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Flyandbee, Woo Jae Kim (2014-), 김우재 (2014-)

17년이 걸린 논문 —초파리 알에 바늘을 꽂던 어느 초보 과학자의 기억

처음 UCSF의 Jan 실험실에 들어갔을 때, 나는 초파리 행동유전학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한 시니어 포닥의 제안으로 시작한 일이 17년을 건너 세상에 나왔다. 작지만 아주 오래된, 그래서 더 소중한 논문이다.

과학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 말이 얼마나 문자 그대로의 진실인지, 나는 이번에 다시 한번 실감했다. 이번에 출판된 논문의 씨앗은 내가 처음 초파리를 배우러 Jan 실험실에 들어갔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UCSF의 Yuh Nung Jan과 Lily Yeh Jan의 실험실 — 신경생물학의 성지 중 하나. 그곳에서 나는 초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초파리 행동유전학이 뭔지도, 어떻게 유전자 조작을 하는지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때 한 시니어 포닥이 내게 이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Sex Peptide Receptor(SPR)가 축삭돌기(axon)에 어떻게 표적화되는지 한번 봐줄 수 있겠어?” 단순하게 들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후 몇 달 동안, 초파리 알에 DNA를 주입(injection)하는 지옥 같은 실험을 반복했다. 현미경 아래 0.5mm도 안 되는 알에 가느다란 바늘을 꽂고, 또 꽂고. 손이 떨리면 알이 터진다. 집중이 흐트러지면 하루치 실험이 날아간다.

“과학은 논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수많은 실패한 실험들, 흩어진 메모들, 서랍 속에 묻힌 데이터들 — 그것들이 모두 과학이다.” — 김우재

그 결과물이 이제야 세상에 나왔다. 무려 17년이 넘어서. 논문의 제목은 「Decoupling of axonal targeting and behavioral function in the Drosophila melanogaster Sex Peptide Receptor」. Archives of Insect Biochemistry and Physiology 지에 실렸다. 공저자는 Xinyue Zhou, Hongyu Miao, Tianmu Zhang, 그리고 나. 이 연구는 Jan 실험실 시절의 씨앗이 하얼빈공업대학교라는 새 땅에서 꽃을 피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Zhou, X., Miao, H., Zhang, T. & Kim, W. J. Decoupling of Axonal Targeting and Behavioral Function in the Drosophila melanogaster Sex Peptide Receptor. Arch. Insect Biochem. Physiol. 122, (2026).

이 논문이 물은 질문

암컷 초파리는 교미를 하고 나면 행동이 크게 달라진다. 다시 교미하려 하지 않고, 알을 더 많이 낳고, 먹이 섭취 패턴도 바뀐다. 이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주인공이 수컷이 교미 중에 전달하는 Sex Peptide(SP), 즉 성 펩타이드다. 그리고 이 신호를 받아들이는 수용체가 Sex Peptide Receptor(SPR)다.

SPR는 전형적인 G단백질 결합 수용체(GPCR)다. 이미 2008년 Yapici 등이 SPR이 암컷의 신경계에서 교미 후 행동을 조율한다는 것을 Nature에 발표했다1. 그리고 기존 연구들은 SPR이 뉴런의 축삭돌기(axon)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SPR은 왜 축삭에 있는 걸까? 그리고 축삭에 있어야만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걸까?

📌 핵심 개념 | SPR과 교미 후 반응

초파리 암컷이 교미하면, 수컷의 정액에 포함된 Sex Peptide(SP)가 암컷의 생식계와 신경계의 SPR에 결합한다. SPR이 없거나 신경계에서만 제거된 암컷은 교미 후에도 처녀처럼 행동한다 — 다시 교미하려 하고, 알도 덜 낳는다. SPR은 이 행동 전환의 핵심 스위치다.

SPR은 7개의 막관통 도메인을 가진 GPCR로, N-말단(약 90개 아미노산), 중앙 7-TM 영역, C-말단(약 40개 아미노산)으로 구성된다. 이 연구는 이 각각의 구역이 수용체의 위치 결정과 행동 기능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해부했다.

발견: 위치와 기능이 분리된다

우리는 SPR의 N-말단, C-말단, 혹은 둘 다를 제거한 변이체들을 만들었다. 초파리 애벌레의 감각뉴런과 생쥐의 해마 뉴런, 두 가지 모델 시스템에서 각 변이체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면밀히 추적했다.

