길어진 것이, 암컷이 더 거부해서인지, 아니면 수컷이 애초에 덜 매력을 느껴 구애를 덜 한 탓인지를 깔끔하게 갈라낼 수 없다.

연구진은 바로 이 지점을 정직하게 비워둔다. 두 가지 비배타적 가설을 제시할 뿐이다.

첫째, 과거의 노출이 암컷 내부의 수용 문턱을 끌어올렸다는 가설. 노출은 대사율을 높이고 생리적 스트레스를 남긴다. 이 변화가 암컷의 ‘교미를 받아들일까 말까’를 판단하는 신경 회로의 설정값을 바꿔놓았을 수 있다.

둘째, 과거의 노출이 암컷의 신호 자체를 바꿔, 수컷이 그녀를 덜 매력적으로 읽게 만들었다는 가설. 노출된 암컷이 잔류하는 응애 냄새나 생리적 스트레스의 단서(예: 높아진 호흡량)를 풍긴다면, 순진한 수컷은 이를 ‘질 낮은 짝’ 혹은 ‘주변에 감염 위험이 높다’는 경고로 해석하고 구애를 거둘 수 있다.

여기서 제 전공의 시선을 잠깐 얹자면, D. melanogaster에서 암컷의 수용성은 결코 모호한 ‘기분’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특정 신경펩타이드와 신경 회로가 정교하게 조율하는 생리적 상태다. 짝짓기 후 수컷이 전달하는 성 펩타이드(sex peptide)가 암컷의 행동을 며칠씩 바꾸는 것이 대표적이고, 그 아래에는 암컷의 내부 상태에 따라 문턱을 오르내리게 하는 신경조절(octopamine 같은 아민, 각종 신경펩타이드)이 깔려 있다. 이 논문은 생태학 논문이므로 그 톱니바퀴까지 내려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행동의 표면에서 관찰된 ‘문턱의 상승’이, 우리 분야에서 분자와 회로로 설명하려는 바로 그 현상과 맞닿아 있다는 점은 짚어둘 만하다. 생태학은 무엇이 변했는지를 보여주고, 신경유전학은 그 아래에서 어떤 기어가 돌아갔는지를 묻는다. 두 시선이 만나는 자리에 이런 논문이 있다.

수컷의 지속시간 — 전략적 절약

수컷 쪽 결과는 결이 또 다르다. 과거에 노출된 수컷은 교미를 17% 짧게 했다. 이걸 어떻게 읽어야 할까.

먼저 짚어야 할 사실. 초파리에서 교미 지속시간은 압도적으로 수컷이 통제한다. 연구진은 “노출된 수컷이 짧게 교미한 건 순진한 암컷이 그를 덜 받아들여서(은밀한 암컷 선택, cryptic female choice)가 아닐까?”라는 대안을 신중히 검토한 뒤 기각한다. 다른 초파리 종에서 암컷은 교미 지속시간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선행 연구(Jagadeeshan & Singh, 2006)에 근거해서다. 즉 이 17%의 단축은 암컷의 문지기 노릇이 아니라, 수컷 자신의 전략적 결정이다.

그렇다면 수컷은 왜 사랑을 짧게 끊었을까. 교미 지속시간은 곤충에서 단순한 ‘함께 있는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정자와 정액 단백질의 전달량, 곧 **사정 투자(ejaculate investment)**와 직결된다. 초파리 수컷은 경쟁자가 주변에 있는지 같은 단서에 따라 이 투자를 전략적으로 늘리거나 줄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과거의 기생충 노출이 그 투자를 아래로 끌어내렸다. 수컷은 짝짓기당 자원을 아끼고, 올라타 있는—그래서 무방비한—시간을 줄이고, 그렇게 남긴 에너지를 방어와 경계에 돌리는 쪽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되, ‘경계를 늦추지 않으면서도 기회는 놓치지 않는’ 절충이다.

위험이 늘 같은 방향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바로 여기, 제가 이 논문에서 가장 매력을 느낀 지점이 있다. 잠시 미뤄둔 실험 1의 ‘나이 효과’를 다시 데려와 보자.

실험 1에서 나이 든 초파리는 더 오래 교미했다. 연구진은 이를 **최종 투자 가설(terminal investment hypothesis)**로 설명한다. 죽음이 가까울수록, 남은 마지막 기회에 더 많이 투자하라는 진화적 논리다. 즉 죽음의 위험은 번식 투자를 위로 민다.

