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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생물학의 상처받은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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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주, 알린스키와 과학기술
- 한윤형, 왜 한국 남성은 한국여성들에게 분노하는가
- 소라야 드 샤다레비안 Soraya de Chadarevian: DNA와 분자생물학의 역사
- 아서 콘버그: 효소냉장고와 사회주의
- 과학자로 살면서 과학철학자가 될 수 있을까
- 그것은 서평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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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니엘 튜더: 구체적으로, 긍정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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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문을 위한 플랫폼
- 침묵의 공장 -강명관의 테크놀로지
- 문화에서 과학이 수행하는 역할: 찰스 길리스피(C.C. Gillispie)
- 텅 빈 지대: 한국사회 진보진영의 지형도와 버널 사분면(진보적 과학지식인 그룹)의 정립을 위한 소고
- 볼테르: 데카르트와 뉴턴에 대하여
- 마르크스의 과학주의
- 실험이라는 혁명
- 마카다미아 땅콩에 대한 과학사회역사학적 고찰
- 역사 속의 과학과 기술
- 한국 진보진영의 재편을 위한 전략: 과학기술혁명之計
- 엘로프 A. 칼슨 Elof Axel Carlson: 유전학자, 과학사가, 교육자.
- 미주한인사회의 역사: 여전히 한국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반공이념의 탄생
- 추첨제, 협동조합, 그리고 자본주의의 대안으로서의 ‘공선共善주의’
- 안희경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발췌록
- 축구의 사회사 그리고 박정희
- 루소와 화학: 계몽과 낭만의 조율자로서의 실험과학
- 대의제, 정당정치 혹은 시장민주주의: 그 한계와 대안
- ‘동서의학논쟁’/’한의학 부흥논쟁’: 1934년 식민지 조선의 과학과 의학
- 20세기 중국에서의 과현科玄논쟁 혹은 과학-현학 논쟁
- 리스쩡(李石曾 1881-1973, 생물학자/아나키스트)과 중국 ‘신세기파’의 과학적 아나키즘
- 신채호: 차라리 괴물을 취하리라
- 음모론과 지배권력, 그리고 과학
- 아나키즘, 잊혀진 이념
- 몽양 여운형: 이념과 먹물에 관한 어록
- 초파리 애벌레의 사회성
- 무상급식, 혁신학교, 그리고 기본소득
- 도덕적 말막힘 moral dumbfounding
- 조나단 하이트 Jonathan Haidt: 도덕철학을 위한 신경과학
- 파이어아벤트, <이성이여 안녕> 발췌록
- 오보카타 하루코, 찰스 바칸티, STAP 세포
- 비그포르스의 과학적 세계이해
- 선거라는 환상
- 조희연, 급진민주주의
- 대의제의 환상
- 방법론에 관하여 혹은 대항하여: 합리주의자 대 게으른 무정부주의자
- 성공적인 과학자란 보수와 진보의 동적평형이다
- 과학과 정치 강연 녹취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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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생물학그룹 Pohang Biology Group
- 누가 라부아지에를 죽였나
- <분자생물학: 실험과 사유의 역사> 서평
- 리오리엔트: 안드레 군터 프랑크가 한국인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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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직의 두 이름: 황우석 사태를 보며
- 진화의 의미: 서문 (모투 기무라)
- 이마니시 긴지와 기무라: 일본의 과학과 서구의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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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에서 과학도로 살아감은..
- 황교수 논문 있는그대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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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ancis Jacob의 과학
- 전령 RNA의 발견, 프랑스 생물학의 부흥, 그리고 우리
- 이런 이유 때문에 자연과학이..
- 밈은 다만 은유일 뿐이다
- 실험실 생활
- 분자생물학의 기초를 위한 책들
- 왜 그것이 과학이어야 하는가?
- 한빛사에 실렸다고 한국을 빛내는 것이 아닙니다
- 과학자에게 고전이란 무엇인가
- 포항공대 고전강독회 공고문
- 들어라,침팬지들아!
- 신문이란 무엇인가
- 과학은 정치에 중립적이지 않다!
