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아시아태평양 초파리 신경생물학회 참석 후기 — 2026년 4월, 선전 이공대학교
솔직히 말하면, 갈 때만 해도 별 기대가 없었다. 아시아태평양이라는 이름이 붙은 학회가 세계 최정상급이 다 모이는 학회가 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틀렸다. 완전히, 처참하게 틀렸다.

선전 이공대학교(SUAT)가 주최한 APDNC4는 그냥 지역 학회가 아니었다. 초파리 신경생물학을 한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름들이 연사 목록에 즐비했고, 내가 논문에서 수십 번 읽어온 저자들이 실물로 걸어다니고 있었다. Leslie Griffith, Joanna Chiu, Gilad Barnea, Toshihide Hige — 학회 명찰을 보면서 ‘아, 이 사람이 그 사람이구나’를 반복했다.
중국은 이미 왔다. 우리가 언제 올지 기다리는 동안,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중국 과학이 얼마나 왔는지 보여준 학회
이번 학회의 핵심은 중국 젊은 학자들이었다. 북경대, 칭화대, 저장대, 소주대, 서호대학교…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곳에서 온 30대 초중반 PI들이 발표하는 걸 보면서 나는 계속 같은 생각을 했다. ‘이 사람들, 언제 이렇게 됐지?’ 연구의 질이 문제가 아니라 스케일과 속도가 달랐다. 수십 명의 학생, 최신 장비, 여러 국가와의 공동연구 네트워크. 이 나라는 과학을 전쟁처럼 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해외 석학을 파격적인 조건으로 영입하고, 자국 유학생들을 세계 최정상 연구실에 보낸 다음 다시 불러들이는 전략이 이제 제대로 결실을 맺고 있다. 국제화라는 말이 한국에서는 여전히 구호로만 떠도는 동안, 중국은 그걸 이미 실행해버렸다. 아, 그리고 영어를 한다. 발표도, Q&A도, 포스터 앞에서 외국인과 나누는 대화도. 10년 전 중국 학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Jan 부부, 그리고 내 첫 제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이번 학회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내 박사후연구원 지도교수인 Yuh Nung Jan과 Lily Jan이 특별 초청 연사로 왔다. 초파리 신경유전학 분야를 거의 창시한 사람들이다. 수십 년 동안 이 분야를 이끌어온 두 분이 선전 한복판에서 강연하는 걸 보면서, 뭔가 이 분야의 역사가 압축되어 보이는 기분이었달까.

그 자리에 내 첫 번째 박사 제자를 데리고 갔다. 두 분께 직접 소개시켜드릴 수 있었고, 내년에 하얼빈에 초대하기로 이야기도 됐다. 제자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경험이 또 있을까 싶다. 내가 수련받은 사람으로부터 직접, 내 제자에게 이어지는 그 연결이 실물로 만들어지는 걸 보는 건 뭐랄까, 학자로서의 계보 같은 게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확인하는 느낌이었다.

2012년 내 연구를 아는 영국 연구자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다. 영국에서 온 젊은 연구자가 초파리 사회성 연구 발표를 하면서 계속 2012년 논문 하나를 언급했다. 발표 도중, 질문 시간에, 포스터 앞에서도. 근데 그게 내 논문이었다. 내가 손을 들고 “그게 제 연구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순간, 그 연구자의 표정이 꽤 재밌었다. 이 학회에 그 저자가 와 있을 거라곤 생각을 못 한 것 같았다. 그 이후로 꽤 긴 대화를 나눴고, 공동연구 가능성도 이야기했다.

자기 연구가 누군가에게 진지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건, 논문 피인용 지수 같은 숫자로 보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뿌듯함이다.

하얼빈에서 만나자
이번 학회에서 만든 인연들에게 올해 8월 하얼빈에서 열리는 한중일 초파리학회 초대도 마쳤다. 아시아 세 나라 초파리 연구자들이 모이는 자리인데, 이번 선전에서 만난 여러 연구자들이 온다고 했다. 공동연구의 씨앗이 몇 개나 뿌려졌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적어도 가능성의 문은 여러 개 열렸다.
같이 간 한국 교수들 중 중국에 처음 온 분들이 몇 있었는데, 다들 비슷한 반응이었다. 선전이라는 도시 자체에, 대학교 인프라에, 학회 운영 방식에 충격받은 것 같았다. 한국에서 “중국 과학”이라고 하면 여전히 과거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데, 이제 그런 이야기는 통하지 않는다. 직접 봐야 안다. 이게 이번 학회의 가장 큰 소득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초파리는 작고, 과학자는 크다. 하지만 그 과학자를 키우는 건 결국 나라가 과학에 얼마나 진심인가의 문제다.
4월 선전의 햇살은 뜨거웠다. 학회장 안도 뜨거웠다. 좋은 의미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