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Flyandbee, 김우재 (2014-)

로봇의 손, 공동의 벤치: 자율랩의 시대에 파리방을 다시 생각하다

TL;DR

  • 중국 현장에서 본 자율랩. 10월 14일 대전에서 열린 첨단바이오 협의체 세미나에서 한국기계연구원 임현 연구단장이 중국 선전과 우시의 바이오 현장 방문기를 발표했다. 로봇이 장비 사이를 오가며 실험을 거드는 연구실, 비싼 장비를 여러 연구자가 함께 쓰는 공공 인프라, 자국 기업의 첫 고객이 되어 주는 정부가 그가 전한 장면이었다.
  • 자율화보다 먼저 자동화, 그보다 먼저 목적. 발표와 토론의 결론은 의외로 소박했다. 국내 장비는 컴퓨터 제어조차 부족한 경우가 많으니 자동화가 먼저이고, 개인 연구실의 경쟁력이 목표인지 데이터를 모아 AI를 키우는 것이 목표인지부터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 초파리유전학자의 결론. 자율랩의 핵심 질문은 로봇의 손재주가 아니라 공유의 설계다. 모건의 파리방은 좁은 방 하나에서 장비와 계통과 아이디어를 함께 쓰던 곳이었고, 초파리 공동체는 그 공유를 계통센터라는 제도로 키웠다. 자율랩도 공용 인프라와 열린 데이터로 설계되지 않으면 또 하나의 비싼 개인 장비로 끝날 것이다.

초파리 실험실의 하루는 손으로 시작된다. 이산화탄소 패드 위에 마취한 파리를 쏟고, 붓으로 암수를 가르고, 처녀 암컷을 모으고, 새 먹이 병으로 옮긴다. 계통 하나를 유지하는 일은 몇 주마다 돌아오는 손의 의식이다.

그래서 로봇이 실험을 한다는 말을 들으면 나는 반가움과 의심을 함께 느낀다. 반가움은 반복의 노동이 줄어들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고, 의심은 초파리 실험의 많은 순간이 아직 눈과 손의 판단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10월 15일 헬로디디에 실린 기사 하나가 그 두 감정을 다시 불러냈다. 전날 대전 대덕테크비즈센터에서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과 대덕넷이 연 첨단바이오 협의체 세미나에서, 한국기계연구원 임현 연구단장이 중국 선전과 우시의 바이오 현장을 둘러본 경험을 발표했다는 기사다. 제목은 로봇이 실험을 척척 해낸다는 이야기였지만, 내가 오래 붙잡은 것은 로봇이 아니라 토론에서 나온 질문 하나였다.

선전과 우시에서 본 장면

기사에 따르면 방문지는 선전의 유전체 분석 기업 BGI, 자율실험 인프라 기업 XtalPi, 그리고 우시의 바이오 산업단지였다. 호텔에서는 배달 로봇이 엘리베이터와 통신하며 혼자 층을 오갔고, 연구실에서는 로봇이 장비 사이를 오가며 실험을 거들었다고 한다.

내 눈에 더 들어온 장면은 다른 둘이다. 하나는 우시에 있다는 공공 연구 인프라다. 비싼 장비를 한 연구실이 독점하지 않고 여러 연구자가 함께 쓰는 구조다. 다른 하나는 중국 정부가 초기 시장에서 자국 기업의 첫 고객이 되어 기업이 버틸 시간을 벌어 준다는 대목이다. 기술이 자라는 데 필요한 것은 기술만이 아니라 시간과 수요라는 이야기다.

중국에서 일하는 한국인 과학자로서 나는 이런 방문기를 읽을 때 조심하게 된다. 짧은 방문에서 본 가장 앞선 현장은 그 나라 연구 현장의 평균이 아니다. 그래도 공용 인프라와 첫 고객이라는 두 단어는 로봇보다 오래 남는다. 둘 다 연구실 바깥의 제도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이다.

자동화와 자율화 사이

자율랩(self-driving lab)은 이렇게 정의된다. AI가 실험 조건을 설계하고, 로봇과 장비가 실험을 수행하고, 그 결과를 분석해 다음 조건을 정하는 순환이다. 사람의 자리는 순환의 바깥에서 목표를 정하고 결과를 검증하는 쪽으로 옮겨 간다.

발표의 제언은 이 정의보다 훨씬 땅에 붙어 있었다. 국내 바이오 장비 중에는 컴퓨터로 제어하거나 상태를 감지하는 기본 기능조차 부족한 것이 많아서, 자율화보다 자동화가 먼저라는 것이다. 정해진 실험은 자동화하고 새로운 판단이 필요한 실험에 자율화를 적용하자는 구분이다. 반복 작업에는 고정형 산업용 로봇을, 여러 장비를 오가는 일에는 모바일 로봇이나 휴머노이드를 섞어 쓰자는 제안, 연구실 데이터가 대량생산까지 이어지도록 처음부터 자율제조와 연결해 설계하라는 주문도 나왔다.

