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L;DR
- 문어 유전체의 3차원 지도. 오스트리아 빈대학 시마코프 연구실이 이끈 국제 연구진이 짧은꼬리오징어·갑오징어·문어 세 종의 유전체가 세포핵 안에서 어떻게 접혀 있는지 비교한 연구를 Nature Communications에 냈다. 수억 년 전 크게 뒤섞인 염색체 조각들이 서로 새로 맞닿으면서, 신경 관련 유전자 주변에 종마다 다른 ‘고리’가 생겼다는 것이 핵심이다.
- 서열이 아니라 배치. 연구진은 이 현상을 ‘조절의 얽힘(regulatory entanglement)’이라는 가설로 묶어 두족류의 복잡한 신경계를 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 기반으로 제안했다. 그러나 연구진 스스로 밝히듯 증거의 대부분은 상관관계이고, ‘지능의 비밀’이라는 보도 제목은 논문보다 한 걸음 앞서 있다.
- 초파리유전학자의 결론. 유전자가 ‘어디에 놓였는가’가 기능을 바꾼다는 생각은 초파리 방에서 오래 자란 생각이다. 스터티번트의 지도, 브리지스의 침샘 염색체, 멀러의 위치효과, 도브잔스키의 역위. 문어의 얽힌 유전체는 그 오래된 질문이 새 도구를 만나 돌아온 장면이고, 그 질문을 가능하게 한 것은 함께 쓰는 공개 유전체 자료라는 공유지다.
초파리 계통 선반 앞에서 가장 자주 읽는 이름은 유전자가 아니라 염색체다. CyO, TM3, TM6B. 밸런서라고 부르는 이 염색체들은 여러 번 뒤집히고 잘려 나간 끝에, 짝이 되는 정상 염색체와 재조합을 하지 못하게 된 염색체다. 우리는 그 뒤엉킨 구조 덕분에 열성 돌연변이를 세대를 넘어 잃지 않고 보관한다.
그래서 ‘유전체 재배열’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먼저 그 선반을 떠올린다. 염색체 조각의 순서가 바뀌는 일은 초파리유전학자에게 사고이기 전에 도구이고, 동시에 진화가 남긴 흔적이다.
이번 주에 문어 이야기가 눈에 들어온 것도 그 때문이다. 사이언스데일리는 10월 12일 ‘문어 지능 뒤에 숨은 놀라운 유전적 반전’이라는 제목으로 빈대학이 주도한 두족류 유전체 연구를 소개했다. 제목은 지능을 말하지만, 논문이 실제로 들여다본 것은 염색체가 세포핵 안에서 어떻게 접혀 있는가였다.
수억 년 전에 뒤섞인 염색체

연구의 제1저자는 테아 로저스, 교신 연구실은 동물 유전체 구조의 진화를 연구해 온 올레크 시마코프의 연구실이다. 공저자 명단에는 2015년 문어 유전체 해독에 참여했던 캐럴라인 앨버틴과 클리프턴 랙스데일의 이름도 보인다. 대상은 문어·오징어·갑오징어처럼 껍데기를 잃은 두족류, 곧 초형류(coleoid)다.
배경부터 짚자. 동물의 유전체에는 놀랄 만큼 오래 유지되는 유전자 배열 덩어리가 있다. 해파리와 사람처럼 멀리 떨어진 동물 사이에서도 어떤 유전자들은 수억 년 동안 같은 염색체 위에 함께 머문다. 이것을 공통 배열, 곧 신테니(synteny)라고 부른다. 시마코프 연구실은 이런 오래된 배열을 추적해 온 곳이다.
두족류는 이 규칙을 크게 어겼다. 보도와 논문에 따르면 초형류의 조상 유전체는 수억 년 전 대규모로 재배열되었다. 서로 다른 염색체에 있던 큰 조각들이 융합하고 뒤섞이면서, 원래는 멀리 떨어져 있던 유전자들이 물리적으로 가까워졌다. 이 뒤섞임은 오징어 쪽보다 문어 쪽에서 더 심했다. 연구진은 앵무조개와 가리비 같은 친척을 기준으로 삼아 무엇이 새로 생긴 배열인지를 가려냈다.
