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L;DR
- 해마 없이도 길을 배웠다. 칼텍 마이스터 연구실의 프리프린트에서, 해마와 신피질 대부분이 없이 태어난 쥐는 처음에는 느렸지만 격자 미로의 경로를 배우고 몇 주 뒤에도 기억했다.
- 위치 신호는 뇌 곳곳에 있었다. UCL 카란디니 연구실 쪽의 다른 프리프린트는 2만 개가 넘는 뉴런을 기록해, 기록한 모든 영역에서 위치 정보를 담은 세포를 찾았다. 두 연구 모두 동료심사 전이고, 바깥 연구자들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 초파리유전학자의 결론. 해마도 피질도 없는 초파리는 오래전부터 방향을 잡고 장소를 기억해 왔다. 나는 지도를 뇌의 한 장소에 두려는 오래된 습관이 우리의 질문을 좁혀 왔는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초파리 행동실험실의 오후는 조용하다. 작은 원형 아레나 위로 파리 한 마리가 걷고, 위에서 카메라가 그 궤적을 점으로 찍는다. 화면에 쌓이는 점들은 처음엔 아무렇게나 흩어지다가, 어느 순간 벽을 따라 돌거나 한쪽 구석으로 모인다. 파리가 무언가를 알아차렸다는 신호다. 우리는 그 점들의 무늬를 보고 파리의 머릿속을 추측한다.
11월 5일 신경과학 매체 The Transmitter에 실린 기사를 읽으며 나는 그 점들의 무늬를 떠올렸다. 기사는 두 편의 프리프린트를 소개한다. 하나는 해마와 신피질 대부분이 없이 태어난 쥐도 미로의 길을 배운다는 연구이고, 다른 하나는 위치 정보를 담은 뉴런이 해마뿐 아니라 뇌 곳곳에 퍼져 있다는 연구다. 공간의 지도는 해마에 있다는, 교과서의 가장 단단한 문장 하나가 흔들리는 장면이다.
해마 없이 태어난 쥐

첫 번째 연구는 칼텍 마커스 마이스터 연구실에서 나왔다. 연구진은 해마와 신피질을 만드는 전구세포에서 PALS1이라는 유전자를 없애, 이 구조들이 거의 없는 쥐를 얻었다. 이 쥐들에게 ‘맨해튼 미로’라 부르는 격자형 미로를 주고, 길을 찾으면 물을 보상으로 주었다.
기사에 따르면 이 쥐들은 처음 몇 번의 보상을 얻기까지 정상 쥐보다 두세 배 오래 걸렸고, 끝내 과제를 배우지 못한 개체도 있었다. 그런데 그 첫 고비를 넘긴 뒤에는 학습 속도와 기억, 새로운 상황으로의 일반화가 대체로 정상 쥐와 비슷했다. 아홉 번 꺾이는 경로를 서너 주 뒤에도 기억했다고 한다. 마이스터는 피질과 해마 바깥에도 학습과 일반화를 위한 체계가 있다는 것이 분명하다는 취지로 말했다.
나는 이 결과에서 두 가지를 함께 읽는다. 하나는 놀라움이다. 해마가 없으면 공간 학습이 무너진다는 기대가 꽤 크게 빗나갔다. 다른 하나는 신중함이다. 이 쥐들은 해마 없이 ‘자란’ 동물이다. 발달 과정에서 뇌의 다른 부분이 그 빈자리를 메웠을 수 있고, 그렇다면 이 결과는 보통 쥐의 뇌가 일하는 방식이라기보다 뇌가 얼마나 유연하게 다시 짜이는지를 보여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은 기사에 실린 외부 연구자의 지적이기도 하다.
그래도 나는 ‘처음이 느렸다’는 대목에 오래 머문다. 해마가 없는 뇌는 길을 배울 수는 있었지만, 낯선 공간에 처음 들어섰을 때 무엇이 중요한지 가려내는 데 더 오래 걸렸다. 해마의 일이 지도를 ‘보관’하는 것이라기보다 새로운 환경에서 지도를 빨리 ‘시작’하는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결과에서 끌어낸 나의 추측이고, 이를 가르려면 해마를 잠시 꺼 두는 실험처럼 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
어디에나 있는 위치 세포

두 번째 연구는 런던대학교(UCL) 마테오 카란디니 연구실의 엔니 판베이스트 등이 참여한 독립적인 작업이다. 연구진은 머리를 고정한 쥐가 가상현실 속 직선 복도를 달리는 동안 2만 개가 넘는 뉴런의 활동을 기록했다. 그 결과 기록한 모든 영역에서 위치에 따라 반응하는 뉴런이 나왔고, 해마 영역에서 위치 정보를 담은 세포의 비율도 다른 영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이 결과를 ‘해마는 특별하지 않다’로 읽으면 곤란하다. 기사에 인용된 반론이 바로 그 지점을 짚는다. 어떤 영역의 활동에서 위치를 읽어 낼 수 있다는 것과, 뇌가 실제로 그 신호를 길찾기에 쓴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또 머리를 고정하고 1차원 복도를 달리는 과제는 해마가 잘하는 일을 충분히 요구하지 않았을 수 있다. 카란디니 자신도 이런 한계를 인정했다고 기사는 전한다.
그럼에도 나는 이 연구가 던지는 질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위치라는 정보가 뇌의 한 방에만 보관된 것이 아니라 여러 방에 조금씩 나뉘어 있다면, ‘지도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 자체를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지도는 장소가 아니라 관계일 수 있다. 이것은 나의 해석이다.
해마도 피질도 없는 파리의 나침반

