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Flyandbee, 김우재 (2014-)

논문 없는 박사, 물신 없는 학위

중국이 법으로 만든 ‘실용 박사’를 위한 변론

2025년 어느 날, 난징 둥난대학(東南大學)의 박사학위 심사장. 심사위원들 앞에 놓인 것은 두툼한 학위논문이 아니라, 레고 블록을 닮은 철근 콘크리트 조각들이었다. 정허후이(鄭鶴輝)라는 이름의 후보자가 방어한 것은 문장이 아니라 사물이었다. 그가 설계한 조립식 교각(橋脚) 부재는 이미 양쯔강을 가로지르는 사장교의 주탑을 실제로 떠받치고 있었다. 비슷한 시기 저장대학에서는 추이광장(崔廣章)이 ‘옌성(衍生)’이라 이름 붙인 AI 연산 조정 시스템을, 서남교통대학에서는 우샹양(吳翔陽)이 철도차량 공장의 실시간 생산 스케줄링 시스템을 각각 논문 대신 내밀었다. 추이광장이 통과한 것은 논문 심사가 아니라 여러 단계의 ‘제품 감정(鑑定)’—교내 예비심사와 외부 전문가의 정식 평가—이었고, 그 절차는 전통적인 논문 방어와 정확히 동등한 무게로 취급되었다.

이 장면들을 세상에 알린 것은 네이처의 한 기사였다. 흔히 ‘사설’로 오해되지만, 정확히는 기자 샤오잉 유(Xiaoying You)가 쓴 커리어 피처로, 2026년 7월 네이처 브리핑에 실렸다. 그리고 이 기사가 전하는 사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개별 사례가 아니라 그 제도적 근거다. 이들은 예외적 특혜를 받은 것이 아니다. 이들의 학위는 이 허용한 것이다.

하나의 사건

2024년 4월 26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중화인민공화국 학위법(學位法)」을 통과시켰다. 2025년 1월 1일부터 시행된 이 법은 1980년에 제정된 「학위조례」를 44년 만에 전면 개정한 것으로, 중국 학위 제도의 첫 근본적 재설계였다. 핵심은 제21조에 있다. 박사학위 취득자는 “학위논문 방어 또는 규정된 실천성과(實踐成果) 방어 중 하나를 통과”하면 된다. 학술학위(學術學位) 후보자는 연구에서, 전문학위(專業學位) 후보자는 전문적 실무에서 혁신적 성취를 보이면 된다는 것이다. 실천에 기반한 학위가 국가의 법률 조문에 명시된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같은 해 10월, 교육부는 이를 뒷받침하는 최초의 품질 기준을 내놓았다. 「공학류 박사 전문학위 대학원생 학위논문 및 학위신청 실천성과 기본요구(시행)」라는 긴 이름의 이 문건은, 무엇이 학위를 대체할 자격을 갖춘 ‘실천성과’인지를 규정한다. 중대 장비, 계측기, 신소재·신약·화학품 같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제품, 설계 방안, 그리고 성(省)·부(部) 급 이상의 기술표준. 여기에 조건이 붙는다. 모든 성과는 동료 전문가의 감정(同行專家鑑定)을 통과해야 하고, 실제 응용과 경제·사회적 효익을 입증해야 한다.

주목할 것은 이 제도의 경계다. 논문 없는 박사는 아무 분야에나 열려 있지 않다. 오직 공학 전문학위에만 적용된다. 기초과학의 학술 박사에게는 여전히 논문이 요구된다. 하얼빈공업대학의 첫 사례였던 웨이롄펑(魏連峰)은 진공 레이저 용접 공정과 장비에 관한 실무 성과만으로 학위를 받았고, 그의 심사위원단에는 산업계 전문가가 포함되었다. 난징대학의 왕하오란(王浩然)은 분산형 광섬유 센싱 기술로 학위를 받았는데, 그 기술은 남수북조(南水北調) 사업 현장에 배치되었고 슬로베니아로 수출되기까지 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학위법 시행 이후 60명 넘는 박사가 이 경로로 졸업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익숙한 반사신경이 작동한다. 논문 없이 박사라니, 기준을 낮춘 것 아닌가? 학문의 품격을 저버린 것 아닌가? 그러나 나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이것은 기준을 낮춘 사건이 아니라, 오랫동안 우리가 미뤄둔 질문—학위란, 그리고 과학적 기여란 대체 무엇으로 측정되는가—에 한 국가가 법의 언어로 답한 사건이다.