그런데 실험 2에서 과거의 기생충 노출은 (수컷의 경우) 번식 투자를 아래로 끌어내렸다. 같은 ‘위험’인데 정반대 방향이다. 왜일까?

답은 위험의 성격에 있다. 노화는 일방통행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고, 앞으로의 기회는 줄어들기만 한다. 그러니 “지금 다 쏟아라”가 합리적이다. 반면 기생충 노출은 반복될 수 있는 환경적 위협의 신호다. 앞으로도 짝짓기 기회는 남아 있지만, 매 짝짓기가 감염 비용을 동반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 번에 다 쏟는 것보다, 매번 조금씩 아끼며 위험을 분산하는 헤지(hedge) 전략이 유리하다.

위험은 하나의 보편적 효과를 갖지 않는다. 죽음을 향한 일방통행에는 ‘몰빵’으로, 되풀이될 환경의 위협에는 ‘절약’으로—같은 동물이 위험의 종류에 따라 정반대로 반응한다. 이 대조는 행동생태학의 핵심 통찰을 한 장면에 압축해 보여준다. 적응이란 정해진 반사가 아니라 맥락을 읽는 계산이라는 것.

암수는 짝짓기의 다른 길목을 지킨다

마지막으로 가장 우아한 비대칭. 암컷은 교미 이전의 관문을 조절했다(지연시간, 교미 확률, 구애받을 확률—모두 사랑이 성사되기 전 단계). 수컷은 교미 이후의 투자를 조절했다(지속시간—이미 받아들여진 뒤의 자원 배분). 같은 유령에 시달리면서도, 암수는 짝짓기 시퀀스의 서로 다른 레버를 당긴 것이다.

이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응애에 감염된 채 짝짓기를 하는 것의 비용이 암수에서 다르기 때문이다. 수컷에게 더 가혹하다. 심한 응애 감염은 생식기 결합 자체를 물리적으로 막아버릴 수 있고(Polak et al., 2007), 감염된 수컷은 경쟁에서 밀려난다. 비용 구조가 다르니, 최적의 행동 조정도 다르다. 같은 생태적 압력이, 성별에 따라 다른 비용 함수를 통과하면서, 다른 행동 출력으로 갈라진다. 진화가 어떻게 하나의 입력을 두 갈래의 정교한 해답으로 빚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걸작이다.


공포에는 기억이 있다

이 모든 결과를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기억이다.

‘지금’의 응애는 초파리를 거의 흔들지 못했지만, ‘과거’의 응애는 깊은 자국을 남겼다. 위협이 사라진 뒤에도 초파리는 여전히 위험을 감지하고, 그 감각에 따라 가장 중요한 생애사 결정—번식—을 조정한다. 연구진은 이 시스템에 대한 선행 연구의 표현을 빌려 ‘과거 기생충의 유령(ghosts of parasites past)’이라 부른다. 끝난 위협이 현재에 드리우는 그림자다.

물론 과학자로서 ‘기억’이라는 단어는 조심스럽게 써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떠올리는 인지적·연상적 기억인지, 아니면 노출이 남긴 생리적 잔향(높아진 대사, 스트레스 상태)이 단지 며칠간 지속되는 것인지는 이 실험만으로 갈라낼 수 없다. 실제로 초파리에서 포식자 노출이 장기 기억의 분자 기전을 통해 행동과 생식선 생리를 바꾼다는 연구들이 있고, 이 분야는 ‘사회적 학습’이라는 더 흥미로운 가능성까지 건드린다. 노출된 개체가 순진한 동료에게 위험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속체—단순한 생리적 carry-over에서 진짜 학습된 기억까지—의 어디쯤에 이 현상이 놓이는지를 밝히는 일은 앞으로의 숙제다.

그럼에도 비유의 유혹을 완전히 떨치기는 어렵다. 우리 역시 한 번의 위협이 평생을 바꾸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린 적도 없는데, 물릴 뻔했던 기억만으로 움츠러드는 가슴. 위협이 끝난 뒤에도 계속 청구되는 공포의 세금. 그 작은 초파리가 사막에서 보여주는 것은, 어쩌면 살아있는 모든 것이 위험의 역사 위에 빚어진다는 오래된 진실이다.


