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리듬 지대(arrhythmic zone)와 시계 유전자의 재활용에 대하여

자랑에는 바닥이 있다
생체시계를 소개할 때 우리가 가장 자주 꺼내는 자랑은 온도보상(temperature compensation)이다. 대부분의 생화학 반응은 온도가 10도 오르면 속도가 대략 두 배가 된다. Q10 = 2. 그런데 생체시계만은 이 법칙을 무시한다. 시아노박테리아든 곰팡이든 초파리든, 꽤 넓은 온도 범위에서 주기는 24시간 언저리에 붙박여 있다. Q10은 0.85에서 1.4 사이. 온도에 휘둘리는 시계는 시계일 수 없으니, 이건 시계가 시계이기 위한 최소 조건이기도 하다.
며칠 전 FEBS Journal에 올라온 리뷰 한 편(Martinez & LiWang)은 그 자랑에 바닥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저자들은 그 바닥 아래의 온도 구간에 무리듬 지대(arrhythmic zone, AZ) 라는 이름을 붙였다. 위쪽 경계는 리듬이 사라지는 임계온도 Tc, 아래쪽 경계는 그 생물이 죽는 온도다. 다시 말해 AZ는 살아 있지만 리듬은 없는 구간이다.
숫자들은 생각보다 인상적이다. 시험관 속 KaiABC 단백질 시계는 19°C에서 진동을 멈춘다. 세포 안의 시아노박테리아 시계도 거의 같은 온도에서 멈춘다. 애기장대는 4°C에서 시계 유전자 발현이 무너지지만, 저온 순화를 거치면 영하 10도에서도 살아남는다. 동면 중인 유럽햄스터의 시교차상핵(SCN)에서 Per1, Per2, Bmal1의 24시간 진동은 사라지고, 북극땅다람쥐는 체온 3~4도에서도 SCN 리듬 없이 겨울을 난다. 심지어 배양된 인간 U2OS 세포는 30°C에서 이미 리듬을 잃는다. 우리 몸이 37도를 고집스럽게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

진동은 어떻게 죽는가
이 리뷰가 좋은 리뷰인 이유는 “언제 멈추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멈추는가” 를 묻기 때문이다.
비선형 동역학에는 진동이 죽는 두 가지 전형적인 경로가 있다. 하나는 호프 분기(Hopf bifurcation). 온도가 내려가면 진폭이 매끄럽게 줄어들어 0으로 수렴한다. 그런데 주기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임계점 아래에서 시스템은 ‘감쇠 진동자’가 된다. 소리는 사라졌지만 고유 진동수는 남아 있는 상태. 다른 하나는 SNIC 분기. 이쪽은 진폭을 유지한 채 주기가 점점 길어지다가 무한대로 발산하고, 어느 특정 위상에서 멈춰버린다.
생물학적으로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SNIC형 시계는 죽기 직전까지 틀린 시간을 알려준다. 주기가 늘어나므로 시계는 여전히 돌아가는 척하면서 잘못된 정보를 내보낸다. 반면 호프형 시계는 목소리가 작아질 뿐 박자는 지킨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감쇠 진동자는 공명한다. 무라야마 등이 시험관 KaiABC를 임계온도 아래로 식힌 뒤 외부에서 온도 주기를 걸어주자 진동이 되살아났고, 그 회복은 외부 주기가 24시간일 때 가장 컸다. 자기 힘으로는 못 돌지만, 24시간짜리 밀어주기에는 여전히 반응하는 시계. 리뷰 저자들은 이걸 ‘공명 구조(resonance rescue)’라 부른다.
호프 분기가 실험적으로 확인된 계는 아직 많지 않다. 시아노박테리아(시험관과 세포 양쪽), 그리고 배양 인간 세포 정도다. 애기장대는 수학 모델상 가능하다는 수준이고, 동면 포유류는 오히려 수동적 붕괴에 가까워 보인다. 대사 자체가 95% 억제되고 전사와 번역이 전반적으로 멈추는 상황에서, 시계만 따로 우아하게 분기할 리 없다. 반면 애기장대는 저온에서 LKP2/SCF 복합체가 PRR5와 TOC1을 적극적으로 분해한다. 능동적 셧다운이다. 같은 ‘침묵’이라도 스위치를 내린 침묵과 배터리가 나간 침묵은 다르다.