결과는 명쾌했다. N-말단이 없으면 SPR은 축삭으로 가지 못한다. 더 세밀하게 파고들어 보니, 결정적인 영역은 41번~80번 아미노산 구간이었다. 이 안에는 YGNE라는 서열이 있는데, 이것이 전형적인 티로신 기반 분류 모티프(YXXΦ)에 해당한다. 이 모티프는 AP-3 어댑터 복합체와 상호작용하여 세포 내 수송을 조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AlphaFold 구조 예측도 SPR의 N-말단이 초파리 AP-3 복합체의 μ3A 서브유닛(Carmine)과 결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시작됐다. N-말단이 제거되어 SPR이 축삭에 전혀 가지 못하는 변이체를 암컷의 fruitless 뉴런에서 발현시켜도, 교미 후 재교미 거부 행동은 완전히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다시 말해, SPR이 축삭에 없어도 행동 기능은 멀쩡하다는 것이다.

반면 C-말단을 제거하면 어떻게 될까? C-말단 없이도 SPR은 축삭에 잘 위치한다. 하지만 행동은 전혀 회복되지 않는다. 축삭 표적화와 행동 기능이 완전히 분리(decoupled)된다는 것 — 이것이 이 논문의 핵심 발견이다.

“수용체가 ‘어디에 있느냐’와 ‘무엇을 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 위치는 기능의 필요조건이 아닐 수 있다.” — 본 논문의 결론에서

작은 논문이 품은 큰 질문

신경과학자들은 오랫동안 뉴런의 극성(polarity)에 매혹되어 왔다. 수상돌기(dendrite)와 축삭돌기(axon)는 서로 다른 구역이고, 단백질들은 정교한 분류 시스템을 통해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렇다면 특정 수용체가 ‘반드시 축삭에 있어야만’ 신호를 올바르게 처리할 수 있다는 직관은 자연스럽다.

이 논문은 그 직관을 흔든다. SPR은 축삭에 가는 능력을 갖고 있고, 그 메커니즘(AP-3 복합체와 YGNE 모티프)도 밝혀졌다. 하지만 행동을 조율하는 것은 C-말단이 관장하는 비축삭 구역의 신호전달이다. 어쩌면 순환 Sex Peptide가 축삭이 아닌 세포체나 수상돌기 쪽에서도 SPR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리라.

이것은 GPCR 생물학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수용체를 특정 구역으로 정밀하게 보내는 세포의 노력이, 실제 생리적 기능과 항상 직결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위치 결정과 기능 수행은 독립적으로 진화했거나, 혹은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한 다른 기능을 위해 축삭 표적화가 유지되는 것일 수도 있다.

🔬 주요 발견 요약

① N-말단(41-80번 아미노산)이 축삭 표적화의 핵심. YGNE 모티프를 통해 AP-3 어댑터 복합체(Carmine/μ3A)와 상호작용하여 SPR을 축삭으로 안내한다. 이 메커니즘은 초파리와 생쥐 해마 뉴런 모두에서 보존되어 있다.

② 축삭 표적화와 행동 기능은 분리된다. N-말단이 없어 축삭에 못 가도 암컷의 교미 후 재교미 거부 행동은 완전히 회복된다. 반면 C-말단 없이는 축삭에는 가지만 행동은 회복 불가.

③ 비축삭 신호전달로도 충분하다. SPR의 핵심 행동 기능은 세포체-수상돌기 구역에서의 신호전달만으로도 수행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17년, 그리고 과학의 속도에 대하여

이 논문의 씨앗이 Jan 실험실에 있었다는 것은 이미 acknowledgement에 분명히 적혀 있다. Yuh Nung Jan과 Lily Yeh Jan에 대한 감사. 그리고 UAS-SPR 파리 라인과 항체를 제공해 준 Barry Dickson에 대한 감사. 이 논문 안에는 그 실험실들에서 흘렀던 시간들이 압축되어 있다.

약 2007–2008년

UCSF Jan 실험실에서 초파리를 처음 배우기 시작. 한 시니어 포닥의 제안으로 SPR 축삭 표적화 프로젝트 시작. 몇 달에 걸쳐 초파리 알에 DNA 인젝션 반복.

그 이후 수년

여러 이유로 프로젝트는 완결되지 못한 채 서랍 속에 잠든다. 과학자의 커리어는 다른 논문들, 다른 실험실들을 거쳐 이어진다.

하얼빈에서

하얼빈공업대학교(HIT) 생명과학센터에 자리를 잡으며 묵혀 두었던 질문을 다시 꺼낸다. Zhou, Miao, Zhang과 함께 실험을 재설계하고 데이터를 채운다.

2025년

Archives of Insect Biochemistry and Physiology에 최종 출판. 17년이 넘는 여정의 마침표.

17년. 과학계의 일부에서는 이것을 비효율이라고 부를 것이다. 논문 한 편이 17년이 걸렸다면, 뭔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초파리 유전학이라는 분야는 수십 년에 걸쳐 쌓인 지식과 도구들의 집합이다. 1908년 Thomas Hunt Morgan이 흰 눈 돌연변이 수컷 초파리를 처음 발견한 이래, 이 작은 생물은 유전학의 역사를 써왔다. 그 긴 역사 안에서, 2008년에 시작된 한 프로젝트가 2025년에 완성되는 것은 —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과학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다. 마라톤이고, 때로는 세대를 넘는 이어달리기이기도 하다.

