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얼빈에서 온 편지 한 통, 그리고 한중일 기초과학자의 작은 연대
1. 학회가 끝나고 남는 것
제4회 한중일 초파리 학회가 하얼빈에서 끝났다. 프로그램북의 오탈자를 마지막까지 고치고,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배웅하고, 강당의 의자를 제자리에 밀어 넣고 나면 학회는 끝난다. 하지만 학회가 진짜로 끝나는 순간은 그때가 아니다. 며칠 혹은 몇 주 뒤에 도착하는 편지들이 있다. 세션도 아니고 단체사진도 아니고, 바로 그 편지들이 학회의 진짜 수확이다.
일본의 오랜 동료에게서 편지가 왔다. 그는 세 가지를 한꺼번에 건네주었다. 정직한 경고 하나, 개인적인 다짐 하나, 그리고 과학적인 선물 하나.
경고는 이랬다. 지금으로서는 일본의 대학이 하얼빈공대와 공식적인 기관 대 기관 협정을 맺기 어렵다는 것. 다짐은 이랬다. 그럼에도 국제 협력은 “우리 과학을 다음 단계로 옮기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자신은 계속 참여하겠다는 것. 선물은 이랬다. 내가 발표 중에 지나가듯 던진 한 문장 — 초파리는 척추동물로 건너가기 위한 징검다리가 아니라, 무척추동물 그 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모델이어야 한다 — 을 그는 듣고 있었고, 나보다 더 날카롭게 벼려서 되돌려주었다. 단순히 주제를 넓히지 말고, 그 경계면 자체를 의도적으로 경작하라고. 그러면 이 학회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정체성을 갖게 될 것이라고.
동료가 내 생각을 더 좋게 만들어 돌려주었을 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대답은,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의 공으로 돌리고, 그가 생각한 것보다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이 글은 그 대답을 준비하면서 내가 스스로에게 한 이야기다.

2. 초파리는 어쩌다 작은 인간이 되었나
지난 100년 동안 초파리 유전학의 정당화 논리는 놀랄 만큼 일관되었다. 초파리는 작은 인간이다. 인간 질병 유전자의 약 75퍼센트가 초파리에 상동유전자를 가지고 있다는 저 유명한 숫자는, 실은 통계라기보다 여권에 가깝다. 그 여권 하나로 초파리는 의과대학과 제약회사와 국립보건원의 문을 통과했다. 신경퇴행성 질환, 암, 대사질환, 수면장애 — 초파리는 언제나 인간의 대리인으로서만 발언권을 얻었다.

나는 이 전략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자신이 그 전략의 수혜자다. 하지만 여기에는 기묘한 데가 있다. 우리는 곤충 한 마리를 빌려와 인간을 이해했고, 그 100년 동안 정작 곤충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유전학 도구상자 — GAL4/UAS, CRISPR, 광유전학, 커넥톰, 단일세포 전사체 — 를 손에 쥔 공동체가, 그 도구를 만들어준 분류군에 대해서는 놀랍도록 무심했다.
이것은 생물학이 오랫동안 인간을 종점으로 삼아 조직되어 왔기 때문이다. 모델생물의 가치는 인간과의 유사성에 비례해 매겨졌다. 효모는 세포, 예쁜꼬마선충은 발생, 초파리는 신경계, 생쥐는 거의 인간. 이 사다리에서 초파리의 위치는 언제나 “인간에 꽤 가까운 무척추동물”이었다.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만이 승진이었다.
하지만 기술된 동물 종의 절반이 훨씬 넘는 것이 곤충이다. 육상 생태계의 물질순환과 수분과 분해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것도 곤충이다. 이 압도적인 다수를 이해하기 위해 초파리를 쓰는 일은 사다리에서 내려오는 일이 아니다. 사다리 자체가 잘못 놓여 있었다는 이야기다.