초파리 자리에 찍힌 물음표
이 리뷰의 그림 2에는 여섯 종의 온도 막대가 나란히 그려져 있다. 초파리 자리에는 15~16°C에 붉은 점선이 그어져 있고, 그 옆에 물음표가 하나 붙어 있다.
이 물음표는 정직한 물음표다. 초파리는 15~16도 아래로 내려가면 활동량이 급감하고 결국 냉동혼수(chill coma)에 빠진다. 활동을 안 하니 활동 리듬을 잴 수가 없다. 그러니까 15~16도는 초파리 시계의 임계온도가 아니라 우리 관찰의 임계온도다. 초파리의 치사 하한은 대략 영하 5도. 만약 분자 시계의 진짜 Tc가 그보다 훨씬 아래에 있다면, 초파리의 무리듬 지대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넓거나, 어쩌면 거의 없을 수도 있다.
100년 넘게 가장 많이 연구된 시계를 가진 동물에 대해, 우리는 그 시계가 몇 도에서 멈추는지를 아직 모른다. 측정하지 않은 것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멈추는 건 무엇인가
여기서 나는 우리 랩이 최근 Neuroscience and Biobehavioral Reviews에 낸 리뷰의 이야기를 겹쳐보고 싶다. 그 글에서 우리는 초파리 시계 유전자를 24시간 진동자의 부품이 아니라 재사용 가능한 시간 모듈로 보자고 제안했다. 진화는 새로운 타이머가 필요할 때마다 유전자를 새로 발명하지 않는다. 있는 부품을 다른 회로에 꽂는다. 유전자 전용(co-option)과 모듈성.
Miao, H. & Kim, W. J. The Central Role of Clock Genes in Orchestrating Diverse Timing Behaviors in Drosophila: An Integrative Genetic and Molecular Review. Neurosci. Biobehav. Rev. 106778 (2026) doi:10.1016/j.neubiorev.2026.106778.
가장 선명한 사례가 교미 시간이다. 경쟁자를 본 수컷은 교미를 늘리고(LMD), 성경험이 있는 수컷은 교미를 줄인다(SMD). 둘 다 분 단위의 간격 타이밍(interval timing)이다. 그런데 LMD는 period와 timeless를 쓰고 PDF 신경세포와 타원체를 경유하는 반면, SMD는 Clock과 cycle을 쓰고 단 한 쌍의 ITP 양성 LNd 신경세포에서 계산된다. 같은 시계 유전자 네트워크가 두 갈래로 쪼개져 서로 반대 방향의 행동을 만든다. 게다가 SMD를 만드는 CLK는 DNA 결합 도메인이 없는 이형질(isoform)이다. 전사인자로서의 본업을 버린 CLK가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행동은 항상광 같은 무리듬 조건에서도 멀쩡히 작동한다.
이 문장을 앞의 리뷰 옆에 놓으면, 나는 조금 다른 그림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무리듬 지대에서 시계가 멈춘다”고 말할 때, 실제로 멈춘 것은 24시간 진동이지 시계 유전자가 아니다. 동면 햄스터의 SCN에서 clock 유전자와 단백질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높은 수준에서 비리듬적으로 유지된다. 남극 깔따구 Belgica antarctica에서도 per, tim, Clk, vrille은 모두 발현된다. 다만 진동하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진동에서 해방된 시계 유전자들은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나의 Tc가 아니라 여러 개의 Tc
우리 리뷰가 정리한 목록은 길다. 시계 유전자는 수면 항상성, 섭식 리듬, 지방 대사와 수명, 페로몬 생합성, 식균작용과 면역, 산란, 그리고 계절 휴면에 관여한다. 이 중 상당수는 24시간 진동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특히 저온과 직접 얽히는 고리가 있다. per 돌연변이는 광주기 의존적 내한성을 잃는다. per, tim, Clk을 잃은 초파리는 짧은 낮 조건에서 냉동혼수 회복 시간을 단축하지 못한다. 즉 시계 유전자는 추위에 대응하는 일을 한다. 그런데 무리듬 지대란 정의상 그 추위 한복판이다. 시계가 침묵하는 바로 그 온도에서 시계 유전자는 가장 바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온도 민감 스플라이싱이 겹친다. 초파리 per의 3′ 인트론 dmpi8은 저온에서 스플라이싱이 촉진되어 PER 축적을 앞당기고 저녁 활동 정점을 낮 쪽으로 끌어온다. timeless는 온도에 따라 tim-L, tim-C, tim-SC, tim-M으로 갈라지고, Clk에도 저온 특이적 변이체가 있다. 흥미롭게도 dmpi8 인트론을 Neurospora의 frq 유전자에 이식해도 온도 민감성이 따라간다. 온도를 읽는 것은 단백질이 아니라 인트론 서열 자체다.