나는 이 구분이 정직하다고 생각한다. 자율랩을 둘러싼 말들은 종종 사람 없는 실험실의 그림부터 그리지만, 실제 연구실의 병목은 대개 더 지루한 곳에 있다. 장비끼리 말을 하지 못하고, 기록은 연구자마다 다른 형식으로 흩어지고, 실험 조건의 절반은 노트가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 있다. 로봇이 피펫을 잡기 전에 장비가 서로의 언어를 알아들어야 하고, 데이터가 같은 형식으로 쌓여야 한다. 이것은 기술의 문제이기 전에 표준과 공유의 문제라고 나는 본다. 이 부분은 나의 해석이다.

초파리 연구에도 자동화의 역사가 있다. 행동을 영상으로 자동 추적하는 도구, 많은 계통을 한꺼번에 검사하는 장치들이 나오면서 손으로 세던 것을 기계가 세게 되었다. 그러나 그 도구들이 공동체에 퍼진 방식은 대개 공개된 코드와 공유된 설계도였다. 한 연구실의 장비가 아니라 모두의 방법이 되었을 때 비로소 자동화는 과학을 바꿨다.

파리방은 원래 공용 벤치였다

토머스 헌트 모건의 파리방은 컬럼비아대학의 작은 방이었다. 몇 개의 책상에 학생과 연구원이 붙어 앉아 우유병에 파리를 기르며 같은 현미경 앞을 오갔다. 스터티번트, 브리지스, 멀러가 그 좁은 방에서 서로의 결과를 바로 옆에서 보고 반박했다. 파리방을 과학사의 전설로 만든 것은 천재 몇 명이 아니라, 장비와 계통과 아이디어가 한 방 안에서 공유되던 방식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방식은 제도가 되었다. 모건 연구실은 돌연변이 계통을 원하는 다른 연구실에 보내 주었고, 이 관행은 훗날 계통센터로 이어졌다. 오늘 초파리 연구자는 블루밍턴 계통센터 같은 곳에서 계통을 주문하고, 공개 데이터베이스에서 유전자 정보를 찾는다. 한 연구실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을 공동체가 나눠 지는 구조, 그것이 작은 파리를 백 년 넘게 생물학의 최전선에 붙잡아 둔 힘이다.

공유가 저절로 생긴 것은 아니다. 계통을 보관하고 분양하는 일은 누군가의 시간과 돈이 드는 노동이고, 그 노동은 논문의 저자 목록에 잘 오르지 않는다. 초파리 공동체가 그 일을 백 년 가까이 이어 올 수 있었던 것은 공동의 기반을 공공의 돈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공유지는 선의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제도와 예산으로 유지된다.

그래서 우시의 공공 장비 인프라와 세미나 패널의 제안, 곧 단순 반복 실험은 개별 연구실이 맡고 고가 장비는 공공 인프라로 함께 쓰자는 역할 분담이 내게는 낯설지 않다. 그것은 파리방이 처음부터 해 온 일이다. 다른 점은 이번에 함께 써야 할 것이 계통이나 현미경만이 아니라 데이터라는 것이다. 자율랩의 순환은 데이터를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누구의 경쟁력을 위한 로봇인가

토론에서 나온 질문을 다시 옮긴다. 자율랩 정책의 목적이 개인 연구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인지, 데이터를 공유해 AI 모델을 고도화하는 것인지 먼저 정해야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나는 이것이 그날 나온 가장 중요한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목적이 개인 연구실의 경쟁력이라면 정책은 장비 구매 지원으로 흐를 것이다. 몇몇 연구실에 비싼 로봇이 들어가고, 그 로봇이 만든 데이터는 그 연구실의 논문과 특허가 된다. 이 경로는 익숙하다. 연구비가 장비가 되고, 장비가 실적이 되고, 실적이 다시 연구비가 되는 순환이다. 반대로 목적이 공동의 데이터라면 정책은 표준, 공용 시설, 데이터 공개 규칙, 그리고 그 시설을 운영할 사람에게 돈을 써야 한다. 화려하지 않고 논문 수로 잘 잡히지 않는 일들이다. 비싼 장비를 들여놓고도 운영 인력과 유지비가 없어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연구 현장에서 낯설지 않다. 〔필자 경험: 한국이나 중국 연구기관에서 본 공용 장비 운영의 실제 모습을 넣을 자리〕

하나를 더 묻고 싶다. 자율랩이 대신하게 될 반복 노동은 지금 누가 하고 있는가. 많은 경우 대학원생과 연구원, 그리고 기술직 인력이다. 반복이 줄어드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숙련 기술직이 로봇의 보조로 밀려나거나 그 자리가 사라진다면, 자율랩 정책은 곧 연구실의 노동 구조를 바꾸는 정책이 된다. 공용 인프라를 운영하는 숙련 인력의 경력 경로를 함께 설계하지 않으면, 공공 장비는 머지않아 아무도 고치지 못하는 장비가 된다. 이것은 기사에 없는, 나의 걱정이다.

다시 마취 패드 앞으로 돌아간다. 파리를 붓으로 가르는 손은 아마 꽤 오래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로봇이 그 일을 대신하게 되더라도 초파리 방에서 배운 것은 바뀌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좋은 도구는 한 연구실의 벽 안에 있을 때보다 공동체의 선반에 놓일 때 더 많은 것을 발견한다.

자율랩의 미래는 로봇의 손재주가 아니라 공용 벤치의 설계에 달려 있다. 우리는 로봇을 사기 전에, 그 로봇이 누구의 선반에 놓일지부터 정해야 한다.

보통 과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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