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종종 실수에서 시작한다. 이번 이야기도 그렇다. 우리 실험실의 석사학생과 첫 박사과정 학생이 성체 초파리의 소낭(proventriculus)에서 무언가를 보았다. lexAop-tdTomato.nls 리포터에서 나오는 붉은 신호였는데, 문제는 그 신호가 나오면 안 되는 자리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드라이버가 없어도 신호가 켜졌다. 흔히 쓰이는 lexA/lexAop 시스템의,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인공물(artifact)이었다.
이런 걸 발견하면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실험 잘못됐네” 하고 조용히 버리는 길. 다른 하나는 굳이 시간을 들여 그 인공물의 정체를 끝까지 추적하고, 다른 연구자들이 같은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통제 전략까지 정리해서 공동체에 내놓는 길.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 누군가는 이 신호를 진짜 발현으로 착각하고 값비싼 위양성(false positive) 논문을 쓸 수도 있으니까.
Fly라는 학술지는 이 논문을 기꺼이 받아주었다. 초파리 공동체가 만든 이름을 단, 초파리 연구자들을 위한 저널이니 당연한 일이다. Editor-in-Chief는 이 논문의 성격상 논문 출판 비용(APC)을 면제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의견까지 주었다.
그런데 정작 저널의 사무 담당자는 달랐다. 퉁명스럽게, 이미 늦었으니 그냥 돈을 내라고 했다.
논리는 이랬다. “투고할 때 이미 유료 오픈액세스 저널임을 고지받았고, 게재되면 APC를 지불하기로 동의했으니, 이 단계에서는 면제나 할인이 불가능하다.” 규정은 규정이라는 것이다. 편집장의 뜻도, 논문의 공동체적 가치도, 규정 앞에서는 아무 힘이 없었다.
우리는 돈이 없었다. 연구비도, 기관 지원금도, 개인 자금도. 초기 경력 연구자와 대학원생들에게 출판 비용을 떠안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편지를 썼다. 단순히 “돈이 없으니 봐달라”는 편지가 아니라, 이 사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편지를. 그리고 초파리 공동체의 큰 어른들—FlyBook 서문을 쓴 자넬리아 연구소의 Gerald Rubin 박사와 FlyBase를 이끄는 하버드의 Norbert Perrimon 박사—을 증인으로 참조에 넣었다.
아래가 내가 보낸 편지다.
원고 KFLY-2026-0006R1의 공식 철회 — 윤리적 항의와 공동체 선언
담당자 님께,
2026년 7월 7일 보내주신 회신 감사합니다. Taylor & Francis가 우리의 게재 확정 원고 「Driver-independent lexAop-tdTomato.nls reporter signal in the adult Drosophila proventriculus」(KFLY-2026-0006R1)에 대해 논문 출판 비용(APC) 면제도, 저비용 출판 형식도 수용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해주셨습니다.
이 경직된 상업적 정책에 비추어, 저는 책임교신저자(Senior Corresponding Author)로서의 권한으로 우리 원고를 Fly의 게재 및 심사 대상에서 공식적이고 돌이킬 수 없이 철회함을 알립니다.
이 결정은 출판 비용을 감당할 어떤 재량 자금도, 연구비도, 개인 자금도 우리에게 전혀 없기에 구조적으로 강제된 것이지만, 동시에 의도적인 윤리적 항의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공동체가 만들어낸 유서 깊은 이름 ‘Fly’를 내걸어 전문 연구를 끌어모으면서도, 막상 초기 경력의, 자원이 부족한 과학자들에게 재정적 장벽이 닥치면 그 연구를 순전히 상업적 거래로만 취급하는 저널의 상업적 경직성에 깊이 실망했습니다.
당신들은 저널을 Fly라 이름 붙임으로써, 고도로 전문화되고 깊이 협력적인 과학 네트워크와 스스로를 명시적으로 나란히 세웁니다. 그러나 당신들의 운영 방식은 이 공동체의 근본 가치와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Gerald M. Rubin이 FlyBook 서문에서 밝혔듯, 초파리 연구 공동체는 백 년 넘게 독특한 윤리적·사회적 체계 위에서 번성해 왔습니다. Rubin 박사는 노벨상 수상자 Thomas Hunt Morgan이 1917년에 남긴 말을 인용했습니다.
