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Flyandbee, 김우재 (2014-)

경쟁률이라는 신호: 과기원 지원자 3만 명 시대에 연구실이 내밀 수 있는 것

TL;DR

  • 숫자는 반가운 신호다. 2027학년도 4대 과기원 수시에 3만 3,349명이 지원해 평균 경쟁률이 16.1대 1로, 네 곳이 모두 수시를 치른 뒤 가장 높았다. 4년 전보다 지원자가 두 배 넘게 늘었다. 다만 수시는 여러 곳에 동시에 낼 수 있으니 지원 건수가 곧 진학자 수는 아니다.
  • 학생들이 보는 나침반은 보상이다. 같은 날 나온 대학생 1,000명 조사에서 65%가 반도체 기업 성과급 소식 뒤 그 기업에 관심이 커졌다고 답했고, 61%는 10년 안에 집을 사기 어렵다고 봤다. 이공계로 향하는 발걸음이 연구실이 아니라 성과급을 향하고 있을 가능성을 함께 읽어야 한다.
  • 초파리유전학자의 결론. 경쟁률은 연구실이 만든 숫자가 아니다. 연구실이 할 일은 그 학생들이 들어왔을 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답하는 것이다. 박사 초임 5,800만 원과 석 달 몰아 일하기가 답이라면, 이 신호는 오래가지 않는다.

가을 학기 중간쯤이면 연구실 문을 두드리는 학부생이 생긴다. 실험을 해 보고 싶다는 학생에게 나는 먼저 초파리 병 하나를 건넨다. 병 바닥의 먹이 위로 애벌레가 기어 다니고, 벽에는 번데기가 붙어 있고, 위쪽에서는 갓 깨어난 파리들이 날개를 말리고 있다. 한 병 안에 한 세대가 다 들어 있다. 대개 학생들은 거기서 처음으로 조용해진다.

오늘 그 장면을 떠올린 것은 숫자 하나 때문이다. 4대 과학기술원의 2027학년도 수시 경쟁률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는 소식이다. 의대로의 쏠림이 여전하다는 말을 몇 년째 들어 온 터라 반가운 숫자다. 그런데 같은 날 대학생들이 반도체 회사의 성과급을 보고 진로를 다시 생각한다는 조사도 나왔다. 두 숫자를 나란히 놓고 보니 질문이 생겼다. 학생들은 무엇을 향해 이공계로 오는가, 그리고 연구실은 그들에게 무엇을 내밀 수 있는가.

3만 3천 장의 원서

황정아 의원실이 낸 자료를 헬로디디가 정리한 내용은 이렇다. 카이스트, 지스트, 디지스트, 유니스트 네 곳이 2,067명을 뽑는데 3만 3,349명이 지원했다. 평균 경쟁률 16.1대 1은 네 곳이 모두 수시를 치르기 시작한 2014학년도 이후 가장 높다. 지원자가 3만 명을 넘은 것도 처음이고, 1년 전보다 8,926명이 늘었다. 2023학년도에는 지원자가 1만 5천 명 남짓, 경쟁률은 9.47대 1이었으니 4년 만에 두 배가 넘게 늘어난 셈이다.

기관별로 보면 디지스트가 28.6대 1로 가장 높았고, 유니스트는 개교 뒤 처음으로 지원자 1만 명을 넘겼다. 카이스트도 9.7대 1로 마흔두 번의 입시 가운데 가장 높았다. 모집 인원이 340명 늘었는데도 지원자가 그보다 훨씬 빨리 늘었다.

그렇다고 숫자를 곧이곧대로 읽을 수는 없다. 수시는 여러 대학에 동시에 원서를 낼 수 있다. 한 학생이 네 곳에 다 냈다면 지원자 넷으로 잡힌다. 기사도 지원 건수가 늘었다고 실제 이공계 진학자가 그만큼 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경쟁률은 수요의 크기라기보다 관심의 온도를 재는 체온계에 가깝다.

그래도 체온이 올랐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다. 체온이 오른 이유를 묻는 것이 다음 순서다. 의원은 이공계로 향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하며 병역특례, 연구자 처우 개선, 딥테크 창업 지원 같은 성장 사다리를 강화하자고 했다. 나는 그 사다리의 맨 위가 어디로 이어지는지가 궁금하다.

성과급이라는 나침반

한국대학신문이 창간 기획으로 10월 초 전국 대학생 1,000명에게 물은 조사가 같은 날 실렸다. 반도체 기업의 성과급 소식을 접한 뒤 그 기업에 대한 취업 관심이 커졌다는 응답이 65%였다. 기사는 주요 다섯 대학의 반도체 계약학과 지원자가 5,992명으로 1년 새 19.4% 늘었다는 통계도 함께 전했다. 같은 조사에서 앞으로 10년 안에 집을 살 가능성이 낮다고 본 학생은 61.4%였고, 1년 전보다 재산 격차가 벌어졌다고 느낀 학생은 72.2%였다.