唯論文, 혹은 물신의 이름

중국의 이 개혁을 이해하려면 ‘파오유이(破五唯)’라는 표어를 알아야 한다. 다섯 가지 ‘오직(唯)’을 깨뜨린다는 뜻이다. 오직 논문(唯論文), 오직 직함(唯帽子), 오직 직급(唯職稱), 오직 학력(唯學歷), 오직 수상경력(唯獎項). 이 중 맨 앞에 놓인 것이 ‘유논문’—논문만능주의다. 이것은 최근 몇 년간 중국 과학정책의 중심 의제였다. 2018년과 2019년 당·국무원의 평가개혁 의견을 시작으로, 2020년 2월 과학기술부는 「’유논문’ 타파 조치」를, 교육부와 함께 「SCI 지표 사용 규범화 의견」을 발표했다. 후자는 “SCI 논문 수와 임팩트 팩터를 학생 졸업과 학위 수여의 제한 조건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못박았다. 그리고 그해 10월, 이 모든 흐름을 집대성한 「신시대 교육평가 개혁 심화 총체방안」이 나왔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대목이 있다. 중국 당국 스스로 반복해 강조하듯, “‘유논문’을 깨뜨린다는 것은 논문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破除’唯論文’不是不要論文).” 학자 친후이민(秦惠民)의 정리가 날카롭다. ‘유(唯)’의 본질은 하나의 차원을 “절대화하고, 일면화하고, 형식화하고, 획일화하는” 데 있다. 문제는 논문 그 자체가 아니라, 논문을 유일하고 절대적인 척도로 물신화(物神化)하는 태도다.

왜 하필 중국이 이토록 절박하게 이 물신에 칼을 댔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이 그 물신의 가장 큰 희생자였기 때문이다. 네이처의 리처드 반 누어든이 정리한 데이터에 따르면, 2021년 이후 중국인 공저자가 포함된 논문 철회는 1만7천 건을 넘어섰다. 2014년부터 2024년까지 전 세계 철회 논문의 약 60%가 중국과 관련되며, 중국 전체 논문의 약 0.3%가 철회되었는데 이는 세계 평균의 세 배다. 논문공장(paper mill)의 배후에는, 병원 의사의 채용과 승진을 논문 편수에 묶어둔 제도가 있었다. 척도가 목표가 되는 순간 사람들은 척도를 조작한다. 논문을 세는 나라가 논문을 위조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중국의 개혁은 나태의 산물이 아니라, 물신주의가 끝까지 갔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가장 뼈아프게 목격한 자의 대응이다.

물신주의는 서구의 발명품이다

여기서 우리는 흔한 서사—”중국이 또 편법을 만들었다”—를 뒤집어야 한다. 논문만능주의를 비판하고 그것을 해체하려는 시도는 서구가 먼저, 그리고 오래전에 시작했다. 다만 서구는 그것을 대개 선언에 그쳤고, 중국은 입법했을 뿐이다.

“출판하지 않으면 소멸한다(publish or perish).” 이 말이 학문의 맥락에서 처음 등장한 것은 1942년, 사회학자 로건 윌슨의 『학문하는 사람(The Academic Man)』에서였다. 그로부터 반세기 뒤, 이 물신에 맞서는 조직적 반란이 시작된다. 2013년의 샌프란시스코 연구평가 선언(DORA)은 저널 임팩트 팩터를 개별 연구의 질을 재는 대리지표로, 또 채용·승진·연구비 심사의 잣대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천명했다. 애초에 임팩트 팩터는 도서관 사서가 저널을 고르기 위한 도구였지, 연구자의 능력을 재는 자가 아니었다. 2015년의 라이덴 선언은 책임 있는 지표 사용의 10원칙을 제시했고, 2022년에는 유럽집행위원회와 유럽대학협회 등이 연구평가개선연합(CoARA) 협정을 발표해 임팩트 팩터와 h-지수, 대학 순위의 부적절한 사용을 폐기하겠다고 약속했다. 2026년 6월 기준 이 연합에는 55개국 840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이 모든 반란의 밑바닥에는 하나의 통찰이 있다. 인류학자 메릴린 스트래선이 1997년에 다듬은 굿하트의 법칙—”어떤 측정치가 목표가 되면, 그것은 더 이상 좋은 측정치가 아니게 된다.” 논문 편수와 인용 지표가 평가의 목표가 된 순간, 그것들은 살라미 슬라이싱(성과 쪼개기), 최소출판단위(LPU), 인용 카르텔, 그리고 논문공장을 낳으며 스스로 부패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 우리는 이제 숫자로 안다. 2015년 브라이언 노섹의 오픈사이언스 협업 연구에서, 심리학 논문 100편을 재현했을 때 원 논문의 97%가 통계적으로 유의했으나 재현에서 유의한 것은 36%에 불과했다. 암젠의 연구자들은 2012년 네이처에서, 암 연구의 획기적 논문 53편 중 재현된 것은 6편(11%)뿐이었다고 보고했다. 가장 최근인 2026년, 네이처에 실린 대규모 SCORE 재현 연구(Tyner 외)에서도 274건의 주장 중 원래 패턴대로 유의한 결과가 나온 것은 151건, 약 55%였다. 임팩트 팩터가 그토록 높던 저널들에 실린 ‘지식’의 절반가량이, 다시 해보면 무너진다.