초파리유전학자에게 이 소식은 묘하게 익숙하다. 초파리에게는 처음부터 해마도 피질도 없다. 그런데도 파리는 방향을 잡고, 장소를 기억하고, 길을 찾는다. 2011년 Nature에 실린 오프스타드와 동료들의 연구는 초파리가 주변의 시각 단서를 이용해 뜨거운 바닥 위에서 서늘한 안전지대의 위치를 배운다는 것을 보였다. 파리도 장소를 학습한다는 이야기다.
2015년에는 실리그와 자야라만이 초파리 뇌 중심복합체의 타원체(ellipsoid body)에서, 활동의 덩어리가 고리 모양 회로를 따라 돌며 파리가 바라보는 방향을 표상한다는 것을 보였다. 말 그대로 뇌 안의 나침반이다. 그 뒤로 초파리 연구자들은 커넥톰과 유전학 도구를 함께 써서, 이 나침반이 어떻게 시각 단서와 몸의 회전을 묶는지 회로 수준에서 풀어 왔다.
나는 여기서 비교의 함정을 경계한다. 파리의 중심복합체가 쥐의 해마와 같은 일을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진화적 기원도, 구조도, 계산의 방식도 다르다. 다만 공간을 다루는 문제를 서로 다른 뇌들이 서로 다른 회로로 풀어 왔다는 사실은, 해마가 공간 인지의 유일한 해답이 아니라 여러 해답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에 무게를 실어 준다고 나는 본다.
또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초파리 연구에서 이런 이해가 가능했던 것은 누구나 쓸 수 있는 유전학 도구와 공개된 뇌 지도 덕분이었다. 특정 뉴런만 켜고 끄는 계통을 계통 센터에서 받아 쓰고, 커넥톰 데이터베이스에서 그 뉴런의 연결을 찾아보는 일은 이제 초파리 연구실의 일상이다. 나침반 회로의 이야기는 한 연구실의 발견이 아니라, 그 공유된 도구 위에서 여러 연구실이 이어 쓴 이야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지도를 한 곳에 두려는 습관

신경과학에는 기능을 특정 장소에 배정하려는 오래된 습관이 있다. 언어는 이 영역, 공포는 저 영역, 공간은 해마. 이 습관은 분명 많은 것을 밝혀 주었다. 손상 연구와 기록 연구가 하나의 장소를 가리킬 때 그 설명은 강력하고 가르치기도 쉽다. 그러나 교과서의 문장이 단단해질수록, 그 문장 바깥을 보려는 실험은 설계되기 어려워진다.
이번 두 프리프린트가 흥미로운 것은 결론 때문만이 아니다. 둘 다 동료심사를 거치기 전에 공개되었고, 기사는 지지와 회의를 함께 싣는다. 해마가 여전히 주된 항법 중추일 수 있다는 의견, 공포 조건화처럼 해마가 꼭 필요한 과제로 시험해 봐야 한다는 의견, 해마를 일시적으로 꺼 보는 실험이 다음 단계라는 의견이 공개된 자리에서 오간다. 결론이 나기 전에 질문과 반론이 먼저 공유되는 풍경이다.
나는 이 풍경이 파리방의 전통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모건의 제자들은 돌연변이 계통과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을 서로 나누며 일했다. 정답을 한 사람이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손이 같은 벤치 위에서 질문을 다듬었다. 지도가 뇌의 한 방에 있지 않고 여러 방에 나뉘어 있을지 모른다는 오늘의 이야기는, 과학의 지식도 한 사람의 머리가 아니라 여러 연구실의 관계 속에 있다는 사실과 겹쳐 보인다. 이것은 비유이며, 비유 이상으로 읽지는 않기를 바란다.
아레나 위의 파리는 오늘도 걷는다. 점들이 쌓이고 무늬가 생긴다. 그 무늬를 만든 것이 파리 뇌의 어느 한 곳인지, 아니면 여러 곳의 대화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다만 해마 없는 쥐가 결국 길을 찾았다는 소식은, 우리가 ‘어디에’를 묻기 전에 ‘어떻게’를 먼저 물어야 한다고 말해 주는 것 같다.
보통 과학자
출처
- Brain registers spatial location outside hippocampus. The Transmitter (2026.11.05). https://www.thetransmitter.org/systems-neuroscience/brain-registers-spatial-location-outside-hippocampus/
- Zheng 등, 해마·신피질 결손 쥐의 미로 학습 프리프린트. bioRxiv (2026.09). https://doi.org/10.64898/2026.08.30.747945
- van Beest 등, 뇌 전역의 공간 정보 기록 프리프린트. bioRxiv (2026.09). https://doi.org/10.64898/2026.08.29.747979
- Ofstad, Zuker, Reiser. Visual place learning in Drosophila melanogaster. Nature (2011). https://www.nature.com/articles/nature10131
- Seelig, Jayaraman. Neural dynamics for landmark orientation and angular path integration. Nature (2015). https://www.nature.com/articles/nature14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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