진화의 무대로 — 기생충은 성선택의 숨은 연출가일까

이 연구가 단지 ‘신기한 행동’ 하나를 보고한 데서 그치지 않는 이유가 있다. 함의가 진화로 뻗기 때문이다.

순진한 수컷이 노출 이력이 있는 암컷을 덜 구애하고 덜 짝짓는다면, 이는 **기생충 매개 성선택(parasite-mediated sexual selection, PMSS)**의 새로운 통로를 연다. 지금까지 PMSS 연구는 대부분 ‘감염된’ 개체가 외면당하는 현상에 집중했다. 이 논문은 감염되지 않고 노출만 된 개체조차 짝으로서 차별받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즉 기생충이 숙주의 짝짓기와 번식에 행사하는 영향력은, 우리가 그동안 감염만 헤아리며 추정했던 것보다 훨씬 클지도 모른다.

게다가 D. melanogaster에는 **짝짓기 모방(mate copying)**이라는 현상이 있다. 다른 개체가 특정 표현형의 상대와 짝짓는 걸 본 초파리는, 자기도 그 표현형을 선호하게 된다. 한 수컷의 ‘노출된 암컷 기피’가 개체군 전체로 번지는 문화적 전파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한 마리의 공포가 집단의 짝짓기 관습이 되고, 그것이 다시 진화의 방향을 미세하게 비트는 풍경. 단순한 행동 하나가 개체군과 세대를 가로질러 퍼져나가는 이 그림이야말로, 작은 초파리를 통해 거대한 진화의 원리를 들여다보는 이 분야의 매력이다.


정직한 여백들

좋은 연구는 답만큼이나 빈칸을 정직하게 남긴다. 이 논문도 그렇다.

실험 1과 실험 2의 초파리는 서로 다른 시기(2022년, 2024년)에 채집된 별개의 실험실 계통이었다. 초파리의 행동은 유전적 배경과 실험실 집단의 역사에 영향받을 수 있으므로, 두 실험의 차이가 온전히 ‘시간(현재 대 과거)’ 때문인지에는 약간의 유보가 필요하다(다만 선행 연구는 이 종의 실험실 계통에서 유의한 유전적 부동을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 또 관찰은 처리 조건을 아는 한 명의 관찰자가 비맹검으로 수행했고, 실험 1의 짧은 관찰 시간은 현재 노출의 미묘한 효과를 놓쳤을 가능성을 남긴다. 무엇보다, 암컷이 덜 구애받은 것이 그녀의 거부 때문인지 신호 변화 때문인지, 그리고 그 바탕에 깔린 기전이 무엇인지는 후속 실험을 기다린다.

이런 여백들은 결함이 아니라 다음 질문의 좌표다. 좋은 논문은 자기가 못 한 일을 분명히 표시함으로써, 다음 사람이 어디를 파야 할지 알려준다.


닫으며

물지 않고도 해를 끼치는 기생충, 끝난 위협이 남긴 공포의 기억, 그 기억이 암수에게서 짝짓기의 서로 다른 길목을 비트는 방식—이 한 편의 논문은 작은 사막 초파리를 통해 놀랍도록 큰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기생충과 병원체가 어디에나 있는 감염의 세계이고, 감염은 피할 수 있을지언정 노출은 피할 수 없다. 그 불가피한 노출의 그림자가 생명의 가장 내밀한 결정—누구와, 언제, 얼마나 사랑할 것인가—까지 스며든다는 사실을, 이 연구는 차분한 데이터로 보여준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에 움찔하는 것은, 어쩌면 어리석음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의 지혜다. 그 지혜의 대가로 사랑을 조금 미루는 초파리를 보며, 나는 공포라는 감정이 얼마나 오래되고, 얼마나 깊이 생명에 새겨져 있는지를 다시 생각한다.


이 글은 Sidney C. Mann, Simar K. Dhillon, Lien T. Luong의 논문 “Nearly Bitten, Twice Shy: Effects of prior and current parasite exposure on host mating behaviour”(International Journal for Parasitology, 2026; doi:10.1016/j.ijpara.2026.104917)를 일반 독자를 위해 소개하고, 교미 행동에 관한 해석을 덧붙인 것이다. 데이터는 Open Science Framework에 공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