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L;DR
- 노벨상 주간이 시작된다. 10월 5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6일 물리학상, 7일 화학상이 발표된다. 클래리베이트는 생리의학상 유력 분야로 GLP-1 연구를 꼽았고, 올해 예측 명단에 한국인 과학자는 없다.
- 비만약은 도마뱀의 침에서도 왔다. GLP-1 계열 약의 뿌리에는 40년 넘게 이어진 장 호르몬 연구와, 미국 사막 도마뱀의 침에서 찾아낸 펩타이드가 함께 있다. 처음부터 블록버스터를 노린 연구는 없었다.
- 초파리유전학자의 결론. ‘한국은 언제’는 메달 집계의 언어다. 정작 물어야 할 것은 수십 년 동안 쓸모를 증명하지 못하는 질문을 붙들고 있을 수 있는 연구 문화가 우리에게 있느냐는 것이다.
초파리 방의 하루는 먹이에서 시작한다. 옥수숫가루와 당밀, 효모를 끓여 식힌 배지를 바이알에 붓고, 오래된 바이알의 파리를 새 바이알로 옮긴다. 당분이 너무 많으면 파리가 살찌고, 너무 적으면 굶는다. 초파리 연구자들은 이 단순한 먹이 조성만 바꿔도 파리의 수명과 번식, 행동이 달라진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꽤 표준화되었지만, 여전히 세계 각지의 초파리방 배지조성은 모두 다르다.
내일 저녁이면 스톡홀름에서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예측 기관 클래리베이트가 꼽은 유력 후보는 GLP-1 연구자들이다. 위고비와 마운자로로 알려진 비만 치료제의 기초를 놓은 사람들이다. 먹이와 대사라는, 초파리 방에서 매일 마주하는 주제가 올해 노벨상 예측의 한복판에 서 있는 셈이다.
그리고 한국 언론은 올해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올해엔 혹시 한국이?’ 나는 노벨상 전야마다 이 질문이 조금 불편하다. 오늘은 그 불편함이 어디서 오는지, 도마뱀 한 마리의 침을 따라가며 생각해 보려 한다.
해마다 돌아오는 질문

올해 발표 일정은 10월 5일 생리의학상, 6일 물리학상, 7일 화학상 순이다. 머니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클래리베이트의 올해 예측 명단에 한국인 과학자는 없다. 기사들은 대신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분야가 언젠가 인정받는다면 2012년 고체형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처음 보고한 박남규 성균관대 교수가 후보가 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이 기사들의 구조는 해마다 거의 같다. 일본은 몇 명, 중국은 몇 명, 한국은 아직. 그리고 기초과학에 투자해야 한다는 결론. 결론 자체에 반대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 결론에 이르는 길이 늘 ‘국가 대항전’의 문법을 지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노벨상이 국가에 주는 상이 아닌데도, 우리는 메달 집계표를 펼치듯 수상자의 국적을 센다.
나는 이것이 과학을 문화가 아니라 국력의 지표로 보는 습관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지난주 중국은 연구개발 투자의 GDP 대비 비율이 처음으로 OECD 평균을 넘었다고 발표했다. 비율 경쟁에서는 이미 따라잡히고 있는 셈이다. 비율로도, 메달로도 이기기 어려운 시대에 한국 과학은 무엇을 자랑해야 할까. 질문을 바꿀 때가 됐다고 나는 본다. 이것은 나의 해석이다.
질문을 바꾸면 보이는 것도 달라진다. 노벨상 수상자를 세는 대신, 수상으로 이어진 연구가 처음 시작될 때 어떤 환경에 있었는지를 세어 보면 어떨까. 연구자가 몇 년짜리 과제를 받았는지, 실패한 실험을 몇 년이나 견딜 수 있었는지, 연구실의 기술원과 학생들이 어떤 처우를 받았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숫자는 신문 1면에 오르지 않지만, 나는 그것이 한 사회의 과학 문화를 더 정직하게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도마뱀의 침, 장의 호르몬

GLP-1 이야기는 그 질문을 바꾸는 데 좋은 재료다. GLP-1은 음식을 먹으면 장에서 나와 인슐린 분비를 돕는 호르몬이다. 코메디닷컴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이 호르몬을 둘러싼 연구는 1980년대부터 40년 넘게 이어졌다. 토론토대의 대니얼 드러커는 GLP-1의 생리 기능과 치료 가능성을, 코펜하겐대의 옌스 율 홀스트는 장에서 GLP-1이 만들어지고 작용하는 방식을, 록펠러대의 스베틀라나 모이소브는 GLP-1의 생물학적 활성형을 밝히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
여기에 뜻밖의 동물이 끼어든다. 미국 남서부 사막에 사는 독도마뱀, 힐라몬스터다. 미국의 내분비학자 존 엥은 이 도마뱀의 침에서 엑센딘-4라는 펩타이드를 찾아냈고, 이것이 사람 몸에서 GLP-1처럼 작용하면서도 훨씬 오래 버틴다는 점이 첫 GLP-1 계열 당뇨병 약의 바탕이 됐다. 이후 제약회사 연구자들이 분자를 다듬어 오늘의 비만 치료제에 이르렀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두 가지가 눈에 들어온다. 하나는 시간이다. 장 호르몬의 기능을 묻는 질문에서 약국의 비만약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 다른 하나는 우연이다. 사막 도마뱀의 독을 연구한 사람이 비만 치료제를 목표로 삼았을 리는 없다. 그 연구가 처음 제안됐을 때 ‘경제적 파급효과’를 써 내라고 했다면, 무엇이라고 썼을까.
초파리 연구자에게 이 이야기는 낯설지 않다. 초파리에도 인슐린과 비슷한 펩타이드들이 있고, 글루카곤처럼 저장된 에너지를 꺼내 쓰게 하는 호르몬이 있다. 파리의 뇌 속 몇 개의 세포가 몸 전체의 대사를 조율한다는 사실은 처음에는 ‘파리가 왜 살찌는가’ 같은, 쓸모없어 보이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우리 실험실의 SIFa 나 sNPF같은 뉴로펩타이드의 역할과 GLP-1의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다.
모건의 방에는 몇 명이 있었나