두 조사는 서로 다른 집단을 다른 방식으로 물었으니 하나로 묶어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나란히 놓으면 하나의 그림이 어렴풋이 보인다고 나는 생각한다. 집값과 자산 격차가 미래를 가로막는다고 느끼는 세대에게, 높은 성과급을 주는 산업은 몇 안 되는 탈출구로 보일 것이다. 그 산업으로 가는 길목에 과기원과 반도체 계약학과가 있다. 이공계에 대한 관심이 살아난 것이 아니라, 보상에 대한 관심이 이공계라는 길을 빌려 쓰고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은 나의 해석이다.

나는 이것을 나무랄 생각이 없다. 의대로 몰리던 학생들도, 반도체로 몰리는 학생들도 같은 계산을 한다. 불안한 사회에서 안정된 보상을 찾는 것은 합리적이다. 문제는 그 계산의 항목에 연구실이 들어 있느냐다. 학생들의 나침반이 성과급을 가리킨다면, 그 나침반에 기초연구의 연구실은 아예 표시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연구실의 셈법

그렇다면 연구실 쪽의 셈은 어떤가. 같은 날 헬로디디에 실린 출연연 기자스터디 기사 끝에 숫자 하나가 붙어 있었다. 이주희 의원이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자료로 밝힌 23개 출연연 박사급 초임 연구직의 평균 연봉이 약 5,801만 원이라는 것이다. 기사는 출연연이 인공지능 전환을 서두르지만 AI 전문 인력을 붙잡기 어렵다는 맥락에서 이 숫자를 꺼냈다. 학부 4년에 대학원 5~6년을 보낸 사람이 받는 첫 연봉이다. 반도체 성과급 기사와 같은 날 읽으면 셈이 너무 쉽게 끝난다.

제도도 바뀌는 중이다. 연구과제중심제도(PBS)가 단계적으로 폐지되고, 출연연은 임무 중심 연구체계로 옮겨 가겠다고 한다. 과제를 따내야 인건비가 나오던 구조에서 벗어나는 것은 오랫동안 연구 현장이 요구해 온 일이다. 이번 주 금요일에는 ‘Post-PBS 시대’ 출연연의 방향을 두고 정책 토론회도 열린다. 다만 임무가 위에서 정해지고 연구자는 그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된다면, 젊은 연구자가 그 안에서 무엇을 자기 질문으로 삼을 수 있을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노동시간의 셈도 있다. 슬로우레터가 전한 한겨레 칼럼에 따르면, 여당 의원이 낸 초광역특구법은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 기간을 지금의 1개월, 연구개발직은 3개월에서 6개월 이내로 늘린다. 칼럼은 이렇게 되면 석 달 동안 주 69시간 근무도 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같은 뉴스레터가 인용한 동아일보 기사는 정부가 주 52시간 예외를 시행령으로 보강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전했다. 법안이 어떻게 정리될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연구개발직이 늘 ‘예외’의 맨 앞에 서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과기원에 원서를 낸 학생들이 10년 뒤 연구실에서 만날 셈법은 아마 이런 것이다. 몇 년의 계약, 임무로 정해진 과제, 그리고 필요할 때 몰아서 일할 수 있는 노동시간. 경쟁률이 아무리 높아도 이 셈법이 그대로라면, 그들 가운데 연구실에 남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파리방이 약속한 것

초파리 유전학의 출발점인 모건의 파리방은 화려한 곳이 아니었다. 좁은 방에 우유병이 가득했고, 바나나 냄새가 났다고 전해진다. 그 방에 모인 젊은이들을 붙든 것은 보상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흰 눈 파리 한 마리가 왜 수컷에게서만 나타나는지, 그 질문이 유전자가 염색체 위에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찾아낸 돌연변이 파리를 다른 연구실과 나눴다. 질문이 공유지가 되었다.

나는 오늘날의 학생들에게 그 시절처럼 질문만 보고 오라고 말할 생각이 없다. 그것은 낭만을 핑계로 가난을 요구하는 일이다. 다만 연구실이 내밀 수 있는 것이 성과급과 같은 화폐로만 계산된다면, 연구실은 그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연구실만이 줄 수 있는 것은 자기 질문을 붙들 수 있는 시간과, 그 질문을 함께 나눌 동료다. 그 두 가지를 제도가 보장해 주어야 낭만은 착취가 아니라 선택이 된다.

그래서 나는 경쟁률 소식을 축하하면서도 다른 숫자를 함께 보고 싶다. 과기원 졸업생 가운데 몇 명이 대학원에 남는지, 박사 가운데 몇 명이 5년 뒤에도 연구를 하는지, 그들의 첫 계약이 몇 년짜리인지. 지원자의 수가 아니라 남는 사람의 수가 한 나라의 과학을 말해 준다.

다음 학기에도 누군가 연구실 문을 두드릴 것이다. 나는 또 초파리 병을 건넬 것이다. 한 병 안에 한 세대가 다 들어 있는 그 작은 세계를 들여다보며 학생이 조용해지는 순간, 연구실이 줄 수 있는 것은 그 순간을 오래 붙들 수 있는 조건이어야 한다. 경쟁률은 사회가 보낸 신호다. 답장은 연구실과 제도가 써야 한다.

보통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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