논문이 이 지경인데, 우리는 왜 논문의 수를 세어 사람을 판단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공학은 특히 할 말이 많다. 공학 교육이 실무에서 유리되어 지나치게 학술화되었다는 비판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70년 된 것이며, 무엇보다 서구에서 시작된 것이다. 1955년, 미국공학교육학회의 그린터 보고서(Linton Grinter 주도)는 미국 공학 교육을 물리학을 모델로 한 이론·해석 중심으로 재편했다. 보고서 자신의 표현대로 “여러 해에 걸친 공학 커리큘럼의 진화는 그 자체로 유용한 ‘공학의 기예(engineering art)’를 희생하고 공학의 기저 과학을 강조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스푸트니크 이후 국방·항공 연구비가 이 경향을 가속했다.

이 흐름을 가장 통렬히 비판한 이가 유진 퍼거슨이다. 그는 『공학과 마음의 눈(Engineering and the Mind’s Eye)』(1992)에서, 2차 대전 이후 공학의 지배적 경향이 “수학적 관계로 표현될 수 없는 지식으로부터 멀어지는” 방향이었으며, 그 결과 “학문적 두뇌 속에서 구성된 수학 모델과 실제 세계가 어떻게 다른지를 위험할 정도로 모르는” 공학자들이 배출된다고 경고했다. 월터 빈센티는 『공학자는 무엇을 어떻게 아는가(What Engineers Know and How They Know It)』(1990)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학 지식은 과학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니라 설계를 통해 공학 공동체 내부에서 생성되는 독자적 인식론이라고 논증했다.

그러니 실무 성과로 공학 박사를 인정하는 제도는, 어떤 이국적 일탈이 아니다. 그것은 공학이 스스로의 인식론을 되찾으려는 오래된 요구에 대한 응답이다. 실무 지향의 전문 박사 전통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영국은 1992년 EPSRC가 공학박사(EngD)를 신설해 후원 기업에 상주하는 ‘연구 엔지니어’를 길렀고, 독일은 1902년 다름슈타트 공대에서 최초의 공학박사(Dr.-Ing.)를 수여했다. 심지어 논문을 게재할 것을 졸업 요건으로 강제하는 것도 결코 보편적 규범이 아니다. 미국의 많은 박사과정은 ‘게재 가능한 수준’의 학위논문 방어만을 요구할 뿐 실제 게재를 요구하지 않으며, 스칸디나비아와 네덜란드에서는 여러 편의 논문을 묶고 짧은 요약(kappa)을 덧붙이는 ‘논문집형 학위’가 표준이다. 중국이 한 것은 이 전통들의 급진화다—영국의 EngD조차 여전히 논문/포트폴리오를 요구하는 데 반해, 중국은 논문 자체를 면제했다.

그러나, 물신을 깨는 망치에도 그림자가 있다

여기까지가 변론이다. 그러나 정직한 변론이라면 반대편의 가장 강한 논거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동료심사를 거친 논문이 대체 불가능하게 수행하는 기능이 있다. 그것은 공개되고, 검증 가능하며, 외부의 감시에 열려 있는 기록이다. 2026년 6월 난징대학의 논문 없는 박사를 두고 나온 한 중국 내 논평은 이 점을 정확히 짚었다. 논문은 본질적으로 공적이다—누구나 내려받아 읽고, 재현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평가가 공학 프로젝트와 산업적 응용으로 옮겨가면, 판단은 전문가의 의견에 기대게 되고 외부의 감시는 어려워진다. 그래서 이 논평은 경고한다. “‘유논문’이 아닌 것(不唯論文)”이 자칫 “‘유전문가의견(唯專家意見)'”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 경고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불완전하나마 어느 정도 객관적이던 논문이라는 척도를, 전문가 패널의 판단으로 대체하는 순간 정실(情實)과 부패의 위험은 커진다. 논문공장에 시달린 나라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게다가 이 개혁이 겨냥하는 성과들 중 상당수는 국방·반도체·양자 같은 전략 분야에 놓여 있고, 그런 성과의 심사는 종종 기밀(涉密) 방어로 진행되어 투명성이 더 낮아진다. 이 제도는 명시적으로 국가 전략 수요—”기술 봉쇄 돌파”—와 당의 이념에 결박되어 있다. 학위가 국가·산업의 의제에 종속될 위험, 열린 탐구가 전략적 유용성에 자리를 내줄 위험은 실재한다.

