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Flyandbee, Woo Jae Kim (2014-)

시계는 시간만 재지 않는다

초파리 수컷이 짝짓기 앞에서 머뭇거리는 그 짧은 순간에 관하여

수컷 초파리 한 마리가 암컷 앞에서 머뭇거린다. 지름 11밀리미터. 우리 실험실에서 짝짓기를 관찰하는 원형 무대의 크기다. 그 좁은 원 안에서 수컷은 암컷에게 다가가 한쪽 날개를 펴 사랑노래를 부르고, 뒤를 쫓고, 그러다 어느 순간 올라탄다. 다가감과 올라탐 사이에 놓인 그 머뭇거림의 시간을, 우리는 교미 잠복기(copulation latency, 이하 CL)라 부른다. 어떤 수컷은 1분도 되지 않아 결심하고, 어떤 수컷은 한참을 망설인다. 사소해 보이는 이 시간의 차이는 진화의 저울 위에서 결코 사소하지 않다. 먼저 결심하는 개체가 더 많은 후손을 남기기 때문이다. 머뭇거림은 곧 적응도(fitness)의 문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머뭇거림을 결정하는가. 이번에 우리 실험실이 《Genetics》에 발표한 논문은 바로 그 질문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의 예상을 거의 매번 배신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가장 먼저 의심한 것은 몸 상태였다. 배고픈 수컷은 더 급할까, 아니면 더 굼뜰까. 인슐린 신호를 교란해 대사 상태를 흔들어 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잠복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다음은 기억이었다. 초파리도 경험을 학습한다. 특히 나는 지난 십여 년간, 수컷이 다른 수컷 경쟁자를 만난 경험을 ‘기억’해 두었다가 짝짓기 시간을 늘린다는 사실—긴 교미시간(longer mating duration)—을 추적해 온 사람이다. 그렇다면 경쟁자의 경험은 잠복기에도 영향을 줄까? 주지 않았다. 경쟁자를 본 수컷이든 보지 않은 수컷이든, 머뭇거림의 길이는 똑같았다. 짝짓기를 ‘얼마나 오래’ 하는지를 좌우하던 사회적 경험이, ‘얼마나 빨리’ 시작하는지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같은 뇌, 같은 수컷, 그러나 전혀 다른 규칙. 기억의 중추인 버섯체(mushroom body)를 침묵시켜도, 흥분시켜도 잠복기는 변하지 않았다.

예상이 맞아떨어진 곳은 의외로 가장 오래된 자리였다. 시각이었다. 눈이 제 기능을 못 하는 돌연변이들은 한결같이 머뭇거렸다. 그중에는 white 돌연변이가 있었다. 1910년 토머스 헌트 모건이 초파리 유전학의 문을 열어젖힌, 바로 그 흰 눈의 돌연변이다. 한 세기를 훌쩍 넘긴 지금도, 유전학의 시조(始祖) 격인 이 돌연변이는 여전히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친다. white 수컷은 암컷을 제대로 ‘보지’ 못해 방향을 잡지 못했고, 그래서 늦었다. 정상 white 유전자를 되돌려 주자 머뭇거림도 사라졌다. 머뭇거림의 첫 번째 열쇠는, 결국 세상을 보는 능력이었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상식의 영역이다. 진짜 이야기는 그다음부터 시작된다.

시간을 재지 않는 시계

생물학에서 ‘시계 유전자(clock gene)’라는 이름은 거의 신성하다. period, timeless, Clock, cycle—이 네 개의 핵심 유전자가 서로를 켜고 끄며 만들어 내는 24시간의 분자 진자(振子)는, 잠과 각성, 대사와 행동의 하루 리듬을 빚어낸다. 2017년 노벨생리의학상이 바로 이 초파리 시계의 발견에 돌아갔다. 시계 유전자는 말 그대로 ‘시간을 재는’ 유전자다.

그런데 우리는 이상한 것을 보았다.

수컷을 24시간 내내 밝은 빛 속에 두든, 완전한 어둠 속에 두든, 온도를 바꾸든—요컨대 하루 리듬을 빚는 환경 신호를 아무리 흔들어도—잠복기는 변하지 않았다. 일주기 리듬 자체는 머뭇거림과 무관해 보였다. 그렇다면 시계 유전자도 무관해야 옳다.

하지만 네 개의 핵심 시계 유전자 중 단 둘, periodcycle만이 잠복기를 좌우했다. timeless도, Clock도 아니었다. 하루의 리듬을 만드는 데는 네 톱니가 모두 필요한데, 머뭇거림을 결정하는 데는 그중 두 톱니만 필요했던 것이다. 시계가 ‘시간을 재는’ 일을 멈춘 자리에서도, 시계의 부품들은 여전히 일하고 있었다. 다른 일을.

이것이 이 논문의 심장이다. 우리는 시계 유전자의 ‘비(非)일주기적 기능(noncircadian function)’을 본 것이다. 같은 분자 부품이 하나의 일만 하지 않는다. periodcycle은 낮과 밤을 세는 동시에, 어딘가 다른 회로에서 수컷의 머뭇거림을 조율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뇌 전체가 아니라 측면 시계신경(LNd)이라 불리는 아주 특정한 신경세포 무리—그것도 수컷에게만 존재하는 성적 이형(二形)의 신경들—안에서다.