3. 인간을 위한 초파리에서, 생태계를 위한 초파리로
내가 이 전환을 감상적인 이유로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가장 급한 생물학적 문제들이 인간의 세포 안에 있지 않고 생태계 안에 있기 때문이다.
수분 매개 곤충은 줄고 있고, 그 감소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지만 방향에 대해서는 논쟁이 거의 없다. 해충은 우리가 새 살충제를 만드는 속도보다 빠르게 저항성을 획득한다. 기후는 곤충의 분포와 생활사와 체내 시계를 재배열하고 있다. 매개곤충은 질병의 지도를 다시 그린다. 이 모든 문제의 핵심에는 하나같이 분자 메커니즘이 있다 — 리아노딘 수용체의 한 점돌연변이가 어떻게 살충제를 무력화하는가, 어떤 신경펩타이드 회로가 산란 결정을 좌우하는가, 장내 줄기세포와 미생물총이 곤충의 면역을 어떻게 지탱하는가.
그리고 이런 메커니즘을 실제로 뜯어볼 수 있는 유일한 곤충이 초파리다. 벼멸구에서 유전자를 하나씩 두드려볼 수는 없다. 초파리에서는 할 수 있다. 그래서 방법은 단순하고 직접적이다. 메커니즘은 초파리에서 해부하고, 그 결과를 CRISPR로 해충이나 화분매개자에게 옮긴다. 은유가 아니라 실제 실험 설계다.

내 이웃인 동북임업대학의 진리화 교수 연구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산림 유래 천연물이 초파리 장 줄기세포와 점막 면역에 미치는 영향을 보고, 나아가 꿀벌 독의 펩타이드인 아파민을 초파리에서 막결합 형태로 발현시켜 장내 항균 활성과 pH 조절을 검증한다. 남경농업대학의 우순판 교수는 식물보호학과에 뿌리를 두고 벼멸구와 이화명나방과 열대거세미나방의 신경펩타이드 수용체와 살충제 표적을 연구하면서, 그 검증 플랫폼으로 형질전환 초파리를 쓴다. 그리고 그와 가장 가까운 친구인 동남대학의 판위펑 교수는 fruitless와 doublesex가 짜는 선천행동 회로를 연구하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신경유전학자다. 우순판이 제1저자이고 판위펑이 교신저자인 드로술파키닌–P1 뉴런 논문은, 농업곤충학과 초파리 신경과학이 이미 한 편의 논문 안에서 융합되어 있다는 증거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초파리 유전학의 다음 100년은 인간을 향해서가 아니라 곤충을 향해서 열려 있다. 그리고 그것은 초파리의 강등이 아니라 승격이다.

4. 중국의 농업대학과 임업대학이라는, 알려지지 않은 자산
이 지점에서 내가 중국에 있다는 사실이 갑자기 의미를 갖는다. 중국의 고등교육 체계에는 농업과 임업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대학들이 통째로 존재한다. 남경농업대학, 중국농업대학, 화중농업대학, 서북농림과기대학, 그리고 내가 있는 하얼빈의 동북임업대학. 각각이 작물 해충과 화분매개자와 누에와 산림 곤충을 연구하는 거대한 곤충학자 공동체를 품고 있고, 그 옆에는 메뚜기와 누에와 야도충 연구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중국과학원 연구소들이 있다.
수십 년 동안 이 공동체와 초파리 유전학 공동체는 나란히, 그러나 서로 만나지 않은 채 발전했다.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바뀐 것은 이것이다. 농업대학과 임업대학의 실험실들이 초파리 유전학을 자기들의 메커니즘 엔진으로 채택하기 시작했다. 서구의 어떤 초파리 학회도, 어떤 응용곤충학 학술대회도 이 경계면에 집을 지어주지 않았다. 큰 초파리 학회는 초파리 공동체를 위해 존재하고, 응용곤충학 대회는 해충학을 위해 존재한다. 그 사이는 비어 있다.
일본이 가진 누에와 귀뚜라미와 꿀벌과 거저리의 곤충과학, 한국이 가진 초파리 유전학과 응용곤충학의 양쪽 전통까지 합치면, 이 경계면은 동아시아가 아니면 조립할 수 없는 조합이 된다. 중국 주제에 손님을 초대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삼국이 각자의 강점을 가지고 만나는 자리라는 뜻이다.
그래서 다음 학회의 이름을 조금 바꾸자고 제안할 생각이다. 제5회 한중일 초파리·무척추동물 생물학 학회. 연속성을 지킬 만큼 작고, 새 정체성을 알릴 만큼 큰 변화다. 결정이 아니라 제안으로 내놓을 것이다. 열려 있다는 태도 자체가 전략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초대받은 사람을 조직자로 바꾸는 것은 공동소유권뿐이다.

