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L;DR
- 원숭이도 병을 겪으면 먹이를 가린다. 미국 UC샌디에이고 연구팀이 텍사스의 한 보호시설에서 사는 일본원숭이 집단들을 비교했다. 몇 년 전 레트로바이러스 유행을 겪은 집단은 오염돼 보이는 먹이를 고른 비율이 47%였고, 유행을 겪지 않은 집단은 79%였다. 감염된 개체든 아니든 행동이 비슷했다.
- 면역은 몸 안에만 있지 않다. 연구팀은 이 차이를 무리 안에서 배우고 전해지는 ‘행동 면역계’의 흔적으로 해석했다. 사람 손에 자란 원숭이들이 오히려 오염된 먹이를 더 자주 골랐다는 결과는, 위험을 피하는 지식이 개체의 몸보다 무리의 관계 속에 저장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 초파리유전학자의 결론. 초파리도 해로운 냄새를 피하고, 위험의 기억을 서로에게 전한다. 연구실도 마찬가지다. 실패한 실험과 피해야 할 함정을 기억하는 것은 한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함께 쓰는 노트와 공유된 재료다. 그 기억을 지키는 일이 열린 과학의 가장 오래된 기능이다.
초파리 연구실에는 냄새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배양기 문을 열고 바이알 마개를 하나 뽑아 코를 대 본다. 먹이가 시큼하게 잘 익었는지, 곰팡이가 피기 시작했는지, 진드기가 들어온 건 아닌지. 눈으로 보기 전에 코가 먼저 안다. 오래된 사람일수록 그 판단이 빠르다. 그리고 그 감각은 대개 교과서가 아니라 옆자리 선배에게서 배운다.
이번 주 사이언스타임즈에 실린 연합뉴스 기사 하나가 그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원숭이도 병을 한 번 겪고 나면 더러워 보이는 먹이를 더 경계한다는 연구다. 결과 자체는 소박하다. 그런데 나는 이 연구가 묻는 질문이 꽤 크다고 생각한다. 위험을 피하는 지식은 어디에 저장되는가. 한 마리의 몸 안인가, 아니면 무리의 관계 속인가.
47%와 79%

기사에 따르면 UC샌디에이고 연구팀은 21일 Royal Society Open Science에 이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대상은 미국 텍사스의 한 보호시설에서 사는 일본원숭이 네 집단이다. 이 가운데 세 집단은 2020년 SRV-2라는 레트로바이러스 유행을 겪었고, 한 집단은 겪지 않았다. 연구팀은 원숭이들에게 깨끗한 먹이와 오염돼 보이는 먹이를 함께 내밀고 어느 쪽을 고르는지 보았다.
오염돼 보이는 먹이를 고른 비율은 유행을 겪은 집단에서 47%, 겪지 않은 집단에서 79%였다. 실험에 참여한 원숭이는 55마리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다음이다. 유행을 겪은 집단 안에서는 실제로 감염됐던 개체와 감염되지 않았던 개체가 비슷하게 행동했다. 직접 아파 본 경험이 없어도 무리 전체가 더 조심스러워진 셈이다.
연구팀은 비교를 하나 더 했다. 사람 손에 자란 마카크 원숭이 7종 54마리에게 같은 선택을 시켰더니, 이들은 오염된 먹이를 더 자주 골랐다. 무리 속에서 자라지 않은 원숭이들이 위험한 먹이를 덜 가렸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이 결과들을 묶어, 질병을 피하는 행동이 무리 안에서 사회적으로 학습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물론 한계도 분명하다. 표본은 수십 마리이고, 비교 집단은 하나뿐이며, 유행을 겪은 뒤 몇 년이 지난 시점의 관찰이다. 집단 사이의 차이가 바이러스 유행 때문인지, 다른 사육 환경의 차이 때문인지는 이 설계만으로 완전히 가를 수 없다. 나는 이 연구를 결론보다는 좋은 질문으로 읽는다.
몸 바깥의 면역계

연구팀이 쓴 말은 ‘행동 면역계’다. 면역이라고 하면 우리는 항체와 백혈구를 먼저 떠올린다. 병원체가 몸 안에 들어온 뒤에 싸우는 체계다. 행동 면역은 그 앞단에 있다. 썩은 냄새를 싫어하고, 상한 음식을 뱉고, 아픈 개체를 피하는 행동이 병원체가 몸에 들어오는 일 자체를 줄인다. 심리학과 진화생물학에서는 이 개념을 꽤 오래 다뤄 왔다.
내가 이 연구에서 눈여겨본 것은 그 행동이 어디서 오느냐는 점이다. 혐오와 회피의 일부는 분명 타고난다. 그러나 이 원숭이들의 결과가 맞다면, 어떤 회피는 경험을 거쳐 무리에 쌓이고, 아프지 않았던 개체도 그 기억을 나눠 갖는다. 그렇다면 행동 면역은 개체의 형질이면서 동시에 무리의 문화다. 이것은 기사의 내용이 아니라 나의 해석이다.
행동 면역이 무리의 것이라면, 그것은 비용과 함께 온다. 지나치게 조심하는 무리는 멀쩡한 먹이까지 버린다. 연구팀이 관찰한 47%라는 숫자도 거꾸로 보면, 유행을 겪은 원숭이들이 절반 가까이는 여전히 오염돼 보이는 먹이를 골랐다는 뜻이다. 회피와 탐색 사이의 균형을 무리가 어떻게 조율하는지는 이 연구가 남긴 다음 질문이다. 나는 이 균형의 문제가 과학자 사회에도 똑같이 있다고 본다. 너무 많이 경계하면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고, 너무 적게 경계하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다.
이렇게 보면 사람 손에 자란 원숭이들의 결과도 다르게 읽힌다. 그들은 먹이와 안전을 사람에게서 공급받았다.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동료 대신, 늘 깨끗한 먹이를 주는 사육사가 있었다. 위험이 사라진 환경에서는 위험을 피하는 지식도 전해질 기회를 잃는다. 나는 이 대목에서 묘하게 우리 연구실을 떠올렸다.
파리는 냄새로 피하고, 서로에게 배운다