진화는 새로운 부품을 발명하는 데 인색하다. 대신 이미 있는 부품을 빌려 쓴다. 프랑수아 자코브가 ‘브리콜라주(bricolage)’, 곧 손에 잡히는 것으로 임시변통하는 땜장이의 작업이라 불렀던 그 일을. 24시간을 재기 위해 마련된 분자 시계가, 어느 순간 짝짓기의 타이밍을 재는 일에 차출된다. 시계는 시간만 재지 않는다.

한 쌍의 신경세포

우리는 이 머뭇거림의 회로를 끝까지 따라 내려갔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는, 뇌 속에 단 한 쌍뿐인 신경세포가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ITP-LNd 신경세포라 부른다.

이 한 쌍의 세포는 일종의 교차로였다. 위쪽에서는 SIFa라는 신경펩타이드가 신호를 보내 왔고(우리는 GRASP라는 기법으로 이 둘이 실제로 시냅스를 맺는 장면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옆에서는 옥토파민(octopamine)과 글루탐산이 들어왔다. 옥토파민은 곤충의 각성과 흥분을 관장하는, 우리 몸의 노르아드레날린에 해당하는 물질이다. 흥미롭게도 periodcycle을 포함한 시계 유전자들은 옥토파민을 만드는 합성 경로 자체를 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계 유전자에서 옥토파민으로, 다시 머뭇거림으로 이어지는 한 줄의 분자적 인과가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ITP-LNd 신경세포는 이 모든 입력을 받아들인 뒤, 다시 두 개의 신경펩타이드로 신호를 내보낸다. ITP(이온수송펩타이드)와 sNPF(짧은 신경펩타이드 F)다. 둘의 작동 방식은 대조적이어서 아름답다. ITP는 혈림프를 타고 멀리 퍼져 여러 조직의 수용체에 닿는, 말하자면 방송(放送)에 가깝다. sNPF는 바로 곁의 PDF 신경세포에만 작용하는, 귓속말에 가깝다. 방송과 귓속말이 한 쌍의 세포에서 동시에 흘러나와, 수컷이 언제 결심할지를 함께 빚는다.

머뭇거림이라는 단 하나의 행동을 위해, 시각과 시계 유전자와 신경펩타이드와 신경전달물질이 한 쌍의 신경세포 위에서 만나 협상한다. 우리가 그려 낸 회로도는, 단순해 보이는 행동 뒤에 숨은 정교함의 한 단면이다.

보통 과학자의 자리에서

이 논문이 실린 《Genetics》는 미국유전학회(GSA)의 기관지이며, 고전 유전학의 적통이 흐르는 학술지다. 이번 논문을 맡아 준 편집자는 초파리 신경유전학의 거장 휴고 벨렌(Hugo Bellen)이었다. 초파리를 다루는 사람에게 이 저널에, 그 편집자의 손을 거쳐 논문을 싣는다는 것은—조금 과장하자면—집으로 돌아가는 일에 가깝다.

이 연구에 쓰인 초파리 계통들의 출신을 보면 더욱 그렇다. 내가 박사후연구원 시절을 보낸 UCSF의 잔(Jan) 연구실, 마르틴 하이젠베르크, 아미타 세갈, 라비 알라다, 저스틴 블라우… 한 세기에 걸쳐 전 세계 초파리 연구자들이 만들고 나눠 온 계통들이 하얼빈의 우리 실험실로 모여, 하나의 회로도를 완성하는 데 쓰였다. 초파리 유전학은 그렇게, 거대한 공유지(commons) 위에서 자란다. 누구도 혼자 짓지 않는다. 이 논문 역시 몇 해에 걸쳐 좁은 무대 위 수컷들의 머뭇거림을 묵묵히 세고 또 센 우리 실험실 젊은 연구자들의 손끝에서 나왔다.

나는 스스로를 ‘보통 과학자’라 여긴다. 변방의 실험실에서, 한 쌍의 신경세포를 몇 해에 걸쳐 끈질기게 지도 그리는 일—과학의 대부분은 사실 그런 느린 노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본 것은 수컷 초파리의 짧은 머뭇거림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머뭇거림 안에는, 시간을 재던 시계가 시간을 버리고 다른 일을 하는 장면이, 한 세기 전의 흰 눈 돌연변이가 여전히 말을 거는 장면이, 그리고 행동을 시작하기 직전의 그 멈칫함조차 얼마나 깊고 오래된 기계로 빚어지는가가 들어 있다.

우리의 머뭇거림도 어쩌면 그러할 것이다. 행동에 앞선 그 짧은 정지, 무언가를 시작하기 직전의 망설임. 그것은 결함이 아니라, 켜켜이 쌓인 오래된 부품들이 협상을 끝내기를 기다리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수컷 초파리 한 마리가, 마침내, 결심한다.


Miao H, Zhang T, Song Y, Wu Z, Huang Y, Kim WJ. “Neural and Genetic Mechanisms Regulating Copulation Latency in Male Drosophila melanogaster.” Genetics, iyag161 (2026). https://doi.org/10.1093/genetics/iyag161