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실험실 테크니션에서 하버드의 연구행정가까지
《The Transmitter》에는 ‘Frameshift’라는 연재가 있다. 신경과학으로 박사를 받았지만 실험실 바깥에서 자신의 길을 찾은 사람들이, 그 일과 전직의 과정을 담담히 들려주는 코너다. 이번 주에 올라온 글의 제목은 「Making an impact through academic administration」, 우리말로 옮기면 ‘연구행정으로 세상에 흔적을 남기다‘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연재를 몇 편만 이어 읽어 보면, 이상하리만치 똑같은 문장이 반복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알츠하이머 연구재단에서 연구비 관리를 총괄하는 케일라 싱글턴은 에모리대 박사후연구원 2년차에 “연구가 더 이상 즐겁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PI가 되는 길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그 자각을, 그는 “일종의 자아의 죽음(ego death)”이라 불렀다. Cell·Nature·Science에 논문을 내고도 끝내 자기 회사를 차린 케이틀린 밴더 윌리는 이렇게 회고한다. “눈가리개를 쓴 채 사다리를 올랐다. 꼭대기에 다다라서야, 이곳이 내가 원하던 자리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의 편집장이 된 사람도, 재단에서 과학 자선사업을 기획하는 사람도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한다. 나는 세상에 임팩트를 남기려고 과학을 시작했다, 그런데 그 길이 하나뿐인 것은 아니었다고.

그리고 이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것이 하나 있다. 박사과정이 가르쳐 주는 진짜 능력은 어떤 특정한 실험 기법이 아니라, “어떻게든 문제를 풀어내는” 태도라는 것. 그 능력은 실험대 위에서만 쓸모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래전, 나는 ‘보통 과학자’라는 이름 아래 실험실 테크니션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 하고 싶었던 말은 사실 단순했다. 하나의 실험실은 결코 PI 한 사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 새벽에 초파리 바이알을 갈아 끼우고, 배지를 붓고, 계통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지켜 내고, 장비의 성질을 손끝으로 기억하는 사람들 ― 논문의 교신저자 자리에는 이름이 오르지 않지만, 그들이 없으면 그 논문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사람들. 우리는 흔히 그들을 ‘보조’라 부르지만, 실험실이라는 유기체를 실제로 살아 있게 하는 것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손들이다.
‘Frameshift’의 글들은, 오래전 내가 하려던 말의 성숙한 판본처럼 읽힌다. 교수가 아닌 자리는 ‘실패한 자리’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온전한 전문직이라는 것.
사실 우리 초파리 연구자들은, 다른 어느 분야보다 이 사실을 먼저 알았어야 했다. 토머스 헌트 모건의 ‘파리 방(fly room)’을 떠올려 보라. 그 좁은 방에서 캘빈 브리지스는 처음엔 병을 씻고 파리를 옮기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침샘 다사염색체 지도를 그려 낸, 세포유전학의 가장 정밀한 장인이 되었다. 모건의 방이 위대했던 것은 천재 한 사람 덕분이 아니라, 공(功)을 나누고 계통을 나누던 그 커먼스(commons)의 문화 때문이었다.
그 전통은 밀리슬라프 데메렉이 콜드스프링하버에서 계통을 표준화하고 관리하는 인프라를 세우면서 비로소 ‘제도’가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이메일 한 통으로 세계 어디의 파리 계통이든 받아 볼 수 있는 것은 ― 내가 다른 글에서 초파리 공동체의 ‘도덕경제(moral economy)’라 불렀던 그 관행은 ― 블루밍턴 계통센터의 관리자들과 FlyBase의 큐레이터들이 조용히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우리 분야의 데이터 커먼스인 FlyBase의 오랜 중심축 가운데 하나가 다름 아닌 하버드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들은 자기 왕국을 세우는 대신 모두의 인프라를 지키는 쪽을 택한 사람들이다. 말하자면 초파리 유전학은, ‘연구행정의 프로페셔널’을 가장 먼저 발명한 분야였던 셈이다.

하버드 같은 곳에 가 보면, ‘연구를 위한 행정’이 무엇인지 몸으로 알게 된다. 그곳에는 연구비의 신청 전(pre-award)과 집행 후(post-award)를 전담하는 그랜트 행정가들이 있고, 연구개발(research development) 전략을 기획하는 전문가들이 있으며, 공용 장비 코어를 운영하는 디렉터들이 있고, 규제·윤리심의(IRB)와 기술이전(OTD)을 맡는 사람들이 있다. Office for Sponsored Programs 같은 조직은 그 자체가 하나의 전문 기구다. 그리고 이 자리들의 상당수를 박사학위 소지자가 채운다.
핵심은 이것이다. 그들의 일은 과학자에게서 ‘과학이 아닌 모든 것’을 덜어 내어, 과학자가 오직 과학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연구행정의 프로페셔널이란 바로 그런 사람이다 ― 행정을 연구자에게 떠넘기는 사람이 아니라, 연구자를 행정으로부터 구해 내는 사람.
여기에서 ‘연구를 위한 행정’과 ‘행정을 위한 행정’의 결정적 차이가 드러난다. 한국의 많은 연구자들은 여전히 구매와 정산, 온갖 보고서와 평가 서류에 시간을 저당 잡혀 있다. 행정이 연구를 떠받치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가 행정을 떠받치는 구조. 명문 연구기관이 진짜로 앞서 있는 지점은 스타 교수의 숫자가 아니라, 바로 이 ‘지지 구조’의 전문성에 있다. 그들은 과학자를 서기(書記)로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Frameshift’ 같은 연재가 반갑다. 그것은 과학에 여러 개의 길이 있어야 한다고, 교수라는 자리가 유일한 종착역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과학 생태계는 PI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그것은 소통가와 편집자, 연구비를 나눠 주는 사람과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사람, 계통을 지키는 큐레이터와 실험대를 지키는 테크니션, 그리고 연구행정의 전문가들로 함께 짜여 있다. 그리고 이들을 ‘교수가 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위로가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의 온전한 전문직으로 대접할 때에야, 그 생태계는 비로소 건강해진다.
진짜 실패는 교수가 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실패는, 박사를 대량으로 길러 내면서 단 하나의 좁은 사다리만을 내어 주고, 그 사다리에서 내려서는 모든 이를 ‘낙오자’라 부르는 시스템, 바로 그것이다.
‘보통 과학자’라는 이름으로 스무 해 가까이 글을 써 오면서 내가 끝내 하고 싶었던 말은, 어쩌면 이것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과학을 살아 있게 하는 평범하고 필수적인 일들 ― 파리 방을 쓸고 닦던 그 손들의 일 ― 그 자체가, 온전한 하나의 삶으로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