- 신문이란 무엇인가
- 알아도 알 수 없는 것들에 관하여
- 황우석과 초파리: 홍혜걸 한국최초 의학전문기자’님’의 글을 읽고
- 줄기세포의 재현성 문제: 재현성과 반복성의 차이
- 과학자가 되기까지의 여정: 토마스 쇼필드의 ‘과학자가 되기까지의 네 가지 단계’에 관한 이야기
- 자연 다큐멘터리의 구태: 곤충, 위대한 본능
- 명품 학술지와 과학: Die! Nature, Cell, Science. Die
- 혁명가로서의 과학자: Scientist as revolutionary
- 이기적 유전자 소동의 이면: Debates between David Dobbs and Richard Dawkins
- 곤충의 의사결정과 행동의 복잡성: Invertebrate behavior—actions or responses?
- 스코틀랜드의 철학: The Scottish philosophy : biographical, expository, critical : from Hutcheson to Hamilton
- 여왕벌과 초파리
- 초파리의 문화연구
- 왜 철학자는 과학자들에게 존경받지 못하는가
- 생물학의 두 전통
- 파시즘 만능주의
- 진화심리학 대 진화의학
- 어리석은 과학학자들
- 실험철학 소고
- 정신분석학 대 진화심리학
- 시조새의 교훈
- 한국에서 신이 되어버린 라깡
- 오만과 편견
- 침묵하겠습니다.
- 유전학자 선언
- 간만에 주문한 책들
- 샌프란시스코 점령
- 죽은 과학자의 사회
- 과학계의 보수화, 과학의 질적 쇠퇴
- 근대과학에서 실험의 의미
- 실험과학자의 일상
- 지난세대 과학자들과 과학자의 사회운동
- 과학자가 할 수 있는 것
- 리버럴 아트 칼리지에서의 과학
- 조선 과학사 서문: 홍이섭
- 의사 안철수, 변호사 박원순
- 과학출판 대기업들의 횡포
- 박정희에게 보내는 1975년 한 서울대생의 편지
- 과학자의 노래
- ‘세계 과학노동자 연맹’에 관하여
- 옛다! 은꼴
- 좌파과학의 전통
- 케인즈의 이자율
- 논문의 계급, 그리고 과학
- 좋은 과학자
- 맥북 샀다
- 샌프란시스코
- 물리학과 족보?
- 영웅 논증
- 과학자 정치인
- 창의적인 실험실
- 초파리 뇌
- 사라 페일린의 초파리
- 과학계의 계급구조
- 정체성을 숨기고 산다는 것
- 초파리 K1
- 젊은 날
- 칭찬과 비판
- 한국 과학사회학 떨거지들에게
- 진화는 혁명이 된다
- 열정과 성실 그 사이
- 이공계 3차원 지식포럼?
- 해석의 자유
- 고비의 좌파 규범윤리학
- 졸라 멋진 글
- 잡담
- 제이콥, 벡위드, 나
- 과학과 계몽주의
- 최고의 야동
- 진화심리학의 종말
- 트위터를 때려치운 이유
- 화장실의 신 / 우에무라 카나
- 과학자
- 투쟁
- 아주 좀 웃기는 논리적인듯한 비논리
- 분노하라
- 개똥 마르크스주의와 그 비판자들
- 잡상 20010609
- 두리반의 승리
- 잡상 20010608
- 잡상 20110607
- ‘인문학적 상상력’이라는 오해
- 뉴욕의 초파리
- 세계적인 석학
- <종교전쟁> 토론회 동영상
- 장하준, 영국왕립예술원 강연
- 한국의 의사 계급을 절대로 믿을 수 없는 이유
- 모래성-오석준
- 그럴때마다
- 그 남자
- 꿀벌의 사회생물학
- 간이 항원진단키트
- 아이유를 사유하기: 지식인과 대중음악
- 실험실의 대학원생
- 장하준: 경제학과 자연과학
- 왜 아이유는 주이상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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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정치평론가의 엉뚱함에 대해
-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 정치성향 자가진단 테스트
- 이곳은 아이유/소녀시대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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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백: 말도 안되는 말
- 초월적 논증과 과학적 사고의 대비
- 독백: 정체성, 삼중뇌, 혼란한 마음
- <과학지식인 열전> 연재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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