노벨상에는 한 분야에 최대 세 명이라는 규칙이 있다. 그런데 GLP-1처럼 40년에 걸친 이야기에는 세 명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호르몬의 유전자를 찾은 사람, 활성형을 밝힌 사람, 장에서의 작용을 증명한 사람, 도마뱀의 침을 뒤진 사람, 약으로 만든 사람. 누가 상을 받든, 그 상은 수많은 이름을 세 개로 압축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초파리유전학의 역사에도 같은 장면이 있다. 1933년 노벨 생리의학상은 토머스 헌트 모건 혼자 받았다. 그러나 염색체 지도를 그리고 돌연변이를 찾아낸 일의 상당 부분은 브리지스와 스터티번트를 비롯한 파리방의 젊은 연구자들이 함께 했다. 모건이 상금을 그들의 가족과 나눴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나는 이 일화가 사실 여부를 떠나 파리방이라는 공동체의 성격을 잘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공로를 누구에게 돌릴 것인가의 문제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네이처는 노벨상 주간을 앞두고 과학 분야 여성 수상자의 이름을 맞혀 보라는 퀴즈를 냈다. 그 이름들을 곧바로 떠올리기 어렵다는 사실 자체가, 상이 누구의 기억을 만들고 누구의 기억을 지우는지를 보여 준다. 상은 과학의 결과를 기리지만, 과학이 실제로 일어나는 방식과는 다르게 생겼다.
‘한국은 언제’ 대신 물어야 할 것

그렇다면 노벨상 전야에 한국 과학이 물어야 할 질문은 무엇일까. 나는 ‘한국은 언제 받나’가 아니라 ‘한국에서 지금 힐라몬스터의 침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누구이고, 그 사람은 앞으로 20년 동안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나’라고 묻고 싶다.
지난 며칠 한국 과학정책의 언어를 돌아보면 이 질문에 쉽게 답하기 어렵다. 출연연은 ‘임무 중심’으로 재편되고, 한 연구기관장은 중국과 체급 경쟁이 불가능하니 ‘필살기 기술’에 집중하자고 말했다. 정부는 AI 개발에서 ‘속도’를 강조한다. 이 언어들이 모두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언어 속에는 도마뱀의 침처럼 목적지를 모르는 연구가 들어설 자리가 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기사들을 읽은 나의 해석이다.
중국에서 연구실을 운영하는 나에게 이 질문은 남의 일이 아니다. 중국의 연구개발 투자 규모는 숫자로 이미 드러났지만, 규모가 곧 연구의 자유를 뜻하는지는 따로 물어야 할 문제다. 〔필자 경험: 중국과 한국의 연구 환경을 비교하며 느낀 점, 특히 장기 과제나 실패를 대하는 태도에 관한 관찰을 넣을 자리〕 결국 어느 나라든, 목적지를 모르는 연구를 몇 년 동안 견뎌 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파리방의 전통이 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좋은 과학은 쓸모를 미리 알 수 없는 질문을, 여럿이 오래, 그리고 열린 채로 붙드는 데서 나온다. 모건의 방은 돌연변이 파리를 다른 연구실과 나눴고, 그 공유가 수많은 발견의 바탕이 됐다. 노벨상은 그런 문화가 수십 년 쌓인 뒤 가끔 돌아오는 부산물일 뿐이다. 부산물을 목표로 삼는 순간, 그 부산물을 낳는 토양은 오히려 메마른다.
내일 저녁 발표에서 GLP-1 연구자들이 상을 받을지, 전혀 다른 분야가 호명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가 받든 나는 그 이름 뒤에 서 있는 실험실들과, 끝내 이름이 불리지 않을 사람들을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어딘가에 사막의 도마뱀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오늘 저녁에도 나는 파리 먹이를 끓인다. 당밀의 양을 재면서, 이 단순한 일과가 언젠가 어떤 질문으로 이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모른다는 것,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사회가 과학을 문화로 가진 사회다.
보통 과학자
출처
- ‘2026 노벨과학상’ 발표 코앞…최초 한국인 수상자 나올까. 머니투데이 (2026.10.3). https://www.mt.co.kr/tech/2026/10/03/2026100214403725977
- “올해엔 혹시 한국이?”…막 오른 노벨상 시즌, 예측 결과 보니. 머니투데이 (2026.10.2). https://www.mt.co.kr/tech/2026/10/02/2026100211572747308
- ‘비만 치료 혁명’ GLP-1, 노벨의학상 품을까⋯5일 수상자 발표. 코메디닷컴 (2026.10). https://kormedi.com/2877709/
- Can you name the women who have won a science Nobel prize?. Nature (2026.10.2).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6-03133-9
- 中, R&D 투자 800조원 육박…GDP 비중 첫 OECD 평균 웃돌아. 세계일보 (2026.10.1). https://www.segye.com/newsView/20260930519360
- 박세웅 원장 “中 체급 경쟁 불가···독보적 ‘필살기 기술’로 승부”. 헬로디디 (2026.9.30). https://www.hellodd.com/news/articleView.html?idxno=113347
- PBS 폐지 넘어 ‘국가대표 출연연’ 새판 짠다. 헬로디디 (2026.9.30). https://www.hellodd.com/news/articleView.html?idxno=1133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