5. 정치는 정치이고, 과학은 과학이다
이제 편지의 첫 번째 부분, 그 정직한 경고로 돌아가야 한다. 사실은 담담하게 말하는 편이 낫다. 하얼빈공대는 2020년 6월 미국 상무부의 우려거래자 목록에 올랐고, 일본 경제산업성이 수출관리 심사에 참조하는 최종수요자 리스트에도 이름이 있다. 일본 대학들이 주저하는 것은 개인적 거리낌 때문이 아니라 규정 기계 때문이다. 기관 간 협정과 공동 연구비와 기술이전은 공식 심사를 촉발하지만, 공개된 학술대회에 참석해 공공영역의 기초과학을 발표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그렇지 않다. 내 동료의 조심스러움은 구조적인 것이고, 그가 제안한 처방 — 개인 차원의 지속적 참여 — 은 그 구조가 남겨둔 유일하게 마찰 없는 통로다.
나는 이것을 에둘러 말하지 않으려 한다. 회피는 그가 방금 내게 건넨 신뢰를 소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이렇게 말할 생각이다. 이것은 정치의 문제이지 과학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하얼빈공대 생명과학센터에서 하는 모든 일은, 그리고 한중일 초파리 학회가 대변하는 모든 것은, 유전자와 뉴런과 호르몬과 행동에 관한 기초적이고 호기심 주도적인 생물학이다. 초파리에서 연구되고, 국제 학술지에 공개적으로 출판되고, 세상 누구나 읽고 재현하고 그 위에 쌓을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 복도에 공공영역에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리고 한 가지를 반드시 문서로 남길 생각이다. 우리의 교류가 어떤 동료에게도, 어떤 기관에도 어려움을 만들지 않는 형태로만 계속될 것이라는 것. 친구를 지키는 일이 언제나 우리의 야심보다 앞선다는 것. 일본의 독자가 종이 위에서 보아야 하는 문장은 정확히 이것이다.
물론 이 솔직함은 신뢰하는 동료들 사이의 사적인 서신에 속한다. 학회 홈페이지와 발표 모집 공고에는 과학만 실려야 한다. 그것이 예의이고, 동시에 그것이 안전이다.
6. 초파리 방의 도덕경제
여기서 나는 언제나처럼 컬럼비아 대학의 그 작은 방으로 돌아간다. 토머스 헌트 모건의 초파리 방은 좁고 지저분하고 바나나 냄새가 났다. 그러나 그 방에서 만들어진 것은 유전자 지도만이 아니었다. 캘빈 브리지스는 계통을 관리했고, 요청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무료로 보냈다. 밀리슬라프 데머렉은 초파리 정보 서비스를 만들어, 출판되지 않은 계통과 방법과 실패까지 공유하게 했다. 계통은 국경을 넘어 다녔다. 누구도 그것으로 돈을 벌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언제나 붙들고 있는 초파리 방의 도덕경제다. 그리고 이것은 낭만적 회고가 아니다. 초파리 공동체가 100년 동안 다른 어떤 모델생물 공동체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던 실질적인 이유다. 자원이 자유롭게 흐르는 공동체는 자원을 가둔 공동체를 언제나 이긴다.
냉전의 가장 추운 시기에도 기초과학자들은 자기들의 채널을 열어두었다. 그 채널들은 대개 그것을 제약했던 정치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나는 이것이 도덕적 우화가 아니라 역사적 관찰이라고 생각한다. 정치는 5년이나 10년 단위로 움직이지만, 초파리 계통은 그보다 오래 살고, 학생은 그보다 훨씬 오래 산다.
