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L;DR
- 하루에 1,417편이 사라졌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전기전자공학회(IEEE)는 학회 논문 1,417편을 한꺼번에 철회했다. 연구윤리 전문가들은 학술출판사의 단일 철회로는 가장 큰 규모라고 본다. 이유는 SNS 광고로 저자 자리를 사고판 논문공장(paper mill) 정황이었다.
- 문제는 부정한 개인보다 시장이다. 2021~2026년 학회 논문집 366권에서 2,062편이 의심 논문으로 지목됐고, 저자 자리를 파는 광고가 4,407건 확인됐다고 한다. 저자 자리가 상품이 된 것은 논문 숫자가 곧 화폐가 된 평가 체계가 수요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읽는다.
- 초파리유전학자의 결론. 파리방에서 저자 목록은 함께 파리를 본 사람들의 기록이었다. 저자 자리를 다시 ‘함께 일한 흔적’으로 돌려놓으려면, 철회 숫자를 세는 것보다 논문 숫자를 세는 평가부터 바꿔야 한다.
실험실에서 논문 원고가 거의 끝나 갈 무렵이면 늘 같은 장면이 돌아온다. 저자 목록을 정하는 회의다. 누가 어떤 실험을 했고, 누가 아이디어를 냈고, 누가 몇 달 동안 파리를 교배하며 계통을 만들었는지 하나씩 짚어 가며 이름의 순서를 정한다. 초파리 연구실에서는 이 일이 의외로 오래 걸린다. 한 편의 논문 뒤에는 수십 개의 계통과 수백 개의 바이알, 그리고 그것을 돌본 여러 사람의 손이 있기 때문이다.
그 이름 하나하나는 실제로 일한 사람의 흔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주 네이처 뉴스는 그 이름이 돈으로 팔리고 있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전기전자공학 분야의 거대 학술단체가 학회 논문 1,400여 편을 하루에 철회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며 저자 목록을 정하던 그 오래된 회의를 떠올렸다.
하루에 1,417편

보도를 정리하면 이렇다. 미국전기전자공학회(IEEE)는 학회 논문 1,417편을 한 번에 철회했고, 연구윤리 전문가들은 이것이 학술출판사가 한 번에 낸 철회로는 가장 큰 규모라고 평가했다. IEEE는 10월 28일 성명으로 이를 알렸고, 네이처는 실제 철회가 10월 23일에 이뤄졌다고 확인했다고 한다.
철회의 계기는 한 분석 연구였다. 2021년부터 2026년까지 IEEE의 학회 논문집 366권에서 논문공장과 관련이 의심되는 논문 2,062편이 지목됐고, 그 근거로 SNS에 올라온 저자 자리 판매 광고 4,407건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네이처의 분석으로는 그 2,062편 가운데 1,622편이 이미 철회됐고, 올해 IEEE의 철회 건수가 3,000건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한다.
IEEE는 해당 논문이 지난 6년간 낸 학회 논문의 0.06%에도 못 미친다고 밝혔다. 비율로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숫자를 다른 방향에서 읽고 싶다. 0.06%라는 작은 비율 안에 1,400편이 넘는 논문이 들어간다는 것은, 학술 출판의 전체 규모가 이미 사람이 하나하나 읽고 확인할 수 있는 크기를 넘어섰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자 자리라는 상품

논문공장은 이제 낯선 말이 아니다. 가짜 데이터나 짜깁기한 원고를 만들어 학술지에 밀어 넣고, 그 논문의 저자 자리를 돈을 받고 파는 조직을 가리킨다. 이번 사례에서 눈에 띄는 것은 거래가 SNS 광고라는 공개된 장터에서 이뤄졌다는 점이다. 4,407건이라는 광고 숫자는 이것이 몇몇 일탈자의 은밀한 거래가 아니라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시장이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시장이 생기려면 누군가 사려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왜 사람들은 자기가 하지 않은 연구의 저자 자리를 돈을 주고 사는가. 나는 그 답이 개인의 도덕보다 평가 체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승진, 학위, 연구비, 이민 심사에서 논문 편수가 곧 점수가 되는 곳에서는, 저자 자리가 연구의 기록이 아니라 화폐가 된다. 화폐가 된 것은 언제든 사고팔 수 있다.
물론 이것은 해석이다. 저자 자리를 산 사람들이 어떤 나라, 어떤 처지의 연구자인지 나는 이번 보도만으로 알 수 없고, 특정 국가의 문제로 단정할 근거도 없다. 다만 같은 구조는 한국에도, 내가 일하는 중국에도, 논문 숫자로 사람을 세는 모든 곳에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저자 자리가 화폐가 되면 그 화폐의 가치를 지키는 일은 누구의 몫이 되는가. 지금은 출판사와 학술단체가 철회라는 방식으로 사후에 가치를 깎아 내린다. 하지만 철회는 이미 그 논문으로 학위를 받고 승진을 하고 연구비를 따낸 뒤에야 온다. 이력서에 한 번 올라간 줄은 철회 공지보다 오래 남는다. 사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들킬 확률과 늦게 들킬 때의 손해를 합쳐도 여전히 남는 장사일 수 있다. 나는 이 계산이 바뀌지 않는 한 철회만으로 시장이 닫히기는 어렵다고 본다.
학회 논문집이라는 빈틈

