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Flyandbee, Woo Jae Kim (2014-)

AI가 설계한 펩타이드는 대부분 실패했다

그리고 초파리가 살아남은 하나를 골라냈다

어쩌면 우리 실험실도 AI의 유행에 올라탔는지 모른다. 우리 랩의 논문이 Insect Biochemistry and Molecular Biology에 실렸다. AI가 생성한 합성 펩타이드를 초파리에서 유전학적으로 스크리닝해 하나를 건져 올리고, 그 작동 방식을 파헤친 뒤, 마지막에 꿀벌에게 먹여본 이야기다. 제1저자는 쑨옌잉(Yanying Sun), 꿀벌 실험은 동북농업대의 닝팡용(Fangyong Ning) 교수 팀과, 펩타이드 합성은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의 방정규 박사, 단디큐어의 이지현 박사와 함께했다.

이 글은 그 논문의 요약이지만, 사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PAN4라는 분자 하나가 아니다.


설계는 싸졌고, 검증은 그대로다

항균 펩타이드(antimicrobial peptide, AMP)는 곤충에서 사람까지 선천면역의 오래된 무기다. 지난 몇 년 사이 딥러닝—VAE, GAN, 그리고 구조 예측 모델—이 이 분야로 들어왔다. 그 결과 펩타이드 ‘설계’는 놀랍도록 싸고 빨라졌다. 서열 공간은 사실상 무한하고, 생성 모델은 그 무한을 몇 초 만에 훑는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모델이 뱉어낸 서열이 살아 있는 동물의 몸 안에서 작동하는가. 시험관 속 MIC 값과 살아 있는 장(gut) 안에서의 효능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AI 시대의 병목은 설계가 아니라 검증으로 옮겨갔다.

실패에서 시작했다

우리는 아주 정직한 실패로 시작했다. 먼저 임상적으로 유망하다고 알려진 AMP들을 골라, N-말단에 분비 신호서열을 붙인 UAS construct를 만들고 초파리에서 발현시켰다. 녹농균(Pseudomonas aeruginosa)—사람과 곤충과 식물을 두루 괴롭히는 그람음성균—을 먹여 감염시켰다. 결과는 전멸이었다. 하나도 효과가 없었다.

그다음 여러 계산 전략으로 설계된 AI 유래 펩타이드들을 같은 방식으로 시험했다. 역시 전부 실패했다.

이 결과가 논문의 보충 그림 한 장으로 조용히 들어가 있지만, 나는 이것이 이 논문에서 가장 정직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in silico에서 좋아 보이는 것, in vitro에서 균을 죽이는 것, 그리고 살아 있는 동물의 장 안에서 실제로 숙주를 살리는 것은 서로 다른 세 가지 사건이다.

PandoraGAN, 그리고 PAN4

그래서 방향을 바꿨다. GAN(generative adversarial network)은 생성자와 판별자가 서로를 속이고 검열하며 훈련되는 모델이다. 그중 PandoraGAN은 항바이러스 펩타이드를 만들도록 설계된 프레임워크였다.

우리는 이 프레임워크가 내놓은 다섯 개의 펩타이드를 초파리에서 발현시켰고, 그중 둘—PAN4와 PAN5—이 강한 항균 활성을 보였다. PAN4, 즉 PandoraGAN4의 서열은 GAYTFKIRRK. 겨우 열 개의 아미노산이다. 구조는 AlphaFold2로 예측했고, 유전자 construct는 트립신 분비 신호서열 + PAN4 + 친수성 링커 + c-myc 태그로 설계했다.

항바이러스용으로 훈련된 모델이 항균 펩타이드를 내놓았다. 생성 모델의 ‘빗나간 출력’이 쓸모 있었던 셈인데, 이 우연을 우연으로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살아 있는 동물에서 하나하나 걸러봤기 때문이다.

초파리 안에서 PAN4가 한 일

tub-GAL4로 온몸에 분비형 PAN4를 발현시킨 초파리는 녹농균 감염 후 생존율이 뚜렷하게 올라갔다. 수명은 대조군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이동 속도와 회전 빈도는 늘고 멈춤 횟수는 줄었다. 즉, 대가를 치르지 않는 방어였다.

다만 만능은 아니었다. Enterococcus faecalis, E. coli, Lactobacillus plantarum 감염에는 효과가 없었다. PAN4는 광범위 살균제가 아니라 선택적인 무엇이다.

그렇다면 어느 조직에서 작동하는가. 12개의 GAL4 드라이버로 조직별 스크리닝을 돌렸다. 혈구도(Pxn, Hml), 지방체도(Cg), 근육도(Mef2, Mhc), 상피도(grh), 장세포도(MyoIA) 아니었다. 답은 장내분비세포(EE, pros/Tap)와 장줄기세포(ISC, esg) 였다. 이 두 세포에서만 발현시켜도 전신 발현과 같은 효과가 나왔다.

병사가 아니라 생태계 기술자

여기서부터가 흥미롭다.

ISC에서 PAN4를 발현시키자 중장 R2, R4 영역의 줄기세포 수가 유의하게 줄었다. 반면 장 대부분 영역에서 미토콘드리아 활성은 크게 올라갔다. EE에서 발현시키면 페놀레드 흡수로 측정한 중장 pH가 뚜렷이 산성 쪽으로 이동했고, CaLexA 리포터로 본 R3 영역의 칼슘 신호가 극적으로 증가했다. 난소에서는 같은 변화가 없었으니, 이 칼슘 상승은 중장에 국한된 사건이다.

