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L;DR
- 해파리는 굶기면 어려진다. 투리톱시스 도르니이(Turritopsis dohrnii)는 굶주림이나 상처 같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다 자란 몸을 버리고 낭포가 되었다가, 며칠 안에 폴립으로 돌아간다. 이번 주 BBC 보도를 받아 국내 매체가 이 ‘리셋’을 다시 소개했다.
- 되돌아감은 세포 운명의 문제다. 다 자란 세포가 다른 종류의 세포로 바뀌는 분화 전환이 그 핵심으로 꼽힌다. 초파리 유전학도 반세기 전 성충원반에서 세포의 운명이 생각만큼 단단히 굳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 준 적이 있다.
- 초파리유전학자의 결론. ‘불멸’은 개체보다 생활사의 한 방식에 붙여야 할 말이다. 늙음을 연구하는 일은 영원을 찾는 일이 아니라, 생명이 시간을 다루는 여러 방식을 견주어 보는 일이다.

초파리 수명 실험은 지루한 반복으로 이루어진다. 같은 날 깨어난 파리들을 바이알에 나눠 담고, 며칠에 한 번씩 새 먹이가 든 바이알로 옮긴다. 옮길 때마다 바닥에 떨어진 파리를 센다. 그 숫자를 날짜별로 쌓으면 생존 곡선이 된다. 처음 몇 주는 평평하던 곡선이 어느 순간 꺾여 내려가고, 두 달쯤 지나면 바이알은 거의 빈다. 초파리 연구실에서 늙음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매주 세는 숫자다.
그래서 이번 주 ‘불멸 해파리’ 기사를 읽으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 바이알 속 파리는 한 방향으로만 늙어 가는데, 바다 어딘가의 작은 해파리는 늙음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다고 한다. 나는 이 이야기가 ‘영원히 사는 생물’이라는 제목보다 훨씬 흥미로운 질문을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생명에게 시간은 정말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가.
굶기면 어려지는 해파리

뉴시스가 BBC 보도를 받아 정리한 내용은 이렇다. 투리톱시스 도르니이라는 작은 해파리는 굶주림이나 상처, 그 밖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성체의 모습을 잃고 가라앉아 공 모양의 낭포가 된다. 하루에서 사흘쯤 지나면 이 낭포가 폴립, 즉 바닥에 붙어 사는 어린 단계로 자라난다. 폴립은 다시 군체를 이루고, 그 군체에서 새 해파리들이 떨어져 나온다.
자포동물의 보통 생활사는 폴립에서 해파리로 가는 일방통행이다. 해파리가 되면 번식하고 죽는다. 투리톱시스는 이 화살표를 뒤집는다. 기사는 이 능력이 1990년대 초 이탈리아에서, 주말을 보내고 돌아온 연구자가 죽은 줄 알았던 해파리 자리에서 새 폴립을 발견하면서 처음 눈에 띄었다고 전한다. 과학사에서 흔한 장면이다. 실험 계획보다 방치된 수조가 더 많은 것을 알려 줄 때가 있다.
이 해파리가 늙지 않는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해파리는 늙고, 다치고, 굶는다. 다만 그 끝에서 죽는 대신 생활사의 앞 단계로 돌아갈 수 있다. 나는 이 차이가 중요하다고 본다. 투리톱시스가 가진 것은 영원한 몸이 아니라 되돌아가는 길이다.
다 자란 세포가 다시 고르는 길

되돌아감은 몸 전체에서 한꺼번에 일어나는 마법이 아니다. 이탈리아 살렌토대학의 스테파노 피라이노 연구진은 1990년대에 이 과정의 핵심이 분화 전환(transdifferentiation)이라고 보고했다. 이미 특정한 일을 맡고 있던 세포가 그 정체성을 버리고 다른 종류의 세포로 바뀐다는 뜻이다. 근육이던 세포가 다른 조직의 세포가 되는 식이다. 미국 텍사스 A&M대학 갤버스턴 캠퍼스의 연구진은 해파리가 낭포로 바뀌는 동안 어떤 유전자들이 켜지고 꺼지는지를 추적했다.
초파리유전학자에게 이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초파리 애벌레 몸속에는 성충원반이라는 작은 세포 덩어리들이 있다. 번데기 시기에 이 원반들이 날개가 되고, 다리가 되고, 눈이 된다. 각 원반의 세포는 아직 날개 모양을 하고 있지 않아도 자기가 무엇이 될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런데 스위스의 에른스트 하도른은 1960년대에 원반 세포를 어른 파리의 배 속에 옮겨 오래 키우는 실험을 했고, 그 과정에서 다리가 될 세포가 날개 세포처럼 행동하는 등 운명이 바뀌는 일이 드물게 일어난다는 것을 관찰했다. 이를 전환결정(transdetermination)이라고 부른다.
해파리의 분화 전환과 초파리의 전환결정은 같은 현상이 아니다. 하나는 이미 분화한 세포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아직 분화하기 전 결정된 상태의 이야기다. 그래도 둘은 같은 교훈을 준다. 세포의 운명은 돌에 새긴 글씨가 아니라, 유지되어야 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유지를 멈추면 다른 길이 열린다. 나는 이 점이 투리톱시스에서 가장 생물학다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두 달짜리 생애를 세는 일