여기까지는 서열을 일렬로 놓고 비교하는 1차원의 이야기다. 이번 연구가 한 걸음 더 나아간 곳은 그다음, 즉 그렇게 뒤섞인 염색체가 실제 세포 안에서 어떤 모양으로 접혀 있는가였다.
서열이 아니라 접힘

유전체는 긴 문장이 아니라 작은 핵 안에 접혀 들어간 실타래다. 멀리 떨어진 두 지점이 접힘 때문에 서로 맞닿으면, 한쪽의 조절 서열이 다른 쪽 유전자의 발현을 켜거나 끌 수 있다. 연구진은 Micro-C라는 방법으로 이 맞닿음을 지도로 만들었다. 프리프린트에 따르면 배아 전체와 함께 중앙 뇌, 시엽, 눈, 팔 같은 조직을 따로 떼어 분석했다.
결과는 두 층으로 나뉜다. 큰 단위의 접힘 구조는 세 종에서 꽤 안정적으로 보존되어 있었다. 반면 더 작은 단위인 ‘염색질 고리’는 종마다, 조직마다, 발생 단계마다 크게 달랐다. 프리프린트 단계의 분석에서는 세 종 모두에 공통으로 있는 고리가 손에 꼽을 만큼 적었고, 문어의 고리는 오징어류보다 대체로 더 길었다. 그리고 이렇게 변하는 고리 상당수가 신경계 발생과 기능에 관여하는 유전자 근처에 몰려 있었다.
연구진은 고리 하나를 직접 건드려 보기도 했다. 가까운 종인 짧은꼬리오징어 배아에서 크리스퍼로 한 신경 관련 유전자의 인트론 일부를 잘라 냈더니, 일부 배아에서 발생과 신경 쪽 이상이 나타났고 고리 바깥의 먼 유전자들의 발현이 떨어졌다. 다만 고리 안쪽 유전자의 변화는 통계 보정 뒤 유의하지 않았다. 흥미롭지만 아직은 한 군데를 찔러 본 결과다.
이 모든 것을 묶는 말이 ‘조절의 얽힘’이다. 연구진의 정의를 내 말로 옮기면, 재배열과 공간적 근접과 조절 상호작용이 쌓이면서 유전체 요소들 사이의 상호의존이 점점 늘어나는 과정이다. 한번 얽히면 다시 풀기 어려워지고, 그래서 어떤 배열은 오래 살아남는다는 가설이다. 나는 이 개념이 두족류 지능보다 더 넓은 질문, 곧 ‘유전체는 왜 어떤 배열을 지키는가’에 대한 답의 후보라는 점이 더 흥미롭다. 이것은 나의 해석이다.
초파리 방의 염색체 지도

유전자의 ‘위치’가 기능과 진화를 좌우한다는 생각은 새것이 아니다. 그것은 초파리 방에서 오래 자란 생각이다.
1913년, 모건 연구실의 학부생이던 앨프리드 스터티번트는 교차 빈도를 거리로 바꾸어 X 염색체 위 유전자들의 순서를 처음으로 지도에 그렸다. 유전자가 염색체 위에 일렬로 놓여 있다는 생각을 숫자로 보여 준 장면이다. 1930년대에는 캘빈 브리지스가 초파리 침샘의 거대한 다사 염색체에서 띠무늬를 하나하나 세어, 눈으로 보는 염색체 지도를 만들었다. 재배열은 그 띠무늬 위에서 뒤집힌 순서로 직접 보였다.
같은 시기 허먼 멀러는 엑스선으로 염색체를 부수고 다시 붙이는 실험을 하다가 이상한 눈을 가진 파리를 얻었다. 눈 색 유전자가 이질염색질 근처로 옮겨지자 같은 유전자가 어떤 세포에서는 켜지고 어떤 세포에서는 꺼져 눈이 얼룩덜룩해진 것이다. 위치효과 얼룩무늬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유전자가 무엇인가만큼 어디에 놓였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 준 사례로 꼽힌다.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는 야생 초파리 집단의 염색체 역위를 세어 진화를 측정했다. 역위는 그 안의 유전자 조합이 재조합으로 흩어지지 않게 묶어 둔다.