지금 우리가 하려는 일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브리지스가 계통을 부치던 일을, 다른 이름으로, 다른 국경 위에서 다시 하는 것뿐이다.
7. 서명이 필요 없는 연대
그래서 내가 제안하려는 연대는 아주 작다. 부끄러울 만큼 작다. 양해각서가 아니다. 공동학위가 아니다. 정부 간 협정이 아니다. 초파리 계통과 시약을 나누는 일. 서로의 논문에 이름을 올리는 일. 학생 하나를 한 주 동안 다른 실험실에 보내는 일. 초파리 실험실이 농업대학과 임업대학의 실험실에 드라이버 계통과 분석 파이프라인을 가르쳐주는 오후 하나를 프로그램에 넣는 일. 한 세션에서 fruitless 회로 발표 옆에 벼멸구 발표를 나란히 놓고, 두 발표자가 서로의 질의응답까지 남아 있게 만드는 일.
이 목록에서 서명이 필요한 항목은 하나도 없다. 그것이 핵심이다. 어떤 학생도, 어떤 대학의 국제협력처도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계속될 수 있는 형태로만 학회를 설계하는 것. 참여가 결코 누군가의 서명을 요구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
작기 때문에 지속 가능하고, 지속 가능하기 때문에 누적된다. 이것이 내 동료가 편지에서 알려준 점진주의의 각본이다. 지속적인 참여가 몇 해 쌓이면, 일본 대학 내부에서 하얼빈공대 생명과학센터와의 교류는 점점 더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다. 학회 한 번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 학회 다섯 번은 바꾼다.
그리고 진짜 결과는 회의록에 남지 않는다. 지금 대학원생인 사람들, 하얼빈과 남경과 서울과 도쿄를 오가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 그냥 당연한 일인 세대. 그들에게 이 복도는 정치적 성취가 아니라 그냥 지형이다. 우리가 만들려는 것은 그 지형이다.
8. 보통 과학자의 결론
나는 외교관이 아니다. 나는 초파리가 얼마나 오래 교미하는지를 재는 사람이다. 이보다 더 사소하게 들릴 수 있는 직업을 나는 잘 상상하지 못한다.
하지만 어쩌면 바로 그래서일 것이다. 초파리의 교미 시간을 재는 일에는 국가 안보가 없다. 이중용도 기술이 없다. 특허가 없고, 수출 규제가 없고, 기밀이 없다. 오직 공개된 저널에 실려 누구든 재현할 수 있는 문장들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사소함은 약점이 아니라 통행증이다. 정치가 모든 문을 닫을 때, 가장 사소한 과학이 가장 먼저 열리는 문이 된다.
동아시아는 지금 어느 때보다 서로에게 화가 나 있고, 세계는 우리에게 진영을 고르라고 요구한다. 나는 그 요구에 대답할 자격이 없다. 다만 나는 하얼빈에서, 하나의 작은 학회를, 서명 없이도 계속될 수 있는 모양으로 유지하는 일 정도는 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아는 유일한 종류의 정치다.
100년 전 뉴욕의 좁은 방에서 몇 사람이 초파리 병을 나눠 가지며 시작한 일이, 결국 20세기 생물학 전체를 바꾸었다. 그들은 그때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나도 모른다. 다만 계통을 계속 부치고, 편지에 답장하고, 학생을 보내고, 내년에 다시 만나기로 하는 것 — 그것이 100년 전에도 옳았고 지금도 옳다는 것만은 안다.
편지에 답장을 써야겠다.

김우재 · 하얼빈공업대학 생명과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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