“우리는 재고로 있는 어떤 재료든 개인이든 집단이든 누구에게나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우리가 직접 연구한 재료뿐 아니라, 아직 출판하지 않은 재료라도 활용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한다. 출판하기 전까지 자기 것을 걸어 잠가 두는 방식은… 개인적으로 한 번도 매력적으로 느껴진 적이 없으며, 나는 그것이 단순한 정책의 문제로서도 학생에게 해롭고, 우리가 가장 마음에 둔다고 공언하는 과학의 진보에도 해롭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원고는 전형적인 ‘도구와 자원’ 기여입니다. 우리는 성체 초파리 소낭에서, 널리 쓰이는 형질전환 계통의 지금껏 인지되지 않았던 드라이버 독립적 인공물을 보고하고, 미래의 연구자들이 값비싼 위양성을 출판하지 않도록 실질적인 통제 전략을 제시합니다. Morgan의 정신에 따라, 우리는 이 발견을 전 세계 초파리 공동체에 즉시 자유롭고 공개적으로 내놓을 것입니다—공개 프리프린트 서버(bioRxiv 등)를 통해. 우리 학생들에게 재정적 부담을 지우지 않고, 우리 실험실의 재정적 지속가능성을 훼손하지 않고 그렇게 할 것입니다.
Fly가 2022년 완전한 오픈액세스 모델로 전환했을 때, 저널의 사설이 “알 권리는… 더 이상 지불 능력에 의해 제한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는 사실은 깊은 아이러니입니다. 실제로 당신들은 그저 장벽을 뒤집었을 뿐입니다. ‘출판할 권리’를 지불 능력에 의해 엄격히 제한해 버린 것입니다. 상업적 연구비나 기관의 오픈액세스 보조금이 없는 연구자들에게 문을 닫음으로써, 당신들은 초파리 공동체의 도덕 경제와 맺은 끈을 끊었습니다. 당신들은 우리 공동체 이름의 명성은 누리면서, 그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상호부조는 거부합니다.
이것이 공동체 전체에 관한 사안이기에, 저는 Gerald M. Rubin 박사를 이 서신에 참조로 넣었습니다. 현대 초파리 유전학의 개척자이자 FlyBook 서문의 저자인 Rubin 박사는, 이 철회와, 우리 공동체의 지적 노동을 상업적으로 착취하는 데 대한 우리의 항의의 증인으로 서 있습니다. 또한 FlyBase를 이끄는 Norbert Perrimon 박사를, 공동체가 공유하는 기반 시설을 대표하여 이 철회와 항의의 또 다른 증인으로 참조에 넣었습니다.
우리 연구진은 앞으로 Fly를 지지하지도, 심사하지도, 우리 연구를 투고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과학 진보의 실제 척추를 이루는 공동체 기여와 도덕 경제를 존중하는 지면에 우리의 미래 연구를 투자하기로 선택합니다.
이 공식 철회의 수신을 즉시 확인하시고, 우리의 파일을 그에 따라 종결해 주시기 바랍니다.
Woo Jae Kim 드림 하얼빈공업대학 생명과학센터 책임연구자
그들은 승복했다
편지를 보낸 뒤, 상황은 바뀌었다. 결국 저널은 물러섰고, APC는 면제되었으며, 논문은 출판되었다. 지금 여러분이 링크를 통해 볼 수 있는 그 논문이다.
작은 승리다. 하지만 나는 이 승리를 마냥 기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승리가 가능했던 이유 자체가 문제의 핵심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내가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이었나. 내가 초파리 공동체의 역사를 알았기 때문이다. Morgan의 1917년 편지를 인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Rubin과 Perrimon 같은 큰 어른들의 이메일 주소를 알았고, 그들을 참조에 넣을 만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장문의 영어 편지를 쓸 수 있는 언어적 자원과, 이런 싸움에 시간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갖지 못한 연구자는? 중국 어느 지방대학의, 영어가 서툰, 공동체의 역사도 인맥도 모르는, 그저 좋은 발견을 했을 뿐인 대학원생은? 그는 그냥 돈을 냈을 것이다. 아니면 조용히 원고를 접었을 것이다. 나의 승리는 대다수가 패배하는 시스템의 예외였을 뿐이다.
APC라는 이름의 새로운 물신
여기서 나는 오래된 나의 비판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지난 이십 년간 오픈액세스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약속을 들어왔다. 2002년 부다페스트 선언은 지식이 지불 능력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다. 지식의 장벽을 허물자고 했다. 나 역시 그 이상에 동의한다. 문제는 그 이상이 어떻게 배신당했는가에 있다.