“초파리는 짧게 산다. 25°C에서 이틀이면 알에서 애벌레가 되고, 10일이면 성체가 된다. 하지만 초파리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그 생명주기의 수천 배를 들여 한 가지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에 대하여

과학의 방법론: 왜 초파리인가

이 논문에서 특히 내가 흥미롭게 생각하는 부분은, 초파리에서 발견한 기전이 생쥐 해마 뉴런에서도 그대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초파리 SPR의 N-말단이 생쥐 뉴런에서도 축삭 표적화를 담당한다. 이것은 GPCR 분류(sorting)의 기본 원리가 무척추동물과 척추동물 사이에 보존되어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초파리가 모델 생물로 그토록 강력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유전적 조작이 쉽고, 세대가 짧고, 유지 비용이 낮다. 그래서 많은 변이체를 빠르게 만들고 시험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발견한 원리는 상당히 자주 인간을 포함한 척추동물에서도 유효하다. 수십 년간의 초파리 연구가 신경과학, 발달생물학, 행동유전학의 핵심을 이뤄온 이유다.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초파리 연구가 인간에게 무슨 도움이 됩니까?” 나는 이 질문이 조금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 하지만 그것이 나쁜 질문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어리석은 질문은 종종 가장 본질적인 질문이기도 하니까. GPCRs는 현재 시판 중인 의약품의 약 30%가 표적으로 삼는 단백질군이다. 뇌에서 GPCRs가 어떻게 정확한 위치에 배치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 아주 긴 우회로를 통해 — 언젠가 신경계 질환의 치료와 연결될 수 있다.

작은 논문이 중요한 이유

이 논문은 Cell이나 Nature에 실리지 않았다. Archives of Insect Biochemistry and Physiology는 훌륭한 저널이지만, 이른바 “탑 저널”은 아니다. 요즘 과학계의 논리대로라면, 이런 논문은 “임팩트”가 낮다고 폄하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논문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과학은 화려한 발견들만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쌓이는 작은 발견들 — “이 단백질은 이 구역에 간다”, “이 모티프가 이 역할을 한다”, “하지만 기능은 예상과 다르게 분리된다” — 이런 발견들이 벽돌처럼 쌓여 마침내 집이 된다. SPR의 행동과 위치가 분리된다는 이 발견은, GPCR 연구자들이 앞으로 자기 수용체의 기능을 해석할 때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해볼 원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논문은 나에게 더 특별하다. 초파리 행동유전학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Jan 실험실에서 처음 바늘을 잡고 알에 DNA를 주입하려 했던 그 기억. 손이 떨려서 그날 실험을 망쳤던 기억. 그 기억들이 이제 논문 한 편이 되었다. 17년이 걸렸지만, 결국 세상에 나왔다.

“과학자가 된다는 것은 인내를 배우는 것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답을 서둘러 내주지 않는다. 질문이 충분히 날카로워지고, 도구가 충분히 정밀해지고, 그리고 약간의 행운이 더해질 때 — 비로소 자연은 조금씩 문을 연다.” — 김우재

감사와 연대

이 논문이 가능했던 것은 많은 사람들 덕분이다. Yuh Nung Jan과 Lily Yeh Jan — 초파리를 가르쳐 준 스승들. Barry Dickson — UAS-SPR 파리와 항체를 나눠 준 연구자. 그리고 하얼빈에서 함께 실험한 Zhou, Miao, Zhang — 이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든 동료들.

과학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수십 년에 걸쳐 전 세계 수천 명의 과학자들이 쌓은 지식과 도구 위에, 오늘 우리가 새로운 벽돌 하나를 얹는다. 그것이 과학의 방식이다. 느리고, 협력적이고, 때로는 답답하지만 — 결국 앞으로 나아간다.

17년 전 Jan 실험실에서 바늘을 잡았던 그 젊은 과학자는, 지금 이 논문 한 편을 들고 웃고 있다. 늦었지만 늦지 않았다. 과학에서 17년은 — 그리 긴 시간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논문 링크: Zhou X†, Miao H†, Zhang T, Kim WJ. “Decoupling of axonal targeting and behavioral function in the Drosophila melanogaster Sex Peptide Receptor.” Archives of Insect Biochemistry and Physiology, 2025. DOI: 10.1002/arch.70168

  1. Yapici, N., Kim, Y. J., Ribeiro, C., & Dickson, B. J. (2008). A receptor that mediates the post-mating switch in Drosophila reproductive behaviour. Nature, 451(7174), 33-37. 이 논문의 공동1저자 중 한 명이 현재 광주과기원의 김영준 교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