이번 철회가 학술지 논문이 아니라 학회 논문집에서 나왔다는 점도 생각해 볼 만하다. 공학과 컴퓨터과학에서는 학회 발표 논문이 학술지 못지않게 중요한 업적으로 쳐진다. 학회는 해마다 열리고, 논문집은 빠르게 나오며, 많은 경우 심사 기간도 짧다. 빠르게 지식을 나누는 데는 좋은 장점이지만, 그 속도가 검증의 틈이 되기도 한다.
나는 생물학자라서 학회 논문집이 업적의 중심이 되는 문화를 직접 겪어 보지는 않았다. 그래도 구조는 익숙하다. 심사할 사람은 모자라고, 심사할 원고는 늘어나고, 출판사는 그 사이에서 규모를 키운다. 검증은 늘 생산을 뒤쫓는다. 이번 철회도 출판사가 스스로 찾아냈다기보다 외부 연구자들의 분석이 먼저 문제를 드러낸 사례로 보인다. 그렇다면 학술출판에서 실제 품질 관리를 맡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보수를 받지 않는 연구자들과 탐정 같은 연구윤리 감시자들이다.
한국 독자에게도 이 이야기는 멀지 않다. 한국의 공학계와 이공계 대학에서도 국제 학회 발표 논문은 중요한 업적으로 쳐지고, 연구자 평가에서 논문 편수는 여전히 무거운 기준이다. 이번 보도에 한국 연구자가 관련됐다는 내용은 없다. 그러나 같은 구조 위에 서 있는 한, 저자 자리를 사고파는 시장은 언제든 우리 쪽으로 손을 내밀 수 있다.
파리방의 저자 목록

초파리유전학의 출발점에서 저자 목록은 다른 뜻을 가졌다. 컬럼비아대 모건의 파리방에서 스터티번트, 브리지스, 멀러는 좁은 방에서 함께 파리를 보며 일했고, 그 시절의 성과는 네 사람의 이름이 함께 실린 책 『멘델 유전의 메커니즘』으로 정리됐다. 그 책의 저자 목록은 누가 얼마나 많은 논문을 가졌는가의 기록이 아니라, 누가 같은 파리를 함께 들여다봤는가의 기록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파리방도 이상향은 아니었다. 그 안에서도 공로를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적어도 그 방에서 저자 자리는 일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이었고,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계통은 공유되었고, 공유된 계통을 쓴 사람은 그 출처를 밝혔다. 신뢰는 이름을 걸고 함께 일한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졌다.
오늘의 학술출판은 그 신뢰를 숫자로 바꿔 버렸다. 이름이 숫자가 되자, 숫자를 사고파는 시장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논문공장을 단속하는 일만큼이나 평가 체계를 바꾸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몇 편을 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했는지를 묻는 평가, 저자마다 실제 기여를 밝히는 관행, 그리고 데이터와 재료를 공개해 누구나 다시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문화. 이것들은 모두 파리방이 이미 해 오던 일이다.
1,417편의 철회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것이다. 철회 숫자는 앞으로도 기록을 갈아 치울지 모른다. 하지만 철회 숫자가 늘어나는 것만으로 과학이 깨끗해지지는 않는다. 저자 자리를 사려는 이유가 사라지지 않는 한, 시장은 다른 곳에서 다시 열린다.
오늘 저녁에도 누군가는 바이알을 갈고, 누군가는 그 파리를 들여다보며 노트에 날짜를 적을 것이다. 저자 목록은 원래 그 노트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름은 팔 수 있어도, 함께 파리를 본 시간은 팔 수 없다.
보통 과학자
출처
- Record-breaking retraction: scholarly publisher pulls 1,400 conference papers on one day. Nature (2026.10.30).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6-03455-8
- Record-Breaking Retractions: Academic Publishers Retract 1,400 Conference Papers in a Single Day. Mondo News (2026.10.31). https://themondonews.com/science/record-breaking-retractions-academic-publishers-retract-1400-conference-papers-in-a-single-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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