PAN4는 세균을 직접 터뜨리는 병사라기보다, 세균이 살기 어려운 장 환경을 만드는 기술자에 가까워 보인다. 미토콘드리아를 켜고, pH를 낮추고, 칼슘 신호를 올린다.

교과서를 비껴간 메커니즘

초파리 면역의 교과서적 시나리오는 이렇다. PGRP-LC/LE가 펩티도글리칸을 인식하고 → Imd 경로가 켜지고 → Tak1 인산화 캐스케이드를 거쳐 → Relish가 핵으로 들어가 → AMP 유전자가 전사된다.

그런데 우리 결과는 이렇다.

  • PGRP-SC1a knockdown → PAN4의 항균 효과가 사라진다
  • PGRP-LA, PGRP-LC, PGRP-LE knockdown → 효과 유지
  • Tak1 knockdown → 효과 유지
  • Relish knockdown → 효과 유지

PGRP-SC1a는 아미다아제다. 펩티도글리칸을 잘라내 면역 신호를 오히려 끄는 음성 조절자다. 그리고 PGRP-SC 계열은 ISC 증식과 장 면역 항상성을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PAN4는 면역 경보를 더 크게 울려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정규 Imd 캐스케이드도, Relish의 전사 조절도 필요 없다. 필요한 것은 아미다아제 하나다. 이건 우리가 예상한 그림이 아니었고, 솔직히 아직 다 이해하지 못했다.

스트레스, 그리고 종양

장 환경이 좋아진다면 스트레스는 어떨까.

수면박탈은 장에 활성산소를 쌓고 장 장벽을 무너뜨린다(Smurf 표현형). PAN4는 이 손상을 완화했다. DSS로 유도한 장 염증—초파리판 대장염 모델—도 완화했다. 수면 자체도 바뀌어서, 낮잠은 늘고 수면 episode 수는 줄었으며 밤 수면 잠복기는 길어졌다. 배부른 초파리의 먹이찾기 활동도 늘었다.

그리고 종양. ISC에서 PAN4를 발현시키자 RasV12와 Yki3SA로 유도한 악성 장 종양이 모두 억제되었다. Ras^V12^ 종양은 거의 사라져 중장이 정상에 가깝게 돌아왔고, 생존 기간은 대조군의 두 배에 가까웠다. 대사 쪽을 보면 포도당과 글리코겐은 정상 수준을 유지한 채 순환 트레할로스는 줄고 TAG는 늘었다. Yki 종양이 트레할로스를 올리고 TAG를 낮춘다는 기존 보고와 정확히 반대 방향이다.

면역 펩타이드가 종양을 억제한다. PGRP-SC의 하향 조절이 ISC 과증식과 상피 이형성을 부른다는 선행 연구를 생각하면 앞뒤가 맞지만, 인과의 사슬은 아직 열려 있다.

그리고 꿀벌

꿀벌은 유전학을 하기 어려운 동물이다. GAL4도, UAS도, 12개의 조직 특이적 드라이버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초파리에서 답을 찾고, 그 답을 분자로 만들어 벌에게 가져갔다.

Fmoc 기반 고체상 펩타이드 합성(SPPS)으로 실제 PAN4 펩타이드를 만들어 일벌의 먹이에 넣었다. 결과는 군락에서 분리한 일벌의 수명 증가, 그리고 높은 세균 부하에 노출된 일벌의 생존율 증가였다. 초파리 장에서 본 보호 효과가 꿀벌 장에서도 재현된 것이다.

꿀벌은 지금 병원체, 해충, 유전적 병목, 환경 스트레스로 사라지고 있다. 이 결과가 당장 벌통을 구하지는 못한다. 다만 “AI가 만든 서열을 어떻게 실제 농업 현장의 곤충에게 가져갈 것인가”라는 물음에 하나의 경로를 그려 보인다.


왜 초파리였나

이 논문이 실제로 말하는 것은 PAN4라는 분자가 아니라 검증의 플랫폼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한 일은 특별할 게 없다. UAS construct를 만들고, GAL4로 발현시키고, 균을 먹이고, 죽는 걸 세었다. 조직을 특정하려고 서랍에서 드라이버 열두 개를 꺼내 썼고, 경로를 자르려고 RNAi 라인을 주문했다. 몇 주면 되는 일이다.

그 ‘몇 주’가 그냥 주어진 게 아니다. 그것은 모건과 브리지스 이래 100년 동안 초파리 연구자들이 쌓아 올린 공유지다. 카탈로그화된 드라이버, FlyBase, 세계 곳곳의 stock center, 요청하면 보내주는 관행. AI는 서열 공간을 무한대로 넓혔지만, 그 무한을 걸러낼 체는 여전히 살아 있는 동물이고, 그 체를 한 세기 동안 갈아 온 것은 이 공유지다.

생성 모델이 하루에 만들어내는 후보의 수는 우리가 평생 시험할 수 있는 수를 이미 아득히 넘어섰다. 그렇다면 앞으로 희소해지는 자원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검증이다. 그리고 검증은 여전히 느리고, 손이 많이 가고, 대체로 실패한다. 우리 논문의 첫 번째 그림이 전부 실패였던 것처럼.

AI가 설계하고, 초파리가 거르고, 꿀벌이 쓴다. 나는 이 문장의 가운데 자리가 앞으로 더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논문 Sun Y, Jia W, Wei Y, Zhou X, Dong R, Lee J, Bang JK, Ning F, Kim WJ*. Insect Biochemistry and Molecular Biology (2026).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pii/S0965174826001591

프리프린트: bioRxiv 2024.12.24.630224 (https://doi.org/10.1101/2024.12.24.63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