APC(Article Processing Charge)는 그 배신의 이름이다. 구독료라는 장벽을 허물겠다더니, 출판료라는 새로운 장벽을 세웠다. 예전에는 ‘읽을 권리’가 돈에 갇혀 있었다면, 이제는 ‘쓸 권리’가 돈에 갇혔다. Fly의 사설이 자랑스럽게 선언한 “알 권리는 지불 능력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문장은, 실제로는 장벽의 위치만 바꾼 사기에 가깝다. 이건 내가 여러 번 지적해 온, 부다페스트 선언이 약탈적 시장에 포획된(captured) 전형적 사례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것이 논문 물신주의(論文 物神主義)의 완성태라는 데 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논문을, 그 안에 담긴 지식이나 진리와 무관한, 그 자체로 숭배되는 물신으로 만들었다. 임팩트 팩터가 신탁이 되고, 논문 편수가 인간의 가치를 매기는 저울이 되었다. 그리고 이 물신 숭배가 시장과 만났을 때, 출판사들은 깨달았다. 과학자들은 논문을 낼 수 있다면 얼마든 돈을 낼 것이라고. 왜냐하면 논문을 못 내면 그들의 경력이, 그들의 존재 자체가 부정되니까.
이것이 바로 Cantrell과 동료들이 「부자들의 비명」에서 그린 그림이다. APC는 지식의 민주화가 아니라, 부유한 실험실과 가난한 실험실을 가르는 새로운 계급선이다. 넉넉한 연구비를 가진 서구의 대형 랩은 아무렇지 않게 수천 달러를 내고, 자원이 없는 초기 경력 연구자와 글로벌 사우스의 과학자들은 침묵을 강요당한다. 지식은 여전히 돈이 말하는 곳에서 흘러나오고, 돈이 없는 곳에서는 막힌다.
모건의 편지가 여전히 중요한 이유
나는 초파리 연구자다. 그리고 나는 이 정체성을 자랑스러워한다. 왜냐하면 초파리 공동체는, 과학이 다르게 조직될 수 있다는 살아있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Morgan의 파리방에서 시작해, Bridges와 Demerec의 Drosophila Information Service를 거쳐, 오늘날의 Bloomington Stock Center와 FlyBase에 이르기까지—우리는 백 년 넘게 다른 원리로 작동해 왔다. 시약을 나누고, 파리 계통을 나누고, 아직 출판하지 않은 발견마저 나누는 원리. Robert Kohler가 ‘도덕 경제’라 부른 그 원리. 그 안에서 신뢰와 상호부조는 언제나 자원의 계산을 이겨왔다.
이것은 순진한 이상주의가 아니다. 이것은 실제로 작동해 온, 그리고 지난 세기 생물학의 가장 위대한 발견들을 낳은 조직 원리다. 유전자의 물리적 실체도, 발생의 유전적 논리도, 이 나눔의 공동체에서 나왔다.
내가 Fly에 분노한 것은 단지 돈 몇 푼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우리 공동체의 이름을 팔면서 그 공동체의 영혼은 배신했기 때문이다. ‘Fly’라는 이름을 걸어 우리의 신뢰를 끌어모으고, 그 신뢰가 만들어낸 지적 노동을 상업적 거래로 환산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Morgan의 후예를 자처하면서, Morgan이 가장 혐오했던 바로 그것—”출판하기 전까지 자기 것을 걸어 잠가 두는” 방식의 상업적 판본—을 실행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에는 큰 어른들의 이름을 빌려 이겼다. 하지만 나는 이 방식이 지속가능한 해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의 편지 한 통으로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다. 필요한 것은 구조적 대안이다. 다이아몬드 오픈액세스, S2O(Subscribe to Open) 같은, 저자에게도 독자에게도 비용을 지우지 않는 모델. 그리고 무엇보다, 논문 물신주의라는 병으로부터 벗어나는 우리 자신의 각성.
이번 논문의 발견 자체는 사소하다. 소낭에서 나오는 붉은 인공물 하나. 하지만 이 논문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이야기는 사소하지 않다. 그것은 우연한 발견을 굳이 공동체를 위해 정리한 두 학생의 정직함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 정직함이 상업적 장벽 앞에서 어떻게 시험받았는가에 관한 이야기이며, 백 년 전 Morgan이 남긴 한 통의 편지가 오늘도 여전히 우리를 지켜준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의 운명은 함께 오르내린다. 이것이 초파리 공동체가 나에게 가르쳐준 전부다. 그리고 이것이, APC라는 새로운 물신 앞에서 내가 결코 잊지 않으려는 단 하나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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