초파리가 노화 연구의 모델이 된 이유는 단순하다. 짧게 살기 때문이다. 보통 실험실 온도에서 초파리는 두어 달을 산다. 사람의 일생을 연구하려면 수십 년이 걸리지만, 파리 수백 마리의 일생은 한 학기 안에 끝까지 볼 수 있다. 먹이를 줄이면 수명이 늘어나는지, 특정 유전자를 끄면 곡선이 어떻게 바뀌는지, 초파리 연구실들은 이런 질문을 수십 년 동안 바이알 속에서 물어 왔다.
그 질문들에서 나온 답 가운데 상당수는 손상을 고치고 정리하는 능력과 관련이 있었다. 흥미롭게도 투리톱시스 쪽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기사에 따르면 2022년 스페인 연구진은 이 해파리의 유전체를 되돌아가지 못하는 가까운 친척 종과 비교했고, DNA 손상을 고치는 데 관여하는 일부 유전자가 더 많은 사본으로 들어 있다는 것을 찾았다. 텔로미어 유지에 관여하는 유전자도 주목받았다.
여기서 나는 조심스러운 해석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수리와 정리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은 파리에게도, 사람에게도 있다. 해파리가 다른 것은 특별한 유전자를 하나 가졌기 때문이라기보다, 그 도구들을 생활사의 어느 시점에 어떻게 쓰도록 짜여 있는가에 있을지 모른다. 초파리는 수리 도구를 들고 한 방향으로 걸어가며 닳아 가고, 투리톱시스는 같은 종류의 도구로 길을 되짚어 간다. 이것은 기사에 없는 나의 생각이다.
‘불멸’이라는 말의 값

‘불멸 해파리’라는 이름은 과학 기사의 제목으로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번 기사도 결국 같은 결론을 덧붙였다. 이 연구의 목표는 사람의 나이를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늙은 조직을 재생시키는 의학의 실마리를 찾는 장기적인 작업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해파리 자체는 매우 연약하다. 잡아먹히고, 병에 걸리고, 바다 환경이 바뀌면 쉽게 사라진다. 되돌아가는 능력이 있다고 해서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같은 주에 다른 소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해양수산부와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 울릉도 동굴에서 찾은 뼈 41점을 CT와 3D 모델링으로 이어 붙여, 멸종한 독도강치의 골격을 실물 크기로 되살렸다는 소식이다. 20세기 초 남획으로 무리가 무너졌고, 국제자연보전연맹은 1994년 이 종을 절멸로 분류했다. 개체가 불멸이든 아니든, 한 종의 시간은 다른 이유로 끝날 수 있다. 생명의 시간을 정하는 것은 세포 안의 시계만이 아니다.
신경과학 매체 The Transmitter에는 이번 주 신경생물학자 벤체 욀베치키의 에세이가 실렸다. 복잡한 행동은 부품으로 쪼개는 전통적 기계론적 설명에 끈질기게 저항해 왔고, 그것을 이해하려면 새로운 접근과 어쩌면 ‘이해’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글이다. 나는 이 문제의식이 노화 연구에도 들어맞는다고 본다. 수명을 늘리는 유전자 목록을 아무리 길게 만들어도, 왜 어떤 생물은 늙어 죽고 어떤 생물은 되돌아가는지는 생활사 전체를 놓고 보아야 보인다.
그래서 나는 ‘불멸’이라는 말에 값을 매긴다면 그것이 꽤 비싸다고 생각한다. 그 말은 독자를 끌어들이지만, 동시에 생물학의 질문을 사람의 욕망 쪽으로 기울인다. 정작 이 해파리가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은 영원의 비밀이 아니라, 생명이 시간을 다루는 방식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음 주에도 연구실 어딘가에서는 누군가 파리를 새 바이알로 옮기고, 바닥에 떨어진 파리를 셀 것이다. 그 곡선은 언제나 내려간다. 나는 그 단조로움이 싫지 않다.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시간을 정확하게 세는 일이, 거꾸로 흐르는 시간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해파리는 되돌아가고, 파리는 늙어 가고, 과학자는 그 둘을 나란히 놓고 센다.
보통 과학자
출처
- 굶기고 잘라도 다시 어려진다…인간은 못 하는 ‘리셋’, 불멸 해파리는 한다. 뉴시스 (2026.10.20). https://www.newsis.com/view/NISX20261020_0003833372
- 독도서 살다 멸종한 ‘독도강치’ 골격 디지털 기술로 복원. 사이언스타임즈(연합뉴스) (2026.10.19). https://www.sciencetimes.co.kr/nscvrg/view/menu/251?searchCategory=223&nscvrgSn=262542
- Ölveczky, B. What to do when traditional mechanistic approaches no longer work. The Transmitter (2026.10.19).
- Piraino, S. et al. Reversing the life cycle: medusae transforming into polyps and cell transdifferentiation in Turritopsis nutricula (Cnidaria, Hydrozoa). Biological Bulletin (1996).
- Pascual-Torner, M. et al. Comparative genomics of mortal and immortal cnidarians unveils novel keys behind rejuvenation. PNAS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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