이 사실들을 모으면 이런 그림이 된다. 추위는 시계를 끄기 전에 먼저 시계의 이형질을 바꾼다. 무리듬 지대로 내려가는 길은 절벽이 아니라 계단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계단의 각 층에서 서로 다른 모듈이 하나씩 꺼진다면, 한 생물의 저온 한계는 하나의 Tc가 아니라 모듈마다 다른 여러 개의 Tc여야 한다.
해볼 만한 실험
이건 검증 가능한 예측이다.
초파리의 행동 리듬은 15~16도 아래에서 측정할 수 없다. 하지만 교미는 다르다. 교미 시간은 분 단위이고, 냉동혼수 직전 온도에서도 초파리는 짝짓기를 한다. 16도, 14도, 12도로 인큐베이터를 내려가며 LMD와 SMD를 측정해보면 어떨까.
세 가지 결과가 가능하다. 일주기 리듬이 사라진 온도에서도 두 행동이 유지된다면, 무리듬 지대 안에서 시계 유전자 모듈이 살아 있다는 직접 증거가 된다. 둘 중 하나만 먼저 무너진다면 — 예컨대 Clk/cyc 의존적인 SMD가 per/tim 의존적인 LMD보다 먼저 사라진다면 — 모듈마다 고유한 열적 강건성이 있다는 뜻이다. 둘 다 24시간 진동과 함께 무너진다면, 간격 타이밍이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코어 진동자에 더 깊이 의존한다는 뜻이 된다. 어느 쪽이든 배울 게 있다.
값비싼 장비가 필요한 실험이 아니다. 온도 조절되는 인큐베이터와 비디오 카메라, 그리고 초파리를 오래 들여다볼 인내심이면 된다. 모건과 브리지스의 방에 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목록이다.
침묵과 소멸
Martinez와 LiWang이 마지막에 지적하는 공백은 뼈아프다. 최적 생육온도가 15도 이하인 진짜 저온성 생물(psychrophile) 중에서, 자기 서식 온도에서 제대로 된 일주기 리듬이 검증된 종은 하나도 없다. 남극 밴다호의 시아노박테리아 유전체에는 kaiABC가 멀쩡히 들어 있지만 아무도 그 시계가 도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진핵생물 최저 기록은 파타고니아산 흑효모의 10도다. 지구 생물권의 상당 부분이 항상 추운 곳인데, 시간생물학은 그곳에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기후가 바뀌면서 이 공백은 학술적 호기심 이상의 것이 된다. 어떤 생물에게 온난화는 무리듬 지대에서 빠져나오는 일이고, 어떤 생물에게는 그 안으로 밀려 들어가는 일이다. 리듬을 잃은 채 사는 것과 리듬을 되찾는 것 중 무엇이 그 종에게 이득인지는, 종마다 다를 것이다. 실제로 남극 깔따구의 무리듬성은 고장이 아니라 적응으로 읽힌다. 2년의 생활사와 좁은 계절 창을 가진 동물에게는, 낮과 밤을 예측하는 것보다 따뜻해진 순간을 놓치지 않는 쪽이 낫다.
호프 분기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파괴가 아니라 대기이기 때문이다. 진폭은 0으로 사라지지만 고유 진동수는 남는다. 온도가 돌아오면 시계는 다시 돌고, 그 전에도 24시간짜리 외부 신호에는 공명한다. 눈먼 동굴거미가 파란빛 한 번에 잠자던 시계를 되찾듯이, 침묵한 시계는 없어진 시계가 아니다.
그리고 침묵하는 동안에도, 그 시계를 이루던 유전자들은 아마 놀고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아직 그쪽을 들여다보지 않았을 뿐이다.

참고문헌
- Martinez K & LiWang A (2026) Arrhythmic zone: When circadian clocks go quiet in the cold. The FEBS Journal. doi:10.1111/febs.70686
- Miao H & Kim WJ (2026) The central role of clock genes in orchestrating diverse timing behaviors in Drosophila: An integrative genetic and molecular review. Neuroscience & Biobehavioral Reviews 188, 1067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