그러니 균형 잡힌 결론은 이래야 한다. 논문의 대체 불가능한 기능—영구적 아카이브, 외부의 검증, 재현 가능성, 지식의 누적—은 지켜져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개혁이 스스로 그은 경계, 즉 이 경로를 기초과학이 아니라 응용공학에만 한정한 ‘분류 평가(分類評價)’의 원칙은 옳다. 실무 성과로 박사를 주는 것은 다리를 놓고 시스템을 만드는 공학자에게 적합하지, 자연의 기본 원리를 캐는 기초연구자에게 적용될 일은 아니다. 이 경계가 무너져 이 경로가 기초과학으로 번지는 날, 나의 변론도 철회되어야 한다.

다만 나는 이 위험들이 개혁을 부정할 이유가 아니라 개혁을 설계할 이유라고 본다. 문제는 척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떤 척도로도 환원되지 않는 판단에 걸맞은 공개 절차와 책임 기제를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 논쟁은 서구가 훈수를 두는 바깥의 이야기가 아니라 중국 내부에서 살아 있는 논쟁이다.

물신 너머의 학위

과학사에는 오래된 참조점이 하나 있다. 토머스 헌트 모건의 초파리 방이다. 20세기 초 컬럼비아의 그 좁은 방에서 자란 유전학은, 논문이라는 토큰을 쌓아 올리기 위한 경쟁이 아니었다. 초파리 유전학자들은 계통(stock)을 서로에게 나누고, 데이터를 공유하며, 지식을 하나의 공유지(commons)로 쌓아 올렸다. 그들에게 과학의 가치는 개인의 이력서에 적히는 논문 편수가 아니라 공동체에 남긴 기여였다. 지금도 우리가 전 세계의 초파리 계통을 스톡센터에서 주고받을 때, 우리는 그 공유지의 상속자로 살아간다. 과학의 가치가 논문이라는 물신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이 공동체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여기에 근사한 아이러니가 하나 있다. 네이처가—임팩트 팩터의 정점에 선 바로 그 저널이—네이처식 논문 게재를 평가절하하는 제도를 호의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신의 신전이 물신의 해체를 전하는 이 장면은, 어쩌면 시대가 정말로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일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논문을 물신화하는 데 가장 앞장선 나라가 어디인가.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응용과학 교수들은 1인당 연평균 약 10.5편의 SCI급 논문을 낸다. 어떤 대학은 전기공학 박사 후보에게 단독저자 SCI급 논문 두 편을 게재하도록 요구하고, 적잖은 프로그램이 “SCI 논문 없으면 학위 없음”을 명문화한다. 우리는 물신을 가장 열심히 섬겨온 사제들이다. 그러니 논문 없는 박사를 만든 이웃 나라의 실험을, 남의 이야기로 흘려들을 처지가 아니다.

나는 논문이 사라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논문은 남아야 한다—그러나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물신이 아니라 도구로. 학위가 증언해야 하는 것은 논문 몇 편을 썼는가가 아니라, 세계에 무엇을 기여했는가다. 그 기여는 논문일 수도 있고, 양쯔강을 건너는 다리의 교각일 수도 있다. 중국이 법으로 물은 질문은 실은 우리 모두의 질문이다. 우리는 사람을 무엇으로 재는가. 그리고 그 척도는, 우리가 정말로 소중히 여기는 것을 재고 있는가.

물신을 깨는 일은 언제나 불안하다. 익숙한 눈금이 사라진 자리에서 우리는 다시, 처음부터, 무엇이 가치인지를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불안이야말로 과학이 잊지 말아야 할 감각이다. 초파리 방의 유전학자들이 그러했듯이1.


참고: China’s revised Degree Law (學位法, 2024년 4월 통과·2025년 1월 시행), 제21조; 교육부 「공학류 박사 전문학위 실천성과 기본요구(시행)」(2024.10); Xiaoying You, “Graduating without a thesis,” Nature career feature (2026.7) 및 “First ‘practical PhDs’ awarded in China,” Nature 650:280–281 (2026.2); DORA(2013)·라이덴 선언(2015)·CoARA(2022); Grinter Report(1955); E. Ferguson, Engineering and the Mind’s Eye(1992); W. Vincenti, What Engineers Know(1990); Open Science Collaboration, Science(2015); Tyner et al., Nature 652:143–150 SCORE(2026). 재현율·철회율 수치는 각 연구 및 네이처(R. Van Noorden)의 분석에 근거하며 분야별 특성이 있음을 밝혀둔다.

  1. Claude Fable5의 도움을 받아 김우재가 작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