초파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초파리는 상한 먹이를 냄새로 가려낸다. 내가 아는 한 2012년 Cell에 실린 연구는 곰팡이와 일부 세균이 만드는 지오스민이라는 냄새를 초파리가 전용 후각 수용체 하나로 감지하고, 그 냄새가 나는 먹이를 피한다고 보고했다. 타고난 회피 회로다. 수용체 하나와 신경 경로 하나가 ‘여기는 위험하다’는 판단을 맡는다는 점에서, 나는 이것을 행동 면역의 가장 단순한 형태라고 부르고 싶다.
더 흥미로운 것은 배움이다. 기생벌을 마주친 초파리 암컷은 알을 낳는 장소와 양을 바꾼다. 기생벌의 알이 초파리 애벌레 안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내 기억으로 2013년 Science에 실린 연구는 이때 암컷이 알코올이 든 먹이에 알을 더 낳는다고 보고했고, 2015년 eLife의 후속 연구는 기생벌을 본 적 없는 파리도 경험한 파리와 함께 지내면 비슷하게 행동을 바꾼다고 보고했다. 위험의 기억이 개체에서 개체로 건너간다는 이야기다. 원숭이 연구와 겹쳐 보이는 대목이다.
물론 원숭이의 사회적 학습과 초파리의 행동 변화를 같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신경계의 규모도, 무리의 구조도, 기억이 유지되는 시간도 다르다. 그러나 두 이야기는 한 가지 점에서 만난다. 위험을 피하는 지식은 반드시 각자가 직접 아파 보며 얻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이웃을 통해 싸게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진화는 그 싼 지식을 쓰는 동물들을 여러 번 만들어 낸 것처럼 보인다. 이것 역시 나의 해석이다.
혼자 자란 원숭이, 함께 기억하는 무리

연구실로 돌아와 보자. 과학자가 실험에서 피해야 할 함정도 대부분 몸으로 먼저 배우지 않는다. 어느 회사의 항체가 잘 듣지 않는지, 어떤 계통이 배경 돌연변이를 품고 있는지, 어떤 조건에서 실험이 재현되지 않는지는 옆 연구실 사람의 한마디나 오래된 노트의 한 줄에서 배운다. 연구 공동체의 행동 면역이다.
모건의 파리방이 남긴 것도 결국 그런 기억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돌연변이 계통과 교배 기록이 한 방에서 공유되었고, 그 전통이 지금의 스톡센터와 공용 데이터베이스로 이어졌다. 초파리 연구자들은 누군가 이미 실패한 길을 다시 걷지 않아도 되도록, 재료와 기록을 무리의 것으로 만들어 왔다.
그런데 지금의 연구 평가 체계는 그 기억을 잘 남기지 않는다. 실패한 실험은 논문이 되지 않고, 재현되지 않은 결과는 서랍에 들어간다. 성공만 기록되는 공동체는 사람 손에 자란 원숭이와 비슷해진다. 늘 깨끗해 보이는 먹이만 받아 먹으니, 무엇이 위험한지 서로 가르칠 기회가 없다. 나는 실패의 기록과 부정적 결과의 공유가 연구 공동체의 면역력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초파리 연구실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 학술출판은 오히려 반대 방향의 위험을 보여 준다. 이번 주 Retraction Watch 뉴스레터는 인공지능이 만든 논문이 몰려들자 확률론 분야의 주요 학술지들이 새 투고를 잠시 막았다고 전했다. 걸러야 할 먹이가 너무 많아지면 무리는 먹는 일 자체를 멈춘다. 연구 공동체가 무엇이 오염된 결과인지 서로 알려 줄 통로가 약할수록 이런 일은 잦아질 것이다. 이 연결은 나의 해석이다.
원숭이들은 먹이를 고르기 전에 아마 서로를 볼 것이다. 누가 먼저 손을 대는지, 누가 머뭇거리는지. 연구실의 우리도 그렇게 서로를 보며 배운다. 그 시선이 오가는 공간을 지키는 일, 실패를 부끄러움이 아니라 공동의 기억으로 남기는 일이 과학의 오래된 위생이다.
내일 아침에도 누군가 배양기 문을 열고 바이알 마개를 뽑아 냄새를 맡을 것이다. 그 코가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는, 결국 그 방에서 함께 일한 사람들이 가르쳐 준 것이다.
보통 과학자
출처
- 원숭이도 위생 관념 있나…”질병 겪은 후 오염된 먹이 더 경계”. 사이언스타임즈(연합뉴스 제공) (2026.10.22). https://www.sciencetimes.co.kr/nscvrg/view/menu/251?searchCategory=223&nscvrgSn=262560
- 원 논문 (일본원숭이의 오염 먹이 회피와 질병 경험). Royal Society Open Science (2026.10.21). https://doi.org/10.1098/rsos.260011
- A conserved dedicated olfactory circuit for detecting harmful microbes in Drosophila (Stensmyr et al.). Cell (2012). https://doi.org/10.1016/j.cell.2012.09.046
- Fruit flies medicate offspring after seeing parasites (Kacsoh et al.). Science (2013). https://doi.org/10.1126/science.1229625
- Social communication of predator-induced changes in Drosophila behavior and germ line physiology (Kacsoh et al.). eLife (2015). https://doi.org/10.7554/eLife.07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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