그 뒤로도 초파리는 유전체의 접힘을 연구하는 대표적인 무대였다. 유전자 사이에 경계를 세우는 절연자 서열이 초파리에서 일찍 연구되었고, 초파리 배아의 유전체 접힘 지도는 이 분야 초기 연구의 기준점이 되었다.
이 역사 옆에 문어의 연구를 놓으면 ‘조절의 얽힘’이 낯설지 않다. 재배열이 유전자 조합을 묶어 두고, 묶인 조합이 다시 재배열을 어렵게 만든다는 구도는 도브잔스키의 역위와 우리 선반의 밸런서가 보여 주던 논리와 닮았다. 다른 점은 이번에는 서열의 순서만이 아니라 핵 안의 접힘까지 함께 본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해석이며, 두 현상의 메커니즘이 같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지능의 비밀’이라는 제목 앞에서

이제 제목으로 돌아가자. 보도 자료는 이 연구를 문어 지능의 유전적 비밀로 소개했다. 그러나 같은 보도 안에서 연구진은 이 DNA 변화가 두족류의 지능을 직접 만들었다고 증명한 것은 아니며, 가능한 메커니즘 하나를 제안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나는 이 문장이 제목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능은 행동의 수준에서 붙이는 이름이다. 신경 관련 유전자 근처에 종 특이적인 고리가 많다는 것과, 문어가 병뚜껑을 여는 것 사이에는 발생, 회로, 경험, 환경이라는 여러 층이 있다. 프리프린트를 보면 표본 수가 적고 일부는 여러 배아를 섞은 것이며, 종마다 분석 해상도도 달랐다. 고리가 거의 보존되지 않는다는 결과 역시 진짜 빠른 교체일 수도, 방법의 민감도 한계일 수도 있다고 연구진은 적었다. 정직한 논문일수록 경계를 그어 두고, 보도는 그 경계를 지우기 쉽다.
또 하나 눈에 띈 것은 이 연구가 기대는 바탕이다. 연구진은 염색체 수준으로 해독된 두족류 유전체 15개를 함께 비교했다. 누군가 해독해 공개한 유전체가 없었다면 이 비교는 불가능했다. 초파리 연구가 블루밍턴 같은 계통 센터와 공개 데이터베이스라는 공유지 위에서 자랐듯이, 비모델 생물의 유전체 연구도 공개 자료라는 공유지 위에서 자란다. 문어를 진짜 모델생물로 만드는 것은 한 편의 화려한 논문이 아니라 그 공유지의 두께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 계통 선반 앞에 선다. 밸런서 염색체는 얽혀 있기 때문에 쓸모가 있다. 재조합을 막는 그 얽힘이 돌연변이를 지키고, 우리가 백 년 넘게 같은 질문을 이어 갈 수 있게 해 주었다. 문어의 유전체는 아마도 수억 년 전의 큰 뒤섞임 뒤에 다른 종류의 얽힘을 얻었고, 그 얽힘 안에서 무언가를 지키고 무언가를 새로 만들었을 것이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만들었는지는 아직 모른다.
그래도 이 연구가 남긴 문장 하나는 분명하다. 유전체는 한 줄로 읽는 문장이 아니라 접힌 편지다. 무엇이 적혀 있는가만큼, 어디가 어디와 맞닿도록 접혀 있는가가 뜻을 바꾼다. 초파리 방의 선배들은 그것을 띠무늬와 얼룩진 눈으로 보았고, 오늘의 연구자들은 문어의 핵 속에서 다시 본다.
보통 과학자
출처
- Scientists Find a Surprising Genetic Twist Behind Octopus Intelligence. ScienceDaily (University of Vienna 보도자료) (2026.10.12). https://www.sciencedaily.com/releases/2026/10/261011211552.htm
- Genome reorganisation and expansion shape 3D genome architecture and define a distinct regulatory landscape in coleoid cephalopods (프리프린트). bioRxiv (2025). https://www.biorxiv.org/content/10.1101/2025.08.29.672809.full.pdf
- Rogers TF, … Simakov O. 같은 제목의 출판본 (DOI: 10.1038/s41467-026-77625-7). Nature Communications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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